모스타르(Mostar)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서부, 헤르체고비나 지방 남부 지역의 가장 큰 도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중세.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아드리아 해로 흘러드는 네레트바 강(江) 연안에 위치한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있는 도시로 헤르체고비나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헤르체고비나네레트바칸톤의 주도이다. 네레트바강이 시내를 관통해서 흐른다. 벨레즈산(1968m)과 차불랴산(1776m) 사이의 분지에 위치하고 해발 고도는 약 60m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이다. 버스 터미널이 위치한 신시가지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 걸어서 구시가지로 넘어 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모스타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모스타르 주변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침과 수트나에서 고대의 바실리카 잔재가 발굴되었다. 중세 후기에 네레트바 계곡은 코사차 가문의 지배 아래 있었다. 1454년에 네레트바강 위에 요새화된 도강 시설이 있었다. 이곳은 1466년 오스만에 점령되었고 오스만은 도시를 행정중심지로 정했다. 1474년에 처음으로 모스타르라는 이름이 문서에 쓰였다.
16세기와 17세기에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의 상업과 경제,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다. 1566년 옛날의 목조교가 석조교량으로 교체되었고 1577년에 카라조즈베그모스크가 세워졌다. 대투르크전쟁과 카를로비츠평화조약 후에 모스타르는 새로운 방어시설을 갖추었다.
다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과 같이 모스타르는 187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1881년에 모스타르는 가톨릭 주교가 있는 곳이 되었다. 모스타르에 철도가 연결되었고 네레트바강에 3개의 다리가 더 놓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스타르는 독립크로아티아국에 속했다. 1945년 2월 14일 유고슬라비아인민해방군이 도시를 장악했다. 전쟁 후에 모스타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에 속했다.
보스니아전쟁 중 1992~1993년에는 크로아티아-보스니아군과 세르비아군 사이에, 1993~1994년에는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군 사이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전투 중에 크로아티아군이 모스타르의 랜드마크인 스타리모스트 다리를 몇 시간 계속된 조준 사격으로 파괴했다.
2013년 5월 국제형사재판소는 1심 재판에서 스타리모스트를 파괴한 데 책임이 있는 6명의 관리들에게 전쟁범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전쟁이 끝나고 스타리모스트 다리는 재건되었고 2004년 공식적으로 통행이 재개되었다.
보스니아전쟁 후에 모스타르는 행정적으로 두 도시가 되었다. 네레트바강 서쪽의 크로아티아 지역과 동쪽의 보스니아 지역으로 나뉘었다. 유럽연합(EU)를 대신하여 독일인 한스 코슈니크가 모스타르에 중재자로 파견되었다. 2004년 1월 모스타르시는 6개의 지역으로 나뉘었다. 2018년 유럽에 난민 위기가 발생했을 때 모스타르에도 난민들이 몰려왔고 모스타르시는 임시 난민수용소를 제공하여 난민들이 EU로 넘어가기 전 머무는 장소로 이용했다.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에서 쉽게 방문이 가능하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모스타르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서비스업이 중심이었다. 최근 들어 관광산업이 부쩍 늘었다. 모스타르는 과일과 포도 재배에 적당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헤포크사는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 회사이다. 적포도주인 브르나츠와 백포도주인 질라브카가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소코(S0KO)는 자동차와 항공기 부품 제조회사이다. 알루미니사는 보크사이트를 녹여 알루미늄과 관련 제품을 생산한다.
주변 일대에서 포도·과일·잎담배가 재배되고, 담배·섬유·목재가공·비행기 공업도 활발하다. 또 부근에 있는 석탄·보크사이트 채굴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모스타르의 랜드마크는 스타리모스트로 '옛날 다리'라는 뜻이다. 1556년에서 1566년까지 오스만의 건축가 미마르 하이루딘의 설계로 네레트바강 위에 지어진 스타리모스트는 이 도시 이름에도 들어 있다. 모스타르는 '다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스타르의 옛 도시와 스타리모스트는 2005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다리 가까이에 있는 스타리모스트박물관에서 모스타르의 역사와 스타리모스트의 재건 과정을 볼 수 있다.
스타리모스트 북쪽에 코스키메흐메드파샤모스크가 있다. 이 모스크는 17세기 초에 코스키 메흐메드파샤에 의해 지어졌다. 이 모스크의 뾰족탑에 서면 모스타르 시내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모스크 가까이에 헤르체고비나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모스타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1950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1977년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유고슬라비아 정부 수반 제말 비예디치가 살았던 저택에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은 오스트리아 스타일의 집과 오리엔탈 주거양식이 복합된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박물관 북쪽으로 카라조즈베그모스크가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미마르 시난이 설계하였고 돔의 높이는 16.49m, 돔의 지름은 10.72m이다. 뾰족탑의 높이는 34.50m이다. 이 돔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크게 파괴되었고 1990년대 보스니아전쟁 때 파괴 직전까지 갔으나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보수를 마치고 2004년 7월 공개되었다.
카라조즈베그모스크 옆에 전쟁과 집단학살 희생자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벌어진 보스니아전쟁에서의 학살과 참상의 실상을 보여준다. 박물관 부근에 비슈체비치의 저택이 있다. 이 오래된 오스만 가옥은 1635년에 지어져 비슈체비치 가문이 소유해왔다. 이 집은 두 개의 뜰 셀라믈루크와 하레믈루크를 가지고 있다. 두 층이 있어 아래층은 사적인 용도로 쓰이고 위층은 박물관이다.
네레트바강 동쪽에 성삼위일체세르비아정교회가 있다. 1863년부터 1873년 사이에 지어진 이 웅장한 교회는 1992년 보스니아전쟁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2010년 다시 지어졌다. 이 교회를 지을 때 술탄 압둘 아지즈가 크게 기부하였고 러시아 차르도 상당액을 기부하였다. 이 교회의 중앙 돔은 30m, 십자가가 있는 종탑의 높이는 45m이다. 제단에는 44개의 성화가 있다.
네레트바강 서쪽 지역에도 많은 유적과 볼거리가 있다. 스페인광장과 즈리니스키공원, 크로아티아국립극장 등이 있다. 모스타르제말비예디치대학이 시내 북쪽 네레트바강 동쪽에 있고 모스타르대학교 의과대학이 시내 서쪽에 있다.
즈리니스키공원 한가운데에 영화배우 브루스 리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은 인종 간의 갈등으로 찣어진 모스타르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상징적 인물로 중국계 미국인인 브루스 리를 꼽아 모스타르 도시 운동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프라녜바치카거리에 있는 모스타르성베드로바울프란체스코교회와 수도원은 1866년에 지어졌다. 교회는 1992년 전쟁 중에 파괴되어 전후에 다시 지어졌다. 이 교회의 종탑은 107m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가장 높다. 시내 서쪽 끝 산비탈에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터가 남아 있다. 침 지역에 있는 이 터는 고대로마 시대의 것으로 1966년에 행해진 고고학적 조사 결과 로마시대의 바실리카 터임이 밝혀졌다.
모스타르는 M-17번 도로가 주된 간선도로이고 이를 통해 사라예보, 부고이노 등으로 연결된다. 모스타르에 철도가 있고 북쪽으로는 사라예보, 남쪽으로는 차플리나로 연결된다. 철도역은 시내 북쪽 네레트바강 동쪽에 있다. 모스트라에는 시내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모스타르국제공항이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지로 가는 항공편이 있다.
중세 건축물이 많으며, 로마 시대의 성(城), 1556년 건설된 다리, 튀르키예령 시대의 이슬람교 사원 등이 유명하다. 1878∼1918년 오스트리아 지배 때에는 세르비아 애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