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년을 중퇴했고, 서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
다.
노동력착취를 성장 동력으로 삼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친 후 분신한 노동자의 불꽃 전태일 열사의 추모공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중가수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거리가 김광석 길이다!
그는 대구에서 출생했으나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서른하고 두해를 조금 살다 자살을 했고, 7개월의 군대생활이 전부인 그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추모거리를 조성하고, 관광자원화 하는 행위는 그를 추회하는 사람들에게 대중가수의 자살을 미화하는 잘못된 signal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합리적 의심도 가져 본다.
그는 특이한 창법으로 음유가수라는 수사가 따라 다닌다.
7개월이라는 짧은 병영생활을 이야기 하는 이등병의 편지와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그리고 고 노무현대통령과 세월호의 추모곡으로 더 잘 알려진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노래가 그를 음유가수라는 수사를 붙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작사, 작곡가의 몫을 가수로 가로챈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를 알려면 백창우를 먼저 알아야 한다.
80년대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는 청춘들을 위하여 “가난에 울며 떠나간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라는 “그리움”이란 노래와 영화 JSA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부치지 못한 편지”의 작곡가 백창우는 “아침 이슬”의 작곡가 김민기가 70년대의 민중음악을 대표한다면 80년대는 음유시인인 백창우가 시대를 대표했고, 김광석이 백창우를 만남으로써 음유기수의 반열에 오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광석 거리는 대구의 심장을 관통하는 달구벌대로의 정중앙에 있고, 시내에서 경산방면으로 진행하다 수성교를 건너기 전 우회전 하면 주차장이 있고, 도보로 걷는다면 수성교 건너기전 우측 하단골목이 김광석 거리이다.
외양의 화려함은 찾을 수 없으나 대중에게 어필했던 노랫말과 김광석을 caricature한 익살스런 얼굴들이 반갑고, 7개월의 병영생활을 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입대하는 무표정한 얼굴이 photozon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야외 concert hall은 언제 공연이 있었는지 먼지만 뽀얗고, 164cm의 단신인 김광석의 동상이 왠지 안쓰럽다.
inpormation에서 음악을 신청하면 는 12:00-14:00 대구MBC FM 정오의 희망곡을 통하여 신청곡을 들을 수 있는 특전도 주어지는데 로또당첨 확률만큼이나 어려우니 무시하는 것이 좋고, 김광석 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먹거리 천국으로 가족이라는 상호를 가진 족발집은 문전성시로 주말에 친구들이랑 족발을 맛보려면 기본 한 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수고가 필요하고, 주변 맛집들의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덤으로 대구의 근대골목도 탐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김광석 동상 뒤편에 있는 도로를 따라 5M쯤 들어가면 우측으로 좁은 골목이 나타난다시멘트 담장 벽에 동덕로 14길이라는 표식이 있고, 아쉽지만 연인끼리도 손잡고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지붕 낮은 집들이 빼곡히 자리한다.
벽이 담장을 대신하여 내밀한 s-art의 거친 숨소리가 가끔씩 골목 밖으로 새어나오는 길을 따라 90M쯤 걷다보면 네거리가 나타나고 다시 직진하여 150M쯤 걸으면 탐방은 끝난다.
240M의 좁은 골목길은 피난시절 몸서리치는 가난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반세기를 넘었는데 골목길은 아직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면서 질곡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피난시절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근대골목 투어에서 처절했던 어르신들의 삶이 왜, 변화를 거부하면서 대구가 보수의 중심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물질은 부동의 본질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한다.
사회변동도 합목적적 차원과 합법칙적 차원간의 변증법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역사는 전진하는데 어르신들의 경직된 사고가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면서 청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유종지미라고 시작이 좋으면 끝맺음도 아름다워야 한다!
골목투어 끝자락에 서서 우측으로 가면 다시 김광석 거리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300M쯤 걷다 대로가 나타나면 다시 왼쪽으로 150M쯤 걸으면 풍금이 나타나는데 여행의 뒤풀이는 아무래도 음악이 있어야 제격이다.
풍금에서 시대를 살다간 김광석을 추회하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부르며 그를 무대 위에 초대한다!
백스크린을 통하여 그를 만나고, 소통하다보면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퍼즐게임처럼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고, 그리움으로 변한다.
연지는 늘 제자리에 있고, ‘옛것이 가면 새 것이 온다는 전설처럼 헤라를 대신하여 주란이라는 귀여운 여인이 전속가수로 출연하고 있네!
하지만‘너무ㅡ작다’ 눈오는 밤 외투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생각나면 꺼내보는 밀랍 인형처럼 그 여자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열창하고, 7개월의 병영생활을 배웅하는 허상을 만들었는지 언제나 마지막 곡으로 “춘천역에서”라는 노래를 부른 후 무대에서 사라진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인가!?
죽은 시인의 시회처럼 철학이 빈곤하면 영혼이 황량해 진다.
들소를 쫒는 사자처럼 노동을 통하여 비워진 곳을 채운다면 일탈이라는 여행을 통하여 채워진 것을 비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거리에서 그를 만나고 풍금에서 추회하면서 까만 밤을 하얗게 세워보는 기억여행이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