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쁜 여자
장이엽
야야, 이 꽃 좀 봐라!
참 곱기도 허다
나, 이 꽃 앞에서 사진 하나 박아 도라
팔순 노모는 꽃 앞에만 서면
아직도 여자다
좋은 그릇 찬장에 넣고 싶고
예쁜 옷 입고 싶고
윤기 나는 항아리 장독대에 올리고 싶은
여전히 살림살이 좋아하는 여자다
지 눈으로 보고
지 이빨로 깨물어 먹어야 맛나다고
지 손발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 귀로 듣고
지 코로 숨 쉬다 가야 한다고
뭣이든지 지 힘으로 하는 것이 존 거라고
친구들이랑 짜장면도 사 먹고
굽은 허리 세우고 훌쩍 마실도 나갔다 오는
똑소리 나는 여자다
어떤 날에는
단풍 구경 갔다 오니 불 꺼진 방이 서럽더라고
마당 구석에 한 촉 난 꽃이 피었는데
먼저 간 양반 생각나 그 앞에 주저앉아 울었노라고
자식에게 전화 걸어 흐느낄 줄도 아는
참말로 꼭 안아주고 싶은
너무 이쁜 여자다
Portrait of T.S. Repina, mother of the artist, 1879
엄마 미안해
- 고혜정, '친정엄마' 중에서 -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자주 보여드리지 못해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엄마의 허리 디스크를 보고만 있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말 100퍼센트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늘 미안한것 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건
엄마,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
정말 미안해....
My mother, Vasili Surikov, 1894.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을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Madame Vuillard Mother Sewing,
그리스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함께
양대산맥으로 알려진 마누스 하지다키스..
그의 조곡.. 'Tale Without A Name'
(이름없는 이야기)에 수록된 곡으로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로 소개된
'나의 어머니' 입니다
나나 무스쿠리는 마누스 하지다키스가
발굴한 가수이기도...
어머니에 대한 숭고한 사랑과
감사를 담고 있는 애절한 곡입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가수
하리스 알렉시우가 노래합니다.
https://youtu.be/5ly_aRoFpIs
보고싶은 사람
/ 문정희
아흔 셋, 하얀 노모가 자리에 누운지
사흘째 되던 날
멀고 가까운 친족들이 서둘러 모여들었다
어머니! 이제 마지막으로요...
이 말은 물론 입 밖에 내지 않고
그냥 좀 울먹이는 소리로
어머니! 지금 누가 젤 보고 싶으세요?
저희가 데려올게요
그때 노모의 입술이 잠시
잠에서 깬 누에처럼 꿈틀하더니
" 엄마...!" 라고 했다
아흔 셋 어린 소녀가
어디로 간지 모르는 엄마를
해지는 골목에서 애타게 찾고 있었다
Renoir, My mother
하루살이 - 어머니 학교 72
/ 이정록
막내가 가르쳐준 건데
하루살이는 애벌레 때부터
스무 번도 넘게 허물을 벗는다더라.
그러니께 우리가 보는 하루살이는
마지막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거지.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는데
알주머니 하나를 온전하게 채우고
비우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거여.
필사적이란 말이 이렇듯 장한 거다.
어미 아비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춤사위여.
- 이정록 시집 <어머니 학교> 2012
My mother, Jules Bastien-Lepage ,1877.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Paul Gauguin , Aline Marie Chazal Tristán, The Artist's Mother,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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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me hermoza donzella..
'잘 자거라 예쁜 아이야'로 번역되는
어머니의 자장가..
15세기경부터 그리스의 '로도스'섬에서 전래되어오는 스페인계 유대인들의
자장가로 그리스의 배우이며 가수인
'페미 조우니'가 노래합니다
스페인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음악인 '라디노'(스페인어와 히브리어의 혼합된 이들의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장가입니다
당신
/ 복효근
가시기 며칠 전
풀어 헤쳐진 환자복 사이로
어머니 빈 젖 보았습니다
그 빈 젖 가만히 만져 보았습니다
지그시 내려다 보시던 그 눈빛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처럼 처연하게
그처럼 아름다웁게
고개 숙인 꽃봉오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야훼와
부처가 그 안에 있었으니
이생에서도
다음 생에도 내가 다시 매달려
젖 물고 싶은 당신
내게 신은
당신 하나로 넘쳐납니다
별국
/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Anna Ancher - Den gamle fru Brøndum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신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
Pablo Picasso, Portrait de Maria Picasso Lopez, 1923
엄마의 런닝구
/ 배한권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 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Jean-Auguste-Dominique Ingres, Mother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Alexei and Sergei Tkachev, 화가의 어머니
걸친, 엄마
/ 이경림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클림트가 휘슬러 어머니의 초상과 비슷한 포즈의 어머니 Anna Klimt를 그린 스케치.
드보르작 <집시의 노래>
Op.55 중 네 번째 곡인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입니다
1880년에 작곡된 연가곡집
집시의 노래 Op.55는 보헤미아의
서정시인 아돌프 헤이독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한 가사에 멜로디를 붙인
작품으로 총 7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Songs my mother taught me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이 곡에서 드보르작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어머니의 추억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나이 들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지만,
세 자녀를 모두 잃은 드보르작 자신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선율에
담긴듯..아름답지만 애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