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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읽어보는데도 정말 시간걸리네..
난 짧게..멋지네.....부러버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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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지원 미국 단기연수 후기.
기계공학과 이현성.
8월 15일 11시 05분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난 군용수송기만 5번 탔었다. 거긴 스튜어디스는 없다.
처음타는 민항기라 많이 기대되었다. 난 창가에 앉았다.
속도는 840km/h 고도는 6500m.
미소가 너무 이쁜 승무원이 보였다.
난 곧 창밖의 구름만 바라보며 한시간 남짓 날아갔다.
위는 그냥 안개처럼 하얗고 아래는 구름이 보였다.
12시 07분 김포에 내렸다. 거기서 출국 수속을 밟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인천공항은 세계적 규모의 거대한 공항이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보며 건축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면세점을 들러 외국인에게 줄 5개 들이
작은 인형을 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무인형이었다.
재밌는 일은 계산하는 사람이 날 일본인으로 봤는지
일어로 가격을 이야기했다. "텐 도루 데스."
그래서 내가 그랬다..."얼만데요?"
16시 40분 드디어 미국으로 가는 장장 12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태평양 위에 티끌보다 작은 이 비행기가 쉬지 않고
12시간을 달린다는 게 두려움이 앞섰다. 자연앞에 인간의 힘이란
너무 보잘것 없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그냥 잘 도착하기를 바랬다.
인천에서 뜬 비행기는 강릉을 지나 일본 가시나와와 마애바사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때 속도는 946 km/h 고도는 10058m, 남은 시간 10시간 03분.
샌프란시스코에는 현지시간으로 8월15일, 11시 40분에 도착한다고 한다.
6시 30분 적포도주와 과자를 먹었다.
6시 50분 저녁식사로 비빔밥과 백포도주 미역국을 먹었다. 꽤 맛있었다.
순풍산부인과를 틀어줬다. 박영규가 동네 반장이 되는 내용의...
식사를 하고 보니 일본을 벗어나 진짜 망망대해 태평양 위에 떠있었다.
7시 30분 열린음악회를 보며 맥주랑 과자를 멌었다.
갑자기 술을 많이 먹었는지 술기운이 오르는 듯 했다.
8시 20분 계속 태평양 위...
8시 40분 스튜어디스에게 트럼프 카드를 받았다.
9시 20분 기내 소드을 하고 영화 007을 상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고 있었다.
11시 05분 날자변경선을 이미 지나 있었다.
속도 1006km/h, 고도는 10669m, 잔여시간은 4시간 41분.
12시 55분 자다가 일어났다. 창밖에 해가 보였고 날씨는 무척 맑았다.
태평양을 거의 지나 현재 날짜변경선과 샌프란시스코의 중간쯤에 있었다.
속도 976km/h, 고도 11887m, 외부 온도 -51도m, 남은 거리 2476km,
잔여시간 2시간 46분.
1시 00분 현지 시각 9시 00분 도착은 현지시각으로 11시 45분.
창밖을 보니 잔디위에 눈이 내린 것 같다. 구름보다 상당히 높이 떠 있고
위는 그냥 파랗고 아래는 구름이 보인다.
1시 54분 속도 1037km/h, 고도는 11997m 샌프란시스코 9시 54분.
2시 00분 아침식사가 나왔다. 난 볶음밥과 빵을 먹었다.
장거리 비행에 있어서 시차적응을 하기 위해서인지 식사는 모두 도착지
시간을 기준으로 나왔다.
2시 59분 현지 10시 59분 976km/h, 11887m, -56도, 유리카 앞바다다.
46분 남았다. 하늘은 진한 파랑색이고 아래는 아주 넓은 구름이 보인다.
미국 서해안상공, 이제 40분 남았다. 샌프란시스코 기온은 현재 15도.
이제 육지가 보인다.
3시 15분 유카이아 근처, 속도는 944km/h, 고도는11277m.
잠시 딴 이야기...
승무원에게 물어봤다.
승무원은 거기서 어떻게 오냐고...
수요일에 도착하면 금요일 저녁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시간 토요일에
서울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리 좋은 직업은 못되는 듯 하다.
또 승무원에게 뭐라고 불러야 할지 물었다.
누나라고 부르란다. 나도 나이가 많다고 했더니 내 신상기록 카드를 보더니
나랑 강산하나는 바뀐 나이라고 그런다. 학교졸업한지 15년 되었다고. 졌다.
그래서 모두 누나라고 불렀다. 그랬더니 작은 승무원이 자기는 누나가
아니라고 한다. 그냥 계속 승무원 누나라고 불러버렸다.
비행시간이 다 되어갈때쯤 이현아라는 승무원누나가 눈을 힘겹게 뜰정도로
피곤해 하면서도 입가에는 계속 미소를 띠며 친절히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프로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초보처럼 보이는 약간은 어리버리한 승무원도 있었고, 일어를 잘하는
김주선이라는 승무원-이 친구는 나에게 사인을 해줬다.-과 남자승무원이
세명 있었다. 모두들 아주 친절했다.
"139기 김주선이었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세여~"
3시 40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귀가 멍해서 계속 침을 삼켰다.
창밖을 보니 날개가 위로 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닷물이 보이고 곧 착륙.
엔진 역회전 소리가 들리고 에어브레이크가 작동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시각 11시 42분 도착.
입국 절차중 직원과의 짧은 대화...
"sightseeing?"
"yes"
"how long will you stay?"
"for~ nine days"
12시 40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나왔다.
주위에서 온갖 언어들이 들리고 온갖 인종들이 보였다.
날씨가 꽤 추웠다. 여름에 15도라니... 우린 모두 반팔이었는데
주위에는 잠바를 입고 있었다.
1시 10분 버스를 타고 금문교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난 줄곧 이 곳 사람들이 TV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지선을
잘 지키는지 계속 살펴보았다. 그 결과 마치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한대의 차도 정지선을 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샌프란시스코는 1849년 Gold Rush로 사람들이 모이고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49개의 항구가 있고, 49개의 구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49라는 숫자를 좋아하여 미식축구팀 이름을
forty-niners 라고 지었다고 한다.
맥아더 터널을 지나
1시 40분 금문교(golden gate bridge)에 도착했다. 거대하고 붉은 색을 띤
다리였다. 앞에는 알카트라즈 감옥이 보였다. 여기서 사진을 몇장찍고,
2시 10분 버스를 타고 금문교를 지나 반대쪽을 구경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Union Square 에 와서 잠시 쇼핑.
4시에 동백이라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6시 Bay Bridge 에서 오클랜드 항구가 보였다. 한국의 선적들이 보였다.
7시 저녁식사 후 맥주를 사고
7시 40분 Holiday Inn 에 Check in.
inn 이라고 하면 한국의 여관을 생각하기 쉬운데,
미국에서 inn은 motel보다 한단계 높은 숙박장소를 뜻한다.
motel이야말로 작고 초라한 집이었고 inn은 호텔수준이었다.
111번 방 이현성, 김상철, 권재은
샤워 후 맥주를 마시고 잠들었다.
여기까지 첫날!!!
16일 아침 7시 기상, 8시 아침식사와 커피 한잔, 9시 20분 버스 출발.
Blvd. 는 boulevard, Rd는 road.
산호세는 숙식료가 근처에서 가장 비싸다고 한다.
주중에 사업차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오히려
주말에는 손님이 없어서 싸다고 한다.
10시 20분 오클랜드, 스톡톤을 지나 산호세의 Darim Vision 을 방문.
KBS에서 방송하는 역사 스페샬의 무대와 같은 3차원 그래픽을
만드는 사업체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만족스러운 효과를 줄수 있었다.
대전에 본사가 있고 96년에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동영상 제작 과정을 보고 그 장면을 CD로 만들어 주었다.
11시 20분 U.C. 버클리로 출발.
12시 버클리 도착.
버클리는 건축물들이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빨간 나시를 입은 버클리 학생과 사진을 찍고 인천에서 사온
작은 고무인형을 주었다. 앉아 있는 한 학생과도 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보였고 잔디에 누워
책을 보는 사람 길가 계단에 앉아 빵을 먹는 사람, 거지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활기차 보였고 정문 앞에는 기타를 비롯 여러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1시 버클리대를 떠나
1시 20분 Bay Bridge 를 지났다.
이 다리는 중간에 섬을 하나 걸치고 있는데 그 양쪽의
파도의 세기가 달라 생긴 구조 역시 다르다.
샌프라 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연결하며 2층으로 되어있다.
각 층은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다.
1층은 동쪽으로 가는 5차선, 2층은 서쪽으로 가는 5차선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전체 건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에 인공섬이 보이고 그 뒤에 알카트라즈, 금문교가 차례로 보인다.
1시 35분 Japanese Town에 들어왔다.
동양식의 탑이 보이고 중국식 정식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Computer user라는 가판대의 잡지를 들고 왔다.
2시 20분 Pier 39으로 이동.
39번 항구는 샌프란시스코의 49개 항구중에 39번째 항구이다.
가는 길에 언덕이 많다. 차이나 타운을 지나는데 여기 모습은 한국이랑
조금 비슷하다. 인도를 반쯤 걸친 차들이 많고, 이 곳 인구는
샌프란시스코 전체의 20%나 된다고 한다. 70만 중 15만이 중국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상권과 밤거리를 다 잡고 있다고 한다.
어제 지났던 Union Spuare 을 지나고 차이나 타운을 지나고
차이나 타운과 맞닿아 있는 이탈리아 타운으로 들어왔다.
도로 옆 넓은 잔디에 누워 썬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심지어는 수영복을 입고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다.
버스가 가는 길 정면으로 바다가 보인다.
39번 항에 도착하자마자 유람선을 타기위해 뛰었다.
3시 00분 부터 4시 00분까지 유람선을 탔다.
항구앞 바다에 자연서식하는 바다사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누워 있다.
알카트라즈, 금문교를 지나서 안개가 자욱한 바다까지 갔다가
다시 항구로 돌아 왔다. 알카트라즈는 바닷물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어
탈출이란 절대 불가능할 듯 보인다. 이 곳에 상어까지 산다고 하니...
윈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재주를 넘고, 가끔씩 바다사자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는 무척 추웠고 여기서 프랑스에서 관광온 아줌마와 그 딸과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의 영어는 매우 유창했다. -_-;
배에서 내려 상가에 들어갔다.
멋진 스포츠카에 "Win this Car"라는 글씨가 적혀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응모지에 열심히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적는 모습이 눈에 띤다.
나도 적고 싶었지만...참았다.
샌프란시스코라고 적힌 긴팔티를 사고 구석구석 구경을 했다.
5시 10분 Palas of Fine Art League로 출발.
샌트란시스코에서 도시가 붕괴되었을 때 재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술 전시회를 열었는데 원래 석고였던 이 궁전을 다시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은 영화 The Rock에서 숀 코네리와
그 딸이 만나는 배경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돔형의 궁전 지붕이 조금씩 떨어져 보수 공사중이라고 한다.
성을 둘러 연못이 보였고 연못에는 오리들과 흰 새가 살고 있었다.
5시 50분 다시 버스를 타고
6시 20분 저녁 식사를 했다.
7시 10분 호텔로 출발, 이 날은 기계산업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잠들었다.
여기까지 두번째 날!!
8월 17일 아침 9시 05분 실리콘 벨리로 출발했다.
실리콘 벨리는 산호세를 중심으로 한 7개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실리콘 벨리는 아주 넓고 조용한 곳이었다. 중간에 전차가 가로지르고
모든 건물들이 층수가 적었다.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잘 꾸며진 나무들과 건물들만 보였다.
현대 전자(Hynix), 삼성도 들어와 있었다.
10시 10분 시스코사에 도착했다.
시스코는 10개가 넘는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회사가 차지하는
넓이만 해도 엄청났다. 시스코사는 처음에 실내 방문을 거부하더니
잠시 후 일본인 가이드가 나와서 자기 회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샌프란 시스코라는 도시명에서 시스코라는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시스코의 역사와 차세대 전화기, 내부의 conference room 등을 보았다.
인도여자 한명이 들어왔는데 분홍색의 걸치고 있는 옷까지 모두가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모두들 눈을 떼지 못했다.
Kacy Ogawa Program Manager.
Executive Briefing Center
Cisco System. Inc.
170 West Tasman Drive San Jose, CA 95134-1706 USA
Direct : 408 527-4801.
www.cisco.com
다음엔 인텔 박물관을 방문했다.
인텔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박물관을 설치해 두고
자사를 소개하는 곳이었다.
각종 간단한 실험 기구들이 보였고, 눈에 띠는 것은 이 곳 연구원들이
입는 실험복이었다. 흡사 우주복처럼 생겼는데 방문객들이 직접 입어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우린 그 옷을 입었고 이 코너를 담당하는 직원이
즉석사진을 찍어 주었다.
우리나라의 PC방같은 공간도 있었다.
거기서 잠시 한국의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남겼다.
here is the intel museum of silicon vally in san jose.
i cannot write in korea.
also i dont have enough time to write in english
so..i must go out rihgt now
see you in korea.
have a nice day.
12시 40분 점심 식사
1시 40분 스템포드 대학으로 출발.
미국의 대학생들은 우리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라 한다. 특히 미국내 5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스탠포드는
학기중 내내 우리의 시험기간 이상으로 공부를 하고 건강, 운동, 놀이에는
거의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다고 한다. 성적은 절대평가로 나누는데 B- 학점이
두개만 생기면 바로 퇴학이라고 한다. 우리 가이드 형님의 친구가
여기 있었는데 250여명이 입학해서 48명이 졸업했다는 것이다.
1년중 노는 시간은 봄방학이라 불리는 약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고
학기중에는 계속되는 공부하고, 시험기간에는 매일 밤새서 얼굴이
하얗게 뜬다고 한다. 방학중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하고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학시절 내내 죽는 것이다.
페이지 밀(스탠포드가 있게한 연구소들이 있는 마을)을 통해
HP사를 들리고 대학으로 계속 향하기로 했다.
2시 10분 HP사 도착.
HP사는 휴렛과 패커드가 스탠포드 대학시절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인데, 두명이 공동사장으로 일을 시작할 때 회사이름을
정하기 위해 동전던지기를 했다고 한다.
이 때 휴렛이 이겨 이름이 휴렛 패커드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실리콘 벨리의 영웅으로 칭해지고 있다는데 그들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차고에는 작았지만 "실리콘벨리의 시작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HP본사는 직사각형의 건물로 담쟁이 덩쿨이 싸고 있었다.
이 곳이 그 거대한 HP의 본사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조용했다.
3시 40분 스테포드 대학 도착.
스탠포드 대학은 학교랑 이웃 마을의 건물들이 특별히 따로
구분지어져 있지 않고 학교가 거대하게 마을을 삼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어디까지 학교라는 구분이 없다.
Jordan Hall 이라는 건물을 시작으로 우리는 학교를 둘어보았다.
4명이 따로 길을 나섰는데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
계속 넓은 이 대학 캠퍼스를 걸어다니다가 돌아왔다.
꼭 가보고 싶었던 도서관과 학생회관을 놓치고 만 것이다. 아까워라...
5시 스탠포드 대학을 떠나 저녁 식사하러 출발.
7시 저녁식사로 미국식 뷔페에 도착.
한식보다 맛이 없고, 고기, 감자, 빵 등등 모조리 느끼하기만 하다.
BRENDA.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왔다.
이 날이 아름다운 도시 샌프란 시스코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덕영이와 동영이랑 건물내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돌아다녔다. 카운터에 있는 외국인 여자랑 잠시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으면서 잠들기 아쉬운 시간들을 즐겼다.
다음 날 아침 8시 101고속도로를 타고 LA로 출발했다.
8시 40분 101번 고속도로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집들이 보인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넓고 크다.
8시 50분 아주 가파른 언덕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9시 30분 경비행장이 보인다. 거의 모든 것이 우리에겐 생소하다.
10시 좌우로 초대형 논이 보인다.
10시 40분 죄우로 황량한 땅과 노란 풀로 덮힌 산이 주위를 싸고 있다.
11시 30분 휴게소 도착.
미국의 휴게소는 우리보다 더 크고 멋질 줄 알았는데
아주 작고 관리하는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넓은 땅 한켠에 화장실과 몇개의 자판기, 식수대가 고작이었다.
12시 10분 아카사데로에 있는 In and Out이라는 fast food 점에서
더블버거로 점심식사를 했다.
In and Out은 미국에서 가장 햄버거가 맛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맥도널드는 미국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한다.
맥도널드는 장난감을 주기 때문에... ^^
IN and Out은 버팔로 고기를 쓰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 고기를
굽기 시작한단다. 감자는 냉동감자가 아닌 생감자를 쓴단다.
그래서 맛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햄버거와 별다는 점을 못느겼다.
다르다면 바로 햄버거의 크기.
더블버거 한개 먹고, 남자든 여자든 모두들 두손들었다.
버거 자체만 해도 너무 크기 때문에 감자는 먹을 엄두도 못냈다.
우리 홍일점 영미는 햄버거를 절반가량 남길 정도였다.
12시 40분 다시 차를 타고 LA 로 출발.
2시 솔뱅이라는 덴마크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덴마크인들의 정착지로서 전통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미국식 건물들도 아름다웠지만 이곳에 있는 덴마크식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커피숍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작은 풍차가 보이고 타조 농장이 있고 집들은 끝이 뽀죡하게 되어있다.
덴마크의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이 관광객들과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도 보인다.
길을 가다가 이 곳사람들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 지나가는 키가 크고 이쁜 여자두명에게 말을 걸었다.
"Can I take a picture with you?"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알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Sure"
그리곤 덕영이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지만 그냥 그렇게 서서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난 후의 대화,
"Where do you live?" "Live?" "yes" "here"......
2시 40분 다시 버스를 탔다.
Refugio state beach 를 지나며 창밖에는 시추선들이 보였다.
고속도로에는 Call Box 라고 적힌 공중전화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데
이것은 고속도로 주행중에 차에 문제가 생기면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설치된 무료전화이다. 에너지는 태양열을 이용한다.
3시 45분 산타바바라 해변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어느 해변도 여기보다 크진 못할 것 같았다.
해운대의 10배 이상되는 긴 백사장, 낮은 물의 깊이, 아주 부드러운
모래, 하늘로 길쭉하게 솟은 팜트리 등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다.
참, 파도에 해초가 가끔 떠밀려 오는 것이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은 작고 아기자기한 매력을 지니고 있고,
이 곳의 것들은 모두 크고 광대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백사장 밖 잔디밭에는 팜트리가 심어져 있고 잔디를 따라
작은 도로가 나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자건거를 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잔디에 누워 있는 선텐족들도 많았다.
바다 멀리에는 요트들이 떼지어 서 있었고, 특이하게 군함도 한대 보였다.
이 곳에서 제프리라는 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5시 00분 다시 차를 탔다.
30분 가량 해변이 계속 보이고 그 해변을 따라 주거용 차들이 수십대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7시 00분 LA로 진입했다. 왼쪽 산중턱에 TV에서 많이 보던 HOLLYWOOD라는
큰 글이 보인다. LA는 샌프란시스코보다 번잡한 도시라고 한다.
지금은 퇴근시간 쯤인지 traffic jam에 걸렸다.
시내로 들어가니 집집마다 철창이 되어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코리아 타운에 다가가니 양쪽에 걸린 간판이
거의 한글로 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공식적으로 60만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데 실제로는 150만이나 되는 한국인이 살고 있다.
미국 경찰들이 불법체류자들은 쫓아 내지 않는 이유는 불법체류자로
보여도 그들을 신원을 임의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임의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개인 사생활 침해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거지들이 길에서 술을 마시는 방법도 이를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술을 흰 봉지에 넣어서 빨대등은 이용해 마시면 경찰들은 그것이 술인지
알면서도 잡을 수가 없다. 술병이 보여야만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듣던 그대로 미국은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안하면 너무 살기 좋은
나라이고 대신 그 범위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끝장나는 곳이라 한다.
이 곳에서 우리나라 차는 성능이 아주 뛰어나다는데 수출용은 국내용과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반떼는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엘란트라는 란트라라는 이름으로 산타페는 그 이름 그대로 팔리고 있었다.
자주 보이는 차는 Toyoda의 차들이고 그 외에 Dodeg, Fod, VolKs Wagen,
가끔씩 Honda와 우리나라 차들이 보였다. 나머지 차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런 차들이었다.
흑인 폭동 때 화재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건물을 보았다.
지금은 깨끗한 2층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건물 주위에는 당시의 그을음 흔적이
남아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 주었다.
폭동 때 유독 코리아 타운만 부쉬진 이유가 코리아 타운이 너무 커서
특별히 막을 수 있는 경계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곳의 Japan Town과 China Town은 작기 때문에 입구만 봉쇄하고
흑인 폭동을 막울 수 있었다고 한다.
왼쪽에 WILTERN극장이 보이는데 이곳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처음
열었던 곳이라고 한다.
7시 15분 한인타운에 들어왔다.
미가촌에서 저녁식사 후 8시 00분 호텔로 들어왔다.
호텔 이름 Four Point Sheraton.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기상.
7시 30분 출발.
LA는 이름 그대로 천사의 도시라고 한다.
연중 기후가 아주 좋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88개의 군과 980만의 인구로 구성되어 있다.
LA시 내에는 LA county가 있고 또 다른 군들로 이루어져 있다.
날씨가 좋은 곳이라 거지들(homeless)도 많다는데 이 거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층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변호사, 판사, 검사, 회사의 중역 간부들...
이들은 일에 시달려 자유를 즐기기 위해 거지가 되었다는데
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래도 왜 거지생활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니가 그 일 해봐라"라는 대답을 한다고 한다.
창 밖에 유전을 파는 사마귀같은 기계들이 보인다.
홍기춘박사가 개발한 기계로 유전을 파는데 가장 효과적인 기계라고 한다.
켈리포니아 주에는 1400개의 유전이 있는데 계속해서 퍼내지 않으면
기름이 땅으로 올라와 땅이 오염된다고 한다.
미국은 아직 인종차별이 있는데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영리한 머리와 자식에 대한 교육열 때문에 일본인, 중국인, 베트남인,
유테인들을 다 제치고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국인이 제 2의 유태인이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유테인들이
제 2의 한국인으로 불릴 정도라 한다.
우리는 백인보다 흑인을 더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흑인들이 더 순수하고 정이 많다고 한다.
LA내에서 각 나라사람들의 묘한 삼각관계가 있는데
흑인은 멕시코인을 무서워하고, 한국인은 흑인을 무서워하고,
멕시코인은 한국인을 무서워한다고 한다.
미국내의 법 규정상 시급은 최소 $6 이상이라도 한다.
한국인들이 멕시코인을 쓰면서 노동착취, 사기등을 많이 해서 멕시코인들에게
평판이 안 좋은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멕시코인의 어깨를 치거나 만지면 그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걸로 보고 칼등을 꺼낸다고 한다. 그들은 다혈질이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윌셔가에 들어섰다.
윌셔가의 대부분의 고층빌딩은 한국인 소유라 한다.
8시 00분 양지 식당에 도착.
예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설렁탕을 먹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자리에 김영삼 대통령이 식사했던 곳이라고 붙여 놓았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사람들이 계속 발로 차는 바람에 지금은 처음 오는 사람들은
알 수 없도록 책상을 돌려두었다고 한다.
우리가 어딘지 봤더니 그 자리도 별다른 것은 없더라.
8시 35분 식당에서 나옴.
자유를 위해 거지가 된 사람들의 마을을 지났다.
온 거리가이불을 겊어쓴 사람들, 카트에 자신의 물건들을 싣고 돌아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끼리 모여 살라고 큰 집을 만들어 줬지만 이들은 일주일을 못 버티고
다시 길가로 나선다고 한다. 날씨가 추울 경우에는 시에서 이불을 주어
이들이 추위를 나게 한다.
어느 곳이나 정부의 세심한 배려가 닿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Japanese Village Plaza를 지나 영화 Indipendence day에서 파괴되었던
시청이 보였다. 다시 지었나 보다. ^^
미국의 도로 주위로 집들이 보이는데 항상 집과 도로의 높이는 다랐다.
그 이유가 집에서 들리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도로에는 길을 따라 작음 홈이 있는데 이 홈은 비가 올 때 배수로 역할을 하고,
소음 방지, 타이어의 마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건조한 땅의 도로 주위로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나무들이 바로 길의 홈에서 모아진 물을 이용해
뿌리는 스프링 쿨러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라 한다.
왼쪽에는 차 풀레인이 있다. 이곳은 2명 이상 타고 있는 차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예전에 임산부가 이 길을 타고 가다가 걸렸는데 애기도
사람이라고 우기다가 재판에 졌다고 한다.
도로의 흰선 위에는 볼록렌드가 있는데 이는 내 차의 불빛을 이용해 반대쪽에서
오늘 차들에서 길을 안내해주고, 혹시 자신이 반대차선으로 진입할 경우
이 렌즈들이 활주로처럼 붉은 빛을 내며 빛난다고 한다.
그럼 즉시 차선을 바꿔야겠지.
이 렌즈는 땅위로 볼록하게 된 것이 있고 땅아래로 들어간 것이 있는데,
땅아래로 들어간 것은 눈이 내리는 지역에서 눈을 쓰는 차가 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배려였다.
우리도 국민들을 위해 정부가 이토록 배려할 줄 아는 날이 오길 바란다.
오른쪽에 할리 데이브슨 족들이 자나간다.
우리나라에 까불거리는 폭주족들과 달랐다.
모두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점잖게 달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국에 주었던 우정의 종각에 왔다.
미국에서 정당하게 자리를 잡은 대통령이 아니라 하여 종을 받지 않고
버렸는데 LA교민들이 땅을 사고 돈을 모아 이 종을 세웠다고 한다.
종각 아래로 넓게 바다가 보였다.
다시 차를 타고 미녀삼총사의 자동차 충돌 장면의 무대가 되었던 다리를
지나고, 산페드로항을 지나 Long Beach 해변이 들어왔다.
퀸 메리호가 보였다. 퀸 메리호는 현재 호텔로 사용되고 있었다.
바다물 위에서의 잠이란 또다른 매력을 지닐 것 같았다.
퀸 메리호 바로 옆에는 러시아의 폐잠수함이 보였다. 메리호는 흡사
타이타닉호를 연상시켰다. 색깔과 모양까지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직원과 사진 한장.
다시 차를 타고 달리면서 영화 스피드에서 버스 점프장면에 배경이 되었던
도시 고속도로를 지났다. 10회 LA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 보였다.
호텔로 오는 길에 호텔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고 저녁에 맥주는 마시며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기상
7시 00분 출발.
오전에는 UCLA를 가서 도서관과 학생회관을 구경하고,
1시 15분 점심식사 후 면세점으로 갔다.
제임스 딘이 사고로 죽은 101번 도로를 탔다.
이 도로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데 바로 제임스딘에 관련된 이야기
때문이다. 제임스 딘은 버드와이저가 죽였다고 하는데 이유는
제임스 딘이 버드와이저의 모델을 하고 그 회사가 준 포르쉐를 타고
버드와이저를 마시면서 이 도로를 달리다가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 후 버드와이저는 불티나게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이 도로에서 버드와이저를 마시며 달렸다고 한다.
아마 포르쉐를 살 돈은 없었나 보다. 포르쉐를 타고 달린다는 말은 없는걸 보니.
1시 30분 duty free shop에 잠시 들러 동생에게 줄 샌프란 시스코를
상징하는 고양이 인형을 샀다.
2시 20분 자바시장에 들어왔다. 차창밖으로 아주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 곳의 가게 90% 이상이 한국인 소유라 한다.
여기서 한 상품이 뜨면 그것은 곧 세계적 상표로 뜨는 것이라 한다.
2시 40분 EC2 라는 인큐베이터 회사에 방문했다.
Jessica Lucas 가 각 방의 시설물들의 역할을 설명해 주었다.
회의실에가서 James 가 본격적인 회사 설명을 시작했다.
EC2는 현재 12개의 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인큐베이터였다.
인큐베이터 사업이란 가능성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팀에게
사무실을 내주고 12개 회사가 같이 인큐베이터 본부에 있는
복사기, 화상통신용 기기들, 각종 운영체계로 설치된 컴퓨터, 동영상 편집기,
에니메이션 제작기 등의 장비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기간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의 5%만 인큐베이터에 주게 된다.
들어온지 2년 후면 인큐베이터를 떠나야 하며 떠날 때 회사 수익의
몇 %를 인큐베이터로 주는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말이 이럴때 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돈이 부족하던 사업팀에게 아주 싸게 사무기기들을 대여하고
이 회사가 크면 인큐베이터에게 수익으로 보답을 하는...
여기서 하는 일은 주로 하드/소프트웨어 개발, 비디오, 게임, 만화등 주로
미래지향적 성격의 것들이 많았다.
내가 제임스에게 했던 질문.
"I have a question. according to your words, there must be many
companies to enter this incubator then how can you choose a company?"
제임스의 대답은 그 사업팀의 현실적 가능성과 수익성등을 따져보고
수많은 신청팀들 중 몇을 선발한다고 했다.
이 질문 생각하느라 다른 이들의 질문과 그 대답은 듣지 못했다. --;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들은
어떻게 제공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외부의 특정분야 전문가를 모셔 사업팀들에게
강의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회사는 대학의 교수님을 비롯하여 외부
전문가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교수님의 인큐베이터 사업의 국내 현실 적용 가능성과 한다면
그 방법등 많은 것을 물어보았고, 학생들 역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4시 00분 UAS(대학)로 갔다.
거기서 학생회관(student hall)에 가는 길을 물어 보았는데,
그녀가 대답을 해주고는 우리끼리 하는 말을 듣더니 "Are you from Korea?"
하고 물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자신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그녀는 우리말을 못했도
조금 알아듣기만 한다고 한다. 자신이 신입생이라 이 대학의 길을
잘 모른다면서 학생회관 근처까지 같이 와 주었다. 이름은 'Katie Mccoy'
한국 이름은 '전다미'라고 한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못하고 본토 영어발음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국인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가웠다. E-mail 주소를 받아 두었다.
유독 동양인이 많이 띠는 이 학교에서는 서점과 가게를 둘러보았다.
4시 30분 Wall Mart 에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다.
아버지는 폴로 티, 어머니는 브럿지, 내건 써그라스.
저녁 식사 후 호텔로 들어 왔다.
이 날 저녁엔 다시 기계산업이 모이고 교수님까지 오셔서 술자리를
만들어(침대를 밀고 땡기고 물 끓이고, 탁자를 들고 오는등...) 교수님께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음 날....
7시 기상.
8시 호텔 식사를 하고 9시 출발.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오늘 늦은 밤 12시 30분 비행기로 미국을 뜬다.
그래서 더욱 눈을 지켜뜨고 두리번 거렸다.
버스밖으로 다이하드 1에서 무대가 되었던 8각의 건물이 보였다.
(얼마전 동네 비디오집에서 다이하드 테잎을 보니 정말 그 건물이었다.)
베버리 힐즈를 지나는데 이곳은 상업용 차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한 때 관광객들에게 이 곳 영화배우의 집을 안내하는 관광코스가 생겨
베버리 힐즈 사람들의 항의에 의해 정해진 법이라 한다.
이 곳은 골목마다 나무가 달랐다.
한 골목은 oak 나무, 한쪽은 팜나무, 나머진 잘 모르는 나무들이었지만
각 골목마다 나무를 다르게 심어 골목을 하나 지날 때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베버리 힐즈의 시청이 보였다. 시청 꼭대기가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오른쪽에 playboy (의류)의 본사가 보였다.
케네디와 마를린 먼로가 데이트 했다는 창문이 없는 집을 지나,
베버리 힐즈와 다른 시가 경계된 길에 왔다.
좌우의 나무가 다르고, 그 크기가 달랐다. 베버리 힐즈는 확실한 부자동네였다.
예전에 창녀가 많아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는 sunset bl.를 지나 헐리우드에
진입했다. 먼쪽 산 위에 녹색의 크고 우아한 집이 보였다.
그 곳이 탐 크루즈의 집이란다. 탐 크루즈는 현재 니콜과 안좋은 사이지만
한 때 그녀를 너무 사랑해 자기 집으로 올라오는 산길의 이름을 사서
Nicole's ave. 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루즈벨트 호텔을 지나는데 이 곳 꼭대기가 팬트하우스라고 불리고
바로 마를린 먼로가 죽은 곳이다.
10시 00분 세계적 스타들의 핸드프린트가 찍힌 곳에 도착 했다.
이곳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불과 작은 식당 정도의 공간에 손동장들만 길바닥에 빽빽하게 있었다.
손도장은 심사가 아주 엄격해서 3년에 한두명 정도밖에 찍을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이 있던 날인 8월 20일 니콜라스 케이지가 손도장을 찍은
것이 보였다. 그의 손은 아주 컸다.
아놀드, 톰행크스 등의 손도장이 보였다.
난 Bruce Lee의 손도장을 찾아 헤멨지만, 못찾았고 그곳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의 것은 없고, 도로에 있는 Star자리에는 그의 이름이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우상이 되면서도 너무 일찍 죽어 손도장을 찍을 시간이
없었나 보다. 마를린 먼로의 손도장에 내 손을 대고 사진을 찍었다.
11시 30분 유니버셜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단체로 터미네이터 2라는 곳에 들어갔다. 3차원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그 극장 속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우린 미래세계에 온 것이었다.
'사이담'이라는 회사의 여직원이 모니터로 나오는 자사의 제품을
설명하는 가운데 '존 코너'와 '사라 코너'의 기습방송이 나오고
그들은 우리보고 사이담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며 5분안에 대피하라고
말하는 중, 다시 화면이 돌아오고 여직원이 극장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극장안은 3개의 화면으로 되어 있었다. 정면에 하나, 45도 방향에 각각하나씩.
기계로 된 터미네이터가 땅밑에서 올라오고 이들은 사격시범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 갑자기 존과 사라가 무대에 올라오고 우리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며
안내하던 여자를 위협했다.
이 때 화면 속에서 액체의 T-1000 이 일어서더니 머리만 화면 밖으로 길게
나와 "존 코너" 라는 말을 하며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진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T-1000 과 아놀드가 싸우는
장면을 연출했다. 존은 아놀드의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극장밖으로 나가고
t-1000은 그들을 따라 갔다. 이제 화면 속에서 싸우는데 그 파편들이
화면 밖으로 튀고 존을 쫓던 작은 비행기기들은 관객을 위협했다.
나중에는 거미형태의 액체 터미네이터가 극장무대위를 뛰어다니는 아놀드와
싸우고 결국 적의 기지를 폭파시키면서 영화가 끝났다.
비록 20~30분 가량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인상적이었다.
에버렌드에 있는 가상체험관을 가봤지만 이에 못 미치는 듯하다.
선진국의 기술력이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다음엔 4대의 미니버스가 연결된 차를 타고 스튜디오를 한바퀴 돌았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여러 영화의 세트를 보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가상공간속을 지나가기도 했다.
킹콩과 헬기가 싸우는 모습, 지진현장 등에 들어가 우리가 그 일부가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었던 장소는 바로 미리라의 동굴.
버스가 가다가 서더니 주위에 깜깜해지고 동굴벽이 빙글빙글 돌았다.
벽에는 늘어진 해골들이 그려져 있고 버스가 벽의 회전방향과 반대로
살짝 돌다가 멈춘듯 한데 느낌은 내가 어딘가로 빨려들어 계속 도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깜깜해지더니 사람의 살속을 파고드는 벌레들의 영상이 앞
화면에 보였다. 주위에서는 소리가 들리고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최고에 이르러 차가운 물들이 튀었다.
소름끼쳤지만 밖에 나와보니 그냥 물일 뿐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인디언, 중세 여기사, 프랑켄 슈타인, 백투더퓨처의 박사 등 영화 산업을
관광산업으로 효과적이게 발전시켜 놓았다.
우리나라의 정동진에 있는 고현정 소나무, 숫가락, 젓가락만
관광사업으로 만들지 말고 그 외에 다른 영화 세트들도 사업화 되면
상당히 인기가 많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외에 Wild Wild West, Water World를 둘어보았고 주라기 공원에는
가다가 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로 와야했다.
둘 다 야외무대로 되어있었고, Water World 에서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물을 바가지 통채로 뿌려댔다.
옷이 완전히 다 젖었지만 사람들은 즐거워 했다.
LA는 기온이 높고 햇빛이 따가운 대신 습도가 낮아 곳곳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물이 남들에게 뿌려져도
그들은 화를 내지 않는다. 순간 시원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한다.
4시 00분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출발.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5시 30분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7시 30분 식사 후 마지막으로 LA야경을 보기 위해 그리피스 천문대로 갔다.
8시 00분 그리피스 천문대 도착.
이곳은 무료로 공개되어 있으며 시설을 아주 깨끗하고 좋았다.
입구에 보니 대형진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지구 자전의 증거로 이 진자는 조밀하게 세위진 작은 나무조각들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안쪽에는 각 행성에 대한 설명과 자료들이 있었고
각 별에서 자신의 체중을 달아보는 체중계가 있었는데,
난 달에서 15킬로가 나갔다. 맞나? 난 60킬로니까....음.....모르겠다.
LA의 야경을 보며 신기한 것은 모든 것이 수직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가로, 세로 반듯하게 그 큰땅이 규칙적인 배열을 하고 있다는데 대해
아름다움도 느꼈지만 그보다 난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국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8시 30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
LA공항은 미국에서 3번째로 손꼽히는 공항이라 한다.
공항 근처에 오니 대형 거미모양의 건물이 보이고 그 윗부분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또 6각의 길쭉한 기둥들이 밝게 파스텔 칼라의
불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공항에 가서 출국 수속을 밟고 시간이 남아 면세점에서 외국인과
말할 건수를 찾아 다녔다.
젊은 남자 외국인에게 여러개의 영화잡지를 보여주면 어떤것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인지 물어봤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내가 들고 있는 것은 스페인어 판이라며 직접 영어판을 찾으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11시 50분 비행기 탑승.
12시 30분 한국으로 출발.
12시 50분 출발 직후 속도 487 km/h, 고도 16855m, 남은 거리 6459mile
호놀룰루와 코나 방향으로 가다가 산타바바라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2시 00분 한국 시간으로 저녁식사. 식사를 하면서 커피를 한잔 했는데
이게 화근이 되어 몸은 피곤했지만 약 두시간 이상 몸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2시 15분 속도 527mph, 고도 32000 feet, 외부 온도 화씨 -40도.
2시 30분 잔여시간 10시간 30분.
겨우 약 깊은 잠에 빠지고
9시 00분 도쿄방향의 일본해역을 날고 있었다. 속도 961 km/h, 고도 11300m.
잔여시간 3시간 35분.
9시 20분 식사. 이태리 만두를 먹으며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하나씩 맛보라며
주었는데 표정을 보니 화난듯 했다. 나역시 도저히 느끼해서 못먹을 것 같았다.
노래를 듣다가 역사 스페샬 첨성대 편을 보았다.
10시 00분 598mph, 37000 feet, 남은 거리 1349 mile, 외부온도 화씨 -49.
10시 50분 896mph
11시 25분 도쿄 지나서 일본 상공을 막 벗어났다. 부산방향으로 날고 있다.
11시 55분 포항방향. 517mph, 39000 feet,
외부온도 화씨 -52도, 잔여거리 288mile.
이제 내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
12시 22분 착륙 준비.
12시간 이상의 비행시간동안 계속 밤이었다. 해의 반대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509 km/h, 3959m, 남은 거리 44mile.
포항-예천-수원 상공을 지나 인천에 도착했다.
12시 35분 착륙.
한국 시간은 새벽 4시 35분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두시간 가량 비행시간을 기다리며 공항 내를 돌아다녔다.
한 외국인이 다른 동남아 계의 가족에게 길을 물었지만 그들도 몰랐다.
내가 근처에 가자 그 가족의 아버지 같은 분이 아시아나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난 Kal직원에게 길을 물어보고 가르쳐 줬다.
옆에 혼자 있던 외국인에게 도와줄거 있냐고 물었더니 괜찮다며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곤 거피 좋아하나며 커피 한잔 사줄까요
하고 묻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커피한잔을 마시던가, 정중하게
"No, thank you!" 라고 말하면 될 것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아무말도 못하고 미소만 지었다.
같은 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길이 나뉘면서 잘가라는 인사를 했다.
8시 40분 이제 국내선을 타고 김해로 간다.
12시간의 비행을 할때는 두세시간 남았을 때 다 와간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시간 남짓의 비행은 타면서 이미 내릴 때가 다 된거 같았다.
9시 40분 김해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밟고, 공항에 들어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첫 해외 여행이라 기대가 크면서도 걱정도 많았다.
미국에서는 9시가 넘으면 동양인들은 길밖으로 나가지 마라고 한다.
동양 여행객들은 덩치가 작고 총이 없으며,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현금 출납기(ATM)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샌프란 시스코는 조용한 곳이어서 이런 범죄율이 낮다고 한다.
그러나 LA는 번잡한 도시라서 진짜 9시 이후에 동양인이 혼자
길을 나서면 90%이상 강도를 만난다고 한다.
또는 낮에 만나는 사람들과 문화의 차이로 인해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처음 샌프란 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만 외국인으로 바뀌었지
특별히 미국에 왔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우리나라 사람과의 행동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 지나가면서도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듯하면 "Execuse me!" 라는 말을 하고 지나간다.
우린 보통 '날 봤으면 알아서 비키겠지' 하고 지나갈 길을 말이다.
교통 신호를 지키는데 있어서도 확연한 차이가 보였다.
정지선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정지선의 약 10m앞에서 미리
차를 세워서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뒷차는 빵빵거리지 않는다.
Traffic jam에 걸렸을 때도 앞차와의 거리가 차 두대 간격으로 벌어져도
빵빵거리지도 않고, 끼어들지도 않는 모습을 보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들어본 것은 딱 한번이었다.
우리 앞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우리 멕시코 기사 아저씨(조지)가
한번 울린 것.
앞에서 말했던 모두들.
도로와 집의 높이를 다르게 하여 소음을 줄인 것,
거지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 도로위에 있는 홈과 볼록 렌드, 비를 이용해
스프링 쿨러의 물을 공급하는 것, 도속도로의 중앙분리대 양 옆으로
약 1m이상의 공간을 두고, 갓길에는 3m가량의 공간을 두어 사고를
방지하는 모습, 고속도로가에 있는 태양열을 이용한 Call Box,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하면 모두들 반기는 모습...
시야에 들어오는 땅이 크고 시원한 만큼 사람들의 생각또한 우리보다
여유있었다. 우리과 교수님께서 콜라를 사려고 줄의 5번째에 서 계셨는데
앞에서는 점원과 콜라를 손님이 온갖 신변 잡기들은 이야기 하느라 결국
교수님은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교수님은 화가 났지만 앞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말 없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그들처럼 조용히 기다리지 못했을 듯.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 가장
큰 촛점을 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국민들의 의식의 깨어 있다면
제대로 된 정부를 설립할 수 있고 이렇게 구성된 정부가 바로 국민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미국 발전의 이유가 문맹인의 수가 현재가지도 60%에 이르러
어리석은 다수를 2%의 엘리트 집단이 이끌어 간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 국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이 있어서 그도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정해진 규칙은 절대 어기지 않고, 주어진 자유의 공간에서만
자신을 맘껏 즐기려는 생각, 개인적이지만 남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생각들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지런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대신 놀고 싶어하면 끝없이 추락하여 거지가 되는 나라.
바로 우리가 책에서 보던 자본주위 사회의 모습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보다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기회가 평등한 나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잘 살수 있는 날이 오는 나라..
그런 곳이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하게 바라는 바이다.
미국 단기 연수를 다녀온 동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바로
마음을 조금 더 넓게 가져야 겠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조금 더 넓게 보고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