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생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참새를 생각한다. 참새가 사람과 가까이 지낸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언제부터 사람을 무섭게 생각하지 않고 살게 되었을까. 그게 궁금하다. 그런 녀석이라 하여 마냥 사람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느 조류보다는 의심이 많고 사랑을 경계한다. 이런 녀석들을 보면 자기만이 설정한 안정거리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지점까지는 사람이 다가오는 걸 혀용하지만 임계선에 이르면 앞뒤 안돌아 보고 훌쩍 날아오른다.
그 거리는 대략 2미터 내외. 손을 내저어 잡히지 않을 거리이다. 녀석은 볼수록 앙증맞다. 눈 밑에는 흰점이 있고 다음에는 검정으로 둘러져 다크서클을 한 모양이다. 작은 몸집은 날렵하고 가느다란 다리는 민첩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사람과 수 만년 동안을 가까이 살아왔으면서도 길들여지지 않았다. 속박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함을 즐긴다.
이런 녀석은 몸이 가벼워 선지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다. 끊임없이 전후방을 주시하며 움직인다. 이 녀석은 고개를 마음대로 돌리지 못한다. 해서 옆이나 뒤를 볼라치면 잦은 발걸음을 옮겨서 턴을 한 다음 바라본다. 이런 녀석은 한편으로 겁이 많지만 일단 믿을 만 하다고 판단하면 한자리에 오래 머무른다. 그렇다고 경계범위를 망각하는 법은 절대 없다.
이런 녀석을 윤오영 선생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참새는 공작같이 화려하지도, 학같이 고귀하지도 않다.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래도, 접동새의 구슬픈 노래도 모른다.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완상가(玩賞家)에게 팔리지도 않는 새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매는 귀엽고도 매끈하고, 색깔은 검소하면서도 조촐하다. 어린 소녀들처럼 모이면 조잘댄다. 아무 기교도 없이 솔직하고 가벼운 음성으로 재깔재깔 조잘댄다. 쫓으면 후루룩 날아갔다가 금방 다시 온다.'
이쯤이면 녀석의 특징은 거지반 드러난 셈이라고 할까. 가까이 지내다보니 녀석에게는 붙여진 속담(俗談)도 많음을 본다. 아마도 한 대상에게 이처럼 많은 속담이 붙어있는 조류도 썩 드물 게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랴.' '참새 모이 먹듯 한다.' '의심 많기는 참새.' '떼거리로 몰려오기는 참새 떼.' '참새고기 한 점, 열 점 쇠고기와 안 바꾼다.'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오랜 세월 사람 곁에서 가까이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붙여진 것들이다. 이런 참새가 텃새로서 자리 잡은 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 옛 사람들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녀석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여러가지 특징이 발견이 된다. 그중에 하나는 맵시가 그리 빼어나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까치처럼 늘씬하지도 않고 제비처럼 날렵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깜직해 보이는 건 아마도 목 주위에 두른 흰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흰줄을 눈 밑의 검은 반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마치 야구선수들이 눈밑에 가끔 검정 칠을 하고 타석에 들어 설 때와 같이 인상적이다. 이놈들의 주둥이 또한 가만히 두지 않는다. 종종거리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계속 쫗아댄다. 그러다가 가끔씩 무딘 낫을 갈듯이 부리를 돌에다가 쓱쓱 문지른다. 이놈이 나는 때는 먼 거리 이동을 할 때나 나뭇가지에 앉으려 할 때나 위급이 닥쳤을 때이다. 그 이외에는 타조처럼 걸어만 다닌다.
놈들은 사람이 먹는 건 다 먹는다. 그런 까닭에 이놈 들을 떠올리면 수효가 많다는 생각과 함께 해조(害鳥)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데는 아마도 벼가 익을 무렵이면 극성을 부리며 피해를 주던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그렇게 골치를 썩이던 놈들도 개체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귀한 새가 되었다. 한때 바다에서 나는 멸치보다도 더 많던 것이 귀해졌다.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수 백 년 후,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듯 똑같이 그런 운명에 놓일 지도 모른다. 옛날 생각을 하면 금석지감이 든다 고나 할까. 전에는 떼로 몰려다니는 참새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벼가 익으면 들녘에 새막까지 지어놓고 전쟁 아닌 전쟁을 벌려야 했다. 한데, 어느 책에서 보니 그 소탕작전에 재미있는 일화가 담겨 있었다.
한때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지침으로 참새 떼 소탕작전을 벌렸단다. 물론 곡식 피해를 먹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참새의 가슴 털을 모아 김일성의 이부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단다. 도대체 얼마나 잡았던 것일까. 그렇게 만들려면 수십먄 마라의 참새가 필요하고 희생이 되었을 것이다. 과히 기네스북에도 오를 만 하다.
한편, 참새는 유달리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다. 기심(機心)이 유별나다. 저를 해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턱밑까지도 다가오지만, 어찌할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지면 먹이를 주어도 쉬 다가서지 않는다. 예사 영리하고 조심성 많은 놈이 아니다. 다가서서도 곧바로 먹이를 먹지 않고 일단 요리 저리 살핀 후에,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설때라야 다음 행동을 취한다. 그래도 먹이 앞에서는 곧잘 허점을 보인다.
이점을 알기에 사람들은 덫을 놓아 잡기도 한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도 많이 참새잡기를 했다. 주로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에 Y자형 나뭇가지에다 고무줄을 묶어서 돌을 쏘거나, 소쿠리 밑에 쌀겨를 뿌려놓고 문틈으로 망을 보며 잡았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새총은 잘 맞아주지를 않았고, 소쿠리 속으로는 잘 들어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다란 발채를 사용하면 가끔은 한 두 마리가 걸려들었다. 제아무리 조심스럽고 민첩해도 큰 발채는 순식간에 잡아당기면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잡은 참새를 구이하려면 잿불에 묻어놓고 서서히 익혀야 제격이다. 그렇지 않고 화기가 좋은 숯불에 구우면 금방 타서 못 먹게 된다. 그래서 이놈을 구울 때는 숙지근해진 잿불을 택해 진득하니 구워냈다. 그러면 털이 타면서 그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서서히 익어서 천하진미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한데, 나는 시골에서 보낸 10대 이후에는 그런 참새구이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옛 추억이 그리워지는 속에는 그 시절 계란껍질에 계란밥을 지어먹던 일과 참새구이를 하던 것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 일이 그리워지는 건, 동심 속에서 보낸 세월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절절해 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