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전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딤전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딤전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제1장 하나님의 사람은 주어진 위대하고 복된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자 동역자였던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렸던 최초의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신 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사무엘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삼상 9: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아버지의 나귀를 잃어버리고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사울의 사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 선지자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그런 호칭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는 그 고귀한 호칭을 디모데에게 불렀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아들처럼 아끼는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어서 이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의 소유된 백성이요”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용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하나 같이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특히 이 시간 우리가 상고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은 하나님께 속한, 또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존귀한 이름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존귀한 호칭을 디모데뿐만 아니라 오늘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결하고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려면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하고 복된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이 자각이 없으면 결국 무능하고 세속화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행할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함께 은혜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2장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피할 것들이 있습니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피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처럼, 피하면 피할수록,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교훈을 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는 없는데, 다른 교훈은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므로 여기에다 인간의 공로를 보태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안식일을 지킨다거나 음식을 가려서 먹는다거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이른바 WCC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2013년 부산에서 개최가 되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라고 하니까 대단한 단체 같은데, 한국기독교협의회(KNCC)에서 WCC총회개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반대 내용을 보면, 첫째로 WCC가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을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회를 해롭게 하는 아주 나쁜 교훈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지만, 구지 말한다면, 구원의 길은 이 종교에도 있고 저 종교에도 다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예수 믿고 가는 길도 있고, 부처 믿고 가는 길도 있고, 마호멧을 믿고 가는 길도 있고, 선을 많이 행해서 가는 길도 있고.......하지만 우리가 믿는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행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을 편협하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극히 위험한 다른 교훈입니다.
둘째, 반대이유는 WCC가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WCC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동성애자도 사랑하신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애자 도 목사로 세우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을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것은 철저히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셋째, 반대 이유는 WCC가 타종교인을 개종 목적으로 전도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불교 국가나, 이슬람 국가, 힌두교 국가에서는 개종을 위한 전도도 안 되고, 선교사도 파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반대이유는 WCC는 성경 66권만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 66권만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반면에 그들은 성경을 인간이 책 즉 역사서나 문학서 정도로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일치, 종교평화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인권과 인본주의를 앞세워 다른 교훈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교회는 신앙의 순결을 잃고 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른 교훈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해야 할 것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거철이 되면 자기 가족들을 지역의 여러 교회에 나누어 등록을 시키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혹은 장사를 목적으로 교회에 등록하는 행위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부자가 되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돈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에 앞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인생의 행복과 목적을 물질적인 부요에 두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돈을 사랑함은 결국 돈 때문에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오늘날 사탄은 돈을 미끼로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족할 줄 알 때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고, 자족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제3장 하나님의 사람이 힘써 쫓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를 쫓는 것이란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롭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과 헤어져 소돔 성에 살았습니다. 당시 소돔은 매우 번영한 도시였으므로 롯과 그의 가족들은 문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적인 생활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롯은 소돔 사람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신앙양심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 소돔을 떠나지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의를 쫓는데 적극성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소돔이 심판을 받을 때, 같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없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구별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경건을 쫓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식하고 행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특히, 예배생활에 힘쓰는 것은 경건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쫓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것을 가리켜 믿음을 쫓는다고 합니다.
사랑을 쫓으라는 것은 진실한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는 자만이 행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10절-11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주신 사랑입니다.
인내를 쫓으라는 것은 당면한 문제를 마지못해 참아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운동선수가 훈련을 받듯이 자발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밥을 짓는데도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조급하게 솥뚜껑을 열면 밥이 설익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역경을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을 베풀고, 봉사를 하는 데도 인내가 있어야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온유를 쫓으라는 것은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허물을 용납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 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온유하게 행함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달고 맛이 있는 과일을 좋아합니다.
농부는 이른 봄에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한여름에는 병충해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가 보면 짜증나는 일이 많고 화가 나는 일이 많고 두려운 일이 많고 때로는 좌절하고 낙망하지만 오레 참고 인내와 온유로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기쁨과 희락의 열매를 수확할 수기 있습니다.
오늘도 겨우내 얼었던 대동강물도 녹는 다는 우수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인생이 힘들고 어려우셔도 오래참음과 인내와 온유로 이겨내셔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제4장,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운동선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기에서 우승하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 때 열심을 냈더라도 끝까지 그 열심을 지속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변함없는 자세로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원수 마귀의 시험에지지 않고 끝까지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수는 언제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을 것 다 먹고, 놀 것 다 놀고서 승리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절제하고 힘든 훈련을 이겨내는 선수만이 우승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5장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고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딤전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딤전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주의 재림은 한갓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재림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소 묵시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종말에 관한 재림의 말씀이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말세의 징조가 있으나 특별히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오늘날 많은 이단과 사이비한들이 우리 믿는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 예수께서 하늘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실 날이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정확한 일시를 알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날과 시간은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예수님께서도 모르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날이 매우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신 지 벌써 이천년이 되어 갑니다.
밤이 깊으면 아침이 가까운 법입니다. 지금 죄악의 밤이 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곧 성도들과 교회의 최종적인 승리를 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그날에는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있던 성도들 역시 홀연히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그런즉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피할 것이 있습니다. 다른 교훈을 피해야 합니다. 불경건한 생활을 피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섣불리 싸우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上策)일 때가 있음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취할 것이 있습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취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취하면 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선한 싸움은 페어플레이를 하는 운동선수와 같습니다.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할 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이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우리 주남장로교회 성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