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들은 하셨겠지만 77학번의 양웅(兩雄)중에 꼭 한명을 버리고 한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김시진을 버리고 최동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에서의 통산승리수에서도 앞서있고, 기복없이 안정적으로 던졌다는 측면에서 김시진을 높이 평가하지만, 타자를 압도하는 파괴력과 경기를 지배하는 카리스마, 국내에 스피드건이 도입되던 시기에 당당하게 찍히던 150의 강속구... 행여 선동열과의 비교라면 모를까 최동원을 다른 어떤 투수와 경쟁해서 아랫등급으로 놓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특히 두선수간의 맞대결에서 김시진은 최동원을 거의 이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더 확신적인 근거를 갖게 해줍니다...
고교시절 제 기억으로는 한차례 만났을 때도 최동원의 압승이었고, 대학진학후에도 김시진의 한양대는 당대 3인자였던 김용남을 덧붙였음에도 최동원의 연세대를 거의 이기지 못했습니다...
연세대는 최동원의 입학전에도 강력한 투수진용을 갖추고 있었으나, 그의 입학을 계기로 박철순을 군입대시키고, 이광은을 타자로만 전념시킬 정도로 그에 대한 의존도는 높았습니다...
사실 76년 고교 3년생들중에는 너무도 뛰어난 투수들이 많았습니다...
첫대회인 대통령배에서 군산상의 김용남은 대구상을 1:0으로 완봉시키면서 김시진을 메이저대회 무관으로 만들게 되고, 김시진은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해 마지막대회인 우수고교초청대회 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또 전년도까지 고교최고투수였던 경북의 성낙수... 서울고의 선우대영... 봉황기 우승의 주인공 이윤섭... 인천의 괴물투수 인호봉 등이 77학번의 화려한 투수들입니다...
이중에서 좌투수로 이윤섭과 고심끝에 선정한 선우대영은 원래는 대광고 소속이었으나 대광이 해체되는 바람에 서울로 전학했던 선수로 OB의 원년우승때 나름대로 한몫을 하던 선수입니다...
선우대영은 프로 2년차인 83년에 현역입영대상자가 되자 젊은나이에 야구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버렸습니다...
김진우와 정영기에 대한 학번이 명확치가 않네요...
특히 정영기는 나이와는 맞지않게 77학번인 것을 예전에 확인한 기억이 있는데 이중화님이 76의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만약에 김진우, 정영기가 76이라면 당연히 이들은 76년 베스트에 들어가고, 대신 77학번에 포수에는 경북고-한양대-삼성의 박정환을, 유격수에는 외야수인 장태수를 아마시절 포지션으로 돌리던지, 비록 프로에서 큰 활약은 못했지만 마산상에서 이름을 알리던 임정면을 집어넣어야 할 것입니다...
약체고인 장충에서 고교대표선수로 뽑혔던 3루수 양세종은 막강전력 연세대에서도 최동원과 함께 1학년시절부터 주전으로 뛰면서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입니다...
외야수(고교시절에는 유격수) 장태수, 그리고 고교대표에서 양세종과 함께 3루수로 뽑혔던 원민구... 우리 야구사에 큭 획을 그었던 대구 대건고 야구부의 마지막 맴버들입니다...
영남대를 나온 원민구도 자의로 프로행을 포기하고 실업팀 제일은행에 잔류했떤 선수로, 80년대 중반까지 끊임없이 연고팀 삼성의 콜을 받았었습니다..
76년이 되면서 서울의 신일고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광주 동신고의 해체와 함께 유망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창단과 동시에 강팀으로 등장한 신일고는 맴버들이 저학년이었기 때문에 베스트에 들어갈만한 선수는 없습니다...
또 김종모라는 이름과 함께 광주상의 이름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뒤에 우타자의 교과서라는 찬사를 듣게 되는 김종모... 광주출신선수가 영남대에 진학한 것을 보면 고교시절에는 큰 두각을 보이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모는 외야수였지만 유난히 수비가 좋았던 외야수들이 많아서 지명타자로 돌렸습니다...
또다시 마땅한 1루수감을 찾을 수가 없어서 비워놓았습니다... 76년 고교대표팀에서는 투수면서 강타자였던 부산상의 이윤섭이 1루를 맡았었습니다...
만약에 많은 외야수들중에 한명을 1루로 억지로 돌린다면 외야의 한자리는 대통령배결승 김용남-김시진의 1:0 승부에서 결승타를 쳤던 군산상의 김종윤을 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밖의 77년 졸업생들에는 고교시절 퍼펙트게임 기록이 있는 유한공 투수 황기선이 있고, 신일고의 몇안되는 졸업생으로 뒤에 스카우터로 이름을 알리는 김경훈... 또 김진철 스카우터도 그당시 선수로 알고 있습니다...
임 선배님은 51회 저는 54회이니까 76년도에 3학년으로 기억합니다..그리하여 건국대 진학하여 해태에서 생활 한것으로 알고 있고요.지금은 서울 현대 자동차 근무중로 기억 합니다....시력이 좋지 않아 야간 경기를 할수 없는 상태...당시 건대 감독은 강태정씨로 기억함,제가75년 마산동중2학년때 남산과 창경궁에서...
첫댓글 馬商 임정면 선배님은 개인적으로 참 아까운 선배임.(운동선수로서) 저 용마학교 올때 결정인 계기가 중학교때 서울 수학여행가서 서울 행아들이 마산에서 왔다까이 마산상고 임정면 선수를 물어 보길래 용마 지망한 사람임.
당시 서울지역 여학생들 마산상고 운동장에 많이들 놀러온 기억이 남. 특히 방학때... 임정면 선배님 보기 위해....
그 선배님은 77년 멤버가 아닙니까?청소년 대표부동의 4번타자라고 들었는데,,,,
임 선배님은 51회 저는 54회이니까 76년도에 3학년으로 기억합니다..그리하여 건국대 진학하여 해태에서 생활 한것으로 알고 있고요.지금은 서울 현대 자동차 근무중로 기억 합니다....시력이 좋지 않아 야간 경기를 할수 없는 상태...당시 건대 감독은 강태정씨로 기억함,제가75년 마산동중2학년때 남산과 창경궁에서...
당시 고등학생 행아들 한테 마산상고 임정면을 아는냐고 질문을 받고...마산상고 진학을 결심함. 저는 마산상고가 어떻한 학교인지도 모르고 입학함.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