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작품이 가짜라고 판명이 났다고 한다.이 까닭은 그림 속의 서당 학동의 무릎부분과 옆 학동의 팔이 붙어있다는 것이다.이 작품은 원본이 아니라 후대의 화본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골동의 세계에는 진품과 가품이 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한적본은 구멍을 뚫어서 실로 묶는다. 오침이냐 사침이냐에 따라서 출간시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조선본은 5침본이 많고 일본본은 4침본이 많다.그리고 경상대 여증동 교수(경남 진주시 주약동 한주럭키아파트 8동 503호, 0591-53-4974, 박약회 기관지 박약 제 8집 450면 게재)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그 당시의 판본으로 보지 않고 후대에 소창진평이 위조했다고 한다.일제시대 때 경성제국대학 조선어문학과 교수인 소창진평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훈민정음 관련 기록을 골자로 하여 조작했다는 학설을 내놓았던 적이 있다.그 이유는 마지막 장에 '훈민정음 종'라고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데 '훈민정음'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것은 조선조의 판본 자체가 마칠 종(終) 자를 넣어서 끝내는 방식하고는 다른 일본식 판본의 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인지가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지 못하고 부제학 밖에 아니라는 사실인데 집현전 대제학이라고 새겨졌다는 것이다.그 다음은 중요한 부분이 모두 궐락되어 있는 형편이다.간송본에는 정통 11년 9월 상한으로 나온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신성시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원본에 대한 검증을 하지 못하고 무조건 원본이라고 달려드는 분들이 많다.그러나 엄밀한 원전비평이 필요한 실정이다. 상주본도 마찬가지로 간송본과 더불어 앞부분과 뒷부분이 궐락되어 있는 공통점이 있다.그리고 완전한 형태가 아니라서 문제가 많은 편이다. 이 상주본은 30여 장 중에서 10여 장은 궐락되었다고 하니 더욱 신빙성이 줄어든다.잘못하면 상주본을 검증하고나서 간송본을 검증하면 둘 다 원본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몇 책을 시험적으로 판목에 새겨서 만들면서 일본인 학자의 시각에 힘입어 일본식으로 출판을 하였는데 조선의 판본이 지닌 점을 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원본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정확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판각할 수 있다. 그 구체적 증거물이 철재 오옥진의 판각 훈민정음 해례본이다.유사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지금으로부터 100여 년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저명한 분이 자신의 비용을 들여서 만들 수 있는 것이다.분명히 세종실록에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판본을 볼 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특히 식민지 한국에 와 있던 일본사람들은 자기 문화의 모체로 한국문화를 생각하는 사상이 있었으니 그 열중도는 한국인 빰치는 입장이었다. 향가 전체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향가급 이두의 연구>(1929)를 간행하였던 사람이 소창진평이다.그리고 조선방언도 최초로 연구하였다.한편 해군사관학교 교관 및 해군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 임란때 만들었다고 하면서 총통을 주물공장에서 만들어 바닷물 속에 담가두었다가 부식시켜서 속인 것이 10여 년 전이다. 그 사람이름이 조X도(趙X都)이다. 이런 범죄가 나타나는 형국이다. 그는 이순신연구 전문가라는 사람으로 알려진 역사학자이다. 대구의 K대 사대 문학부 역사과 출신(1955년 제8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