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강해(2018, 8, 26)
제목 : 능하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성경 : 창 18 : 9-15
심리학박사 이민규씨가 쓴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음식을 함께 먹으면 사람이 친해진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마음을 연다는 것입니다.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이 철석같이 믿는 신조가 하나 있는데
“고객에게 푸짐한 식사를 대접하라 그러면 물건을 살 것이다”
그래서 영원 사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객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안산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고향 선배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번 여름에 금란 교회에서 주최한 목회자부부수련회를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300명의 목회자 부부가 모였는데 최고의 호텔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고 잘 쉬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인이 다녀본 수련회 중에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향 선배 목사님이 평소에는 김홍도 목사님을 별로 안 좋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접 보니까 너무 겸손하고 다정다감하더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 역시 먹은 자는 말이 없구나.
우리는 지난주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대접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이때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하셨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집에 복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복의 내용이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년 이 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대접하여 복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에 하나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을 잘 대접할 때 하나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을 귀히 여기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장막 문에 있는 사라가 들었습니다.(10절)
그리고 사라가 듣고 보인 반응은 속으로 웃는 것이었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주인도 늙었는데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2절)
어쩌면 부부가 이렇게 닮을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도 앞에서 내년 이맘 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17;17)
그런데 아내 사라도 지금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입니다. 또한 사라의 나이가 90세입니다.
더군다나 여성의 생리도 끊긴 상태입니다.
창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다는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내년 이맘 때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을 수밖에 없지요
아마 저라도 그런 말씀을 들었을 때 웃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사라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3절 14절을 읽겠습니다.
창18:13-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말은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신앙생활하거나 사회 생활할 때 ‘안 된다. 못한다. 불가능하다, 그것은 한계다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인생의 장애물에 뛰어 넘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시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바울도 역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 고백들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자연 법칙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모든 것이 끝이 났습니다.
더 이상 아이를 기대하거나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이고,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지금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강준민 목사가 쓴 “벼랑 끝에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벼랑 끝에서도 날아오른다.
누구나 한번쯤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질병, 사고, 실패, 부채, 갈등, 고독, 침체, 이혼, 연약함, 성공 후에 찾아 온 공허 등
각기 다른 자신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당신이 처한 벼랑 끝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벼랑 끝은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된다.
벼랑 끝은 위험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그 벼랑 끝에서 새로운 문이 열리는 기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신림동에 왕성교회 지금은 원로 목사님이 되신 길자연 목사님의 평생 모토가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성도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끝이 바로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제 목회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문을 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이 신앙 가지고 인생의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