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류 |
언 어 |
발 음 |
뜻 |
비 고 |
proto-Alta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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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i |
언덕, 高臺, 한계,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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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
gori |
문고리, 링 |
고리타분 |
맥시코(비교) |
콜와, 고리 |
문고리,할아버지,언덕 |
aztac | |
Proto-Turkic |
*Korum |
바위로 쌓아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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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olian |
*küri |
절벽, 바위, 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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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gus-Manchu |
*xurē |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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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alic |
*kurV |
언덕, 고지, 高臺 |
외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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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onian |
kur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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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m (Lapp) |
kårr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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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tvelian |
Georgian |
*gora |
작은 언덕, 흙더미 |
외 2 |
Proto-Dravidian |
Tamil |
*kùr_- (*-d_-) |
산에 사는 종족의 이름 |
외 6 |
Indo-Europ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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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ʷer(w)- |
산 |
외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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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Indian |
girí- m |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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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vic |
*gorā |
산 |
| |
Baltic |
*gur-a- c |
mountain spur |
| |
Eskimo-Aleut |
Proto-Eskimo |
*qarǝ-qa- (-qi-) |
산, 언덕, 등산 |
외 2 |
의 글자 안에
Ⓐ 언덕은 ‘고리의 어원 비교표’
Ⓑ ‘고리’의 발음은 proto-Altaic
Ⓒ 우리 한글 ‘고리’에 정의되지 않은 ‘언덕’은 맥시코에서 발굴됨으로써 고리의 정의인 ‘링’과 접목됨(손 성태 교수의 연구자료 참조)
고리가 ‘언덕’이란 의미로서 나타낸 대표적인 지명은 실크로드의 길에 있는 Gori 시이다.
[고리(조지아어: გორი)는 그루지야 (조지아) 중부의 도시이며 스탈린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고리"는 원래 그루지야어 (조지아어)로 언덕을 의미한다.]
문양이 언덕, 고리, 할아버지, 제단을 뜻하는 의미를 가지면서 진서 且의 문자가 됩니다.
Ⓐ
Ⓐ 지상에 언덕을 쌓은 제단을 표현
Ⓑ 지상과 環(고리 환: 고리, 선회하다) 하늘과 접응하는 장소의 의미
Ⓒ 지상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피라미드
Ⓓ 且(또 차) 사전적 정의 중 “도마. 희생물을 올려놓는 대(臺)”.
묘(墓)의 의미가 아닌 제단(祭壇)은 시초에 흙으로 건축했다가 보전성(保存性)의 이유로 돌로 건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자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래 동안 축적되고 일반적인 관념이 되었을 때 문자로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따라서 우()은 해독하여 글을 남겼듯이 "북두칠성과 은하수, 문화의 근원은 우리민족" 이외에 "제단(祭壇)"의 의미로 정의됩니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면 육하원칙으로 고대의 비밀을 기술할 수 없어 신비로움이 더해줍니다.
1) 누가
그 유래는 ‘고리’이며 우리 선조가 만들었습니다.
천상분야열차지도(天上列次分野地圖)의 별자리는 3원인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으로 나누었으며
의 문자가 만들어졌을 시기에는 밤하늘의 별자리는 구분되었고 ‘3원구단’에서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북두칠성의 관념은 언제 생겼을까요?
흑피옥을 발견하고 무덤을 발굴한 김희용씨가 무덤에서 발견된 흑피옥 배치에 대해 전한 내용를 보면 ‘시신 좌우 흑피옥 7개가 각 2줄로 놓여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중국이 발굴 중에 있으며 정확한 연대 등의 발표가 있으리라 봅니다.
현 시점에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흑피옥 표면에서 추출한 염료로
측정한 결과 14,000년 전 유물이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간과(看過)할 수 없는 사실로서 과거를 되집어볼 필요가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신지문자에서 나타탄 숫자 하나, 둘, 셋. 넷, 다섯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말하고 있으며 넷 =‘ㄹ’ 해독에서 보다시피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시기이며 북두칠성에서 상당히 발전된 관념 각 7성 28수(섯= 차(
2) 무엇을
“북두칠성은 사람으로서 헤아리기 어려운 삶의 생사화복, 음양, 오행을 다스리고 죽어서 칠성판을 들고 가야만 천문을 열어주는 영역에서 생노병사를 주관하는 절대자였기에 믿고 의지하는 옥황상제, 마고, 칠성님 등으로 불리면서 선조의 얼과 한을 담아 문화를 형성하고 삶을 지배했습니다.”라고 전 글에 썼습니다.
천지인은 원방각이며 하늘인 제천(祭天), 삶과 직접적 관련된 제지(祭地), 저승 세계 제선(祭先) 의식의 건축물입니다.
[유법 遺法: 예로부터 내려온 선인(先人)의 법도, 즉 선조들이 전한 법도
제천(祭天): 하늘(天神)에 대한 제사/ 원단(圓壇): 제천(祭天)을 위한 원형의 제단(祭壇)
제지(祭地): 지모신(地母神)에 대한 제사/ 방구(方丘): 제지(祭地)를 위한 사각형의 제단
제선(祭先): 조상신 환웅(桓雄)에 대한 제사/ 각(角): 제선(祭先)을 위한 피라미드형의 제단]
제선 의식에 사용된 피라미드는 망자의 권위에 맞추어 대형화 되었습니다.
피라미드는 섯 = 차(
고어 발음은 次(shijs), 者(tia?), 且(chia?)이며 다섯이란 '우차'는 민족을 지칭하는 이름으로서 은자(은하수의 사람 銀者, 피라미드를 건설했던 사람 銀且)로서 다양한 의미로 불렸다고 봅니다.
참고로 홍산문명에서 발견된 문양입니다.
3) 언제
각 7성 28수(1400년 전)로 저승에서 이루고자하는 염원을 담았으며 홍산문명 전에 제단 건축이 있었고 피라미든 홍산문명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4) 어디서
홍산문명-> 우루 -> 이집트외 세계 각 지역
5) 왜
창조신인 하늘, 삶으로 살아가는 땅, 죽어서 도달하는 저승 세계를 염원을 담아 기도하는
장소로서 역활을 했습니다.
6) 어떻게
당시의 제천의식은 알 수 없으나, 신앙으로서 창조신, 곡신, 조상신을 모시는 공동적 제전임을
후대 12월달에 열리는 영고, 4월달 동예의 무천, 5월달 삼한의 수릿날, 10월달 삼한의 계절제,
10월달 고구려의 동맹등의 제천행사를 통하여 가늠하리라 봅니다.
A
A
B
C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 것을 상징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제단과 묘장(墓葬)
D
제단의 발전은 A-> B-> C-> D가 됨을 고금문을 통하여 찾는다면 최초의 (고리)= A -> 언덕 -> 3원구단(環)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 B -> 4각형 28수와 황제 윷판모형 C- 4항 각 7수를 7단으로 건설한 피라미드 관념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홍산문명에서 드러나는 제단 형식을 보건데 우리 숫자 다섯-우차( )는 이 시기에 상징으로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밑의 사진은 홍산문명에서 발굴된 유물이며 문양이 새겨져 있다.
a)
홍산문화 3~5미터 직경의 원형제단에서 발견된 테라코타의 박편에서 나타난 <원시문자부호>
b)
홍산 문화에서 발견된 문양
ab) 참조
c) 대문구문화유물에서 발견된 토기(bc 2000)
a)은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봐서 신지문자보다 후대에 쓰여졌다고 보며
이 문자는 아사달을 상징하는 문양(c)로서 나타납니다.
이는 제천의식을 행하여진 원구단에서 발견되었기에 의미가 큽니다.
b) 사진 속의 ‘X’ 문양은 다섯의 ‘섯’ 중 五 표기하엿고 이 문양은 많은 관념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제사장임을 나타내는 문자입니다.
현재에도 두 문양을 동시에 쓰는 문화가 남아있습니다.
마을 대표의 집입니다. toda 민족은 다섯을 üz로 발음합니다.
홍산문명은 우리 역사를 말하는 숫자 ‘다섯’에서 완성된 문화이기에 우차문화라고 불렀으면
합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첫댓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의 피라미드 고구려의 피라미드형 무덤은 모양만 유사할 뿐 설계 방법에서 문화학적 의미까지 유사한 것이 없다시피한데요
우리 선조의 피라미드는 7단입니다.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도 7단이였구요. 문화를 접한 다른 민족이 피라미드의 구성원리를 오해하여 대형화 시켯으리라 봅니다.
일단 우리에게 피라미드가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단을 쌓아 무덤이나 제단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 다 있으니 우리만의 것이라 할 수 없지요. 그리고 이집트의 경우 피라미드 건축은 이미 구왕조시기에 끝났습니다. 그런 식이면 우리기 이집트 영향 받았다 해도 할 말 없습니다.
ad 1000년경 최후로 지어진 창령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하균흉님은 제 글을 파훼하지 않고 읽으시는 것 같군요.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피라미드의 구조는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읽기 바랍니다. 오리온 성좌를 그은 피라미드의 구조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으니 자료를 찾아 읽기 바랍니다. 홍산문화는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시기적으로 1~2000년 앞섭니다. 하균홍님에게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댓글을 달 때 글을 읽지 않고 썼다고 판단이 되었을 떄는 댓글 사절하겠습니다.
님 글 다 읽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님과 같은 글 많이 봤습니다. 소위 환단고기 주장하시는 분 들 글에 님과 같은 류의 주장이 꼭 있었는데요...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영향 받았다는 물증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냥 시대가 우리가 앞선다고하는 것. 그것도 정식 세계 학계에서 인정하는 자료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자료로 내세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설령 우리가 앞선다고 해서 그것이 꼭 우리에게서 나갔다는 물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인간 삶이 비슷비슷하니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요
제 블러그에 올린 글은 고금문을 해석하기 위한 전반적 이해를 하기위에 읽었던 자료들입니다. 홍산문명이 발굴 전까지 중국은 이민족의 문화라고 치부하는 곳까지 자신의 문화라고 내세우고 복희 이전의 시대에까지 소급하여 홍산문명을 자신의 문화로 흡수하려고 하고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님의 주장도 흥산문명이라는 아직 학계에서 연구중인, 그래서 명확한 사실이 나온 바 없는, 문명에 언어학자라면 누구도 인정하기 어려운 문자 해석, 아니 실존했는지조차 불투명한 문자... 그것에 너무 의존하는 바가 있네요. 기존 학계를 뒤흔들 주장이라면 그에 걸맞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 납득은 가능.... 그런 면에서 너무 부족하네요.
이집트 피라미드는 설계 이유 방식 방의 위치와 그 의미 모두 연구되어 있습니다. 수십년 아니 백년 넘는 그 연구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료치고는 너무 안이하게 짜여 있네요. 그리고 우차문화라 했는데 5를 숭배했다... 3이나 7은 전 세계 보편적인데 5는 사실 매우 드문 현상입니다. 이것에 대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자료부터 제시하시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는 것이지요. 사물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이는 법이지요. 왜 5에서 7이 도출이 되었는지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7이 서양에서 길한 수가 된 것은, 아니 동서양에서 7이 길한 수가 된 것은 3의 두배를 넘어서는 바로 그 다음이기 때문이지요. 서양의 경우 3+4의 의미, 동양은 3곱하기2더하기 1의 개념입니다. 5랑은 관련 없습니다.
하균횽님, 간단하게나마 동양사상을 역으로 추적해서 올라가보시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이 어떻게 5에서 7이나왔냐고 물어오신다면 위에 말한 뼈대에서 이해를 못하셨다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릴 방법이 없군요.
일단 고리라는 말에서 산을 이끌어내신 발상의 창의력에 감탄합니다. 물론 우리 말에 골이라는 말이 산과 비슷하게 쓰일수는 있어요. 문제는 님이 언급한 고리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님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고리 던져 넣기의 고리가 아니라 골짜기를 언급하는 골을 이용하셨어야 했습니다.
언어학에서 금기시하는 것이 있지요. 바로 단어 발음-그것도 현재-의 유사성을 가지고 같은 언어에서 나왔다고 끼워맞추기.... 과연 저 단어들을 고대에도 저런 식으로 발음했을까요? 그리고 언어 논의하는 분 치고는 글이 좀 읽기 쉽지 않네요. 내용을 떠나 문장을 좀 다듬으셨으면 하네여. 고리 고리타분은 개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골이라면 몰라도...
금문해석에 억지가 많습니다. 첫째, 또 且는 '할아버지, 제단'이라는 것은 후대에 인신된 의미이지 본래는 남성의 성기를 나타낸 것입니다. 생명의 씨를 전하는 수단으로서 선대의 인물을 '祖'라고 설명하고 있고, 且자가 간화되면 │으로 되지요. 이것은 위에 예시한 옹산문화 유물 b에서 거북이 형상이 받드는 것입니다. 둘째, 홍산문화 유물 a는 원시부호가 아니라, 오히려 최초의 箕자가 후대에 간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箕자는 틀린 글자입니다. '己+其'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만 모두 틀리게 쓰니 본래의 글자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고금문이나 갑골문을 찾아보시면 이해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