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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스크랩 신지문자로 풀어본 피라미드의 역사, 홍산문화를 우차(于次)문화로 바꾸어 말하면 좋겠습니다..
남긴 까닭은 추천 0 조회 526 11.07.25 07:02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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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25 07:36

    첫댓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의 피라미드 고구려의 피라미드형 무덤은 모양만 유사할 뿐 설계 방법에서 문화학적 의미까지 유사한 것이 없다시피한데요

  • 작성자 11.07.25 14:54

    우리 선조의 피라미드는 7단입니다.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도 7단이였구요. 문화를 접한 다른 민족이 피라미드의 구성원리를 오해하여 대형화 시켯으리라 봅니다.

  • 11.07.25 15:22

    일단 우리에게 피라미드가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단을 쌓아 무덤이나 제단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 다 있으니 우리만의 것이라 할 수 없지요. 그리고 이집트의 경우 피라미드 건축은 이미 구왕조시기에 끝났습니다. 그런 식이면 우리기 이집트 영향 받았다 해도 할 말 없습니다.

  • 작성자 11.07.25 17:21

    ad 1000년경 최후로 지어진 창령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하균흉님은 제 글을 파훼하지 않고 읽으시는 것 같군요.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피라미드의 구조는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읽기 바랍니다. 오리온 성좌를 그은 피라미드의 구조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었으니 자료를 찾아 읽기 바랍니다. 홍산문화는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시기적으로 1~2000년 앞섭니다. 하균홍님에게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댓글을 달 때 글을 읽지 않고 썼다고 판단이 되었을 떄는 댓글 사절하겠습니다.

  • 11.07.25 17:51

    님 글 다 읽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님과 같은 글 많이 봤습니다. 소위 환단고기 주장하시는 분 들 글에 님과 같은 류의 주장이 꼭 있었는데요...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영향 받았다는 물증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냥 시대가 우리가 앞선다고하는 것. 그것도 정식 세계 학계에서 인정하는 자료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자료로 내세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설령 우리가 앞선다고 해서 그것이 꼭 우리에게서 나갔다는 물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인간 삶이 비슷비슷하니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요

  • 작성자 11.07.25 18:26

    제 블러그에 올린 글은 고금문을 해석하기 위한 전반적 이해를 하기위에 읽었던 자료들입니다. 홍산문명이 발굴 전까지 중국은 이민족의 문화라고 치부하는 곳까지 자신의 문화라고 내세우고 복희 이전의 시대에까지 소급하여 홍산문명을 자신의 문화로 흡수하려고 하고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 11.07.25 17:54

    님의 주장도 흥산문명이라는 아직 학계에서 연구중인, 그래서 명확한 사실이 나온 바 없는, 문명에 언어학자라면 누구도 인정하기 어려운 문자 해석, 아니 실존했는지조차 불투명한 문자... 그것에 너무 의존하는 바가 있네요. 기존 학계를 뒤흔들 주장이라면 그에 걸맞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한 납득은 가능.... 그런 면에서 너무 부족하네요.

  • 11.07.25 17:59

    이집트 피라미드는 설계 이유 방식 방의 위치와 그 의미 모두 연구되어 있습니다. 수십년 아니 백년 넘는 그 연구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료치고는 너무 안이하게 짜여 있네요. 그리고 우차문화라 했는데 5를 숭배했다... 3이나 7은 전 세계 보편적인데 5는 사실 매우 드문 현상입니다. 이것에 대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자료부터 제시하시고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나 생각됩니다.

  • 작성자 11.07.25 18:03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는 것이지요. 사물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이는 법이지요. 왜 5에서 7이 도출이 되었는지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 11.07.25 18:30

    7이 서양에서 길한 수가 된 것은, 아니 동서양에서 7이 길한 수가 된 것은 3의 두배를 넘어서는 바로 그 다음이기 때문이지요. 서양의 경우 3+4의 의미, 동양은 3곱하기2더하기 1의 개념입니다. 5랑은 관련 없습니다.

  • 작성자 11.07.25 18:57

    하균횽님, 간단하게나마 동양사상을 역으로 추적해서 올라가보시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이 어떻게 5에서 7이나왔냐고 물어오신다면 위에 말한 뼈대에서 이해를 못하셨다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릴 방법이 없군요.

  • 11.07.25 19:04

    일단 고리라는 말에서 산을 이끌어내신 발상의 창의력에 감탄합니다. 물론 우리 말에 골이라는 말이 산과 비슷하게 쓰일수는 있어요. 문제는 님이 언급한 고리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님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고리 던져 넣기의 고리가 아니라 골짜기를 언급하는 골을 이용하셨어야 했습니다.

  • 11.07.25 19:08

    언어학에서 금기시하는 것이 있지요. 바로 단어 발음-그것도 현재-의 유사성을 가지고 같은 언어에서 나왔다고 끼워맞추기.... 과연 저 단어들을 고대에도 저런 식으로 발음했을까요? 그리고 언어 논의하는 분 치고는 글이 좀 읽기 쉽지 않네요. 내용을 떠나 문장을 좀 다듬으셨으면 하네여. 고리 고리타분은 개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골이라면 몰라도...

  • 11.08.11 19:02

    금문해석에 억지가 많습니다. 첫째, 또 且는 '할아버지, 제단'이라는 것은 후대에 인신된 의미이지 본래는 남성의 성기를 나타낸 것입니다. 생명의 씨를 전하는 수단으로서 선대의 인물을 '祖'라고 설명하고 있고, 且자가 간화되면 │으로 되지요. 이것은 위에 예시한 옹산문화 유물 b에서 거북이 형상이 받드는 것입니다. 둘째, 홍산문화 유물 a는 원시부호가 아니라, 오히려 최초의 箕자가 후대에 간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箕자는 틀린 글자입니다. '己+其'로 쓰는 것이 옳습니다만 모두 틀리게 쓰니 본래의 글자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고금문이나 갑골문을 찾아보시면 이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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