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30] 하이테크 건축의 대명사 노먼 포스터(下)
매일경제 2020.04.03
[효효 아키텍트-30] 공항 건축은 건축가들의 꿈이다. 대형 공항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다. 노먼 포스터는 런던에서 세 번째인 스탠스테드(Stansted) 공항의 새 터미널(1981~1989)에서 공항 설계 방식을 새롭게 정의했다. 각종 설비 시설을 탑승동 바닥에 묻어버림으로써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벼운 우산 형태의 구조물을 탄생시켰다. 이전의 공항 터미널들은 기계 설비 일체를 지붕에 들여놓았기에 건물 구조가 묵직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홍콩 첵랍콕 공항 (Hong Kong International Airport, 1992~1998)은 홍콩 정부가 카이탁 공항을 폐쇄하고 바다를 메운 간척지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홍콩 정부는 포스터앤드파트너스가 제안한 신개념 대량 수송 레일을 통해 공항과 도심를 직접 연결하고 신도시 하나를 새로 짓는 계획 둘 다를 승인했다.
베이징 신국제공항(T3)(2003~2007)은 홍콩 공항 건설 경험이 있는 모잔 마지디가 현장을 지휘했다. 포스터는 런던에서 4개월간 직원 38명과 함께 도면 2500장을 그린 끝에 포커의 스페이드(♠)를 길쭉하게 늘린 모양을 닮은 평면 디자인을 내놓았다. 공항 건물 지붕에 용 비늘 모양 창을 내고, 붉은 색(임피리얼레드)으로 중국 고유의 디자인을 반영했다. 4년 공사 끝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 문을 열었다. 1468만㎡ 대지에 들어선 T3는 남북 방향 거리가 3.25㎞. 인천국제공항의 2배 규모다.
30 세인트 메리엑스(30 St. Mary Axe, 2004)는 '오이지'란 뜻의 거킨(Gherkin)빌딩으로도 불린다. 스위스 보험회사 스위스 리(Swiss Re)의 본사다. 외관 때문에 총알, (끝이 점점 줄어드는)시가(와 같은 조각적 형태)등 다의적으로 해석됐다.
거킨 빌딩의 대지는 발틱 해운거래소가 있던 자리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폭파로 폐허가 된 곳이다. 전체적으로 건물은 미끈한 유리 외피로 감싼 근육질의 강철 바구니 구조를 하고 있다. 기준층 평면에는 6개의 아트리움이 있다. 이 아트리움은 상층으로 갈수록 나선형으로 5도씩 회전하며 배치된다.
내부의 연속된 아트리움은 기압차를 이용해 공기의 흐름으로 환기할 수 있다. 외부에서 보면 창호의 나선형 형태가 곧 내부의 아트리움이다. 전체가 원추형 곡면 형태인 외피는, 단위 유닛을 삼각형으로 정리해 구조로 반영된다. 삼각형 유닛은 사각형과 달리 가장 안정적인 형태다.
▲ 스위스 체사 푸투라(Chesa Futura) /사진=wikimedia
스위스 생모리츠 시내를 굽어보는 체사 푸투라(Chesa Futura, 2004)는 전망을 극대화하고자 비정형 형태로 설계된 아파트다. 포스터가 철저히 직선적인 기하학에 매달리던 성향을 탈피한 뒤 처음 완성한 프로젝트중 하나다. 체사 푸투라(미래의 집)는 낙엽송 100그루를 손으로 깎아 만든 25만장의 널판으로 된 유려한 외관이 땅콩을 연상시킨다. 주차장, 창고, 기계 설비들은 보이지 않도록 지하로 끌어내렸다.
미국 뉴욕 57번가 허스트 타워(Hearst Tower, 2006)는 허스트 미디어 그룹의 사옥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지은 6층 건축의 역사를 보존해야 했다. 포스터는 기존 전통 건물의 입면만 남겨놓고 그 안에 건물은 철거하고 46층 현대식 타워를 집어넣는 계획안을 제출해 설계자로 선정됐다.
먼저 기존 건물에 수직으로 여러 개 구멍을 뚫고 철골 기둥을 세웠다. 이 기둥에 철골 가지를 붙여서 기존 건물의 입면을 안쪽에서 붙잡게 만들었다. 이 공정 후에 기존 건물 내부 모두를 철거하고 신축했다. 기존 건물이 있는 6층 높이까지는 로비홀로 만들어 로비와 빌딩 전체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엘리베이터 코어만 있다. 신축 건물은 오래된 기존 건물보다 안쪽으로 몇 m 더 들여서 지었기에 보존된 입면과 신축건물 사이 공간에 천창을 둬 자연 채광이 로비로 들어오게 했다.
삼각형 구조를 노출시키고, 각 모서리를 빌딩 외형에 맞춰 튀어나오게 하거나 밀어넣어서 전면부가 마치 구겨진 종이처럼 보이도록 함으로써 건물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건축자재로 쓰인 철 90%는 재활용 제품이다. 건물 옥상에 모아진 빗물은 건물의 온도 조절에 활용하는 구조다. 건물 내부에는 영국 작가 리처드 롱(Richard Long, 1945~ )의 작품이 설치됐다.
2004년 포스터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네 번째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계자로는 글래스고 출신으로 스트래스클라이드 대학을 졸업한 1987년 입사한 모잔 마지디가 결정됐다. 2007년 런던 투자회사 스리아이(3i)를 투자자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설립자의 전권에 좌우되는 회사 형태에서 70여 주주를 가진 사업체로 변신했다.
2008년 전체 직원은 1400여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10년 기준 포스터앤드파트너스는 여섯 개 그룹으로 조직했다. 회사 내 모든 건축가가 유형이나 지리, 규모에 제한받지 않고 다양한 규모의 건물을 지으며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는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테크노돔'(2016)이 포스터 작품이다. 하얀 타일과 금속성 외관, 투명한 유리로 구성돼 있다. '원(one) 컴퍼니'의 의미를 건축물에 담기 위해 중앙 광장 '아레나'를 10개의 개별 건물이 둘러싸고 지붕을 얹어 돔 형태로 설계, 반구형 천장인 돔을 비롯해 건물 가운데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 난간, 테이블까지 건물 내외부가 모두 유려한 실루엣의 유선형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Cupertino) 애플 신사옥 (Apple park) /사진=wikipedia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세상을 떠난 후에 공개된 미래 도시와 같은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Cupertino)에 건설된 애플의 신사옥 제2캠퍼스(Apple park)가 2018년 준공됐다. 포스터는 잡스가 자신에게 새로운 캠퍼스의 비전을 처음 설명한 2009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잡스는 빌딩이 자연 환경에 녹아 있을 수 있는 낮은 건물을 원했고, 공조나 수도 파이프 같은 요소들도 건물에 없기를 바랐다. 잡스는 수액과 당이 가장 적은 상태의 메이플 나무를 얻기 위해 쿼터컷으로 겨울에 벌목돼야 하고 이상적으로는 1월에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잡스는 유리라는 소재를 통해 실내와 외부의 연결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사내 식당 유리문이 12초 안에 완전히 열릴 수 있게 요구했다.
렌즈 모양의 투명한 지붕은 탄소섬유를 사용해 단 하나의 기둥 없이 유리로 지지 구조를 만들어 부드럽게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도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의 철학이 묻어 있다. 디자인 제품처럼 지어지기를 희망했다거나, 잡스를 기리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흔한 살구나무와 체리나무를 심기로 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스티브 잡스 시어터'는 전선을 유리 이음새에 모두 넣어버릴 정도로 강박적인 디자인의 극치로 평가받는다.
포스터는 철, 알루미늄을 주로 사용하므로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잘 맞는다. 애플파크는 거대한 원형 건물로, 중앙에 큰 공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아이팟의 휠이 이미지로 떠오른다. 외부에는 문을 닫고 내부 직원끼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도형인 원형을 건물로써 구현해냈다. 소음을 막기 위해 수많은 구멍을 뚫고 그 속에 흡음재를 덧대 원래 형태를 지켜냈다.
주요 도시의 애플스토어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건축 공간으로 구현하는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애플 조를루센터(Apple Zorlu Center)는 포스터앤드파트너스가 설계한 최초의 애플스토어다. 매장은 쇼핑센터 광장 중앙 지하 2층에 있으며, 투명한 큐브로 둘러싸여 있어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내부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포스터 작품들은 건축적인 미학, 유선형 형태,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일대 은사 폴 마빈 루돌프 교수는 "건축이란 자신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건축은 통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무기, 국가적 야망을 표현하는 수단, 권력과 영토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법이다."(데얀 서직) 이 모든 건축적 수사에 적용할 수 있는 건축가가 노먼 포스터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노먼 포스터의 건축세계'(데얀 서직), 오알크루 블로그, 유현준 칼럼, 웹사이트 dezeen.com/2019/11/11/norman-foster-high-tech-archit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