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벽대전 현황 -
적벽부 (赤壁賦)
宋나라 원풍 5년(1082) 가을 7월 16일의 달 밝은 밤에 蘇軾(소동파)가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를 하며 삼국의 영웅인 조조와 주유의 풍류에 비겨 자신의 덧없는 인생을 생각하고, 결국은 저들이나 자신이 다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을 술회한 명문이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서 노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네.
擧舟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니,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조금있으니 달이 동쪽 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 이네.
白露橫江 水光接天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네.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浩浩乎 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넓고도 넓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탄듯하여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훨훨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於是 飮酒樂甚 ?舷而歌之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歌曰:桂棹兮蘭? 擊空明兮?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삿대로 물에 비친 달을 쳐서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쪽에서 바라보네."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餘音??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蚊 泣孤舟之釐婦.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하고 외로운 배를 의지해 살아가는 과부를 울게하네.
蘇者 秋然正襟 危坐而問客曰 : 何爲其然也?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客曰 :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손님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上繆 鬱乎蒼蒼.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하고 푸른데,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여기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치른 데가 아니던가?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於東也 軸?千里 旌旗蔽空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감에,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었네.
?酒臨江 橫?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술을 걸러서 강가에 가서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일 진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鹿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고 있네.
賀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寄??於天地 渺滄海之一粟.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의지하니 아득히 넓은 바다의 한 알의 좁쌀알이구나.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우리네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부러워하네.
挾飛仙?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
나는 신선을 끼고서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오래토록 하다가 마치는 것을, 불현듯 얻지 못할 것임을 알고, 여운을 슬픈 바람에 맡기네."
蘇者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 말하되 "손님꺼서도 대저 물과 달을 아시오 ?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끝내 줄고 늘지 않으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무릇 변하는 것에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 밖에 없으며,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변하지 않는 것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또,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而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을 이루어서, 이를 가져도 금할 이 없고,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이는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손님이 기뻐서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르니, 고기와 과일 안주가 이미 다하고 술잔과 소반이 어지럽네.
相與枕籍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배안에서 서로 함께 포개어 잠이드니,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네.
* 어구풀이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 '명월의 시'란 '시경(詩經)'의 '진풍(陣風) 월출편(月出) 오는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아름다운 임의 얼굴 떠오르네. 아리따운 그대 여, 마음의 시름 어이하리."라는 시 구절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낭만적인 정취를 흠뻑 맛보며 풍류의 즐거움을 노래 로 불렀다.'는 뜻이다.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
: '초사(楚辭)'에 나오는 말로. '초사'에는'계수나무 노와 목란 돛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예전에 쓰인 훌륭한 표현을 따다가 쓰는 것을 잘 된 표현의 이상으로 삼은 것에서 고문(古文) 숭상의 문화적 전통을 엿볼 수 있 다.
미인(美人)을 하늘 한 쪽에 바라보도다.
: '미인'은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 또는 달 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인'이란 말은 오늘날 아름다 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지만, 옛날에는 마음에 그리는 사람,사랑하는 사람 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조맹덕(曹孟德)의 시
: 조맹덕(趙孟德)은 조조(曹操). 조조는 그의 시 '단가행(短歌行)' 에서"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 [月明星稀(월명성희), 烏鵲南飛(오작남비)]"라고 하였는데, 달은 밝고 별은 성기다는 시구는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하듯이 조조 자신의 위력에 군웅(群雄)이 그림자를 감추었다는 의미이며 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시구의 뒤에는 본디 "나무를 세 번 돌아도 의지할 가지가 없다.[繞樹三 (요수삼잡), 無枝可依(무지가의)]" 라는 말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유비(劉備) 등이 그처럼 몸을 붙일 데도 없이 남쪽으로 패주(敗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 이 곳은 조조가 손권의 장수인 주유에게 패전의 쓰라림을 겪은 적 벽이 아닌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웅 조조와 패퇴를 동시에 연상하게 한다.
* 소동파(蘇東坡) (1036. 12.19~1101. 7. 28.)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산문작가·예술가·정치가로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적벽대전 따라가기)
방통의 계략과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고 주유가 화공법을 씀으로써, 천하무적일 것 같았던 조조의 80만 대군은 크게 패하고 삼국통일의 꿈은 멀어져갔다
장강 이북을 장악한 조조는 80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의 손권을 정벌하러 갔다
오의 손권을 패퇴시키면 세력 기반이 미약한 유비등은 저절로 흡수하게 될 미약한 세력이었다
이에 유비의 양대 책사인 봉추(방통)가 조조를 계략으로 엮고 외룔(제갈공명)은 동남풍을 빌게되고 오의 총사령관 도독 주유가 연환계를 파하는 화공법을 씀으로써 조조군은 크게 패하게 된다(b.c 208)
그렇다면 실제 조조의 군대는 얼마였을까?
7만설과 10만설도 있지만 대략 23-25만 정도였다는 주장이 다수이다
당시의 병력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엔 역부족이다
기록으로 보면 손권과 유비의 병사들은 약 5만 정도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과는 달리 군대의 양적상태가 승패를 크게 좌우한다.소위 인해전술...
당시 병사의 유형은 직업 군인이 적었고 일반 농민들 가운데 일정한 연령대의 남자들을 소집하여 병사로 대체했다. 더구나 병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실제의 전투보다는 식량이나 말먹이, 즉 군수물자를 운반하는데 동원되었다.
삼국지를 보면 장수끼리 겨루어 한 쪽 장수가 죽임을 당하면, 병력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죽임을 당한 장수 쪽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평소에 군사 훈련을 철저하게 받고 전투 경험도 많은 병사들은 비교적 드물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유비도 초기 탁현에서 군대를 일으킬 때 농기구를 든 농민군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관우와 장비도 관군에 적을 두지 않았었다
병사 수와 병선으로 보아도 압도적이던 조조 대군의 패인 이면을 보면
당시 역병이 크게 유행하여 조조의 병사들 가운데 사망자가 훨씬 많았고, 이로 인해 조조의 군사력이 많이 약해졌고 사기도 떨어진 상태이며 장기간의 정벌로 피로도가 겹치고 군기가 해이한 상태였다.
동남풍 역시 제갈공명이 칠성단에서 빌어서 온 바람이라기 보다는, 그 지역의 기후 변화 특히 계절풍의 변화상태를 잘 예측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제갈공명은 천문과 지리에도 통달했던 것이다
당시 역병은 장강 유역에서 발생하는 풍토병, 정확히 말하면 주혈흡충병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혈흡충은 주로 조개류에 기생하는데, 강이나 호수 등 민물 속에 있다가 수영을 하는 경우 피부를 뚫고 들어오거나, 오염된 물을 마시면 감염된다.
환자는 설사, 폐렴, 간염, 간경변, 발열, 피부염, 두드러기 등의 증상을 보이며, 저항력이 약한 사람은 죽기도 한다.
이 병은 비위생적인 환경, 특히 깨끗하지 않은 물이 있는 곳에서 자주 발생하며, 오늘날에도 중국의 양자강(장강) 유역에서 비교적 흔한 병이다.
이에 반해 장강 유역 출신인 동오의 병사들은 북쪽 지방 출신인 조조의 병사들에 비해 이 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지 내용)
그제서야 방통은 짐짓 미뤄 오던 답을 일러 주었다.
“대강(大江)은 여느 강과 달라 조수(潮水)가 들고나며, 풍랑이 그치지 않습니다. 북쪽에서 온 군사들은 배를 많이 타 보지 않은 까닭에 그같이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는 멀미를 하게 되고, 그 배멀미가 거듭되면 마침내 병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배를 서른 척이나 쉰 척을 한 떼로 삼아 뱃머리와 꼬리를 쇠사슬로 든든하게 묶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슬 위로 널판지를 깔아 두면 배와 배 사이를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이 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그렇게 한배를 타고 나아가면 설령 풍랑이 높이 인다 해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마치 땅 위에 있는 것처럼 흔들림이 없어 아무리 북쪽에서 온 군사라도 배멀미를 모르게 될 것입니다.”
조조가 들어 보니 정말로 기가 막힌 묘책이었다. 이에 평소의 위엄도 잊고 앉은 자리에서 내려앉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중략)
이윽고 조조의 군령이 끝나자 대군은 그 동안 머물렀던 진채를 떠나 조련으로 들어갔다. 수채(水)에 북소리 세 번이 크게 울리며, 크고 작은 싸움배가 길을 나누어 진문(陳門)을 빠져 나가는데 조조가 보기에도 자못 법도가 있었다.
거기다가 조조를 더욱 기쁘게 한 것은 방통이 일러 준 연환계(連環計)의 효험이었다. 마침 서북풍이 심하게 불었으나, 몇십 척씩 쇠사슬로 묶어 둔 조조의 배들은 돛을 있는 대로 다 올려도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게 마치 평지를 달리듯 했다.
배멀미에 시달리지 않게 되자 군사들도 원래의 용맹을 되찾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뛰고 내달으며 창을 내질러 보기도 하고 칼을 휘둘러 보기도 했다. 앞뒤좌우의 기치들도 그 날따라 더욱 정연해 보였다.
쇠사슬로 엮지 않은 50여 척의 작은 배는 그런 조조군의 선단(船團)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때로는 그 지나치게 나아감을 말리고 때로는 뒤처짐을 몰아댔다.
장대(將臺) 위에 높이 앉아 그 모든 조련광경을 보고 있던 조조는 매우 흡족했다. 그대로 간다면 싸움은 이겨 둔 것이나 다름없다고 속으로 기뻐하며 조련을 그치게 했다.
“모든 배들은 돛을 내리고 수채로 돌아가도록 하라!”
그러자 배들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차례에 맞추어 수채로 되돌아갔다.
배를 내려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간 조조는 마음 속의 기쁨을 감추지 못해 여럿을 둘러보며 감탄의 말을 했다.
“만약 하늘이 돕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봉추(鳳)의 묘한 계책을 얻을 수 있겠는가! 쇠사슬로 배를 엮어 놓으니, 과연 험한 강을 건너는 게 평지를 지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대들은 어찌 보았는가?”
조조의 그 같은 물음에 모두가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오직 정욱(程昱)이 나서 걱정하는 소리를 했다.
“배들을 모두 얽어 놓아 흔들림이 없어진 것은 실로 좋은 일이나, 저쪽에서 화공(火攻)을 쓴다면 피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반드시 거기에 대한 방비를 해 두셔야 할 것입니다.”
“공의 헤아림이 비록 멀리까지 미쳐 있기는 하나, 그래도 아직 미치지 못한 곳이 있는 듯하오.”
조조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 자리에 있던 순유가 영문을 몰라 하는 눈길로 조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중덕(程仲德)이 매우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웃으십니까?”
순유도 실은 마음 속으로 정욱과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조조는 한 번 더 껄껄거리더니 타이르듯 까닭을 일러 주었다.
“무릇 화공이란 반드시 바람의 힘을 빌려야 되는 법이오. 그런데 지금은 한겨울이라 오직 서북풍(西北風)만 있을 뿐 동풍이나 남풍이 있을 리 없소. 나는 서북쪽에 있고 적군은 남쪽 언덕에 있으니 설령 적이 불을 쓴다 해도 자기 군사들만 태워 죽일 뿐이란 말이오. 그러니 그 같은 화공을 내가 왜 두려워하겠소? 만약 지금이 시월이거나 초봄만 같아도 나는 벌써 거기에 대비했을 것이오.”
정욱과 순유는 물론, 속으로 은근히 걱정했던 다른 장수들도 그 말을 듣고는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제히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모아 말했다.
“승상의 높은 안목은 실로 저희가 따를 수 없습니다.”
조조는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며 한 번 더 방통의 계책을 추켜세웠다.
“나의 청주병(靑州兵)은 물론 서주(徐州)에서 온 군사나 연(燕), 대(代)에서 온 군사들은 모두 배타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이번에 연환계를 얻지 못했던들 무슨 수로 이 대강(大江)의 거칠고 험함을 이겨 내어 건너겠느냐?”
(나관중 지음, 이문열 평역, 『삼국지』 중에서)
절대 불지 않으리라던 동남풍이 거세게 불던 날,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는 조조의 배를 향해 동오의 배들이 불화살을 쏘며 진격하였다.
뱃머리에 대못을 박고 짚더미와 나무 등 불에 잘 타는 것들이 가득 실려 있어서, 불을 붙이자 배는 즉시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조조의 배와 충돌하니 대못 때문에 떨어지지 않고 금방 조조의 배에 불이 옮겨 붙었다.
조조의 선던 중 한 척의 배에서 불길이 일자 묶어 놓은 옆의 배에도 금방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조조의 전 함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불에 탄 한 척의 배가 침몰하자 묶여 있는 옆의 배도 따라서 계속 가라앉았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조조의 진영에서 병사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불에 타지 않은 선단도 있었으나, 쇠사슬로 묶어 놓아 모두 함께 노를 젓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치려는 병사를 몰아세워 간신히 선단을 움직여 보려 하면 움직이기도 전에 불이 옮겨 붙어 수포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며 동남풍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전선단을 태운 큰 불은 육상의 진지에도 옮겨 붙었다. 적벽은 불 타 올랐다. 조조의 80만 대군이 무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첫댓글 한편으로 줄이니 내용이 좀 많아 졌네요.......뭔 사설이 이리도 삼천리인고...잠 오겠다... ㅎㅎㅎ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와 더불어 제가 고문진보(古文眞寶)를 배울 적에 넘 좋아해서 입에서 술술 외곤 했었는데.. 조다쉬님의 풀이를 읽으면서 감회가 무척 새롭네요.. *^^*
손과 목과 마음이 참으로 수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친절하시니 보기 드문 일입니다. 하나로 줄이셔서 스크랩이 안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더불어 카페의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즐기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선비님은 여름맞이가 어떠신지요? 저는 요즘 죽부인을 맞아서 한 여름을 보낼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고, 잡사에 무신경하니 먹고 자고 합니다.
용준선비님이 외우실 정도이니 한번 강의를 하셔야 하는데^^........ 출사표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저도 이를 통해 다시 배우는 것이니 즐거운 거죠.....복거사님 글솜씨가 요즘 탁월해 지셨습니다...
^^ 과찬의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