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 꽃을 바라보며
박 낙 순
꽃을 좋아 하면서도 기르는 재주가 없는 내게 난(蘭) 한분이 이봄과 함께
주인을 잘못 찾아 온 듯 어느 날 베란다의 작은 정원에 낯설게 놓여 있
다.
아기 돌보듯 정성을 다해 길러 보라며 거실에 모포를 깔고 종이위에 붓을 휘두르니
묵색이 산뜻하게 난 한점을 처 놓은 그이의 힘찬 필력과 함께 낮은 목소리로 “잘 키워
보게”한다. 평소 급한 성격과 참을성 없음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나에게 붓을 잡게 하
고 수필을 쓰게 하고 이젠 키우기 어렵다는 날까지 사들고 온 것이다. 좋아해야 될지
싫어해야 될지 묘한 기분은 들었지만 어쨌든 자세히 설명해 준대로 성의를 다해 키워
보기로 했다.
난(蘭)은 동면하는 식물로 봄이 되면 적당한 기온을 맞춰 잠을 깨운다. 10~15 ℃의
물온도에 영양제를 타서 충분히 물을 준 다음, 아침엔 동남향 쪽의 햇볕과 오후엔 반
그늘에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고 통풍이 되는 곳에 놓아둔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식물
임에 내 정서엔 맞지 않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살포시 수줍은 듯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가 첫 걸음마를 시작한 그때의 환희처럼 감격스럽고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얼마 되지 않아 가느다란 긴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약한 듯 강해보이는 작은
생명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일경일화(一莖一花)의 백화소심(白花素心)이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너무 고고하고
단아한 자태와 눈이 부시도록 하이얀 꽃잎이 속세를 떠난 여승의 마음을 띄고 있는 것
같아 영혼까지 맑게 한다.
난(蘭)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에 홀로피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 향을
품어내고 절개와 고결한 기품을 지녔기에 사군자중의 하나로 칭해졌나보다.
어느 문인은 회화(繪畵)를 풍경으로 보고 화분을 정원으로 보며 책을 친구로 삼으라
고 했듯이 아파트의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삶에 싱그러움을 내어준 백화소심(白花素
心)의 난(蘭) 한분이 이 봄을 아니 봄은 하늘의 뜻이 자연에 따르는 계절이란 것을 느
끼게 해준 자연앞에 감사하고 겸손함으로 꽃을 바라본다.
2005/20집
첫댓글 아파트의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삶에 싱그러움을 내어준 백화소심(白花素
心)의 난(蘭) 한 분이 이 봄을 아니 봄은 하늘의 뜻이 자연에 따르는 계절이란 것을
느끼게 해준 자연 앞에 감사하고 겸손함으로 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