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청명이고, 오늘은 한식이며 식목일이다.
◐ 청명이란
晴明은 24절기 중 5번째 절기로 봄의 한가운데이다. 푸를 '청(淸)'과 밝을 '명(明)' 자가 합쳐진 청명은 하늘이 차음 맑아지는 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청명하다'라는 표현도 절기 청명에서 유래됐다고 하죠. 청명 무렵이 되면 오동나무의 꽃이 피고, 종달새가 울며,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해요.
풍습:: 청명이 오면 농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가래질, 밭갈이,보리밭 메기, 푸성귀 뿌리기,청명 앞뒤에는 찹쌀로 술을 빚어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시는 이를 청명주(淸明酒)라 합니다. 특히 이때는 ‘내 나무’라 하여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습니다그리고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타무타령을 부르기도 합니다. “청명 한식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 가래질 : 가래(삽)로 흙을 뜨고 파는 일
◐한식(寒食)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 째의 날이다. 양력으로 4월 5일 또는 6일에 해당한다.
한식은 양력으로 4월 5일 또는 6일이며 식목일, 청명과 겹치기도 한다. 이 무렵은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기에 알맞으므로 특별한 놀이를 하지 않고 조상의 묘를 찾아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면서 조용히 하루를 보낸다.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기인데도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 하며, 이날 비가 내리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한식에는 술·과일·국수·떡·탕·포 등 여러 음식을 만들어 산소에 가져가서 제사를 지낸다. 또한 보자기에 싸간 낫으로 벌초(伐草)를 하거나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히기도 한다.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것이특징이다.설날,단오,추석과함께4대명절중하나이다.
유래:: 식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춘추 시대 진(晋)나라에 문공이란 왕자가 있었는데 임금이 죽고 나라 안이 어수선해지자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되었다. 문공의 충성스런 신하 개자추는 문공의 허기를 채워 주기 위하여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구워 먹이기도 하였다. 나중에 임금이 된 문공은 개자추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개자추를 불렀으나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문공은 산에 불을 질렀으나 그래도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불타 죽었다. 문공은 너무 가슴이 아파 해마다 이날이 되면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충성심을 기리고자 불을 때지 말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한식날이 되면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고자 불을 지펴서 따끈한 밥을 해 먹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 식목일이란?
기원전 636년, 청명과 한식이 생겼다. 이 무렵에 성묘를 가서 벌초 및 식목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기원전 4세기, 옥저 시대부터 한민족은 온돌 방식 난방을 이용하면서 땔감 확보를 위한 벌목이 잦아졌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소빙하기 영향으로 온돌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벌목이 증가하면서 온 국토가 민둥산 일색이 되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전래동화에 나오는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가 "땔감용 나무를 베러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난다"일 정도였고, 20세기에도 마찬가지여서 1932년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도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를 몰아낸 음력 2월 25일이 양력으로 계산하면 4월 5일이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이 날 즈음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의례'를 만들어 조선까지 이어졌다. #
1493년, 조선 성종 역시 세자와 문무백관들과 함께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이 이 날이다.(음력 3월 10일, 양력 4월 5일)
1860년, 천도교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음력 4월 5일에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다.[1]
1910년, 대한제국 순종이 친경의례 중 밭을 갈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나무도 심었다.
1911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쇼와 천황(昭和天皇)의 생일이 4월 5일이었으므로 이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식목일 행사를 4월 3일로 옮겼다.
1937년, 처음 본격적인 범국가적 식수 운동이 생겨났다. 일본제국이 각 학교별로 나무를 심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전시동원의 일환이었다.
1946년, 일본제국이 패망하자, 미 군정은 식목일을 다시 4월 5일로 환원했다.
♣ 1948년 이승만대통령 식목일 제정, 1949년 법정공휴일-2006년 공휴일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