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옛동산 쉼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추억에 그시절 스크랩 방송사상 최 장수 프로그램 노래자랑
小巖 李永熙 추천 0 조회 1,644 10.11.22 16:2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노래자랑 공개방송! 그 이름

 

1950년 라디오 방송에서 첫 선을 보인이래

60여년을 이어 오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래된 방송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남, 녀, 노, 소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는 노래자랑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때로는 휴전선이나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 국민들이

있는 곳이면 찾아갔습니다.

 

 

 

 

 방송사상 최 장수 프로그램 노래자랑  

 

 

1972년부터는 라디오 TV동시방송을

실시했고 1980년 TV칼라방송이 실시되면서 TV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습니다. 2010년 11월 11일이 노래자랑  

TV방송 30주년 기념일이라고 해서 11월 14일 노래자랑은  두시간

특집방송으로 진행 되었고 26년간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담당했던

 송해님에게는 KBS 명예사원증이 주어졌습니다.  송해님에 관한

 예기는 다음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0297

 

 

 

이 노래자랑은 오랜세월 가수 등용문이

되기도했고 일선장병 위안 프로그램이 되기도

했습니다. 노래자랑이 처음 라디오 방송전파를 탄것은

 1950년 6. 25가 일어나던 해 5월로방송 2회를 내 보내고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부산피난시절에서

돌아와 다시이어 졌습니다.

 

 

2007년 10월로 50년이 된

 KBS무대보다 더  더 먼저 생긴 프로그램이

이 노래자랑이고 1972년 4월 기본방송순서개편

때부터 KBS배 쟁탈 노래자랑으로 라디오와

 TV 동시방송이 이루어 졌습니다.

 

 

TV에서 전파를 타던때부터  

2009년 말까지 1,500회가 넘게 방송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노래 부를 지원자가 없을 것이라는 등 여러 걱정을 했지만

처음부터 노래 부를 사람이 너무 많아 대 혼잡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연자의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체임벨이고

 이 체임벨은 지금도 노래자랑에는 명물로 등장합니다.

지금의 체임밸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때는 엄청 컸습니다.

 

 

6.25전의 공개방송은 경성공회당에서

 실시되었고 6.25후에는 동화백화점이나  1957년에

문을 연  대한 공론사에 마련된 스튜디오 등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래사진은 대한공론사 스튜디오

개설 때  공연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가수는

 김씨스터즈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지방방송국에서도

편성되어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화합과

즐거움을 더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방송국별로 전속경음악단도 두고 전속가수도  뽑아서 

지역가수를 양성했습니다. 큰 지역행사가 있을때는

노래자랑 공개방송이 등장해서 청중들과의

호흡을 같이 했습니다.

 

 

 

 

또 군부대 위안방송이나 지역의

시, 군민 위안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이 노래자랑

공개방송이 등장하고 그날이면 그 고을의 최대 명절이었습다.

서울이나 지역방송을 막론하고 가는곳마다 환영을 받고  여기에

모인 청중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춘천방송국에

있었던 저도 군부대나 시, 군민 위안 공개방송을

한다면서 많이 돌아 다녔습니다. 

 

 

 노래자랑은 가수의 등용문이기도 했습니다.

지역에서 뽑힌 대표가수는 지역의 전속가수가 되기도

했지만 중앙에 올라가 실력을 겨루고 여기서 우수한

가수가 새로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부터 전국 아마츄어 톱싱거 대회가

마련되어어 가수 등용문이 되었습니다.   위사진은

두번째로 열린 61년의 톱싱거선박대회 모습이고 아래는

 64년에 개최된 전국 아마츄어 톱싱거 대회 모습 입니다. 이때

각 지역국에서 2명의 가수를 선발 중앙에서 전국대회를

 하고 입선자은 전속가수가 되었습니다.

 

 

1978년에 열린 노래자랑 결선대회모습입니다.

사회는 곽규석 님이고 입선자는 전속가수가 되었습니다.

 

 

노래자랑은 6.25전후 김창구님,

문시형님 시절에 마련되어 송영수님으로 이어

오면서 라디오 방송전성시대에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의

 중심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고 TV방송에서 지금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노래자랑 공개방송 초기 체험담 1,  문시형님

 

 문자 그대로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서울의 한 복판 소공동에 자리 잡은 공회당을

뒤흔든 것은 1950년 5월초의 일이다.  방송사상 처음으로

 KBS마이크가 대중 속에 깊숙이 파고들고 대중과 더불어

호흡을 같이 할 스무고개 공개방송이 공회당

대 강당에서 막을 올린 것이다.

 

공회당은 방송과 인연이 매우 깊은 곳이다.

 KBS가 탄생되기도 전인 1925년에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공개시험방송이 실시된 곳도 역시 이 공회당이어서

 그 인연이 매우 두터운 곳이라 아니할 수 없다.

 

30평 남짓한 정동연주소 제1스튜디오에서

불과 4-5십 명의 방청객을 모시고 공개방송을 하던

 스무고개는 최고 인기를 독점한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러기에

 방청객은 쇄도하고 수용능력은 없고 5월의 늦은 봄이건만 너무

더워 어름기둥을 두세 개 세워놓는 야단을 부리기도 했으나

더 이상 스튜디어에서 스무고개  공개방송을 실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럴 때 넒은 공회당으로 옮기고

경찰악대와 어린이 합창단의 동원도 동원이지만

기마대 까지도 동원하였으니 얼마나 성황을 이루었는지는

 제언 할 필요가 없겠다. 불행히도 6.25사변으로 단 2회의

공개방송으로 끝을 맺어 안타까운 일이었다.......

 

 

1953년 정부기 수복된 후 스무고개는 또다시

스튜디오를 떠나 동화백화점 (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

 4층으로 진출하여 청취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때 탄생한

프로그램이 노래자랑으로 스무고개와 파트너를 이루었다. 당시는

 KBS독주 시대였음으로 장소 사용료도 없이 심지어는 쇄도하는

 방청객으로 인해 유리창이 깨져도 보상함이 없이 스무고개와

노래자랑은 인기절정을 이룩했고 일선장병 위문과 산업전사

위문에 전후방을  동분서주 하며  정열을 쏟기도 했다.

이 스무고개   공개 방송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탄생시키면서 또한 방송과 청취자의 거리도

좁히는데 크게 이바지하기도 했다.

 

 

노래자랑 공개방송 초기 체험담 2,  김창구

 

 

김창구님 방송사상 최초의 노래자랑 공개 방송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광고방송을 ?차례 하고 나니 당일

동화백화점에는 출연자와 방청자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너무 사람이 많이 들어와서 출입문을 다치고나니

유리를 깨고 다친 문을 부시고 노도처럼 밀려

들어 왔다. 속수무책이었다.

 

 

입추의 여지가 없어 공개방송을

진행하기 어려 웠지만 첫 약속을 어길 수도 없었다.

사회를 맏은 장기범 아나운서에게 녹음개시 신호가 같다.

그런데 당대 제 1 인자 였던 장 아나운서가 부들 부들 떨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무대에 처음 서게되면

조명은 비치는데 객석은 불을 꺼서 자세히보이지 않고 부엉이 눈마냥

눈 동자만 역광에반짝 거리니 떨릴 수 밖에. 딩 동 댕 합격한 출연자에게

 지정곡을 주기 위해  8절지만한 메모지에 큰 글씨로 곡목을적어

내가 넘겨 주었는데 장 아나운서는 공개방송이 끝난 후 너무

떨려서 그 글씨가 잘 안 보이더라고  말 한적이 있다.

 

 

노래자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대중가요 가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늘어 났고

 

대중가요는 한층 더 생활 속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대중가요 프로그램이 늘어 나고 KBS향연과 같은

 

대형 프로그램이 탄생 했습니다.

 

 

 

 

 

노래자랑 장면 몇 편을 올렸습니다.

 

 

춘천방송국에서 1960년대 중반에 행한

 일선장병 위문 공연 장면. 장병 노래자랑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군단장이하 장병들이 참여한 모습입니다.

전방에 위치한 춘천방송국은 군을 대상으로 군가 경연대회도

가졌습니다.   PD이었던 이범진, 엔지니어 이었던 윤성호,

김중기님이 보이십니다. 윤성호님은 남산송신

소장등을 거쳐 현재 사우회 회원이십니다.

 

1971년에 청주 방송국에서 실시한 군민위안 공개 방송 모습입니다.

 

1979년 서남 해안의 섬 흑산도에서 있었던

 노래고개 세 고개 공개방송 모습입니다.

 

 

대전방송국에서 실시한  노래자랑  공개방송에서

 입선자에 대한 시상 장면. 당시의 방송부장 전응우 님이

시상 하고 있습니다. 방송부에는 지금의 편제국과

보도국기능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KBS 남산방송국, 노래자랑 공개방송을 방청하기 위해

사전에 방청권을 받은 방청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웠습니다.

 

위의 사진이 노래자랑 관련사진으로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사진입니다.노래자랑을 맡았던 문시형 선생님

 (방우회 회장 재직중 1995년 4월 사망) 소장 사진으로  6.25후에

동화백화점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에서 노래자랑과 스무고개

첫방송을 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입니다. 이 사진에는 스무고개에

출연하신 문제안, 이덕근, 이경희선생님과 사회를 맡으신

장기범, 강영숙님, 프로그램을 맡으신 김창구, 문시형님

 기술을 맡으신 한기선님등이 같이 하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씀

춘하추동방송

 

 

 

노래자랑1.mp3

 

 
다음검색
댓글
  • 11.01.06 20:02

    첫댓글 노래자랑에 머물다 갑니다 좋은 자료입니다 수고 하셨읍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