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족보(族譜)는 중국(中國)의
성씨제도(姓氏制度)라 할 수 있는 한식 씨족제도(漢式氏族制度)를
근본으로 삼고 발전하여 정착했는데, 그 시기는
1000 여년전인 신라말·고려초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옛 문헌(文獻)에
보면 고구려나 백제계통의 성(姓)은 그 계보(系譜)가
후대와 거의 연계되고 있지 않으며 다만 신라의
종성(宗姓)과 육성(六姓)[이(李), 최(崔), 정(鄭),
설(薛), 손(孫), 배(裵)]및 가락국계(駕洛國系)의
김해김씨(金海金氏)만이 후대의 계보(系譜)와
연결 됨을 알 수 있다.
[좌측]《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1476년 간행.현존 최고(最古)의 족보로서,서울대학교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 소장.
[우측]《문화류씨
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
1562년간행.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 이후로부터는 귀족사이에서 가첩(家牒)이나
사보 (私報)로 기록하여왔는데, 이러한
가계기록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에
오면서 족보(族譜)형태를 갖추는 가승 (家乘)·내외보(內外譜)·
팔고조도(八高祖圖)로 발전 하게 된다.
족보의
발행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초기인
세종 5년 (1423년)의 문화류씨 영락보(文化柳氏永樂譜)부터
간행되기 시작했고, 그 후 1476년(성종 7년)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가 체계적인
족보형태를 갖추었으며, 현존하는 최고(最高)의
족보로는 문화류씨 두번째 족보인 1562년(명종 17년
간행의 10책)의 가정보(嘉靖譜)이다.
이밖에 조선초기 간행된 족보는 남양홍씨 (南陽洪氏,1454),
전의이씨(全義李氏,1476), 여흥민씨(驪興閔氏,
1478), 창녕성씨(昌寧成氏, 1493) 등의 족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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