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름다운 엠마 호
제일 먼저 감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시장이었습니다.
"경감, 날 이리로 오라고 전화를 했다는데, 무슨일이오?"
이때 안뜰쪽에서 르르와 형사와 동료 형사가 세르비엘 기자를 연행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세르비엘 기자는 모자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맨이 사진 찍는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여보게, 이쪽일세!"
메그레 경감이 밖에다 대고 외쳤습니다.
이윽고 르르와 형사와 세르비엘 기자가 감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르르와 형사, 수고한 김에 사무실에서 의자를 갖다주게. 곧 미쉬 부인이 도착할 테니까."
메그레 경감의 말대로 잇달아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메그레 경감은 어디있죠? 당장 경감을 만나게 해줘요! 그리고 당신을 당장 파면 시키겠어요. 형사 양반, 내 말을 알아들었어요? 꼭 파면시키고 말겠어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고함을 치며 들어선 사람은 미쉬 부인이었습니다.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야단스럽게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짙 게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쉬 부인은 시장이 있는 것을 알자 금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상냥해졌습니다.
"어머나, 시장님!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시장님, 글쎄 이런 무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 젊은 형사 양반은 내게 옷 갈아입을 시간도 화장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억지로 연행해 왔다니까요. 마치 죄인 다루듯이 말이어요. 우리 남편 은 국회원원이었고, 어쩌면 수상도 될 뻔한 사람이었는데, 이런 형사 나부랑이 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다니!"
그러나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지나치게 화를 내는 바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야영 침대 구석에 아들인 에르네스트 미쉬가 두손으로 머리를 싸메고 앉아 있는게 보인 것입니다. 그 곁에는 세르비엘 기자가 얼굴을 가리고 서 있었습니다.
미쉬 부인은 깜짝 놀라 메그레 경감을 돌아보았습니다.
"경감님,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시작되죠?"
이때 정문을 통해 한대의 자동차가 안뜰로 들어왔습니다. 정문 밖에는 구경꾼들 이 모여들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맨 먼저 끌려 나온 사람은 그 몸집이 큰 사나이였습니다. 양손에 수갑을 찼을 뿐만 아니라, 양쪽 발목도 굵은 밧줄로 묶여 있었습니다. 걸을 수가 없었으 므로, 헌병들이 마치 무거운 짐을 나르듯이 들고 감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 를 따라 엠마가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녀는 수갑을 차고 있지는 않았지만 몽유병 자처럼 멍청한 얼굴로 걸어왔습니다.
헌병들은 사나이를 잡은 흥분으로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제복은 구 겨지고 찢어졌으며, 단추도 떨어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사나이의 얼굴은 온통 피 투성이였으며, 터진 입술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사나이를 잡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격투를 벌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미쉬 부인은 피투성이의 사나이를 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마치 무서운 짐승이 라도 만난 듯 벽 쪽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발의 줄을 풀어 주게!"
메그레 경감이 헌병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나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밧줄이 풀리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천천히 감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날카로운 눈이었습니다.
"얌전히 굴어야해, 레온!"
메그레 경감이 사나이를 노려보았습니다.
사나이는 제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 경감쪽을 돌아보았습니다.
세르비엘 기자는 아까부터 미쉬 부인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에르네스트 미쉬는 여전히 두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앉아 주시죠. 시장님도 앉아 주십시오."
사람들이 제각기 의자나 침대 끝에 앉기를 기다려, 메그레 경감은 입구에 서 있 는 르르와 형사를 향해 명령을 내렸습니다.
"르르와, 켐벨 시 해운국에 전화를 걸어서, 지금부터 4,5년전 아니 좀더 예전일 지도 모르지만, '아름다운 엠마 호'란 이름의 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 봐 주게."
"예."
르르와 형사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시장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 일이라면 내가 얘기할 수 있소. 경감. 이 고장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니까."
"그럼 얘기해 주십시오."
그러자 레온이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는 사나운 개처럼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습니 다. 엠마는 사나이로부터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장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엠마 호'라는 배를 본 적은 없지만.... 그 배의 임자는 그르 렉이란 이름을 가진 사나이였소. 그르렉은 선원으로서는 훌륭한 솜씨를 갖고 있 엇지만, 성급해서 곧잘 싸우는 것이 결점이라는 소문이었소. '아름다운 엠마 호'는 주로 야채와 과일을 영국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지요. 이 근처 연안 항로 의 배들은 대게 그렇지요."
시장은 잠시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름다운 엠마 호'의 행방이 묘연해졌어요. 그리고 2개 월쯤 지났을 무렵. 그 배가 미국 뉴욕 근처의 작은 항구로 마약을 싣고 가다가 해안 경비대에 발각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졌소. 물론 선원들은 모두 체포되고 배 도 몰수되었다고 했소. 그 무렵 미국은 금주법이란게 있어서 마약은 물론 술이 나 알콜류까지 일절 금지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유럽에서 몰래 술을 실어 나르 는 밀수선이 꽤 많았소."
시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메그레 경감이 사나이에게 물었습니다.
"레온, 앉은 채라도 좋으니까 내 질문에 대답해 주게. 단, 내가 묻는 말에만 대 답하고 그 이상의 필요없는 말은 하지 말게. 알겠나? 우선 오늘은 어디서 붙잡 혔지?"
레온은 턱에 묻은 피를 손으로 문질러 닦고 목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켐벨 시로 가는 도중에 있는 작은 역입니다. 밤이 되면 어디로 가는 열 차든 숨어 탈 생각으로 역의 창고에 숨어 있다가 들켰지요."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었나?"
레온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헌병대장이 대답했습니다.
"겨우 11프랑과 잔돈 조금이었습니다."
레온은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엠마가 그의 곁으로 다가앉아 소리없이 흐느꼈습니 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메그레 경감은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레온 그르렉, 자네가 그 '아름다운 엠마 호'의 임자였군. 그럼 어째서 마약 밀 수를 하게 됐는지, 그 까닭을 이야기해 주겠나?"
레온은 고개를 홱 들었습니다. 그의 눈은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갑을 찬 두 손을 꼭 쥐며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어 내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래서?"
"처음 한동안은 잘되었는데, 어느 해 과일과 야채의 값이 엄청나게 올랐으므로 영국에서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크게 곤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은행빛을 갚아야 하고, 또 빨리 돈을 모아서 엠마와 결혼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때 얼굴을 아는 신문기자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곧잘 항구로 기사감을 얻으러 오던 기자인데, 좋은 돈벌이가 될 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미쉬가 저고리 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어 무엇인가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뜻밖에도 침착했습니 다. 메그레 경감은 미쉬의 행동을 곁눈질해 보면서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그 기자란 자가 <등대>의 세르비엘 이었군. 그럼 그가 마약 밀수를 제의해 왔나 ?"
"아니오, 마약에 대해선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좋은 돈벌이 가 있는데 한몫 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약속한 그날 브레스트시 에 있는 술집에 가보니, 세르비엘 기자 이외에 남자 둘이 와 있었습니다."
"그게 에르네스트 미쉬와 폼므레였군?"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미쉬만은 여전히 수첩에 무엇 인가 적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의 두려워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거기 에 있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듯한 엷은 미소마저 짓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 세 사람 중 누가 마약 밀수 이야기를 꺼냈지?"
메그레 경감이 레온에게 물었습니다.
"세 사람 다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두 달 만에 굉장한 돈 을 벌 수가 있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서 미국인 한 사람 이 찾아왔습니다. 그자의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바다와 배에 관해선 잘 아는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감에 알콜 밀수를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알콜 밀수라면 그 당시 배마다 하고 있었고, 정기선의 고급 선원들도 용돈 벌이 로 하고 있었기에, 나도 그다지 나쁜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레온은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동안에 흥분했는지 수갑 찬 손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지 1주일쯤 지나, 기술자가 와서 '아름다운 엠마 호'에 보조 엔진을 달았 고, 나는 나대로 영어로 씌어진 대서양의 해도와 천기도를 받았습니다. 대서양 을 횡단하는건 처음이었으므로 나는 신중을 기해 선원은 두 사람밖에 쓰지 않았 죠. 물론 일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엠마에게만 알 콜 밀수인것 같다고 귀뜸해 주었죠. 마침내 출항하는 날, 엠마는 켐벨 항구까지 나와 전송해 주었습니다. 그 세 사나이들도 와서, 헤드라이트를 끈 자동차 곁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출항할 순간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밀수가 걱정이 되었 던 게 아닙니다. 그보다 이런 작은 범선으로 과연 대서양을 잘 헤쳐 나갈 수 있 을까 그것이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잘되면 은행 빚도 단번에 갚 을 수 있고, 그러고도 2만 프랑쯤은 남을 계산 이었습니다. 그러면 엠마와 결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용기를 내어 배를 출발시켰습니다. 이윽고 자동차 와 세 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엠마의 모습만이 방파제 끝에 실루엣처럼 검게 또렷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점차 보이지 않게 되고.... '아름다운 엠마 호'는 그로부터 두 달 동안 대서양을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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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外명작
[조르주 심농] 죽음을 부르는 개(3편: 엠마 호의 비밀) 21. 아름다운 엠마 호
ㅎHㅅiㅅ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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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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