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6
- 오늘 6반에서 1학기 마지막 수업이었다. 한 학기를 돌아보면 이렇게 훌륭한 반을 만나서 수업하고 담임까지 한 것이 행운이었다. 마지막까지 수업 태도가 너무나 좋았다. 너희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어. 수업은 교사가 준비하는 것 반, 학생이 호응하며 만들어 가는 것 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준비하더라도 학생들이 발표하지 않거나 엎어져 있거나 졸고 있으면 의미있고 재미있는 수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절반의 몫을 우리 6반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참 잘 수행해주었다.
- 새로운 단원을 시작했다. 단원 시작 시에는 관련 동영상을 본 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질문, 단원과 관련하여 선생님이 동영상을 준비한 이유(단원 학습 목표와 관련 짓기) 등을 발표해 보게 한다. 오늘 지우는 동영상을 보고 단원의 학습 목표를 자기 언어로 새롭게 구성하였다. 우와. 이런 발표는 처음 들어봤다...
2. 305
- 동후는 오늘도 독서 시간에 학부모총회 책을 들여다보았다. 이걸로 독서 기록을 남긴다면 대체 뭘 쓸 수 있을까??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해 학교 규정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뭐야...
- 동후는 오늘 랜덤 발표로 뽑혔는데 한참 동안 발표를 못 했다. 발표를 못 하고 마이크를 한참 들고만 있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그러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한참 쳐다보면서 미모를 감상할 수 있다. 음... 그래 잘생겼다... 계속 생각하렴. 수업 시간도 날아가고 얼마나 좋니(발표 희망자가 많지 않아서 진도 빠른 반 한정).
- 학습활동 확인 시에 동후가 발표를 못 해서 그를 도와줄 힌트가 되는 문장을 읽어줄 사람을 구했다. 채율이가 뽑혔으나 그도 못 해서 박주원 학생이 도움이 될 문장을 읽어주었다(도움을 줄 사람에게 도움을 줄 사람 구하기 릴레이...).
- 눈이 동그랗고 친절한 우리 창래가 오늘 여러 번 발표 희망자였음. 그가 제일 잘생긴 것 같다! 발표하는 학생이 제일 잘생겼다!(발표할 때 그 학생에게서 빛이 남.)
- 우리 5반은 독특하게 웃기는 반이라서 한 학기 동안 들어올 때 오늘은 뭘로 나를 웃겨줄지 기대되고 설렜다고 인사했다. 특이하게 웃겨...(예: 엎어져 있다 일어나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든가, 독서하라니까 학부모총회 책을 본다든가...)
3. 309
- 이중사고의 예시로 스포츠맨십과 승리를 위해 반칙을 불사하는 것 사이의 신념 충돌을 든 것이 좋았다! 스포츠를 잘하는 반답게 와닿는 예시를 잘 들었다(동하가 시작해서 찬주, 성아, 도현 등이 정교화함).
- 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9반 학생들 덕분에 즐거운 한 학기였다. 마지막 수업까지도 좋았던 9반. 엉뚱한 성윤이(얘가 발표하고 있는 걸 보고 듣고 있자면 저절로 웃음이 남. 귀여워), 적극적인 도현이, 지적인 성아 다윤 은호... 차분하고 예쁜 9반 학생들.
3. 303
수업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교실 앞에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3반 대 11반으로 피구 경기를 했는데 편파 판정을 했다며 3반 어느 학생은 심판 선생님에 대해 패드립을 했고 또 누군가는 인스타에 몹쓸 말을 쓴 모양이다. 이에 심판과 주심을 맡았던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을 조금 넘겨서까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셔서 수업에 조금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4교시에 시합이 있었고 두 시간(점심, 5교시)이 지나가서인지 격앙된 건 아니고 오히려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슬쩍 눈치를 살폈는데 억울했느냐는 질문에도 크게 동요하거나 하지는 않고 조용했다. 준비했던 주제인 '공부의 이유'와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잘 나누었다(+ 준서, 태빈, 유민 경청하는 태도 너무 좋았다). 준서는 생각이 많아서 힘든 때가 있는데 독서 시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어서 나도 좋았다. 생각이 많으면 힘든데 너무 많은 생각으로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
4. 비밀쟁이
오늘 선생님 도우미 정우는 오늘 있었던 일, 재미있었던 일, 다행이었던 일, 책에서 읽은 인상적 구절과 이유 등을 화면에 기록하라니까 아이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했다. (??) 그럼 밝힐 수 있는 것만 쓰라니까 뭐가 됐든 밝히기 곤란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일 조회 시에 내가 잘 좀 말해달라, 아니 아예 오늘 있었던 일 말하는 시간에 그냥 넘어가 달라는 둥 자꾸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을 어필하며 고집부리고 안 나간다. 그래서 옆에 있던 지환이와 정현이에게 얘 한 팔씩 잡고 교실에서 끌어내 달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정현이와 지환이가 정우 끌어내기를 도와주었다(쉽지 않은 일이었다). 황.당. 얼른 가. 집에 가. 빨리 가.
5. 면담
오늘은 지현이와 빵까페에서 면담했다. 독창성을 중요시한다는 지현이는 정말 개성있는 학생이다. 환하게 웃으며 말해주어서 옆 사람도 기분이 밝아지는 느낌. 면담하며 스스로 '비교하지 않기'가 필요함을 찾아내어 보기 좋았다.
p.s.
오늘 점심 시간에 급식 상황을 보는데 갑자기 우현이가 "학급비 왜 안 써요?"라고 말했다. 주변 반에서 아이스크림을 선생님들이 학급비로 사시는 걸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보다 짐작은 되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공격 받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민한 건지도 모르니 다른 선생님들께 그 문장을 들었을 때 어떠하신지 물어보았다. 들었던 선생님들 모두 매우 불쾌하다고 하셨다.
학급비는 담임 교사가 재량껏 쓰라고 나오는 돈이고 당연히 학급에 쓰고 있다. 필요 비품을 사고(현재까지는 게시물 정리 용품을 삼), 현재 빵까페에서 진행하는 면담 비용(빵과 음료 구매)으로도 쓴다. 참고로 면담 비용은 학급비만으로는 모자라고 사비도 들어간다.
물어본 배경은 이해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움과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공격할 의도가 없이 정말 순수하게 물어보는 거라면 다르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우현이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예: 학급비 사용 계획이나 사용 내역이 궁금합니다. / 학급비로 아이스크림을 샀으면 좋겠는데 어떠신가요? 등). 반에 불만인 분위기가 있을 수도 있고 어떻게 말할 것인지는 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우현이에게 종례 때에도 이야기하겠다고 했고, 종례 때 전체 대상으로 나의 느낌과 학급비 문제 등을 이야기했다. 같은 문장을 들었을 때 본인이 선생님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먼저 물었다. 혹시 불만이 있을 때에는 말하기 바라며 그 표현 방식도 중요함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단체 줄넘기와 피구 대회를 진행하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오늘 3반-11반 피구 시합 심판 보시다 말과 글로 봉변 당한 선생님, 학생에게 폭행당한 초등학교 선생님, 자살한 서초구 선생님 등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참담하고 슬프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실천하기 전에 조금 더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한 마디 말로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s.2.
12반 소영이가 쿠키와 카드 선물을 주었다. 힘든 기분이 들었던 날인데 이렇게 위로해주는 학생들도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p.s.3.
원희는 왜 머리를 그렇게 밀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물어보았다. 뭔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더워서 밀었다고 한다. 심플한 이유였다. 방학 지나면 어떤 스타일이 되어 있으려나...
나랑 살다보니 나는 꽤나 궁금한 것도 많은 사람임을 발견하게 된다. 궁금증 해결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오늘도 원희를 붙들고 물어보고 답변을 들어서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즐겁다.
우리 반 지환이는 독서 기록에 과학적 사실들을 중심으로 적곤 하는데 덕분에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을 들뜨게 하거나 가라앉히는 감정 문제 말고 이렇게 순수하고 객관적인 사실 탐구는 다른 차원(담백한 곳)으로 순식간에 정신을 옮겨준다.
+ 아, 그리고 한 학기를 거치면서 학기 초에 무표정이었던 지환이가 밝은 느낌으로 많이 변해서 너무 좋다. :) 확실히 학생들이 긍정적인 쪽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낙이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들에게 고맙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글을 쓰다가 지환이 생각을 하면서 좋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