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松廣寺). 그 이름만으로 엄청난 위엄입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종찰 조계총림이니 그렇다 치죠. 그런데 왜? 법정 스님께선 시 '산에 오르면'에서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다네…(이하 생략)"라고 하셨을까?
스님의 시적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긴 합니다만, 진짜 "부처는 절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부 절집들이 중생 교화에 힘쓰기보다 살림살이 늘리기에 치중하는 듯한 느낌이 많아섭니다. 그래, 스님다운 스님, 수행자다운 스님, 중생 같은 스님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하여, 절에는 스님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는데, 아주 유쾌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빙그레 웃었습니다.
"스님, 계십니다!"
역시 승보사찰 송광사는 달랐습니다. 송광사에 붙은 이 글귀를 보고 '아!' 했습니다. 왜냐고요? "스님, 계십니다"란 문구가 송광사가 대중에게 보내는 '선언'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스님 없"는 줄 알았는데 "스님 계"시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요. 때문에 송광사 선언이 반가웠습니다. 대중이 미륵불의 현신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앞으로 스님다운 스님, 수행자다운 스님, 중생 같은 스님을 만나기 쉬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송광사 행. 갑자기 이뤄졌습니다.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우연히 종문 스님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인연의 끌림 때문이지 싶습니다.
"송광사에서 만나봤으면 하는 스님 한 분 소개해 주세요." "현묵 스님." "스님, 십오륙 년 전에 뵀는데." "선방 스님이신데 만나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현묵 스님을 염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님을 추천한 지인은 "하안거가 끝나야 만날 수 있는데, 하안거가 끝났는지 모르겠다"며 갸우뚱 했었습니다. 날짜와 시간 등 시절 인연에 맞춰 절집을 찾았으나 부재중. 두어 시간 기다린 후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때 "성품이 차가우시네요. 따뜻한 차를 드릴게요!"라며 찬 성질의 녹차 대신 따뜻한 발효차를 권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 한담 나누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낼 송광사 같이 가시면 어때요?" "아니요. 내일 손님이 오기로 해서요." "스님, 하루 늦추시죠? 인연인데." "그럼, 그렇게 하지요."
종문 스님, 송광사 오랜만이랍니다. 행자 교육 때 구석구석 누볐답니다. 송광사, 얼마나 변했을지 더 궁금하답니다. 의기투합했습니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9년 동안 중창 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 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 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송광사 입구 안내판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괜히 승보종찰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 끝에 획득한 승보종찰이었습니다. 문화재로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42호),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 등을 비롯해 총 8천여 점"을 보유하고 있답니다.
송광사도 여느 절집처럼 템플스테이를 하대요. '내 이야기 들어주는 템플스테이' 주제가 바로 "스님, 계십니다!"였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 토, 일요일 스님을 만나면 사는 것이 달라진다"면서 "2박3일 동안 8분의 스님과 송광사 장엄예불, 차담, 큰스님과 대화, 암자 한바퀴, 나를 깨우는 108배, 참선, 스님과 선 체조, 이야기 책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답니다.
현묵 스님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하안거는 끝났습니다. 허나, 출타 중입니다. 동행한 종문 스님과 불일암에서 화엄전까지 둘러보며 시간 쪼개기에 돌입하며 그를 기다립니다. 왜냐면 현묵 스님께 묻고 싶은 게 있으니까. 간단합니다. 하지만 간단치 않습니다. 온몸으로 살아 온 삶이 온전히 담겨 있으니까. 뭐냐면, '아직도 성질이 차갑게 느껴지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럼, 스님께서 뭐라 실까?
"송광사 해우소 그림입니다."
해우소, 어느 절집이나 각각 특징이 있는 법. 송광사 해우소는 안에서 화장실용 신발로 갈아 신습니다. 나오는 길에 손을 씻습니다. 길을 걷습니다. 산사답게 은은한 향이 납니다. 계곡에 앉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맑습니다. 여유롭습니다. 화엄전 앞,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를 봅니다. 손잡고 가는 중년 부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주지 스님과 잠시 인사합니다. 걸으면서 종문 스님과 이야기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