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人터뷰] 장종훈 코치, “한화에는 영원한 주전도, 영원한 후보도 없다”
2018.07.13 오전 07:50
<35번의 영구결번을 달고 다시 한화 코칭스태프에 합류한 장종훈 수석 코치. 그는 올시즌 한화의 변화 요인을 한용덕 감독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사진=이영미)>
한화 이글스의 전반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뭘 해도 되는 집안’이었다.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 2군에 있던 젊은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를 이끈다. 선발이 무너지면 불펜에서 마운드를 막는다. 한화 불펜진의 평균자책점은 3.91로 리그 1위. 팀 타격 지표는 하위권을 맴돌지만 결정적인 한 방으로 반전 스토리를 만드는 바람에 ‘보살팬’의 고유명사였던 한화 팬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그런 과정들이 모여 한화 이글스는 52승37패(승률 5할8푼4리), 2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무려 26년 만에 이룬 전반기 최고의 성적이다. 지난 10년간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던 만년 하위팀, 한화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올시즌 처음으로 수석 코치를 맡아 한용덕 감독과 멋진 호흡을 선보인 장종훈 코치는 이 모든 배경에 한용덕 감독의 지도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리빌딩에 중점을 두고 팀을 만들어 가는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더라. 주축 선수들이 거의 다 빠졌는데도 잘 돌아가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였다.”
장종훈 수석 코치는 한용덕 감독의 남다른 지도력이 한화 이글스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을 자연스레 경쟁 구도로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긴장감을 형성한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꼽았다.
“선수들은 서운할지 몰라도 팀을 운영하는 감독한테는 경쟁 구도가 불가피하다. 지금 한화에선 영원한 주전도, 영원한 후보도 없다. 그게 상승세의 요인이라고 본다.”
한때 한화의 약진을 비꼬는 이들이 있었다. 잠시 반짝하다가 귀신처럼 자신의 자리를(꼴찌) 찾아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젠 KBO 리그 팀 순위 2위에 있는 한화 이글스가 낯설지 않다.
“시즌 초반에는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욕심이 생기니 일희일비의 연속이었다. 제명에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터는 코치들과 미팅을 마치면 ‘오늘만 이깁시다’라는 구호를 외친다. 내일되면 또 ‘오늘만 이깁시다’가 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린 오늘만 이기자는 생각으로 시즌을 치렀다.”
<코치들이 소신껏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용덕 감독. 코치가 감독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문화가 한화의 또 다른 성장 요인이기도 하다.>
한용덕 리더십과 코치들의 소신 발언
2005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장 수석 코치는 2006년부터 한화 이글스 2군 타격 코치로 지도자 생활에 접어든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잠시 한화를 떠난 걸 제외하고는 줄곧 이글스와 동고동락했다. 그런 그에게 수석코치는 처음 맡는 자리.
“시즌 전에는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시즌 들어가선 수석 코치가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타격 코치는 타격만 신경 쓰면 되지만 지금은 전체적인 흐름을 봐야 한다. 감독님이 코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라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용덕 감독 얘기가 나오자 장 수석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한화 코치들이 감독을 잘 만난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코치들이 감독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쉬워 보이면서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감독님은 그런 경직된 분위기를 매우 싫어한다. 어떤 의견도 소신껏 얘기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코치들이 의견을 낼 때까지 기다리고 듣는 편이다. 가끔은 ‘저걸 어떻게 참으실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참는다. 그 분이라고 왜 말 안하고 싶겠나. 겉으로 보기엔 부드러워 보이지만 굉장히 강단 있는 분이다. 요즘 감독님에 대해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있다.”
3년간 밖에서 지켜본 한화 이글스
영원한 이글스맨일 줄 알았던 장 수석 코치는 2014년 12월,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 도중 사의를 표명했다. 김성근 감독이 여섯 차례나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오키나와에서 마무리 캠프를 하는데 20년간 입었던 한화 유니폼이 자꾸 낯설게 느껴졌다. 많은 코치들이 나가고 새로운 코치들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일단 벗어나고 싶었다. 20년을 몸담은 곳이지만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님이 여섯 번이나 만류하시더라.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나도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장 수석 코치는 한화를 나오자마자 롯데 자이언츠 타격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한화에서 만난 이종운 감독과의 인연이 롯데로 이어진 셈이다.
“1월 초 롯데에서 코칭스태프 첫 미팅이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전날 밤부터 두려움이 엄습했다. 28년을 한 직장에 있다가 다른 곳에서 일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신인 선수가 데뷔하는 심정으로 사직구장을 찾은 것 같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장 수석 코치의 눈에 상대팀으로 만난 한화 이글스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착잡했다. 예상대로 편치 않더라. 그래도 이기고는 싶었다. 시즌 내내 경기 후 한화 성적을 확인했던 것 같다. 비록 한화를 떠나긴 했어도 좋은 모습을 보이길 바랐다. 함께 고생했던 선수들을 떠올리면 마음속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35번, 40번, 21번의 레전드들이 한화에서 감독과 코치로 호흡하며 이글스의 재건에 열정을 쏟고 있다.>
레전드들의 귀환, 새로운 도전
장 수석 코치는 한용덕 감독이 한화 이글스 신임 감독으로 선임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나돌 때(공식 발표 전) 박종훈 단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박 단장은 장 코치에게 ‘수석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단장님께서 수석이라고 부르셔서. 롯데와의 관계도 있어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지만 선수 시절 한 감독님이랑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마음을 굳혔다. 당시 누가 먼저 감독이 되든 한 사람이 감독되면 다른 사람은 수석 코치를 맡자고 했던 약속 말이다.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장님 전화 받고 바로 감독님한테 연락드리려 했다가 당시 두산의 플레이오프가 한창 진행 중이라 따로 전화 드리지 못했었다.”
장 수석 코치가 한 감독을 다시 만난 자리는 한국이 아닌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에서였다. 3년 전 ‘어쩔 수 없이’ 한화를 떠나야 했던 레전드 삼총사들이 감독, 수석코치, 투수코치로 의기투합했다.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지만 3년 동안 팀도, 우리한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화 이글스란 울타리를 벗어나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는 아팠던 일들이 지금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는 상처였던 게 지금은 더할 나위 없는 배움의 시간들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다시 모인 사람들이라 한화가, 대전이, 그리고 팬들한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던 것 같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3년 만에 다시 모이니 그 감회가, 회한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일시적일 뿐. 그들한테는 중요한 숙제가 주어진 상태였다. 한화의 재건을 위해 모인 레전드들이었다. 그 숙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레전드들의 귀환은 일시적인 뉴스거리 밖에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빙그레 시절처럼 다른 팀이 우리 팀을 봤을 때 누구나 인정하는 강팀을 만들고 싶었다. 굳이 입 밖으로 거론하지 않아도 한화로 돌아올 때는 그걸 마음에 품고 올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돌아온 친정팀의 감독이 한용덕 감독님이라 기뻤다. 프랜차이즈 출신의 감독이라 더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장 수석 코치는 한화에서 타격 코치를, 송진우 코치는 투수 코치를 맡았었다. 팀의 암흑기로 불렸던 시절, 레전드 출신 코치들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무엇일까.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는 그 차이가 궁금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용덕 감독님의 존재 여부다. 이전에는 감독님이 어려워 말도 못 꺼냈다. 지시하는 대로 이행해 나갔다. 요즘 새삼 느낀다. 지시를 받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말이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
한화는 전반기 팀 평균자책점(ERA) 2위(4.49)로 지난해 8위(5.28)에서 수직 상승했다. 반면에 타격 지표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팀타율은 9위(0.272). 팀홈런 8위(85개), 팀타점 9위(395개), 팀득점권타율 7위(0.276), 팀OPS(출루율+장타율) 9위(0.750) 등으로 대부분의 타격 지표가 바닥을 찍고 있다.
한화가 후반기에도 전반기의 상승세를 이어가려면 타선의 부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김태균, 양성우, 정근우 등 타격은 물론 수비에서 비중이 높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타선이 약화되고 일부 선수들한테 의지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장 수석 코치도 팀의 타격지표 관련해서는 스트레스가 많다고 토로했다.
“타격 지표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끄는 선수들이 대단해 보인다. 타격만 놓고 봤을 때는 우리가 2위를 하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마운드가 강해지면서 수비와 공격이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 분명 선수들이 지치는 게 보이는데 승리를 거듭하면서 신바람을 내고 있다. 전반기 가장 큰 수확이라면 지고 있어도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선수들의 자신감인 것 같다.”
지난 6월 1일 부산 롯데전을 앞두고 한용덕 감독은 이례적으로 코칭스태프 미팅을 가졌다. 당시 한 감독은 코치들에게 “아마 6월이 가장 큰 고비가 될 것 같다. 6월만 잘 버티면 될 것 같은데…. 코치들이 알아서 선수들을 잘 독려해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태균은 종아리 근육부상으로, 양성우는 복사근 부상을, 정근우는 허벅지 안쪽 근육 부상을 당했고 외국인 투수 제이슨 휠러와 배영수의 부진이 맞물리면서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타로 나간 선수들이 경기를 만들어주더라. 5월 말 대전 NC전에서 김민하가 이틀 연속 결승타를 터트리면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고, 부산 롯데전에서는 백창수가 대타로 나가 멋진 활약을 펼쳤다. 생각지도 못했던 지성준과 정은원은 또 어떠한가. 만년 백업 멤버였던 강경학도 반전 카드였다. 경학이가 입단할 때부터 방망이는 타고 났다고 생각했는데 수비, 그중 송구 능력이 좋지 않은 게 단점이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단점을 극복해내고 기어이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런 선수들의 활약에 선배들은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팀에 밝은 분위기를 형성해 주고 있다.”
장종훈 수석이 적극 추천했던 제러드 호잉
한화 전반기 활약에서 극적인 ‘반전 카드’의 주인공은 제러드 호잉이었다. 장 수석 코치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만났던 호잉을 떠올렸다.
“사실 호잉을 적극적으로 추천한 사람이 나였다. 비디오를 통해 봤을 때 주루 플레이와 수비, 송구 동작이 아주 뛰어났다. 트리플A에서 2년 연속 20홈런을 치는 선수라면 가능성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이 선수를 뽑자고 추천했는데 오키나와에서 방망이치는 거 보고 속으로 ‘망했구나’ 싶더라.”
당시 호잉의 타구가 폴대 옆으로만 빠지곤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파울 타구만 계속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추천한 선수 아닌가. 감독님 얼굴 보기도 민망했다. 지켜보던 감독님이 오죽했으면 내게 ‘괜찮겠느냐’고 물어보셨을까. 하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한화의 외국인 투수가 성공해서 나간 적은 없지만 야수로 온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성공해서 나갔다. 호잉이 지금은 적응기라 힘든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은 타구를 날릴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웃음). 그 마음으로 버텼다.”
장 수석 코치는 호잉과 있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일본 팀과 연습 경기를 하는데 호잉이 타격할 생각보다는 계속 볼을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는 것. 통역을 통해 그 이유를 묻자 호잉은 자신이 볼을 많이 보는 스타일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때 장 수석 코치가 했던 말. “아니 일본 투수들 볼을 많이 보면 뭐해. 한국 선수도 아닌데. 자꾸 치면서 타격감을 찾아야지.”
여러 외국인 선수들 중 호잉만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최고의 인성을 갖고 있는 선수다. 힘들다고, 지친다고 해서 빼질 않는다. 한국 선수보다 더 한국 선수 같은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홈런 타자도 좋지만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자세가 호잉의 최고 장점인 것 같다.”
얼마 전 장 수석은 호잉을 찾아가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린 너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라고. 호잉이 활짝 웃으며 장 수석을 포옹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35’란 숫자와 함께 한 야구인생
장 수석 코치는 선수 시절 달았던 영구결번 35번을 달고 있다. 송진우 코치도 21번 영구결번을, 한용덕 감독은 현역 시절 달았던 40번 등번호를 새겨 넣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했다.
“하루는 홍보팀의 임헌린 팀장이 전화로 영구결번을 등번호로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더라. 구단에서도 오케이 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런 전례가 있었나 싶었다. 한 번 반납한 번호인데 말이다. 그게 나라서, 송 코치라서 가능하다는 게 임 팀장의 설명이었다.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마케팅 관련해선 굉장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구장을 찾는 아이들이 행여 코칭스태프의 등번호에 대해 물어본다면 부모들은 그 스토리를 설명해줄 수 있지 않겠나. 프랜차이즈 출신의 감독, 코치들이 모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것 같다.”
장 수석 코치는 선수 시절 35번이란 등번호와 인연을 맺은 이후 35란 숫자가 생활 깊숙이 자리했다고 말한다.
“차 넘버가 OO35이고, 롯데 코치 시절 부산의 원룸이 305호였다. 사우나 라커도 35번만 찾는다. 휴대폰 번호가 OO85인데 ‘8’을 세로로 자르면 ‘3’ 아닌가. 숫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항상 35가 우선 순위였다.”
2006년부터 코치 생활을 시작한 게 어언 12년 차. 장 코치에게 코치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옛날에는 막연하게 감독 자리에 욕심을 냈었다. 지금은 코치라도 제대로 하자고 마음을 정리했다. 코치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12년 정도 됐으면 수월할 법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부담을 더 느끼게 된다. 코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선수들과 인간적인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가 진행된다. 신뢰가 없다면 시작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매일 새롭고 매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연습생 선수로 시작해서 홈런왕을 거쳐 코치와 수석 코치로 이글스와 함께 야구의 길을 걷고 있는 장종훈 수석 코치. 그 끝이 어디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우승이라고 대답했다.(사진=이영미)>
<대전=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