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지만 조용하기만 한 동성로의 거리는 평일이라서인지 한가했다.
네온사인 사이로 흥겨운 음악이 들려오지만 특별히 귀기울이려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별개의 소리로만 느껴질 뿐이다.
오랜만에 발을 디딘 대구라는 도시. 20대 초반 역동적인 모습으로 돌아다니던 곳이어서인지 낯설음 보다는 친숙함이 앞선다.
올 때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도시지만 묵은 된장을 찾듯 오래된 지기들의 소식이 궁금한 곳이고, 이전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은 곳.
사람들에 대한 아늑한 기억은 떠나간 사람을 생각나게도 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속에 발길을 재촉해 본다.
대백을 지나 중앙로 쪽으로 길머리를 잡고 몇발자욱 가니 반월당의 네거리가 보이고 우측으로 우뚝 솟은 동양생명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맛있는 집'은 반월당 네거리 우뚝솟은 동양생명 건물의 뒤편, 아직은 재개발의 마무리되지 않은 좁다란 한 귀통이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도 드문 골목에 잘 꾸며진 식당들이 몇개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맛있는 집'이었다.
출입문 너머로 인적이 많이 모인 곳이 어딘지를 대충 살핀후 찾는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다른 손님들은 없고 귀퉁이 방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인기척을 느꼈음인지 몇몇 분들의 시선이 입구를 쳐다보는 것 같다.
로시난테형님의 모습이 첫눈에 잡히고 방안으로 들어서니 10여명 낯선 분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예고없는 등장에 놀라는 지리산총무님의 모습. 그 옆에는 지리산총무님의 자랑 무지개님이 엷은 미소를 띤채 앉아계시고...
거반 처음 보는 분들인데, 모두들 인사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조금 미안스럽다.
이런 때는 낯익은 얼굴들이 반갑기 마련.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총무님과 무지개님, 총정모 때 뵈었던 보안관님, 아주 오랜만에 두번째로 만나는 난폭한 양이 그래도 안면이 있는 분들이라고 그냥 편안느낌으로 다가온다.
마른 체구에 샌님처럼 안경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분은 시드님이셨고, 그 옆에 무게있는 표정으로 앉아계신 분은 신라의 달밤이라고 하셨다. 보안관님을 사이에 두고 잠시 수인사를 나누고 간만에 보는 난폭한 양에게 안부를 묻는다.
학교가 춘천인데 집은 경산이란다. 4학년을 마치고 임용고사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시험도 얼마 안남았을텐데 대구에서 모인다는 말에 즐거이 나온 것 같다.
표정속에 자연스레 야무지다라는 느낌이 들만큼 안경쓴 눈망울이 매력있게 보이는 분은 청죽님이라고 했고, 그날 하루종일 몇마디 말만 한채 조용히 나직한 미소만을 흘리는 뭉이님은 처음이라 낯설은 나머지 무게를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밥이 나왔고, 나홀로 열심히 먹고 있으니 입심좋은 보안관님이 닉네임에 얽힌 이야기며, 산에 얽힌 이야기 등 준비된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 놓으며 일장연설을 시작하셨다.
난 밥먹을 때는 왠만하면 말을 안하는 사람. 열심히 들으면서 열심히 먹었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경상도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말 크다는 것.
보안관님의 목소리를 화장실 안쪽에서 듣고 있으니 서울 같았으면 누가 싸우고 있는 줄 알만큼 화끈하면서도 성량이 풍부한 분이었다. ㅎㅎㅎ^^
내가 밥을 다 먹으니 未來님과 아크님이 들어오셨고, 그 분들이 밥을 다 먹으니 오지공주님이 들어왔고, 역시 밥을 다 먹고 나니 처이님과 애너벨리님이 부산에서 도착한다. 마지막으로 오신 오래된 미래님은 처이님과 애너벨리님이 밥을 다 드신후에 들어오고... 밥을 다 먹어야 계속 새로운 사람이 오는 분위기다. ㅎㅎ
간간이 오는 사람들로 부터 위치를 묻는 전화가 올 때면, 시내버스 운전을 하시는 로시난테님이 버스노선부터 시작해서 방향까지 확실한 길잡이를 하며 완벽한 GPS역할을 수행하신다.
"그기 어디라꼬요? 반야월이면 00번을 타고 오시면 되요..." ^^*
보안관님이 이야기 보따리가 어느 정도 풀어지고 삼삼오오 나누던 대화들이 정돈될 무렵, 간단한 자기소개와 닉네임에 대한 설명이 로시난테님부터 시작됐다.
원래는 오후 근무시라는데 근무를 바꿔가며 나와주신 이군사령부의 큰형님 로시난테님의 넉넉한 마음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구에서 시내버스 운전 하고 있습니다. 로시난텝니다"
"집이 경주여서 신라의 달밤입니다."
"시드는 톰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톰소여 동생 이름입니다."
"의협심이 강해 산선배들이 지적하는 몇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보안관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불리는 별명이 뭉이입니다."
"푸른 대나무처럼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청죽이예요."
"오지공주인데 소주공주라고 바꾸라고 하네요"
"수방사 축하사절로 내려온 해!방!전!사! 빨!치!산!입니다. 대구 경북지역 이군사령부의 출범과 지리산총무님의 총사령과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닉네임이 한문임을 강조하신 未來님은 마른체구에서 나오는 어떤 단단함이 느껴지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분이었다. 자영업을 한다고 하니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했나보다. 거듭되는 질문에 "자영업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라고도 불린다"며 "사기치는 사람이라고 웃으면서 받아 넘기신다. 짧은 대화였지만 산을 즐기시는 분 같았고, 카페 지리산에 대한 이런저런 느낌들을 나눌 수 있어서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편하게 느껴졌다.
未來님과 함께오신 젊은 아크님은 처이님과 산사랑 활동을 같이 하신 분이었고, 몇몇 분들과 안면이 있는 것 같았다. 보안관님과도 아는 사이 같은데, 보안관님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말을 안하신다.
제일 늦게 도착한 그래서 밥만 먹고 바로 2차 주점으로 이동했던 오래된미래님은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분이라고 했다. 짙게 깔린 분위기가 이전 카페 지리산의 여걸로 불리던 이정희님을 연상케 한다.
다들 지리산에 대한 느낌과 온라인 상에서 보던 사람들이 궁금해서였는듯 처음 만남의 어색함을 감수하고 오신 듯 했고, 몇마디 이야기와 술 한잔이 오가면서 그 어색함이 풀리며 편한 대화들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총정모 때 아주 조용한 모습으로 있는듯 없게 보였던 오지공주님은 낯익은 분들이 많자 그 본모습을 나타내는 듯, 흥겹게 술도 잘 드셨고 말도 잘 하며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버님이 이북에서 월남한 분이라 했고 아버님과 함께 어릴 때부터 산행을 많이 다니셨단다. 집이 합천 황매산 자락이라며 나중에 다 한번 같이 놀러가자는 제안도 하는 등 낯가림을 많이 하는 사람치곤 아주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난폭한양(羊)은 아주 유순한양이었고 부지런한양이었다. 빠른곰 느린치타처럼 모순되거나 잘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로 이름을 쓰는 분위기에 지어진 닉네임 같았는데, 가장 착한 양이면서 한마리의 아름다운 양이었다^^* 누가 그녀를 난폭하다 했는가!! - 경북쪽에 발령을 받고자 시험을 친다는데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톰소여의 모험에서 시드는 말썽꾸러기 형과는 대비되는 착실한 동생이다. 하지만 그의 착실함은 건들거리는 톰소여와는 반대되며 은근한 미움을 받게 되고 골탕을 먹기도 한다. 언제나 이모편에서 톰소여를 걸고 넘어지는 시드는 어릴적 톰소여 편이었던 나에게 얄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드님에게는 얄미움 보다는 선함이 느껴졌고, 순수한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남는 분이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라며 잡아 끄는 마음은 그 자체로도 내면에 담겨진 착한 심성과 정이 깊은 분임을 느끼게 했다. 못내 떨쳐 버리고 헤어지는 것에 미안함이 들 만큼...
처음 보는 분들을 의식한 듯 화사한 빛깔의 스웨터에 분위기 있는 치마로 곱게 차려입은 처이님은 "평소 이런 복장이다"라고 했지만 자주 봐온 사람으로서 그 말이'가증스럽기만'(!)ㅋㅋㅋ했다. 그녀를 처음 본 분들은 그 밝은 분위기에 다소 매료된 듯 한 인상을 보인다. 친구따라 강남가듯 친구따라 대구에 온 애너벨리님은 처이님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붙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ㅎㅎ^^
식당이 문을 닫을 시간이라는 10시쯤 맛있는집을 벗어났고, 남은 자들이 간 곳은 종로의 피맛골을 연상시키는 학사주점 골목이었다.
막걸리잔을 나누는 분위기는 식당에서의 처음 본 어색함이 거의 무뎌진 듯 좀더 편안한 분위기가 되고, 시드님과 오지공주님은 거푸 잔을 들이킨다. 표정속에 엄숙하면서도 장난끼 가득한 수녀님이 연상되는 청죽님은 오래된미래님의 나이를 조심스레 물어보다 '같은 소띠'라고 하자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며 반가워하는 모습이었고, 뭉이님의 침묵은 식당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계속 이어진다. 조신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 침묵을 지킬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아직 몸이 안풀렸나보다.
지리산총무님은 집에서 무지개님을 "애기야"라고 부른다며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으시고, 오래된미래님께는 내년에 결혼하시나요?라고 묻는다. 담담한듯 무표정하게 이어지는 오래된미래님의 짤막한 답변은 "모르지예~~" ^^*
순간 드는 생각은 아! 이곳이 대구지!!^^ 이쁘게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는 이곳이 종로의 피맛골이 아닌 대구의 학사주점 거리임을 되새겨 준다.
자정이 가까워오며 차시간이 빠듯해진 로시난테님과 난폭한양, 보안관님이 빠져 나가고 청죽님과 뭉이님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신라의달밤, 지리산총무님과 무지개님, 오래된미래, 시드, 오지공주님 등 예닐곱 명이 남은 주점에서 오지공주님의 독무대가 이어진다. 동화구연을 하신다더니 알콜기운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나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잠잠해질 무렵 남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임은 파장으로 접어들었다.
상인동까지 가서 택시를 타야한다는 지리산총무님과 대명동으로 가신다는 오래된미래님 그리고 각자 집으로 향하는 나머지 님들...
헤어지는 순간까지 집에다 전화까지 해 놨다며 계속 자고 가라면서 손을 붙잡는 시드님께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여러 가지로 교체된다.
네온사인 불이 꺼진 동성로의 거리는 쓸쓸함이 가득했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 것은 처음 뵙던 한분 한분에 대한 좋은 느낌과 지리산을 인연으로 한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집으로 돌아와 온라인에서 들여다 보는 각양각색의 느낌...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이심전심 그 분위기가 다시 느껴진다.
자판을 두들기며 '대구 정모-이군사령부 출범식'에 대한 짤막한 느낌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12월의 대구, 그곳에는 마음 가득 편안함과 즐거움속에 지리산을 매개로 한 정겨움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
해!방!전!사! 빨!치!산!^^*
첫댓글 빨치산님!~ 너무나도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수방사 님들도..언제한번 뵈면 좋겠는데...
빨치산님!!! 잘 올라가셨어요^^ 님들을 만나서 어제는 너무 즐거웠답니다...다음에 또 만나요^^
빨치산님 잘 올라 가셨죠?생각하지도 않았던 빨치산님의 출현에 모두들 반가웠습니다.감사합니다.행복하세요.
대단하다. 치산이형..동해쪽으론 번쩍않하지만. 남해번쩍.서해번쩍..대구는 잘있답니까..?
보기 좋습니다^^ 우리 울산지역도 준비중이니다. 잘되겠지요!!
ㅋㅋ 시간이 지나도..치산님 글 읽으면..그날의 풍경이 번뜩 떠오르게 만드네요..낄낄낄..나의 조신한 모습은 산밑에서만 볼수 있지요..
짧은시간이라서 아쉬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출장 볼일은 잘 마치고 갔겠죠?^^
역시..빨치산님! 어떻게 이렇게 상황정리가 잘 될수 있나요? +.+
반가웠습니다...한 분 한 분 표현을 너무 잘 하신거 같네요..담에 또 뵙겠습니다.
역시 빨치산님!
이양~~ 무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