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짓는다고 문화재 갈아엎는 나라
입력: 2008년 04월 30일 23:45:37
ㆍ당진 고려 유적 발굴지에 포클레인 투입
ㆍ정부 규제완화 발표 하루전 무차별 훼손
문화재 발굴 탓에 공장 설립이 늦어진다며 사업시행자가 발굴현장을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어 고려시대 문화재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문화재 발굴기관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지난 29일 오후 2시쯤 충남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 ㅅ정공 공장 건립부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하고 있는 과정에서 회사 측이 고려시대 석곽묘 4기가 노출된 현장을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은 훼손 모습을 촬영하는 조사원들의 카메라를 빼앗기도 했다.
시공사 측이 29일 포클레인으로 고려시대 유적을 파괴한 충남 당진의 공장부지 발굴현장. 고려 석곽묘가 온데간데 없다. 위쪽은 훼손되기 전의 유적 사진. 당진 | 정지윤기자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이 회사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조치할 예정이다. 강정원 책임조사원에 따르면 발굴단은 이날 오전 고고학 발굴 원칙에 따라 고려시대 고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 회사 회장 ㅂ씨가 “발굴 속도가 왜 이리 느리냐. 왜 호미로 긁고 있느냐”고 항의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유구가 훼손될 수도 있어 유구에 있던 나무뿌리를 살린 채 작업하고 있었다. 발굴단에 따르면 ㅂ회장은 오후 2시쯤 포클레인을 동원, 나무뿌리를 뽑아냈고, “별 것 없네” 하면서 밑에 있는 유구까지 파헤쳤다. 이로 인해 고려시대 석곽묘 4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정부가 문화재 발굴 기준 완화 방침을 세운 가운데 벌어진 이번 사건은 최근 문화재 발굴을 둘러싼 갈등을 그대로 노정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정부 규제완화 발표가 있기 전인 29일 문화재청은 ㅅ정공 공장 건립부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가 늦어진다는 언론 보도에 따라 “되도록 빨리 조사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현장에 내렸다.
이에 따라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측도 다른 연구기관의 인력까지 빌려와 이날 발굴조사를 서둘렀지만, 회사 측이 문화재를 갈아엎은 것이다.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은 “비영리기관인 발굴기관은 중복 발굴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한 팀이 두 곳 이상의 발굴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빨리 조사하도록 노력했지만,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경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문화재를 전봇대 취급하는 해당 업주의 무지와 문화재 발굴조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정부의 개발위주 정책이 빚은 테러”라고 규정했다.
한편 회사 고위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5월 말까지 인천공장 부지가 인천시에 수용되고, 수출 물량을 납기일에 맞춰야 하는 사정이 있다”면서 “회사는 돌 몇개가 있는 것이 과연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으며,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공장부지에서 나온 유물이 회사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발굴비용 일체를 우리가 대야 하느냐에 대한 불만도 있다”고 말했다.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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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퍼온 뉴스글이고요, 이제부터는 제 글입니다.
제 지인 중 하나가 문제의 발굴기관에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보다 상세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굴삭기로 문화재를 밀어버린 문제의 업주가 현 정권에 '빽'을 가진 자라는 겁니다.
'빽'이 바로 대통령 본인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장'의 명에 따라 굴삭기를 끌고와서 '행동'을 결행한 '사장'이라는 인물은 그지역에서 잘나가는 건달이라고 합니다. 공장 부지의 땅주인인데 '회장'님께서 한 자리 주신 모양이더군요. ㅎㅎ
기사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말 그대로 깡패짓거리였습니다. 와서 그냥 우격다짐으로 밀어버린 것이죠. 덩어리들이 와서 빼앗고 부시고 하는데 현장에 있는 고고학자들이나 인부 할배들이 별 수 있었겠습니까? ㅎㅎ
현 대통령에 대해 '건설 건달'운운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이제 알 것 같네요.
사실 발굴기관에서는 '빽'의 존재를 알기 때문에
처음에 '회장'이 '빨리 끝내달라'고 했을 때도, 원칙대로라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일주일 안에 끝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일주일이라면 그냥 발굴도 아니고 긁어서 치우는 겁니다.)
그런데 시작한 당일에 '회장'이라는 자가 현장에 나타나더니 결국 저렇게 사고를 친 것이구요.
처음엔 기관에서도 그냥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는데
(현장에서 일저지르면서도 뭐 검찰에 있는 누구를 부른다느니 어쩌니 하며 높은 양반들 이름이 많이 나오더랍니다. ㅎㅎ)
요즘 정권의 언어로 하면 '좌파적인' 색깔을 가진, 즉 개발을 내세운 문화재 훼손에 대해 대단히 강경한 입장을 가진 문화계 고위 인사들의 귀에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가면서 언론에 알려지고 한때 포털 메인에까지 오르는 등 문제가 커졌다고 하네요.
(예전에 유인촌씨가 내쫓으려고 한 사람들에 포함되죠.)
제 지인을 비롯한 기관의 당사자들도
"누가 대통령이 되니까 별 XX같은 놈들이 다 설친다"
"그럴거면 아예 발굴조사고 뭐고 다 없애버리면 될 거 아니냐"
며 한탄합디다.
명백히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한, '회장'을 비롯한 범인들이 사법처리될지 어떨지는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어쨌든 이번 사건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회장'은 이 일이 터지기 전에 이미 매일경제에다 '불합리한 문화재보호법과 발굴기관의 늑장 때문에 일에 지장이 많다'는 식의 기사를 올리도록 하는 등,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공격하기 위한 여론화 작업을 진행중이었습니다.
'늑장'... ㅎㅎ 위의 기사에도 나왔습니다만. 그냥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에 익숙한 '건설 건달'들의 눈으로 보면 사람 손으로 깨작깨작 긁어대는 발굴조사는 '늑장'일 수밖에 없겠지요. ㅎㅎㅎ
건설업주가 해당 부지의 문화재조사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업주가 부담하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가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부의 재정부담이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현 정권의 '작은 정부' 코드와는 상충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얼마 전에 건설부지의 문화재관련한 행정처리 기간을 140일에서 40일로 단축하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정의 변화가 있었지요.
이번 정권에서 어떤 식으로든 문화재보호법 관련조항의 변경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회장'은 그것을 여론화시키기 위해 이번 일을 벌였던 모양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현 정권의 공약 중 하나인 대운하를 대통령의 임기 내에 완공하는 것이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준수하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정부의 문화재정책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불 보듯 뻔하다고 하겠습니다. 예전에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도 밀어붙이기식의 공사강행으로 문화재조사가 아주 졸속으로 끝나버렸지요. 설령 꼭 대운하가 아니라도, 거의 맹목적인 '친 기업' 성장지상주의 코드라면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결코 그냥 놔둬서는 안될 암초임에 분명합니다. 하긴 불탄 숭례문도 '성금으로 복원'하자고 한, 문화재를 위해 세금 쓰는 걸 매우 아까워하시는 분이니 뭐 말 다했지요.
이 정부가 '규제완화'를 아주 입에 달고다니는데, 그 어감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 여론이 대체로 호의적이죠.
헌데 그 '규제'라는게 바로 이런 규제를 말하는겁니다. 건설업계에 문화재보호법보다 더 큰 규제는 없죠.
세간에서는 미친소 수입과 의료 상업화만 여론화되고 있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화재보호법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네요.
대운하에 수몰될 지역에 널린 문화재가 정말 어마어마할 텐데... 허허;;
첫댓글 역시.. 광우병으로 주의 돌아갈 때 하고 있는 짓들이.. 후우~;;
흠... 이 사건 자체는 또라이같은 회장의 또라이짓이 문제지만, 이런 류의 갈등의 핵심은 역시 공익(문화재 보호)을 위해 사익(건설 지연)을 무보상이나 저보상으로 받아들이라는 현행 법체계에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문화재 발굴이 문화재를 충분히 보호할 정도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할수록 해당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제한 정도도 커집니다. (특히 건설공사 도중의 경우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은행 이자가 눈더미같이 불어나는 상황이라면 눈 돌아갈 사람도 꽤 될 겁니다.) 특히나 최근 뉴타운 사업처럼 대규모+많은 이해관계자를 몰고 다니는 개발사업의 경우엔, 사업 지연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겁니다. / 공익 목적을 위한 재산권 제한이 제한받는 자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면, 보상해 주는 것이 타당하므로 문화재 발굴신고시에 적절하고 충분한 보상을 세금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사업자에게 문화재 발굴이 미칠 피해를 최소화할 한 유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문화재 파괴기업에 대해서는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명단 발표' 나, 그에 따라 그 건설업체 등을 배제하는 시민의식도 필요합니다. (문화재 보호만을 위해 재산권의 보호를 소홀히 하면, 토지소유자는 문화재를 몰래 파괴할 유인을 갖게 됩니다. 제가 아는 것만으로도 저희 쪽 시골(홍성)에서 그런 이유로 파괴된
저도 문화재 조사 비용을 일정부분(혹은 가능하다면 전부) 정부가 부담하는 편이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거저 되는 게 아니죠. 돈이 필요합니다. 세금 늘리고 '큰 정부'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 정권의 코드는 '작은 정부'죠. 지금도, 가뜩이나 부자들한테서 세금 많이 뗀다고 핏대 세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금 더 낼 의향도, 업주가 부담하게 할 의향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문화재 같은 건 그냥 밀어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고려 시대 무덤, 고인돌 등이 좀 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이나 친척들로부터 듣습니다. 시골 마을의 어디에 있는 돌다리가 사실은 어디 있던 고인돌의 상판 돌이었다는 이야기 등)
고려시대 무덤은 조선시대 무덤만큼이나 많이 발견되는 유구입니다. 우리나라는 팠다하면 반이 무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흔히들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물론 이런 무덤들을 다 보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사가 다 끝난 다음에 뒤집어엎든 뭐하든 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겠죠. 들어보니까 긴급발굴조사로 일찍 끝내준다고 했던데...석곽묘 그 시간 안에 조사할려면 날밤새야 할 겁니다. 유구선 잡고 땅 파고 사진찍고 토층실측하고 평면도 그리고 등등 조사완료하는데 몇시간이면 끝나는게 아닙니다. 에휴...이런거 말해서 뭐하나.
ㅎㅎ 저도 대충은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수습'정도로 끝내주겠다는 거였는데 회장이란 작자는 그것도 못 참고 사고를 친 것이죠. 저런사람들이 법을 멋대로 휘두르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역사 문화 연구는 그냥 다 날샌겁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정치에 무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