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교동면에 위치한다.
현재 인구는 3천명 정도이라고 한다.
교동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 이다.
고림또는 달을신 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때 처음으로 현을 두어 고모근현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때 교동현이라 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이’삼국사기에 전하고 있다.
[위사진;강화 제적봉 평화 전망대/일반인 출입이 통제 되었던
평화 전망대는 타 지역에서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 생태를 아주 가까이서 느낄수있다]
[위;실향민들의 분향소]
[아래;버튼을 누르면;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흘러나온다]
교동은 조선시대 강화 도호부와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화개산을 중심으로 한 초소3개 이상의
섬들이 서로 매립되어 교동도를 이루게 되었다.
[위;고성능 망원경으로 북한의 실상이 환하게 보인다]
교동도와 북한의 거리는 4~5km
바다건너 북한의 연백평야가 환히 보인다]
[아래;강화 평화 전망대 멀리육지는 북한땅이다]
강화도와 교동도를잇는 교동대교가
2014년 7월 3,44km 완공돼 육지와 연결됐다.
2014년 교동 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교동도 월선포 까지 여객선이 오고갔다.
[아래;대룡시장풍경,사진작가들이 많이 찿는다]
교동도의 대룡시장은 50년전 의
우리나라 시골 읍내 시장 풍경을 보여준다.
시계점,이발관,신발가계,미장원,잡화점,방아간등,
6,25때 [황해도 개풍]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시장이 만들어져
산에서 나무를 갖다가 움막을 짖고서는
떡장사며 국수장사를 했다.
전쟁통에 내려 왔다 주저 앉은 실향민들이 대부분이다.
교동도는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어 외지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 되었다.
6군사통제 구역이므로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룡 시장은 드라마’전설의마녀”장미빛 연인들’
촬영지 이기도 하다.
[제19코스 까지있는 '강화나들이길로 ,교동도는제9코스,
강화가 구석구석 사람들의 방문이 더많아졌다]
[조선시대 선정을 펼친 교동 지역의 목민관인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도호부사,방어사 등의 여세 불망비,
40여기 교동면 관내에 흩어져 있던 40여 비석을 모아놓은곳]
[아래;교동부지]
[위;연산군 유배지, 바로 아래있는 큰 우물터/아래사진]
예로부터 교동도는 유배지 였다.
조류가 급해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힘든 섬이 교동도 였다.
고려 희종과 조선의 안평대군,임해군,능창대군,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이 이곳 교동에
거주했다는 기록,터가 남아있다
[아래;석성의 남아있는 홍예문]
[방문객이 많아져 한창 보수중이다]
조선시대 읍성으로 삼도수군 통어용이
있었던 곳으로 섬의 중심지였던
교동 읍성은 조선 인조 7년에 쌓은 석성으로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남쪽 홍예문과 약간의 돌담이 남아있다.
원례는 도읍 전체를 둘러싼 둘레 430m,높이 6m 의 방어시설 이었다.
부근당,이건물이 연산군의 집터라고 한다.
이안에 연산군과 신씨 부인의 화상이 있고
지금도 읍내리
마을 주민들이 일년에 한번
두 원혼을 위로 하는 제사를 지낸다고한다.
따가운 태양 아래 익어가는 열매들
교동도는 강화군에서 가장 넓은 경작 면적으로
초록빚 융단을 깐듯 벼를 심은 논들이
지평선 까지 시야가 확 트인다.
알겠습니다~함께 하시는 길님들 반갑습니다.
낼 월성포 선착장에서 뵙겠습니다~
이상~마감합니다^^^
반길님~
전화번호 010-8297-4720 으로
알려주세요(뚱이아빠)
잠금댓글은 우고님만 볼수있습니다~
넹 뚱이아빠님 홍제역에서 카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예 제 전화는 010-9332-4334입니다
홍제역 4번 출구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