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
좋은 시 읽기 운동�18
고 성 만
홍해리�「수술실에 들어가며」
차창룡�「명옥헌 민달팽이」
박진성�「화투 치는 여자들」
이은규�「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황연진�「창」
이형권�「등피 닦던 날」
사단법인『우리詩진흥회』가‘좋은시 읽기운동’의 일환으로 매월『우리詩』에 좋은 시를 선정 소개한다. 시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이 운동에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수술실에 들어가며 | 홍해리
이것이 너와 나의 마지막
우주의 종말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나는 작디작은 먼지 알갱이 하나
우주의 무한공간을 떠돌다
지구 한구석에 잠시 머물고 있나니
빛이여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제 끝없는 블랙홀로 빠져드노니
작은 풀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먼지 알갱이가 품고 있는 바람과 하늘과 바다여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하랴
내가 너를 다시 보지 못하고
네 여린 손목을 다시 보듬어 보지 못한다면
저 문이 다시 열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구는 굴러가지 못하리니
미안하다 고통과 절망의 세월이여
그래도 내일은 태양이 떠오르고
파도 소리를 잠재운 소금밭에서는
소금꽃이 영롱하게 영글 것이다
지상에서 산 자들은 기름진 사랑을 나누고
연어 떼는 모천을 찾아
불원천리 여행을 할 것이니
오 빛이여, 새 생명의 어머니여
지구는 영원을 향해 굴러가리라
새들은 고운 목소리로 생명을 노래하리라.
- 월간『우리詩』2008년 8월호
시읽기
이 시는 유서 같다.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가 병마 앞에 무릎을 꿇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서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할 수술이라는 행위는 얼마나 끔찍한가!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이 아니면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다. 그래서 화자는 유서를 쓰듯 시 한 편 써놓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수술은 내 몸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나를 죽이는 일이다. 나를 죽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가졌던 마음, 행해 왔던 습관을 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일종의 고해 성사이며 반성문이다.
화자는, 얼마나 참담하였으면 '미안하다'라고 중얼거렸을까. 부모님께, 아내에게, 자식에게, 친구들에게, 살아오면서 빚진‘고통과 절망의 세월’에게 사과한다. 읽는 이의 마음조차 참담하여 눈물이 나오려 한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화자는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한다. '영롱하게 영그'는 '소금꽃', '고운 목소리로 생명을 노래하'는 '새들'. 다시 돌아보게 된 소중한 가치이다. 이제 한층 더 고귀해진 나날들을 한 알의 ‘먼지’처럼 가볍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아갈 것이다. (고성만)
명옥헌 민달팽이 | 차창룡
낮은 산들과 들판 향해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 바라보며
세상을 잊기 위해 지은 집 명옥헌鳴玉軒의 주인은
평생을 개울물 소리와 함께 놀다가 죽어서 이슬이 되었다네
그 이슬 환생하여 어느 여름 민달팽이로 방바닥을 기어가더라
사람을 보고도 서두르지 않는 민달팽이 온몸으로 눈물 흘리며
전생에 홀가분하게 살고자 했듯이 등에 짊어진 집도 벗어던졌나
내 집은 명옥헌, 민달팽이 떠나지 않고 방 안에 맨몸으로 누워버린다
굵어지는 빗방울이 집 안에 들어오고 싶은지 자꾸만 지붕을 두드리고
비가 그칠 때까지 나도 누워 한숨 잠을 청한다
꿈속에서 나는 달팽이 되어 명옥헌을 짊어지고 다녔지
잠에서 깨어보니 비도 그치고 민달팽이는 사라지고 없다
내 몸에 달라붙었나?
나는 없는 민달팽이를 툭툭 털었다
- 시집『고시원은 괜찮아요』(창작과비평사) 에서
시읽기
한 채의 집이 되는 시가 있다. 여행 중인 나는 조선시대의 원림을 대표하는 정원인‘명옥헌’에 들러 집 한 채를 내려놓았다. 여름철 명옥헌은 붉은 배롱나무에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명옥헌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초가을이다. 물감을 엎지른 것처럼 떨어진 꽃잎들로 명옥헌 앞 연못이 붉게 채색된다.
명옥헌에는 '민달팽이'가 서식 중이다.‘ 등에 짊어진 집도 벗어던져’버린 그것에 눈을 맞추는 동안 밖에는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칠 때까지 한숨 잠을 청한다’. 꿈속에서 화자는 멀리 두고 왔으므로 그리운 것들을 잠시 떠올려보고, 그 사람들 곁에 다녀왔을 것이다. 꿈에서 깬 나는 이미 없어져버린 민달팽이를 찾아‘툭툭 털었다’. 모든 것은 꿈인가? 아니다. 내가 바로 민달팽이다. 이것은 변증법적 사고이다. 세상 모든 것은 잠시 보이지 않을 뿐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 면에서 차창룡은 매우 낙천
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번에 새로 펴낸 시집『고시원은 괜찮아요』에는 그러한 재치, 풍자, 해학이 넘친다. 예를 들어,‘ 내가 옥탑방을 선택한 이유’라는 시에서,‘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하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뵙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고층아파트도 있는데 왜?’라고 반문한 뒤 천둥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까이 듣기 위해서라고 능청을 떤다.
나는 그의 이런 시가 재밌다. 말하고 싶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삶의 불합리에 대해서 유쾌·상쾌·통쾌한 해답을 들려준다. (고성만)
화투 치는 여자들| 박진성
늙은 여자들 평상에 앉아 화투花鬪친다
꽃들은 다투어 피고 다투어 지고 봄인데 바람 불어 난분분 꽃잎 흩날리는데 까르르르르 다투어 공중으로 화투 패를 들고
똥을 쌌다고 이 나이에 아무 데나 아무 때나 똥을 싼다고 웃고 웃고
흔들었다고 늙은 엉덩일 흔들흔들 몸뻬바지는 헐렁한 경로당 바람 깔고 앉아 들썩이고
피는 쌍피가 좋다고 사슴 피보다 좋다고 햇볕이 수혈 받은 실정맥처럼 바쁘게 평상을 기어다니고 퍼지고 흩어지고
향기도 없는데 모란에 나비가 앉고 저도 늙고 싶고
온갖 잡새들이 모여들어 났다 났어 백동전들 알처럼 뒹굴고 치마 속에서 부화하고
봄바람 머금어 치마는 부풀어 오르고 하늘은 홍단처럼 붉어지고
봄바람 머금어 치마는 부풀어 오르고 하늘은 홍단처럼 붉어지고
꽃들은 지고 피고 자꾸 어두워지고
홍성댁 정읍댁 함흥댁 고성댁…… 우리가 잊은 꽃들이여
났고 났고 아라리가 났어도 영원히 메이는 어머니들이여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읽던 시집 내려놓고
光팔고 싶습니다
- 시집『아라리』(랜덤하우스)에서
시읽기
이 시의 기본적인 모티프는‘꽃 시절’이다. 봄이고, 꽃잎 날리고, 화투치는 늙은 어머니들(시든 꽃들)이다. 열심히 살다보면 꽃 피는 시절이 있기 마련이고, 꽃 지는 시절이 오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한 시절, 어떻게 살면 잘 살았다 할까
이 시가 주는 첫 번째 해답은,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똥을 싼다고 웃고 웃고’,‘ 흔들었다고 늙은 엉덩일 흔들흔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합창하며 즐겁게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꼭 안달난 사람처럼, 노래방이든 느티나무 아래 평상 위에서든 노는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갈수록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가 주는 두 번째 해답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육체적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 오르고’,‘ 붉어지고’,‘ 아라리가 나’도록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심각해서는 안 된다. 시 읽고 쓰는 행위조차 즐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인은‘더 어두워지기 전에’,‘ 읽던 시집을 내려놓고/ 光팔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이 시가 주는 세 번째 해답은,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댁 정읍댁 함흥댁 고성댁…… 우리가 잊은 꽃들’처럼 우리 주위에 흔적없이 사라져 가는 애틋한 그리움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성의 신작 시집『아라리』(2008)에는, 예전 시집『목숨』보다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병에 관한 시가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이 시집에는 「화투 치는 여자들」같은‘여유와 관조의 시’가 몇 편 있다.「 외도」,「 여수에서 배우다」같은 시들이 그러한데, 대개는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때인 것 같다.
바야흐로 시인은, 아픔으로 아프지 않은 시간을 꿈꾼다.(고성만)
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 | 이은규
문득 놓치고, 알은 깨진다
깨지는 순간 혈흔의 기억을 풀어놓은 것들이 있다
點點의 붉음
어느 哲學者는 그 혈흔을
날개를 갖지 못한 새의 심장이 아닐까 물었다
이미 흔적인 몇 점의 혈흔에서 심장 소리를 듣다니
모든 가설은 시적일 수밖에 없고
생은 어떻게 그 가설들로 추상을 견디길 요구할까
시적인 철학자의 귀는 밝고, 밝고
날개를 갖지 못한 알 속의 새는 새일까, 새의 지나간 後生일까
생은 경계도 없이 수많은 가설들로 붐비고
깨져버린 알이나 지난봄처럼
문득 있다가, 문득 없는 것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깨진 알에서 혈흔의 기억을 보거나
혹은 가는 봄날의 등에 얼굴을 묻거나
없는 새에게서 심장 소리 들려올 때
없는 봄에게서 꽃의 목소리 들려올 때
그 시간들을 살기 위해 견딤의 가설을 내놓는다
새가 되어보지 못한 저 알의 미지는 바람일 것
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영역도 다스릴 바람도 없다
이음새가 없는 새의 몸,
바람으로 머물던 흔적이 곧 몸이다
너무 멀리 날아가서 다스릴 수 없는 기억처럼
새, 바람이 되지 못한 것들의 배후는 허공이 알맞다
새의 심장에서 들리는 먼 곳의 안부를
깨진 알의 혈흔에서 듣는다
-계간『문학들』2008년 여름호
시읽기
흉내 내기 어려운 시들이 있다. 이름을 가려놓아도 누구의 시인지 구별할 수 있을 만큼 개성적인 시를 쓰는 시인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내게는 김소월, 정지용이 그랬다. 서정주, 김춘수, 박용래, 송수권이 그랬고, 기형도, 고재종, 장석남, 김경주가 그랬다.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다.
이은규는 1978년 출생으로,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젊은 여류시인이다. 이 시인에게서 이런 비범함을 느낄 때가 있다.‘ 깨진 알에서 혈흔의 기억을 보거나/ 혹은 가는 봄날의 등에 얼굴을 묻거나/ 없는 새에게서 심장 소리 들려올 때/ 없는 봄에게서 꽃의 목소리 들려올 때’이런 구절이 그러한데, 어느 날 문득 알을 들었다가 떨어뜨린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 기억에서‘새의 後生’을 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대상의 모습만이 어렴풋이 감지될 뿐. 그것을 시인은‘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고 표현한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새’는 곧‘바람’이다.
내가 이 시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감각이다. ‘혈흔-點點의 붉음-심장’으로 연결되는 산뜻한 언어감각을 확인하기 위해 발표되는 시마다 열심히 들여다본다. 아직은 충분히 익지 않았으므로‘모든 가설은 시적일 수 밖에 없고/ 생은 어떻게 그 가설들로 추상을 견디길 요구할까’와 같이 요설체로 떨어지는 구절 또한 종종 발견된다.(고성만)
창| 황연진
아파트 앞동 수많은 창들이
밤낮으로 수년간 내 쪽을 향하여 있다는
이 견고한 사실로부터 그윽이 불안해질 때 있다
뒷동 어느 집 사내가
홀딱 벗은 채 목욕탕에서 나오는 것을
내가 불시에 목격하였던 것처럼
앞동의 어느 누군가가 엊그제 소파에 무너져 울던
내 모습을 보았을지 모를 일
감춰진 누군가의 절망을
또 다른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안쓰러워했을 거라고
달콤한 위안을 느껴야 할까, 수치에 떨어야 할까
더러 미끈해 보이는 거울 속 내 각선미에 취해
혼자 밟아보던 스텝들을
누군가 똑같이 따라 밟기라도 했을까
베란다 넓은 창문은 총천연색 무대의 투명한 막이었을까
집집마다 똑같이 현관에 문 닫아걸고
다른 쪽으로는 몇 개씩 구멍을 내어 시종
침묵하는 무수한 이웃들의 눈
-월간『우리詩』2008년 8월호
시읽기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크시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라는 폴란드 영화가 있었다. 수줍은 우체국 직원인 청년이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연상의 독신녀를 훔쳐보며 사랑을 키운다는 내용인데 그다지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영화이다.
나에게도 몇 가지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망원경으로 앞동의 방을 관찰하는 청년의 눈에 비친 아파트 거실, 실연당하고 돌아와 식탁에 우유를 엎지르면서 우는 여자, 여자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청년, 여자를 위로하기 위한 청년의 노력,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변화하는 여자의 행동, 무언극처럼 진행되는 팽팽한 긴장감은 기본적으로‘관음증觀淫症또는 엿보기’의 모티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시에도 이 영화와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 ‘뒷동 어느 사내가/ 홀딱 벗은 채 목욕탕에서 나오는 것을’불시에 내가 목격하였다는 진술, '엊그제 소파에 무너져 울던 내 모습을’누군가 보았을지 모른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집집마다 똑같이 현관에 문 닫아걸고/ 다른 쪽으로는 몇 개씩 구멍을 내어 시종/ 침묵하는 무수한 이웃들’과 같이 현대인의 이중적 성격을 예리하게 묘파함으로써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이 시에서 나는 약간의 희망을 피력하고 싶다.
‘감춰진 누군가의 절망’과‘달콤한 위안’의 양이 다소 아쉽다는 것. 나는 좀 더 치열하고 풍부한 자극을 느끼고 싶다.(고성만)
등피 닦던 날| 이형권
등피를 닦던 날이 있었습니다.
나직이 입김을 불어 그을음을 닦아 내면
허공처럼 투명해져 낯빛이 드러나고
그런 날 밤 어머니의 등불은
먼 곳에서도 금세 찾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믐날
동네 여자들은 모두 바다로 가고
물썬 개펄에는
거미처럼 움직이는 불빛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는 바다는
분꽃 향기가 나던 누이들의 가슴처럼 싱그럽고
조무래기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북두칠성이 거꾸로 선 북쪽 하늘을 향해
꿈을 쏘아 올렸습니다.
묵은 시간의 표피를 벗겨 내듯이
밤하늘에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범바우골 부엉이가 울고 가도록
어머니의 칠게잡이는 끝이 없었습니다.
-시·사진집『슬픈 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에서
시읽기
가을이다. 나는 이 계절을 얼마나 고대 했던가. 시원한 바람 맞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시와 여행은 공통점이 많다. 현실을 벗어나는 순간 두고 온 것들이 그리워진다는 점,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 쓸쓸하다는 점 등이 그러한데, 돌아올 때는 약간의 허무함이 남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 이름 하기 어려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 시집(이형권 시·사진,『슬픈 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을 권하고 싶다.
이형권은 이 시집에서, 우리에게 낯설면서 익숙한 이름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고 있다.「 묵계에서」「, 여차리」「, 테하등대 가는 길」,「 도마령」,「 칠산바다」등등 섬세한 감정을 한 올 한 올 엮어 우리 마음의 지도에 잎맥을 연결하듯 빚어낸다. 그는 분명 여행을 하되, 견문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한다. 그 감상을 첫사랑 여자 이름을 부르듯 떠올린다.
그는 자주‘박두거니 서마지기 무논에’서성이면서‘제금을 나와 처음으로 장만했다는 서마지기 논’의‘벼 낟가리를 몇 번이고 헤아리며 셈’을한다. 그러면‘긴 한숨을 내쉬던 아버지가 언젠가는 우리도 저 새들처럼 먼 곳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가을밤」) 말한다. 영락없는 고향이다. 미래에 대한 꿈은 과거에 대한 긍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는 이 시집에서 ‘물썬 개펄에는 거미처럼 움직이는 불빛들’,‘ 분꽃 향기가 나던 누이들의 가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이 가을엔 등에 멘 짐 가볍게 내려놓고, 배낭에 시집 한 권 넣은 다음 훌훌 만산의 나뭇잎이 물든 산도 좋고, 억새 서걱거리는 강변도 좋으니 죽음보다 깊은 감회에 젖어보자. 한 어둠이 시 속에 잠기어갈 테니까.
(고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