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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사찰자료실 스크랩 경주 인용사지 출토 통일신라 광명대(光明臺).
소윤당 추천 0 조회 52 13.12.21 19: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경주 인용사지 출토 통일신라  광명대(光明臺).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경주 인용사지 출토 통일신라시대 등잔 일종인 광명대(光明臺).

 

광명대는 촛대와는 달리, 초와 기름등잔을 병행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등촉기구(燈燭器具)로 고려시대의 광명대는 원주 법천사지에서 출토한 무자명(戊子銘) 광명대(한독의약박물관 소장)등으로 현재 여러 점 남아 있으나, 통일신라의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층위와 출토상태가 분명하게 확인된 광명대로는 국내 최초의 것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이후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지닌 유물로 높이 평가된다

 

경주 전 인용사지 사역 내 서쪽 연못의 바닥에서 출토된 광명대는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높이 35cm이다.

등좌(燈座)는 세 방향으로 뻗은 짧은 동물 다리 위에 둥근 원반형 받침을 마련하였고, 원반의 중앙에서 곧게 뻗어 위로 오르는 대나무 마디 모양의 굵은 기둥이 연결되어 있다.

기둥 위에는 가장자리가 살짝 들린 형태의 둥근 접시(承盤)가 올려져 있는데 주석땜질로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광명대가 출토된 전 인용사지는 신라의 궁성인 월성(사적 제 16호)과 남산(사적 제311호)사이에 위치하며, 월성 남편 성벽을 따라 흐르는 남천(南川)을 가운데 두고 월성과 근거리에 마주하고 있다

 

인용사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의 기록에 문무왕(661-680)의 동생인 김인문(628-694)이 당나라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를 위해 지었다는 언급이 있을 뿐, 그 위치나 실체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전 인용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3차에 걸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그 동안의 조사에서는 탑지를 중심으로 북편의 금당지와 남편의 중문지로 추정되는 십자형건물지, 외곽의 동서회랑지 등이 조사되었다.

 

탑의 조영양식과 출토유물 등을 근거로 사찰의 조영연대는 통일신라(8세기 중엽)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일신라 광명대가 출토된 연못은 동서길이 15.5m, 남북길이 7.0m규모의 장방형을 띠며 깊이는 1.0m인데, 모두 3차에 걸쳐 개축된 흔적이 확인되었고, 이중 3차 연못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통일신라의 수막새 기와와 함께 광명대가 출토된 것이다.

 

전 인용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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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일 경주 인용사지에서 인면납석제소탑(높이 7.6cm)과 금동보살입상(높이 6cm) 등 유물 8백여 점이 출토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굴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11월부터 약 1년간 실시한 인용사지 제 2차 발굴조사 결과로써, 납석제소탑의 1층 탑신부에는 사람얼굴이 새겨져 있고, 금동보살입상은 보관을 쓰고 시무외인·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고대 건축물 조영과정의 의례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구(地鎭具) 18점도 추가로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은 "납석제소탑에 사람얼굴 새긴 것은 보기 드문 조형양식이며, 단일 유적에서 지진구가 18점이나 출토된 것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경우"라며 "이번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전 인용사지의 가람배치 구조를 밝히고 인접한 월정교지, 일정교지와의 도로연결망을 조사하면 월성남쪽 남천일대의 '신라옛길복원'등의 중요한 자료를 축적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조사에는 탑지 남쪽의 '十字'형 건물지 중심부 구조와 동일한 형태의 건물이 서회랑지 서쪽에서 2동 발견되었으며, '十字'형 건물지 남쪽에 사찰과 관련된 직사각형 연못(14.90X7.60m)도 조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못은 금당지·탑지·'十字'형 건물지의 중심 축 선상의 남쪽에 배치돼 사찰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경주 인용사터서 신라시대 30㎝ 목제 남근 출토

 

경주 인용사터에서 길이 30㎝에 이르는 신라시대 대형 목제 남근(男根)이 출토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송의정)는 8일 경주 인용사 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800여 점의 유물들이 출토됐으며 특히 지하 60㎝가량 되는 뻘층에서 6세기 무렵 신라시대 고배(굽다리접시)를 비롯한 유물들과 함께 이 목제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 목제 유물은 한쪽 끝은 깨져 없어졌지만 잔존 길이가 30㎝에 이르며, 다른 끝은 귀두형(龜頭形)으로 깎여 있다. 귀두형과 몸통 사이에는 홈이 파여져 있어, 이곳에 끈 같은 것으로 묶어 다른 곳에 매달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권택장 학예연구사는 "고대 일본 유적이나 부여 능산리 절터와 같은 곳에서 이런 목제 유물이 나온 적이 있어 비교하고 있지만 유물의 성격이나 기능을 확실히 점치기는 어렵다."면서 "사람 모양을 본뜬 인형(人形)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권 학예연구사는 "다만 같은 층위에서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대의 유물인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11월부터 1년간 실시한 인용사 터에 대한 2차 발굴조사 결과, 인면납석제소탑(높이 7.6㎝)과 금동보살입상(높이 6㎝), 지진구 18점 등 8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돼 고대 건축물 조성과정에서 있은 의례행위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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