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안 나요
류 근 만
수필가(2019·한국문학시대)
고희문집 『父의 坐』
“여보, 보건소 가야지.”
“보건소? 왜?”,
“오늘 결과를 보러 오래.”
“오늘? 오늘이 아니잖아?”
나는 아내와 한동안 입씨름을 했다. 아마도 내가 아내에게 설명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지난달 초에 치매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반반이다. 나는 정상인데 아내는 재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멍해진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나는 의사와 협의해서 재검 일자를 서둘러 정하기로 했다. 다행히 일주일 후로 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검사를 받고 나서도 결과를 보기 위한 예약은 쉽지 않았다.
보건소 측에서는 검사 후 2주가 지나서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엔 시간이 잘도 갔건만 예약 날짜를 기다리는 데는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 한주도 안 지났는데 한 달도 더 된 것 같다. 혹시 결과를 보러 가는 일자를 앞당길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의사와 통화했다.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다. 마침 예약자가 안 와서 오늘 오후에 결과를 보러 와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를 재촉하면서 서두른 것이다.
요즈음엔 수명이 길어진 탓인지, 여럿이 모이거나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이 화두다. 그런데 명이 길어진 대신에 치매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화제가 되는 편이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깜빡깜빡’ 잊어버린다고 한다. 정확한 진단도 아닌데 치매 전조라 하기도 하고, 치매 아닌 건망증 증세라고 우긴다. 나도 나이가 든 탓인지 가끔 깜빡거림을 겪는지라 그 차이를 알아봤다.
건망증과 치매는 겉으로 볼 때는 비슷하지만 결론은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건망증은 깜빡해도 일시적이라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만, 치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라 믿고 싶지만, 재검을 받으라니 걱정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와 함께 보건소로 향하는 거리는 변함이 없는데 시간은 전과 같지 않다. 멀게만 느껴진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앞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할지 의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의사는 웃으면서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것이다. 자세한 것을 알려면 머리 사진을 찍어보아야 하지만 지금 당장 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기분 좋아야 할 결과인데 의사의 대답이 만족스럽지가 않다.
아내는 비교적 병원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황반치료를 받기 위해 안과 의원, 당뇨 전문의원. 소화기 내과, 노인 정신과, 통증 치료, 정형외과 등등 병명이 다양한 만큼 찾아가는 병원도 헤아리기 어렵다.
바로 저 지난 목요일은 대학병원의 노인 정신과 예약일이었다. 나는 아내를 대학병원까지 데려다주고 내 볼일을 봤다. 어길 수 없는 선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가 끝나면 연락을 하기로 하면서 헤어졌다. 오후 진료가 끝났을 것 같아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어디야, 지하철 탔어?”
그런데 들려오는 아내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한다..
“몰라 어딘지? 지하철 탔는데 온천 역도 지나고, 구암역도 지난 것 같아”
하면서 당황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에 나는 걱정이 되었다. 생각하지도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 당황하지 마. 당신 가까운 역에서 내려서 반대편에서 갈아타면 돼, 내가 마중 갈게, 구암역에서 내려서 기다리고 있어.”
하면서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니야. 여보, 괜찮아. 내가 구암역에 가서 버스로 갈아타고 집에 갈 테니 오지 말고 집에서 기다려.”
내 말에 아내가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좀 침착한 말로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난 중간에 길이 어긋날 것 같아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한참 지났는데도 아내가 오지 않는다.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애꿎은 핸드폰만 연달아 누른다. 누르고 또 누르고 답답하다.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달려가려 할 즈음 전화가 연결됐다.
다짜고짜 따질 틈도 없이 ‘어디야’하고 물었더니 집에 거의 왔다고 한다. 난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문이 열리면서 아내가 이내 나왔다. 나는 아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집에 들어와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울컥해졌다. 지하철이 후딱 지나쳐서 한 정거장을 더 갔단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혼자 진료를 받게 한 것이 더욱 미안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창밖으로 잠시 시선을 던진다. 밖은 벚꽃이 화사하고, 아지랑이가 나풀거리는 청명한 봄날인데, 내 눈에 보이는 하늘은 마음이 그래서인지 그저 우중충하기만 했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잘못 내려 나를 걱정스럽게 한 일이 있은 며칠 후였다. 아내가 다녀온 노인 정신과 간호사한테 전화가 왔다. 지난번 내원했을 때 ‘퇴행성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대상자를 선발한다는 내용을 아내에게 설명했다.’라고 하면서 아내와 함께 내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흔쾌히 찬성했다. 나도 지난해 임상시험 대상자로 선정되어 건강을 체크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아내도 행운을 얻은 것이란 생각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임상시험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과 시험의 배경, 목적,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참여 동의서도 작성하고, 기본적인 치매 검사를 받았다. 앞으로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친절히 안내한다. 당일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 심전도 검사, MRI 촬영, 소변검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어 한 번 더 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모든 검사비용은 ’임상연구비‘에서 계산한다고 한다. 병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시험대상자로 선정된 것‘이 잘된 것인지 미심쩍어 알아봤더니 잘했다는 인사까지 한다.
나는 치매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다. 가족력도 없고 처가 쪽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인이나 주변에서 귀동냥으로 아는 정도였다. 최악의 고질병이라는 것, 수명이 길어지면서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 치료를 받아도 완치가 안 되고 멈추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치매의 종류도 많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또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라는 노인성 치매가 60% 정도이고, 중풍 등의 질환을 앓는 혈관성치매가 20~30%란다. 자신도 모르게 깜빡거리는 것을 치매로 오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살아나기 때문에 치매가 아닌 건망증이란다.
그날은 온종일 검사받느라 하루가 바쁘게 지났다. 지루한 하루였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은 퇴근시간대라 주차장이 따로 없다. 줄지은 차량이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어느새 서쪽을 향한 태양이 살포시 기울고 있었다. 옆 좌석에 앉은 아내의 모습을 보니 피로가 역력하다. 병원 다니던 길에 자주 들렀던 식당에 들어갔다. 먹음직스러운 갈비탕 끓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시장하다며 뚝배기를 다 비우며 그제야 얼굴이 화사해진다. 그날 아내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니 나도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놓였었다.
나는 오늘의 검사결과도 지난주 목요일 검사를 받은 후에 뚝배기 안의 갈비탕을 비우던 때 아내의 화사한 얼굴처럼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승용차에 올라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