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저승을 여행하는 신들의 양상 Ⅱ. 바리공주의 저승여행 Ⅲ. 텐츄우아기씨의 천축(天竺)여행 Ⅳ. 이난나의 저승여행 |
Ⅰ. 저승을 여행하는 신들의 양상
저승은 매우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저승은 이승과 대립되는 용어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지칭한다. 동시에 신이한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용례로 이계라는 말이 있다. 저승과 이계는 겹치면서도 다른 말로 함의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다. 이계는 인간의 세상과는 다른 세계로 신이한 세계를 포함해서 경험적으로 알 수 없거나 경험을 넘어서는 특별한 체험을 요구하는 세계이다. 저승 역시 이계에 속하는 세계로 죽음 이후에 겪는 신이한 세계를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저승과 이계는 겹치면서도 다른 용어임이 분명하다.
신화 가운데 저승 또는 이계를 여행한 뒤에 여성이 남성과 인연을 맺는 이야기가 만이 있음이 확인된다. 이승에 살고 있는 여성이 특별한 이유 때문에 저승 또는 이계를 여행한다. 대체로 그 이유는 이승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이승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저승 여행을 감행하고 그 곳에서 자신의 배우자나 대상을 만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여성들이 저승을 방문해서 생명의 신비를 알아내고, 그렇게 밝혀진 생명의 비밀을 이승에 가져와서 알려 주는 구실을 하게 된다. 이 것이 저승을 여행하는 여신들의 핵심적 면모이다.
그러나 저승을 여행하는 신들이 여성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다르게 남신 또는 남성신들이 저승을 여행해서 그 곳에서 자신의 배우자나 여신을 만나고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을 구획하고 되돌아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신의 배우자가 갑자기 사라져서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죽음의 세계에 갔음을 확인하고,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 해후하고, 함께 저승의 세계를 빠져나오다가 실패하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데려와서 죽은 생명을 살리려고 했다가 오히려 죽음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데 일조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을 나누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된다.
여성은 저승에 여행해서 그 곳에서 생명의 비밀을 가져 와서 이승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면, 남성은 이승에서 떠난 사람을 찾아 갔다가 그 세계에다 사람을 두고 다시 떠나오는 생명의 파괴자이고 부활을 억압하는 존재자로 등장해서 둘은 엄격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화에서는 저승을 탐색하는 신이 오롯하게 여성으로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신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바리공주, 원천강, 청정각시 등이 이들의 적절한 사례이다, 바리공주가 저승 여행의 핵심적 주체이고, 전국적인 변이와 분포를 지니고 있는 사실은 선행 연구에서 다각도로 입증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원천강의 이계 여행 역시 이러한 각도에서 자신의 정체를 찾아 나서는 도정이고, 저승에서 생명의 신비와 내력을 알아오는 인물이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여성수난의 전형적 사례에 해당한다. 여성의 여행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비밀을 알아 오는 의미를 갖는다. 남성의 저승 여행에서도 우리의 경우에는 생명의 비밀을 찾아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저승 여행과 동일한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그에 적절한 사례가 곧 <체본풀이>이다. 강림이가 저승여행 하는 사례는 여성의 저승여행과 상통하는 면모를 일부 가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의 본풀이가 지니는 무속적 성향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위에 예시한 저승여행 또는 이계여행의 여성 주인공은 모두 무속의례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바리공주는 죽은 이를 천도하는 의례인 <진오기굿><안안팎굿><오구굿><진오기새남>등에서 구연되고 있으며, 바리공주가 저승의 여행을 의례에서 현시하고 연행함으로써 망자를 저승까지 안내해 나가는 도령돌기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의 하나로 <말미>를 암송해 나간다. 저승세계에서 만나는 갖가지 고난을 헤치고 극락으로 천도하는 것이 도령돌기인데, 도령돌기에서 앞장 서 나가는 신격인 바리공주를 청배하는 본풀이가 곧 <말미>라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가 여성신이기 때문에 이에 걸맞는 여러 가지 복색과 의대를 갖추고 바리공주가 한삼, 부채, 칼 등의 주술적 연장을 가지고 저승의 신산한 길을 헤치고 나간다. 그렇게 해서 저승의 어두운 삶을 극복하고서 새로운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망자를 인도하는 기능을 바리공주가 수행하게 된다. 바리공주의 저승체험과 별도로 이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을 넘어서면서 사람과는 다르게 새삼스러운 신의 권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리공주의 신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청정각시 역시 동일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함경도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굿을 흔히 <망묵굿><진오기 새남>이라고 하는데, 그 굿을 진행하는 제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차를 <도랑축원>이라고 한다. <도랑축원>에서 바로 <도랑선비 청정각시>를 구연한다. <도랑선비 청정각시>의 내용은 첫날 밤에 남편인 도랑선비를 잃은 청정각시가 간절한 염원을 드린 끝에 마침내 죽은 남편을 살리고 신으로 좌정했다는 내용이다. 결말부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1) 도량청정이라는 불교적인 어원을 본풀이로 다시 풀어서 이해하려는 관점이 있는 본풀이이다.
<강림차사본풀이> 또는 <체본풀이>에서도 성격은 유사하다고 하겠다. 죽은 사람의 왕생극락을 비는 시왕맞이라는 제차에서 강림이가 저승여행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게 되었으나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저승의 시왕에게 되돌아가 인간의 넋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신으로 좌정하게 되었는가 보여주는 본풀이가 곧 <체본풀이>의 핵심적 내용이다. 비록 여성이 아니고 남성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을 넘나드는 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하겠다.
한국의 본풀이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서서 저승에서 생명의 원천을 구해오는 특징이 있다. 여성들이 그 곳의 기이한 체험을 구체화하고 그러한 체험을 의례의 절차에서 집약화 하는 것이 우리나라 본풀이에서 나타나는 주 된 현상이다. 예외적으로 강림이라는 남성이 등장하기는 해도 대체로 행적과 내력은 한국 본풀이의 제의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이해된다.
한국의 본풀이와 함께 제의적 신성성을 상실하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저승여행 체험의 여성 주인공이나 남성 주인공의 원형을 만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현상은 아니다. 자신의 생애 내력을 알고자하는 기이한 주인공들의 행적 속에서 본풀이와 굿의 원형적 잔상을 찾아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체로 <원천강본풀이>와 유사하거나 흔히 <구복여행>으로 알려져 있는 유형의 이야기가 이계여행의 그것과 일치함이 확인된다.2) 자신의 가난이 무엇 때문인가 알고 싶어서 출발한 여행에서 이계인 저승이나 하늘 등을 향해서 떠나 자신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부탁을 받고 그 문제를 마침내 모두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은 남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신화가 아니라 세계 신화로 관점을 확대해서 보면 저승여행에 두 가지 유형이 있음이 확인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이 저승에 다녀오는 유형과 남성이 저승에 다녀오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여성이 저승에 다녀오는 이유가 보다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저증체험을 해서 부활이나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서 실천하는 과정을 현시하고 제의의 주관자로 자리 잡는 것이 하나의 유형이다.
남성이 저승 또는 이계여행을 하는 것은 자신의 배우자를 찾아 나서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남성의 여행은 영원한 생명을 찾기도 하나 핵심은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등의 경계면이 확실하게 갈라지는 구실을 한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길가메쉬> <이자나기> <오르페우스>등의 신화에서 여행 끝에 얻은 결말은 영원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을 잃은 경우도 있고, 이자나미의 금기를 어긴 이자나기가 실패하는 이야기고, 그 비슷한 이야기가 곧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체를 구하려고 하다가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실패하는 실패담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유형의 신화가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가는 주저되는 측면이 있으나, 세계신화에서 저승여행의 이야기가 두 가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저승 탐색 또는 이계 탐색은 <이시스의 오시리스 탐색> <니샨샤만 이야기> <이자나기사이몬>등으로 사례를 꼽을 수 있으며, 남성의 저승탐색 또는 이계탐색은 <이자나기의 이자나미 탐색> <길가메쉬의 우트나피쉬팀 여행> <오르페우스의 아내 유리디체 탐색> 등의 사례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흡사한 세 가지 사례를 가까운 데서 출발해서 멀리까지 다루면서 저승여행의 여신 이야기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검토하고자 한다. 세 가지 사례만 선택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바리공주> <이자나기사이몬> <이난나>등이 그 것이다. 이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필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므로 핵심적 줄거리, 의례, 신화적 의미 등의 관점으로 집약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선행 연구자의 타당한 판본이 있어서 이와 같은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자나기사이몬>은 한 차례 언급한 바 있었으나 최근에 업적이 하나 발견되어서 많은 부분 보충할 수 있어서 함께 재론하고자 한다.3)아울러서 <<이난나>에 관한 해석 자료가 최근에 온전히 번역되었으므로, 이에 관한 해석 자료가 최근에 온전히 번역되었으므로 이에 관한 연구 업적에 근거해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 밑받침이 마련되었다.4)
Ⅱ. 바리공주의 저승여행
바리공주는 우리나라의 무조신화이다. 서울 지역에서 바리공주는 <말미>라는 제차에서 구송되는데, <말미>의 구송 절차가 의례적으로 특별한 차이가 있다. <말미>를 드려서 저승으로 가는 망자를 축원하는 것은 망자의 죽은 시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망자가 죽은지 얼마 안되는 경우에는 <말미>에서 장구를 세워 놓고 망신이 궁편을 두드리면서 말미상 앞에서 바리공주의 내력을 본풀이로 풀어 나간다.
죽은지 1년이 되는 굿인 <탈상굿>에서는 <말미>를 구송하지 않는다. 이미 진진오기굿에서 망재가 바리공주의 내력을 들으면서 저승으로 천도되었기 때문에 다시금 말미를 반복해서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만신들은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말미>의 힘은 무한정하고 대단하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은지 오래된 망재일 경우에 ‘날망재’로 있었다면 그 넋을 위해서는 <말미>를 드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차이가 생긴다. 만신이 말미쌀을 깔고 앉아서 장구를 세워 놓고 바리공주의 본풀이를 구송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제 장구를 누여 놓고 궁편을 두드리면서 <말미>를 구송한다. 물론 말미상을 두고 하는 것이지만, 장구를 세우지 않고, 누여 놓는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지 확인이 요망된다.
바리공주가 서울굿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본풀이이다. 오로지 서울굿에서만 <말미>거리의 의례적 절차와 바리공주 구송이 까다롭게 연결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기는 하지만, 서울굿의 <말미>가 전통적이고 전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구송 방법과 의례절차가 <말미>거리 하나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굿거리와도 일정한 관련을 지니기 때문이다. <말미> 하나만을 가지고 살필 수 없는 전반적인 구조적 변환이 굿 자체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진진오기굿, 탈상굿, 묵은진오기굿 등의 제차 변환을 간단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진오기굿은 사람이 죽고 나서 49일 안에 하는 굿인데, 핵심적인 거리는 ‘상산물고’에 있다. 재수굿이나 다른굿에서 대안주거리라고 하는데, 굿의 후반부에 있는 것이 앞으로 와서 이름이 바뀌어 ‘상산물고’라고 하며, 큰 머리를 얹고 갓을 쓰고, 장군님에게 허락을 받고 죽음의 세계로 망자가 나아갈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신장거리 끝에 바로 ‘청계벗기기’를 한다. 이어서 초영실과 조상을 놓고 창부와 대감을 논다. 이른 바 ‘진일’에서는 불사, 제석, 성주 등의 거리를 연행하지 않는다.
탈상굿에서는 ‘물고가망’이라는 제차를 특별하게 하는데, 본향제를 들고 본향을 바래서 도당, 본향, 가망을 헤쳐서 초영실을 바로 노는 것을 말한다. ‘상산물고’가 뒤로 빠져서 ‘대안주’로 환원하는 대신에 자신의 죽은 조상 본향을 바라보면서 물고를 고하는 것이 특징이다. 탈상망재와 조상을 함께 논다. 이어서 대안주를 드리고 바로 대감, 불사제석, 성주ㆍ창부 등을 놀고, 도령들기에서 홍천익을 은하몽두리 위에 입고서 넋전을 머리에 꼽고 도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베를 찢고 뒷영실 옷을 몽두리에 걸치고 이어서 진행한다. 이 것이 탈상굿의 특징이다. 묵은진오기굿은 여느 안안팎굿과 동일하게 진행한다.
<바리공주?를 어느 때에 부르고 안부르는지 이 문제는 진오기굿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세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굿은 잘 알고 <말미>를 보아야 숨은 질서가 굿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새삼스러이 확인하게 된다. <말미>만을 이해한다면 컨텍스트 자체를 전혀 이하하지 못하는 것이 되므로 보다 정밀한 탐색을 굿의 구조적 변환 속에서 이해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한다. <말미> 하나의 요소가 진오기굿의 전체와 맞물려 있음이 거듭 확인된다.
바리공주는 어떠한 구실을 하는가? 바리공주는 신화의 내용에서 보면 저승세계를 다녀와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신통한 능력을 인정받은 뒤에 저승세계와 이승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된다. 죽은 넋들이 저승에서 겪은 고초를 미리 예단하고 그 고난을 넘어설 수 있는 인도자 노릇을 하는 것이 바리공주이다.
바리공주의 뒤를 따라 나서면 망자의 저승길이 편안해질 뿐만 아니라, 고난스러운 저승길이 밝아진다고 생각한다. 저승길에 헤쳐 나가는 과정이 의례에서는 <도령들기>로 구체화되어 있다. 바리공주가 남복을 하고서 석가여래로부터 받은 주령과 낙화를 가지고 지옥의 문을 넘어서서 극락으로 가는 신화의 내용을 의례로 실현하는 것이 <도령들기>이다. 한삼도령을 돌아서 저승의 길을 열고, 부채도령을 돌아서 망자의 몸을 바리공주에다 싣고서, 신칼도령을 돌아서 지옥의 고난스러운 길을 헤쳐 준다고 되어 있다. 바리공주는 인도자 노릇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의례를 가시화하고 있는 구술적 상관물인 <바리공주>의 행위를 실제 자료에 근거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바리공주가 대전마마와 중전마아의 일곱 째 딸로 태어나다.
2. 일곱 째 딸로 태어나서 버려지다.
3. 석가세존님의 도움으로 바리공덕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도움을 받아서 바리공주가 길러지다.
4. 대전과 중전은 바리공주를 버린 대가로 깊은 병이 들다.
5.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일곱 째 딸임을 알고, 그를 찾아 나서다.
6. 바리공주 역시 부모를 몰라서 애를 태웠으나 마침내 자신을 찾는 일행과 만나서 부모에게 도달하다.
7. 바리공주는 부모님의 병을 알고서 변복을 하고 구약여행을 떠나다.
8. 석가여래와 지장보살을 만나서 낙화, 금주령, 은주령 등을 얻고서 그 것을 가지고 지옥을 통과해서 마침내 저승에 도달한다.
9. 그 곳에서 무장승을 만나 꽃값과 물 값을 하기 위해서 일도 하고 부부원근을 맺어 아이도 일곱을 낳다.
10. 바리공주, 무장승, 일곱 아이 등과 함께 청천강을 건너면서 온갖 배를 타고 넘는 극락과 지옥을 구경하다.
11. 강림도령을 만나서 나라의 국상이 난 사실을 알고 가서 그 곳에가 물과 꽃을 부어 부모를 살리다.
12. 바리공주는 부모에게 부모의 허락이 없이 육례를 갖추고 자식 둔 것에 대한 죄를 청한다.
13. 부모님은 바리공주,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머니, 무장승, 일곱 아들, 강림산 강림도령, 등에게 신직을 부여하다.5)
바리공주는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인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씨 주상금마마이고 중전마마이기 때문이다. <말미>의 서두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으니 ‘이씨 주상금마마 본을 풀면 게 어디가 본이신가/함경도 함흥 여흥 단천 소주가 경주 서라전이 본이로서니다/서가세존 본을 풀면 게 어디가 본이신가/해 뜬 세계 달 뜬 세겨 사바는 일을 서겨/서가여래가 본이로 서천서역국으로서니다’라고 되어 있다.6)
다소 엉뚱한 구절일 수 있으나 <말미>에 흔히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일상적이다. 바리공주의 본을 푸는데 조선왕조의 본을 말하고 석가여래 세존의 본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이 본풀이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고귀한 혈통의 내력을 조선왕조와 불교의 내력으로 융합해서 이해하고 있는 점으로 요해된다. 고귀한 혈통의 강조점 이면에 종교적 혼합의 살계가 작용한다.
그러나 바리공주는 일곱 째 딸로서 태어난 이유를 이씨 주상금마마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운명을 지닌다. 옥함상자에 버려져서 기아가 된다. 상자에 담겨져 버림을 받는 신화적 화소는 매우 많아서 전 세계적인 것이라 보아도 잘못이 아니다. 가까이에는 제주도의 본풀이에서도 상자에 버려지는 아이의 이야기가 많다. 상자 속에 버려지는 아이가 어떠한 있는가? 문헌 신화와 구전 신화를 총괄해서 보면 조상당세기나 말명상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성한 존재가 상자에 담겨져 되살아오는 것이다.
바리공주는 옥함 상자에 버려져서 석가여래에게 발견되고 석가여래는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머니에게 수양딸로 주게 된다.7) 이들은 일종의 원조자인데 석가여래는 예외적인 존재자이고,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미는 직접적 양육자이다. 이들은 바리공주를 양육한 대가로 신직을 부여 받는 존재이다. 생산자와 양육자가 갈라지면서 신성한 운명을 양육해서 천지만물의 존재를 체득하게 하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양육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처음에 하늘과 땅이라고 했다가 다음에는 머구나무와 전라도 왕대나무가 부모라고 해서 잠시 속이는데 아기씨는 거기에다 대고 지극정성의 공력을 드린다. 이 것은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이어서 그 것을 알아 가는 부지불식간의 자각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씨 주상금마마와 중전마마는 자신들이 버린 일곱 째 딸을 재회하게 된다. 딸을 버린 죄로 결국에는 깊은 병이 들고 자신들의 병을 고치고 살릴 수 있는 존재가 버린 일곱 째 딸임을 깨우쳐 알게 된다. 부모와 만나서 바리공주가 벌이는 단지를 해서 피를 합치려는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자신들을 살릴 수 있는 ‘부모수양’을 가겠느냐고 묻자, 나머지 여섯 공주는 거부하는데 오로지 바리공주만은 길을 나서겠노라고 하면서 허락하게 된다.
바리공주는 이 과정에서 변복과 치장을 하게 된다. 변복은 애기씨의 모습을 버리고 남복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댕기를 끌러서 쌍상투를 매고 남복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다 무쇠신, 무쇠주령 걸여 입고서 그 곳을 떠나서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8) 여성의 모습으로 가지 않고 남성의 모습으로 변복하는 것은 우리나라 신화에서만 보이는 면모이다.9) 저승 여행에 남복이 필요한 이유는 잘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여성의 모습으로, 그리고 남성을 잘 유인할 수 있도록 꾸미고 가는 이난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면모이다. 바리공주가 여러 치장을 하고서 먼 길을 떠나는 면모는 <이자나기사이몬>의 덴츄우아기씨가 치장을 하고 떠나는 모습과 대체로 일치한다. 바리공주가 짚고 가는 무쇠주령은 축지법을 가능하게 하는 연장이다.
바리공주의 저승 여행에서 필요한 도구를 초월적 인물로 설정된 석가여래와 지장보살에게 얻는다. 이난나가 엔키에게 애곡시인과 집달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초월적 신에게서 지옥의 감옥을 열 수 있는 낙화, 금주령, 은주령 등을 가지고 가게 된다, 이난나가 지하세계의 문지기에게 자신의 것을 열어 보여서 주는 것과 다르게 오히려 바리공주는 지옥에서 시름하는 존재들을 활인공덕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간다. 사방의 지옥에서 고통 받는 불쌍한 넋들을 살리는 일이 바리공주의 영웅적 능력 발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원한과 고통을 씻어 주려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만신의 위업과 권능을 가지는 무속적 영웅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쇠성과 돌문을 깨서 고통을 걸어 준다.
바리공주는 만인을 살리는 영웅적 위업에도 불구하고서 자신의 부모를 살리는 양유수와 꽃은 구하지 못한다. 무장승을 만나서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바리공주는 전형적으로 여성의 면모로 환원하게 된다. 집안의 일을 돌보고, 아울러서 생식의 능력을 발휘하여 아이 일곱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장승의 존재는 각별한데, 저승을 지키는 신인데 오히려 엽기적이고 그로데스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키는 장승 같구 얼굴은 장반 겉구 눈은 등장 겉구, 코는 질병 겉구, 입은 보자기 만 허구, 손은 소당 겉구, 발은 석자 세치 자 가웃이 된다’고 했으므로 괴기하고 거인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바리공주가 무장승과 마나는 것은 애정의 성추라고 보기 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생식의 비밀을 생식력으로 확장하는 수법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생명수와 생명 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을 누리는 생활에 있음을 강조한다.10) 무장승은 별도의 그것이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바리공주와 무장승이 만나서 생명을 잉태시키고 그 것을 키우는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또한 일상적 향유의 물과 꽃에서 결국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저승여행 끝에 발견한 사실은 남성과 여성이 온인해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진리이다. 이승에서의 죽음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저승에서의 생명을 고양하고 죽음이 죽음 이상의 생명을 되살리는 방식이 저승에서 새로운 생명을 되가져 오는 것이라는 진실성을 <바리공주>는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바리공주는 생명수와 꽃을 얻은 뒤에 이승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우선 바리공주 혼자서 오지 않고, 무장승과 일곱 아이들이 함께 그 곳을 벗어나서 오게 된다. 그리고 아홉이서 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바다에 건너오는 배에 있는 망자의 넋들이 제각기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극락과 지옥으로 갈라져 가는 과정을 뚜렷하게 관찰한다. 이승세계의 선악이 저승세계의 삶과 노정을 결정짓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관념은 무속 고유의 것인지 왜래 종교인 불교의 선악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무속에서는 선악의 분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죽음의 경우에는 선도 악도 상대적이고 시비를 가릴 수 없다. 선악의 구별이 힘들고 온전한 죽음과 온전하지 못한 죽음의 사례로 양분되어서 갈라질 따름이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도 잘 대접해서 자리를 찾으면 온전한 죽음이 된다. 따라서 선악의 배를 갈라 타고 극락과 지옥으로 간다는 관념은 오히려 불교적 선악관의 영혼 관념이 깊게 투영되어 있다.
바리공주가 인도하는 주검의 넋은 언제나 극락세계 연화대로 산하여 갈 수 있다고 본다. 지옥을 면하고 그 세계에서만 벗어난다고 하면, 바리공주의 천도를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지옥의 두려움을 벗어나야 한다는 관념이 바리공주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잘못이 아니다. 불교의 극락과 지옥의 세계관이 우리의 무속과 결합한 사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청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리공주 일행이 간 곳은 강림 뜰 강림 산의 강리 도령이 있는 곳이다. 강림 도령이 나타나서 나라의 인산거등이 있음을 말한다. 강림도령은 무속에서 특별한 존재인데, 강림도령에게 바리공주는 ‘명두수건’과 ‘은전금전’을 주고서 확실한 사연을 알아낸 뒤에 마침내 곡을 하는 차림으로 인산거등 까지 가게 된다.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에서 곡사들을 고용해서 저승의 세계 여주인은 엔티쉬키갈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과도 비교될 수 있는 행위를 하게 된다.
바리공주는 저승에서 구해 온 여러 가지 꽃과 물을 가지고서 죽은 부모를 살리게 된다. 이승의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고 생명을 약동시킨다고 하는 관념이 특별하다. 바리공주는 저승을 다녀온 유일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도를 알아낸 특별한 존재이다. 신이한 주술적 권능의 소유자가 부모에게 다시금 죄를 청하게 된다. 부모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육례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부모는 관대해 할 뿐만 아니라, 일곱 아이들의 산전을 받아온 사실에 대해서 매우 흔쾌한 모습을 갖는다. 이 것이 과연 남아선호사상의 결과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부모의 나라 배분에 대해서 바리공주는 단호히 거절하고 소신은 문수보살에 보살에 몸주가 되어서 죽은 이 천도하고 산 이 성도하고 문안 만신에 몸주가 소원이라고 해서 만신의 몸주 노릇을 하면서 이승과 저승을 계속 넘나들겠다고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리공주와 관련된 모든 이에게 신의 직능이 부여된다.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미를 위시해서 무장승이나 일곱애기, 그리고 강림 뜰의 강림도령 까지도 일정한 제의적 의례를 받을 수 있는 권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모두 진오기굿의 일정한 의례적인 몫을 받아먹는 제의적 기원을 형성하는 것이다. 바리공주가 중심이기는 해도 각각의 직능을 맡아서 신으로 제의적 보상을 상세하게 이루도록 구성하는 일은 무속의 다신관념과 일정한 관련을 가진다고 하겠다.
<바리공주>는 이승과 저승의 수평적 세계관에 입각한 구도를 경계면으로 넘나드는 존재이다. 바리공주는 여성 영웅의 자신이 가지는 여성 생식 능력을 가지고 저승에 오고 가는 신의 직능을 실현하는 존재이다. 바리공주가 가는 저승은 걸어 갈 수 있는 곳이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깊은 바다나 강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아득한 먼 여행의 목적지이기 때문에 신이한 능력을 가져야만 하고, 여러 사람의 고통과 의문을 해소해야 할 임무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리공주>의 다른 지역 각 편에서 만나는 여행지의 여러 인물 군상은 바리공주의 임무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텐츄우아기씨가 그러하 듯이 삼천 명의 구실을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혼자이면서도 삼천 명의 노릇을 해야 하므로 그는 영웅의 능력을 부여 받았다고 하겠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간다고 하는 사실은 자신이 죽어서 주검으로 해체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변복을 하고 걸어서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계 여행에서 반드시 죽음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바리공주와 텐츄우아기씨는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바리공주는 어찌 보면 옥함상자에 담겨져 버림을 받았을 때에 이미 죽은 사람의 혼신으로 산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 없다. 말명으로 다시 와서 산 사람처럼 부활했다가 이승을 벗어나서 저승에로 도달할 수 있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 통과는 그러한 각도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난나가 죽은 시신으로 걸려서 해체되는 것과도 견주어 볼 수 있는 측면이라고 이해된다. 만신의 몸주가 되기 위해서 저승을 통과하는 것은 만신의 몸주로 또는 대신 말명으로 되살아 나서 부활 할 수 있다는 관념이라고 하겠다.
바리공주가 관장하고 있는 제의가 진진오기굿이나 망자의 넋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례적인 점이 주목된다. 게다가 바리공주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진오기굿의 직능을 맡은 신격인 점도 <바리공주>의 신화적 성격과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면모라고 이해된다. 무장승은 시왕군웅거리를 맡은 신이고, 일곱 아이들은 칠칠이 사십구재를 받는 신이고,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미는 평토제를 받는 신이고, 강림도령은 가시문과 쇠문의 문돈을 받아먹는 신이다.12) 신격이 이와 같다면 바리공주가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고 살린 것과 신들의 부활에 일조한 것이 말명의 신내림으로 보아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바리공주의 저승여행은 매우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구체화 하고, 그 의례적 기원을 보여 주는 신화이다. 바리공주가 여성적 생식 능력을 보여 주는 것 까지도 말명의 한풀이라고 보았을 때에 값진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된다. 바리공주의 저승 여행은 <이자나기 사임몬>의 텐츄우아기씨,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의 이난다 등과 견주어지게 되면 보다 신화적 성격이 분명해지리라고 판단된다. 여성신이 왜 저승이나 이계를 찾아 나서게 되는가 하는 신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Ⅲ. 텐츄우아기씨의 천축(天竺)여행
텐츄우아기씨는 이계인 천축에 가서 이자나기님을 만나서 자신의 부족한 기도술을 보완하고 다시금 일본에 돌아와서 제의와 기도법의 기원을 이룩한 여신이다. 텐츄우아기씨의 신화적 내력을 적은 구전신화가 곧 <이자나기사이몬>이다. <이자나기사이몬>은 高知縣 香美郡 物部村 마을에 전승되는 <이자나기류제문>가운데 하나이다.13) 이 고장은 해발 1,000m급의 산들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협곡에 모이고, 그 모작 지대의 토질이 윤택한 物部川의 근원을 이루는 곳이다. 또한 이 고장에는 수 많은 다유우(太夫)들이 흔해서 이 곳을 달리 “中國山脉의 太夫村”이라고 일컬을 정도이다. 物部村의 생활 곳곳을 다유우들이 관장하고 있어서 종교의 본산지라고 간주될 정도이다. 일찍이 柳田國男이 <巫女考>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고장의 <이자나기류제문>은 소중한 전통이다.
<이자나기사이몬>은 무격 가운데 하나인 다유우(太夫)에 의해서 구전되는데, 다유우는 하카세라고도 한다. 다유우 또는 하카세는 여자 무당인 메노토 또는 미코 등과 함께 굿을 집전해 왔다고 하게다. <이자나기 사이몬>은 무당의 제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문서로 큰굿(大祭)의 맨 처음 절차 가운데 하나인 <取い分け>에서 구연된다. <도리와케>는 죄와 부정을 씻는 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굿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바로 부정굿과 동일한 절차이다. 또한 <이자나기사이몬>은 다유우의 성무식인 <내림굿> 행사에서 구송되는 무가이기도 하다. 다유우들은 무조신인 텐츄우아기씨가 기도법을 배우기 위해서 편력하는 과정에서 입었던 성스러운 흰색 복장을 성스럽게 입기도 하고, 오색의 주름진 종이를 늘어 뜨린 줄 무늬 갓을 쓰고서 이 무가를 구송한다.
다이유들이 텐츄우아기씨 복장을 하고서 <이자나기사이몬>을 구송하는 현상은 우리나라 진오귀굿에서 바리공주가 복색을 꾸미고서 <말미>를 드리는 것과 일치되는 현상이다. 무녀가 바리공주의 복색을 하고서 장차 도령돌기에서 망자의 넋을 이끌고 저승의 험로를 헤쳐 나갈 때에 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텐츄우아기씨가 천축국을 순례하면서 했던 성스러운 복색을 하고서 줄 무늬 갓을 쓰는 것은 일치되는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그 것은 신화가 의례의 기원을 말해 주는 것이면서 의례의 사제자를 통어하는 면모를 확인시켜 주는 증거로 된다.
<이자나기사이몬>의 신화적 내용을 정리해서 단락으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고귀한 혈통을 지닌 텐츄우아기씨가 태어나다.
2. 텐츄우아기씨는 어려서 뛰어난 재주를 발휘해서 점치는 방법을 익혔으나 일본국에서는 자신의 모자라는 능력을 절충해 줄 수 있는 知者도 法者도 없어서 곤란을 겪다.
3. 그 때에 天竺에 있는 華原國에서 기도의 달인인 이자나기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길을 떠나게 되다.
4. 떠나는 과정에서 텐츄우아기씨는 갖가지 복색, 갓, 지팡이 등을 들고서 나서게 되다.
5. 텐츄우아기씨는 이자나기님과 서로 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니 이자나기님이 그 재주를 묻는다.
6. 텐츄우아기씨는 읽는 글과 쓰는 글의 학문을 모두 마치고 모자라서 지념의 상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이 곳에 왔노라고 말한다.
7. 이자나기님은 가르쳐 줄 수 있으나 자신도 大和山城國 작은 따님이 병들어 있으므로 이를 알아 보는 점이 필요하다고 한다.
8. 텐츄우아기씨는 마후마의 점(쌀점)만을 아는데 쌀이 없으니 미요시강의 모래를 집어다가 점을 치고서 여러 가정 수호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기도를 내린다.
9. 텐츄우아기씨는 점괘를 내린 후에 하룻밤의 숙소를 정하려 하지만 이자나기의 제자 때문에 숙소를 정하지 못하다가 문가의 여덟 장방에 자게 되다.
10. 이자나기님이 돌아와서는 대화산성굿의 공주를 고쳤으므로 텐츄우아기씨 숙소를 묻고 제자들의 잘못을 나무란다.
11. 텐츄우아기씨는 이자나기님의 기도법이 오래 걸려야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개의치 않고 배우고자 해서 갖가지 기도법을 3개월 만에 습득한다.
12. 이자나기에게 면허를 받은 텐츄우아기씨는 중등국, 대동국, 소동국을 거쳐서 동국에 와서 활 기도법과 인형 기도법을 전하게 되다.
13. 텐츄우아기씨가 기도법을 전해서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기도하다.14)
<이자나기사이몬>은 구비로 전승하는 신화자료이기 때문에 기록자에 따라서, 그리고 전승자에 따라서 여러 각편이 있음이 확인된다. <이자나기사이몬>은 일본 중부지방의 高知 일대에 전승되는 무당들의 시조에 관한 무조신화이면서 전승되는 기도법의 기원을 해명해 주는 기원신화이기도 하다.
텐츄우아기씨는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왕손의 혈통으로 되어 있어서 ‘비쟈리고주조와 아드님과 묘본대왕 따님’ 사이에서 텐츄우아기씨로 탄생했다고 되어 있다. 나라의 성격도 분명하지 않아서 ‘슈의 나라’가 비롯되고 ‘슈의 나라’에서 여러 나라가 파생된 자손이라고 되어 있다.15) 텐츄우아기씨가 왕녀이자 공주인 사실은 우리나라의 <바리공주>가 왕실의 혈통이고 왕녀로 공주인 점과 일치한다. 신성한 혈통의 인물이 장차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신성한 존재로 남는다는 일반적인 공식과 맞아 떨어진다.
텐츄우아기씨가 고귀한 출신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니 그 것은 자신의 소명을 찾아서 기도를 드리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일곱 살 때부터 경문을 읽고 기도드리는 법을 찾아서 혼자 편력하고 순례를 한다. 편력과 순례를 통해서 텐츄우아기씨는 자신의 모자라는 부분을 메꿀 수 없다고 깨닫는다. 영웅적 주인공이 버려져서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과 흡사하다. 어떠한 원조자도 만날 수 없고 <이자나기사이몬>에 예시되어 있듯이 知者도 法者도 만날 수 없었다고 되어 있다. 주인공의 모자라는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체험은 일본국의 순례와 다른 새로운 이계로의 체험을 필요로 하게 된다.16)
텐츄우아기씨의 이계여행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천축에 위원국에 기도의 윗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시작한다. 텐츄우아기씨는 여러가지 복색을 꾸미고서 여행을 나서는데, 이 여행의 복식이 바리공주나 이난나의 여행에서 보이는 치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준비 치장은 단순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젖꼭지 나무의 재석섬 여섯 말, 천축공작 황공으로 만든 새 한 쌍, 짚신의 끈, 각반의 끈, 어깨에 메는 옥상자, 아름다운 무늬의 비단 꽃 갓’등을 갖춰서 이자나기님을 찾아 나선다.19)
이러한 도구는 아마도 이자나기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 멀고 험하기 때문에 이러한 치장이 요구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계여행의 험로는 구체적 노정기로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문맥으로 보아서는 ‘천리의 들, 천리의 숲, 천리의 산, 천리의 못, 천리의 바다’가 있는 것이다.20) 이 곳을 통과해서 이자나기님을 만나야 하므로 위의 주술적 도구와 옷차림새가 필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천축공작 황금으로 된 새를 타고서 날아 와서 이자나기님이 있는 곳으로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바리공주가 먼 길을 나서서 중간에 석가세존을 만나서 주령과 낙화를 얻어서 저승길을 헤쳐 나가는 것과 유사한 설정이다. 다만 바리공주는 남복을 하고 무쇠 갓, 무쇠 주령, 무쇠 각반 등을 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텐츄우아기씨는 이자나기와 미요시강에서 해후하게 된다. 이자나기님은 텐츄우아기씨의 범상치 않은 모습을 비범하게 발견한다. ‘천 마리의 자태, 얼굴의 생김, 삼 천인의 본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는 비범한 확인을 한다.21) 이자나기님이 텐츄우아기씨에게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판단하라 하고 본색을 밝힐 것을 요구하게 된다. 텐츄우아기씨는 일본에서 태어난 내력을 상세하게 이르고 ‘두 분 일월님의 신탁 현시’를 따라서 ‘이자나기 묘본 다유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서 왔노라고 상세하게 이르게 된다. 비나리를 잘 하는 무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왔노라고 말한다.
<이자나기사이몬>에서 한 가지 특별한 사실은 이자나기와 텐츄우아기씨가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곧 바로 서로의 재주를 겨루는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텐츄우아기씨는 쌀점을 잘 치는 존재이고, 이자나기는 기념의 명수이다. 그래서 대화산성국 또는 위원국의 왕 딸인 공주가 깊은 병에 들었는데 그 원인을 알아서 그 병을 치유하는 것이다. 이자나기의 요청에 텐츄우아기씨는 난처해 하다가 미요시강의 모래를 가져다가 점을 치게 된다. 그런데 점 치는 방식이 흥미롭다. 점사를 판단해서 이자나기가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아기씨가 미요시강의 모래를 가져다가 점을 치는데 필요한 소도구가 곧 이계여행을 떠날 때에 가져온 장신구들이다. 후마쌀의 깔개로 쓰는 것이 곧 옥상자의 뚜껑이고, 후마담을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름다운 무늬의 꽃갓이고, 왼쪽 소매자락에서 시골 장신구의 방울을 꺼내 가지고 니슈의 나라 샤란다왕 하곤다왕의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 점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22) 그 점사에서 반폐조왕의 물건이 나와서 병환 회복의 기미를 점치게 된다.
이 점사에 힘입어서 다음으로 이자나기의 제자 108명 가운데 첫 번째 제자가 너무나 점사가 좋은 것을 감탄해 하다가 이자나기님의 어깨에 멘 옥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하는 점을 쳐 달라고 시험 문제를 낸다. 그러자 텐츄우아기씨는 옥상자에 열 두 마리의 짐승이 살고 있다고 답한다. 이자나기님은 점괘가 틀렸다고 하면서 텐츄우아기씨를 비난한다. 사기어린 제자라고 까지 폄하하면서 옥상자를 열어서 보니 과연 열 두 마리의 짐승인 조왕쥐가 있음을 확인한다. 이자나기님은 자신이 밀감 왜감 열두 개를 넣었는데, 그 것이 조왕쥐로 환생했으니 텐츄우아기씨더러 모아 달라고 한다. 그러나 텐츄우아기씨는 이자나기님더러 모아 보라고 거절한다. 이자나기님은 12마리의 쥐를 한 곳에 모을 수가 없었다.23)
이자나기님에 대해서 텐츄우아기씨는 ‘천 법을 알고 한 법을 모르고, 천 자를 알고도 한 자는 모른다’고 하면서 열 두 마리의 조왕쥐를 하나로 모아준다. 그리고 왕의 병환에 정확한 점사를 내리게 된다. 왕의 저택에서 목수가 작업을 했을 때에 목수 임김의 한때문에 집의 중앙 큰 기둥 밑에 먹자를 넣었더니 큰 복이 조왕으로 옮겨 갔으므로 이번에 가서 조왕의 성이 세기 때문에 기념 기도를 하면서 읽어 나누기, 잡아 나누기, 털어 나누기 등으로 쫓아내고 목욕기도, 불기도 반폐조왕을 누르라고 했다. 그것이 이자나기의 요구에 대한 마지막 점사였다.
텐츄우아기씨는 이자나기님을 제압하는 신이한 능력 발휘를 한 것이다. 묘본 다유우의 능력이 모자라자 자신의 쌀점을 치는 방법을 통해서 천축국의 남신을 돕는 일정한 구실을 한다. 능력이 모자라서 그것을 보충하고자 서천서역국에 왔는데, 오히려 이자나기님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기념기도로 잘 되지 않는 것을 쌀점으로 해소하고 있다. 텐츄우아기씨가 쌀점을 치는 것은 매우 의의가 있는 작업으로 여성의 생명력을 현시하는 상징적 절차와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쌀은 생명의 상징이고, 곡모신의 사제자임을 명시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텐츄우아기씨는 자신의 생명력을 가지고 이계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텐츄우아기씨의 신이한 능력 발휘에 힘입어서 이자나기님의 거처에 숙소를 정하려고 하는데, 이자나기의 사기 있는 제자에게 또 한 차례 시험을 거치면서 자신의 내력을 다시 한 번 구술하게 된다. 텐츄우아기씨가 온전한 숙소를 찾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게 되는데, 이 때에 이자나기님이 병환을 치료하고 와서 다른 곳에 숙소를 정한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면서 온전한 방으로 모시게 된다.
텐츄우아기씨는 그곳에서 이자나기님으로 부터 신통을 전수 받게 된다. 신통을 모두 이수하고 신통의 면허로 여러가지 병을 퇴치하는 기도법과 면허 이수에 관한 방법을 일러주게 된다. 면허를 받은 텐츄우아기씨는 중등국을 거쳐서 대등국에 갔다가 다시금 대등국에서 소등국으로 간다. 소등국의 둘째 딸이 병환을 앓고 있어서 이를 치료할 기념기도를 요청 받자 기도를 하니 과연 기도를 이루게 된다.
결말 부분에서 아기씨는 기도법의 기원을 다시금 구연하게 된다. 그것은 활기도법과 함께 인형의 기도법이 동시에 시행되게 된다. 그것을 다시금 후대의 다유우와 미코들이 반복해서 하는 과정을 예시하고 있다. 곧 점법과 제의의 기원이 결말 부분에 첨가된다. 아기씨의 기도법은 천축의 이자나기류에서 비롯되어서 오늘날의 도리와케나 성무식의 내림굿에서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이자나기사이몬>에서 아기씨가 이계여행을 해서 남성신인 이자나기를 만나서 새로운 경지를 터득하는 것이 신화의 핵심적 내용이다. 기도의 능력이 모자라서 천축에 갔다가 오히려 이자나기님의 기도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소한다. 기도법을 연마하는 것과 아기씨가 자신의 생태적으로 익힌 쌀점법의 여성적 능력으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계인 천축에서도 남성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는데, 아기씨가 쌀점법을 가지고서 그것을 이겨나가려는 자신의 능력 발휘가 핵심이다.
이자나기는 외래적 불교의 영향이 강한 기도법을 구사하고 있으나, 아기씨는 재래적 신앙의 점법에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온당한가 말하려는 것이 이 신화의 핵심은 아니다. 둘은 서로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 상호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 새로운 성취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계에서도 구현할 수 없는 생명의 치유가 바로 현실 세계의 여성신에게서 묘안이 나온다고 하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자나기의 능력이 부족한 사실과 아기씨의 기도가 잘 되지 않는 것은 현실 세계와 이계가 서로 맞물려서 조화롭게 연결된다고 하는 사실을 거듭 말하고 있다. 이자나기와 아기씨가 서로 돕고자 했을 때에 새로운 성취가 이루어진다. 재래 종교의 기도법과 외래종교의 기도법이 상호 침투 작용을 할 때에만이 비약이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자나기사이몬>에서 <바리공주>처럼 남녀의 생식과 자식을 얻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왕과 공주가 병이 들어서 죽게된 화소는 두 신화에서 거의 일치하지만,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생명의 물이나 생명의 꽃을 얻는 화소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기도법으로 바뀌어 있고, 그것을 제공하는 주체도 이자나기가 아니라 아기씨이다. 바리공주가 구하고자 하는 물과 꽃을 무장승이 주는 것으로 된 사실과 전혀 다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에 흥미로운 사실은 이자나기의 요청에 의해서 쌀점에 의한 점괘를 날리고, 신이한 영력을 발휘하는 데서 전혀 다른 사실을 찾아내게 된다. 그것은 이자나기의 옥상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이자나기의 첫째 제자 물음에서 답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점장이인 홍계관이 상자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가 알아 맞춰 보라는 것과 유사한 화소이다. 12마리의 동물이 있다고 하는데 이자나기님의 해명에 의해서 밀감ㆍ왜감 → 조왕쥐 12마리 → 반폐조왕의 동티 등으로 단계적 연쇄를 일으키면서 둔갑하는 실체를 꿰뚫어 아는 것이 곧 아기씨의 능력이다. 생명체가 순환하고 순환하는 생명체의 고리에 삿 된 요소가 있음을 거듭 느끼게 하는 요소이다. 이자나기가 논리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아기씨는 통찰로 꿰뚫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이 전혀 다른 차원의 두 신이 결합해야 하는 요건이 된다.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아는 능력과 단계적 해명을 해야 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것이면서 상통하는 면모라고 이해된다.
<이자나기사이몬>은 여신의 이계여행을 주제로 하는 신화이면서 어떻게 무당의 시조가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무조 신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형의 구성 속에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영웅적인 주인공의 이계 탐험으로 되어 있다.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인물이 어려서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서 그곳에서 일정한 수련을 겪은 뒤에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서 규범을 세우고 숭앙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터득한 바를 실현한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당사자는 영원히 집단적 숭앙을 받게 되는데, 하카세 博士 또는 다유우 太夫와 메노토 또는 미코의 숭앙을 받는 것은 집단의 영웅으로 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여성영웅인 텐츄우아기씨는 기상천외하고 별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신이함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자나기님에게 얻은 신이한 능력의 핵심은 활점과 인형기도법에 있다. 아기씨의 본질적 능력은 미후마라고 하는 쌀점에 있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치장품으로 가져간 여러 연장을 벗어 놓고 미요시강의 모래를 가져다가 쌀점을 치는 것은 여성이 본래 생태적으로 가지고 있던 능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면모라고 확인된다. 여성영웅은 생명의 신비인 생식에 의해서 난제를 해결하고 이를 극복해 가는데, 아기씨는 그러한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자나기님과 사기 있는 제자에게 자신의 본향을 강조해서 보이는 것은 이것과 관련된다.
<이자나기사이몬>은 구전신화이고 문헌신화가 아니다. 이자나기를 문헌신화의 주인공으로 이해한다면 매우 황당한 사실이 되리라고 믿는다, 텐츄우아기씨의 행적을 드러내고자 하는 무속집단에서 텐츄우아기씨의 행적을 드러내고자 하는 무속집단에서 텐츄우아기씨의 신격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 이와 같은 가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당 집단이 자신들의 의례 속에서 구전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것은 희귀한 사례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말미>가 진오기굿에서 의례와 신화를 일치시키고 있듯이 <이자나기사이몬>역시 도리와케 또는 내림굿에서 다유우의 신성한 신화를 구현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일본신화에 구전신화가 존재한다는 사실과무속적 제의에서 여성신이 이계여행을 해서 제의의 기원을 이룩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예외적이지 않다는 것을 거듭 깨우치게 한다. <이자나기사이몬>의 자료 전체를 조망하면서 일본신화 자체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자료가 되리라고 판단된다. 구전되는 신화를 기록해 둔 필사 자료를 모두 정리해서 정밀한 신화를 기록해 둔 필사 자료를 모두 정리해서 정밀한 각 편의 비교 연구를 시행하면서 자료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야를 마련해야 하리라고 본다.
Ⅳ. 이난나의 저승여행
이난나는 지하세계를 여행해서 부활하는 여신으로 되어 있다.24) 수메르 신들 가운데 천체신으로 세 신을 꼽을 수 있으니 난나-수엔 Nana-Suen, 우투 Utu, 이난나 Inanna 등이 그들이다. 난나-수엔은 달신이고, 우투는 태양신이고, 이난나는 샛별신 또는 금성의 신이다. 수메르시대부터 의례로 섬겨지고 신화의 대상으로 되었던 신은 이난나이다. 난나-수엔과 우투는 후대 바빌로니아 시대에서야 신화로 섬겨지고 의례로 받들어 졌을 따름이다.
이난나신은 수메르시대부터 신격이 한정되지 않고 후대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전쟁과 사랑의 신이 아쉬타로와 혼합되었으며, 수메르고 멸망하고 셈족들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벌하고 나자 여러신의 성격이 복합되면서 고유명사가 여신이라 할 정도로 보통명사화 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난나가 하늘과 땅의 여왕이기는 하나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한계를 가진 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지하세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난나의 지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의 모든 요소들을 인도하고 넘어서기 위해서 피안의 세계에 우리는 다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 세계에 관한 간절한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할 수가 있다.25) 죽음, 재생, 인생 등의 총괄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저 밖의 세계에 여행을 해야만 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현실 세계의 깊이 정도 밖에 살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에 보다 깊은 세계의 탐색과 여행이 이루어진다.
1. 이난나가 하늘에서 땅의 주인이 되고자 하여 지하세계로 여행하고자 하다.
2. 이난나가 자신의 신복인 닌슈부르에게 부탁하다.
3. 이난나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서 지하세계에 문 앞에 서다.
4. 지하세계의 대장 문지기인 네티가 지하세계의 여주인인 에레쉬키갈에게 알리다.
5. 에레쉬키갈이 문지기인 네티와 연락해서 이난나의 몸에 걸친 장식을 제거하고 몸을 발가 벗기다.
6. 이난나가 지하세계의 문을 통과해서 잠시 동안 에레쉬키갈의 왕위를 찬탈하다.
7. 이난나가 아눈나키에 의해서 재판 받고 시체가 고리에 걸리다.
8. 닌슈브르가 이난나가 소식이 없자 이난나의 계획을 실행하다.
9. 닌슈부르는 엔릴, 난나, 엔키 가운데 엔키에게 이난나의 생명을 부활하는 방법을 얻다.
10. 엔키는 애가시인과 집달리에게 생명식물과 생명수를 주고 지하세계에 가서 이난나를 살피도록 한다.
11. 지하세계에서 에레쉬키갈의 호의를 얻어서 시체 얻어 이난나 재생하다.
12. 아눈나키가 이난나의 대리자를 요구하다.
13. 이난나는 대리신으로 닌슈부르, 사라, 투란 등을 귀신들이 요구하나 거절하고, 대신에 두무지, 그의 누이 게쉬티안나 등을 대리자로 선정하다.
14. 에레쉬키갈은 게쉬티안나와 두무지에게 지하세계에 반년씩 머물게 하다.26)
이난나 신화는 크게 세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확인된다. 첫 째 대목은 지하세계 여행의 결단이고, 둘 째 대목은 지하세계에서의 죽음과 부활, 셋 째 대목은 지하세계의 이난나 대리자로서의 두무지와 게쉬티안나의 삶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서두, 중간, 결말 등이 짜임새 있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세 부분은 의의가 있게 분할된다.
서두에서 구비공식구 Oral formula처럼 위대한 신이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기술되어 있다.27) 이난나 여신이 수메르 신전을 버리고 지하세계로 가는 과정이 서술되는데, 이난나 여신이 모시고 있는 신전은 모두 주요 도시들을 나타낸다. 특정한 장소+신전 등을 버리고 지하세계로 가는 과정이 반복 서술된다. 땅 위의 신전과 땅 밑의 지하세계 는 대조적이며, 이난나의 지하세계 방문이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난나가 지하세계에 왜 가고, 그 왕좌를 빼앗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흥미로운 사실은 이난나가 지하세계 여행에서 필요한 갖가지 장신구와 영혼을 챙기는 모습이 흥미롭다. 일단 7개의 ‘메’와 온몸을 장식하는 장식품인 카피에, 가발, 청금석, 두 개의 달걀 모양의 구슬, ‘팔라’옷, 눈에 ‘남자여, 내게 오라’라고 하는 눈 화장, 가슴에 ‘남자여, 오라오라!’라는 가슴 장식, 청금석으로 만든 자와 길이 재는 선 등을 장식하고 있다.28) 육신을 장식하는 요소와 신성을 가리키는 요소가 분리되어 있으나, 그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새로운 세계 여행의 밑천이 된다. 여신이 남성을 유혹하는 수단의 장식품이 많은 것은 주목된다. 실제로 지하세계의 일곱 개 문을 통과할 때에 이난나가 발가벗긴 몸으로 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간 대목에서는 이난나가 지하세계에 가면서 닌슈브르에게 자신이 죽었을 때에 대한 예방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난나가 닌슈부르에게 부탁한 것은 각각의 신전에 있는 신들에게 가서 지하세계의 죽음에 대해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는 것이다. 에쿠르에 있는 엔릴신에게 애가를 읊으라고 한 것과 우르의 에키쉬누갈 신전에 있는 난나신에게 애가를 읊으라고 한 것, 그리고 에리두의 에-엔구르 신전에서 있는 엔키에게 애가를 읊으라고 했다. 세 지역의 세 신전에 있는 엔릴, 난나, 엔키 등에게 애가를 읊으며 지하세계에 간 이난나가 죽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거듭 반복되고 있다.32)
이난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지하세계에 이르나 자신의 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 신들에 관한 예비책을 강구하고, 자신의 몸종인 닌슈부르로 하여금 도움을 청하도록 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처녀 이난나가 지하세계에서 죽게 놔두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하면서 이난나의 죽음과 부활을 희망하는 말을 거듭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면서도 엔키신이 결정적 기여를 할 것임을 ‘생명을 주는 풀’과 ‘생명을 주는 물’을 아는 사람이 엔키임을 거듭 강도하고 있다.
이난나가 지하세계에 도착해서 지하세계의 대장 문지기 네티에게 자신이 에레쉬키갈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사실을 네티가 에레쉬키갈에게 고하자 이난나의 몸에 있는 장식과 메를 모두 벗기고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한다. 그래서 대장 문지기 네티는 일곱 개 대문의 빗장을 걸고서 차례대로 이난나의 장식품을 벗기게 된다. 이난나는 첫 번째 문에서 사막에서 쓰는 카피에가 그녀의 머리에서 벗겨지고, 두 번째 문에서 조그만 청금석이 벗겨지고, 세 번째 문에서 가슴으로부터 두 개의 달걀 모양의 구술이 벗겨지고, 네 번째 무에서 ‘남자여, 오라, 오라’라는 장식이 가슴으로부터 벗겨지고, 다섯 번째 문에서 그녀의 손으로부터 금팔찌가 벗겨지고, 여섯 번째 문에서 청금석으로 만든 순결한 자와 길이를 재는 선이 그녀의 손으로부터 벗겨지고, 일곱 번째 문에서 ‘팔라’옷 즉, ‘여주인임을 상징하는’ 옷이 몸에서 벗겨졌다. 구비공식구조로 되어 있으며 엄격하게 짜임새가 있게 차례대로 이난나의 몸이 알몸이 되는 사실을 예시하고 있다. 옷을 벗기는 단계가 흥미롭고 처녀의 몸이 희생되는 과정이 묘사된다.
에레쉬키갈의 왕좌에 벌거벗은 이난나가 앉자, 아눈나키라고 하는 일곱 명의 재판관이 죽음의 판결을 내리게 된다. 지하세계의 재판관이 일곱이고, 그들이 죽음의 눈으로 바라보자 내장을 쥐어짜고 벌을 내리는 판결은 흥미롭다. 저승에 있는 시왕에게 매여서 인간이 잔혹하게 판결을 받는 것은 대체로 유사한 관념이다. 아눈나키와 시왕이 대응하고, 사람이 벌거숭이가 되어서 지하세계에서 고초를 겪는 과정 역시 일치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난나가 고리에 걸려서 빛바랜 시체로 걸리는 것 역시 일치되는 현상이다. 이난나가 몸에서 장신구가 벗겨지고 옷이 벗겨져 알몸이 되는 것과 빛바랜 시체가 되는 것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나 그것이 지하세계의 임무이고, 지하세계의 관습에 의해서 이난나는 해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복 또는 시종은 이난나가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의 신전에 가서 이난나의 죽음을 부정하고 부활할 수 있는 애가를 부른다. 엔릴과 난나는 공통적으로 ‘나의 딸이 위대한 하늘 뿐만 아니라 위대한 땅도 원했다’고 하면서 닌슈부르의 요청을 거절한다. 에리두의 엔키만이 자신의 손톱 끝에 있는 때를 끄집어 내어서 쿠르-가르-라를 만들고, 갈라-투르-라를 만들어서 쿠르-가르-라에게는 생명 식물을 주고, 갈라-투르-라에게는 생명의 물을 주었다.
두 명의 애가 시인과 집달리는 지하세계에 가서 상심하고 에레쉬키갈에게 동정을 사고 에레쉬키갈의 호의에 의해서 주는 선물을 모두 부정하고서 고리에 걸린 빛바랜 시체를 주게 된다. 그러자 이난나의 주검에다가 한 명은 생명초를 뿌리고, 다른 한 명은 생명수를 뿌리게 된다. 그러자 이난나가 일어난 것으로 된다. 바리공주가 양유수와 꽃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부모를 살리는 과정과 일치한다. 아버지인 엔키의 계획에 의해서 이러한 부활이 가능했다. 바리공주에서는 자신이 저승여행을 해서 양유수와 꽃을 구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난나가 지하세계로부터 탈출해서 나오려고 하자, 지하세계의 재판관인 아눈나키가 그녀 대신의 대리인을 내세우라고 하면서 산호충 같은 귀신과 감시소 같은 큰 귀신이 이난나 여신의 왕홀과 곤봉을 빼앗으며 앞뒤로 서게 된다. 이들 귀신은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서 음식, 술, 선물, 성교의 기쁨 따위를 누리지도 못한다. 오로지 사람의 약동하는 생명력을 가져 가는 존재일 따름이다. 이난나는 이 귀신들에게 대속자를 바쳐야만 한다.
이난나는 곡을 하고 있는 닌쥬부르, 움까의 식쿠르사가에서의 샤라, 바드더비라의 에무쉬칼라마에서의 루랄 등을 귀신들이 대리자로 요구하는데, 이에 대해서 닌슈부르는 자신의 생명을 살린자이기 때문에, 샤라는 자신의 머리를 다듬는 자이기 때문에, 루랄은 자신의 좌우, 앞에서 가는 자이기 때문에 넘겨 줄 수 없다고 한다. 대신에 쿨랍 평원에 있는 두무지를 이난나가 죽음의 눈으로 쳐다보아서 두무지가 대리자로 선택된다. 두무지가 상복이 아닌 축제 때문에 화려한 옷을 입은 것이 빌미되었다.
두무지는 이난나의 오라버니이자 두무지와 시숙간인 태양신 우투에게 빌자 그의 하소연을 듣고서 잠시 악어의 손과 악어의 발로 변하게 해서 귀신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두무지는 그의 누이인 게쉬티안나에게 여행을 하게 하는데, 그곳에서 귀신들과 이난나에게 발견된다. 그렇게 해서 두무자와 게쉬티안나에게는 새로운 운명이 결정되게 된다.
결말에서는 게쉬티안나와 두무지가 지하세계에 반년씩 살게 되는 것이 운명으로 정해진다. 에데쉬키갈을 찬양하면서 게쉬티안나와 두무지가 각기 일 년의 반년씩 지하세계에 머물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이 실제로 게쉬티안나와 두무지가 반년씩 그곳에서 머물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운명의 결정이 이난나와 에레쉬키갈의 대립, 이난나와 두무지, 이난나와 게쉬티안나 등의 대립적 연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러한 결말이 게쉬티안나와 두무지 사이에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장차 따져볼 문제이나, 결말은 두무지와 게쉬티안나의 지하세계 볼모로 귀결되어 있다.
공간적 대립이 이 신화에서 두드러진다. 공간적 대립은 신들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하늘을 관장하는 신은 엔릴, 난나, 엔키 등이고 그들의 딸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곧 이난나이다. 여기서 하늘 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합쳐진 공간으로 신전과 도시를 합쳐서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공간관념이 다소 모호하더라도 이 공간의 대립은 지하세계이다. 지하세계는 에레휘키갈이 다스리는 곳으로 이난나에 의해서 처음 열려지는 공간이다. 지하세계는 살아있는 사람이 방문하게 되면, 몸에 걸친 모든 것이 벗겨지고 알몸으로 발가벗겨졌다가 그 다음에는 빛바랜 시체로 고기에 걸리는 곳이다. 그곳의 신은 에fp쉬키갈도 있고, 아눈나키라고 하는 재판관도 있음이 확인된다.
이난나와 에레쉬키갈이 대립하는 장면에서 잠시의 지위 역전이 있으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이난나는 높은 지위를 가진 신이기에 지하세계에서도 왕좌를 차지할 수 있으나 그것은 착각이다. 지하세계의 기본적인 관습과 법칙이 있으므로 이난나도 죽은 사람의 절차를 지하세계에서 밟게 마련이다. 지상의 인물이 지하세계에 이르면 불가피하게 주검으로 처리되고 생명을 마감해야 하는 냉혹한 법칙을 보여 줄 따름이다.
이난나는 지하세계의 죽음을 예견하고 하늘과 땅의 신들에게 닌슈부르를 통해서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지하세계 또는 땅 까지 지배하려는 이난나의 야욕에 애해서 온당하게 여기지 않는 신들이 있을 것임을 감안해서 엔릴, 난나, 엔키 등의 세 신을 모두 준비시켜 놓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엔키만이 닌슈부르의 부탁으로 이난나를 살리 방도를 갖추고 도와 준다.
애가시인과 집달리인 쿠르-가르-라와 갈라-투르-라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생명의 풀과 생명의 물을 가지고서 다시금 지하세계를 방문해서 에레쉬키갈의 호의를 얻은 두 인물인 이들로 하여금 이난나를 살리게 한다. 하늘과 땅의 세계에 신들이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수메르신화의 독창적 사고이다. 이계에 생명의 원천이 있다고 하지 않고, 지상의 신비한 힘이 지하세계까지 다가설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게다가 이 신비한 부활을 꾀하는 애가시인과 집달리를 주목해야 마땅하다. 이들은 신의 신복이거나 시종자인데, 매개자인 이들은 신께 경배하고 신의 뜻을 전달하는 사제자의 모습을 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신에게 청배하고 하소연하며 신의 뜻을 전하는 모습이 동일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지하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여기에 일정한 제약이 요청된다. 에레쉬키갈과 아눈나키가 구성하고 있는 질서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리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난나의 탈출을 보상하는 대리자가 필요했다. 지하세계의 귀신과 함께 나온 이난나는 귀신이 요구하는 닌슈부르, 샤라, 루랄 등은 거부한다. 오로지 자신의 뜻을 이행하고 수족 처럼 부리는 시종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자들이 곧 두무지와 게쉬티안나인데, 이 두 신은 두 가지 점에서 선택되었다. 이난나를 애곡하지 않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두무지의 탈출을 게쉬티안나가 도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난나와 지하세계의 귀신에 의해서 두무지와 게쉬티안나가 반년씩 지히세계에서 물렀다고 되어 있다.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의 대립은 이난나와 에쉬키갈에 의해서 구체화 되지만, 이것은 지상의 지배자가 지하세계의 지배자로 전환하고자 하는 부수적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지배자가 이 지상의 권능을 지하세계까지 이룩하려는 매개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신의 대립은 갈등을 넘어서서 조화로운 질서를 구현하는데 있다. 오히려 대립은 이난나와 두무지 및 게쉬티안나 사이에 있다. 지하세계를 탐험한 이난나의 죽음과 부활이 두무지와 게쉬티안나가 지하세계로 가서 반년씩 머무는 질서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지상세계의 권능으로 되살아난 이난나의 부활이 결국 다른 신들의 지하세계 거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 신화는 수메르 세계관의 반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정한 의의가 있으리라고 판단된다. 이난나는 샛별신인데, 샛별신의 자취가 지하세계의 여행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33) 이난나가 서쪽의 밤하늘에 떴다가 동쪽으로 가서 사라졌다가 다음날 저녁에 서쪽 밤하늘에 뜨는 것을 샛별의 주기로 본다면, 샛별의 주기 또는 움직임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곧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것으로 본다.
이 신화의 서두에서 이난나가 떠나간 도시들은 실제로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우룩에서 출발하여 동북쪽을 향해서 티그리스강 쪽으로 갔다가 북쪽으로 올라가 악카드로 도착한다. 그리고 악카드에서 출발해서 동북쪽을 향해서 자그로스 산맥으로 가는 길이 지하세계로 가는 입구로 된다. 이난나가 저승세계에 가면서 떠나는 일곱 개의 도시가 위치와 순서로 본다면 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고 상징적으로 북두칠성의 일곱자리를 따라서 간 것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샛별인 이난나가 서쪽에서 떠서 북두칠성을 지나 동쪽으로 사라지는 관념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하세계 입구에서 대장 문지기 네티와 대화하면서 네가 도데체 누구냐고 묻자, 이난나는 ‘나는 이난나이다. 나는 해가 뜨는 쪽으로 가려 한다’고 대답하자, 다시금 네티가 ‘만일 네가 해가 뜨는 쪽으로 가려 한다면, 너는 ‘돌아 올 수 없는 지하세계’로 가려 하는가?’ 라고 되묻는 구절이 있다. 해가 뜨는 쪽도 동쪽이고, 샛별이 지는 쪽도 동쪽이니 이들 사이의 분간이 있으리라 추정된다. 샛별이 지는 현상을 지하세계의 여행으로 이해하는 관념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으로 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지하의 일곱 대문을 지난 과정을 서쪽 출구를 향한 여행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두무지와 게쉬티안나는 샛별이 만들어낸 결과이나, 신화적으로 수메르의 절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무지는 양치기의 형상화이고, 게쉬티안나는 포도주 여신의 형상화로 이해할 수 있다. 염소떼에게 들판에서 풀을 먹이는데, 여름이 되어 풀이 말랐다가 우기가 되어서 비가 내리면 다시금 풀을 먹일 수 있게 된다. 우기 이후의 건기가 두무지가 지하세계에 갔다가 오는 것이고, 이러한 기후현상의 반영이 신의 잠적으로 나타난다. 아울러서 한여름에 포도주를 따서 포도즙을 내어 통에 저장하여 양조하는 일은 건기에서 시작하여 우기인 겨울이 되면서 끝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두무지와 게쉬티안나는 고대 수메르의 건기와 우기가 번갈아 이루어지는 현상을 반영한 결과이고, 지하세계에 반년씩 가 있도록 조정된 것으로 이해한 신화적 형상이다.
이난나의 이계여행을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샛별의 주기를 구체화할 것이라면 두무지와 게쉬티안나는 건기와 우기의 주기를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상과 지하의 대립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면서 그 것을 구실삼아서 시간적으로 배분하고 신들 사이의 대립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 수메르의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 신화라고 하겠다. 순수한 처녀신으로 묘사하면서도 인간의 성적 풍요를 저버리지 않고 남자를 유혹하는 것처럼 지하세계에서의 행위가 묘사되어 있는 것은 풍요와 성, 성과 죽음, 죽음과 풍요 등이 서로 분간되지 않는 생명의 창조로 이어진다는 관념이 작동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 원리가 자연의 순환과 주기로 형상화되고 있는 점도 간과될 수 없는 측면이다. 인간의 생명탐구가 우주론적으로도 이어지고, 천체 기후적으로도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한 현상이다. 수메르신화가 가지는 복합성을 이러한 각도에서 재음미할 만 하다. 여성신이 지하세계에서 죽음을 체험하고 다시 부활하여 이 우주의 생명력을 주기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여성신이 생명을 키우고 이어갈 수 있는 근원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은 여성의 저승여행 또는 이계여행과 근원적으로 뿌리를 함께 하는 신화로 이해할 수 있다.
「저승을 여행하는 여신의 비교」에 대한 토론문
신동흔(건국대 국문과)
여신의 이계 여행에 얽힌 신화적 의미를 논구한 선생님의 논의를 보면서 새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구전신화 <이자나기사이몬>과 수메르의 <이난나의 지하세계 여행> 신화는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료로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바리공주와 비교하여 논의할 만한 신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신화에 대한 공부가 빈약한 터라서 부끄럽습니다만, 몇 가지 질문을 드려 배움에 보태고자 합니다.
1. 논제를 ‘저승 여행’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바리공주의 저승 여행과 텐츄우아기씨의 천축국 여행, 아난나의 지하세계 여행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지하세계는 죽음과 연관되어 보입니다만, 천축국을 저승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는지요? 그리 생각하신다면 근거를 보충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만약 그것이 ‘이계’이기는 하지만 저승과는 구별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표제가 “이계를 여행하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신 세 신화 속의 저승과 천축국, 지하세계의 공간적 위상에 대하여 (비교논의 대상으로서의 동질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재차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여성신이 여행하는 저승(이계)을 생명력 확인의 공간으로 본 것이,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본원적 속성과 연관된다고 본 것이 논의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성이 낯선 신성공간에서의 ‘생명 시험’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갱신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신적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지요. 충분히 설정 가능한 의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따져 분석해야 할 부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적 능력으로서의 생식(?)을 주요 신화소로 강조하셨는데, <이자나기사이몬>의 텐츄우아기씨의 ‘쌀 점’이 ‘여성이 본래 생태적으로 가지고 있던 능력’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보충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이난나 신화>에도 그와 같은 면모가 있다고 보시고 계신지요? 그렇게 보신다면 그 의미맥락을 풀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난나 신화>에 ‘재생’의 요소는 있지만 생산(출산)의 요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재생이 이 신화의 주요 모티프라고 할 경우에도 ‘여성의 생명력 발현’은 여전히 유효한 해석이 되는지요? 그리 보신다면 이 신화 속에서 재생과 여성성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3. <바리공주>가 생명의 비밀을 알려내고 신들의 부활(?)에 일조한 것을 ‘말명의 신내림’ 또는 ‘말명의 한풀이’로 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견해를 제기하셨습니다. 그 문제제기를 존중하면서 좀 더 진지하게 따져보고 싶습니다. 바리공주가 버림받아 죽은 상태에서 혼신이 돌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혼신(魂神)이 갖은 난관을 거치며 힘들게 저승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색하지 않을는지요? 남자와 결연하여 일곱 아들을 낳는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이 대목은 아무래도 이승의 존재였던 바리공주가 저승 여행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삶을 함께 지니는 존재가 됨으로써, 곧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됨으로써 영혼의 주재자로서의 신격을 부여받는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는 <이난나 신화>에서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난나는 죽었다가 재생하는 과정을 통해 삶(이곳)과 죽음(저곳)을 함께 지니는 신성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다면 이난나 신화에서 그 죽음과 재생을 리얼하게 강조하여 부각하는 데 비하여 <바리공주>에 있어서는 그런 설정 없이 ‘살아있으면서 저승을 경험하고 죽음을 초월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는 (불교적 요소를 포함한) 동양적 사고의 반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선생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첫댓글 감사히 잘 읽었읍니다. 그런데 죽은 영혼을 다시 데려와서 이승에서 다시 태어나게 할수도 있나요? 그것을 잘못하면 죽은자는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아님 영혼을 다시 (예를 들어 가족중 한사람이 죽었을 경우 다시 불러 저희 가족으로 태어나게 할수있나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소중히 모셔갈게요. 좋은 자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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