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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정보』 스크랩 황칠나무의 엄청난 비밀
파낙스 추천 0 조회 196 17.05.09 22:1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노란옻나무..

황칠나무의 엄청난 비밀




그라비올라, 삼백초, 명월초에 이어서 네번째 황칠나무의 효능과 음용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노란옻나무라고도 불리우는데 군식분재를 만들고 있는 내게 옻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퍼온 글입니다. 어지럽게 가져오다보니 퍼온 곳도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잘 읽어 보세요~



황칠나무
Korean Dendropanax , 黃漆, 金漆 , チョウセンカクレミノ朝鮮?れ蓑


학명
Dendropanax morbiferus 


나무
두릅나무과


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산 가득한 황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 아름드리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 잘 익은 치자나무 어찌 이와 견줄소냐


다산 정약용 선생의 〈황칠(黃漆)〉이란 시를 송재소 교수가 번역한 일부 내용이다.각주 우리나라의 전통

칠은 옻나무 진에서 얻어지는 옻으로 짙은 적갈색을 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져 버린

칠공예의 한 기법으로 황금빛이 나는 황칠이 있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바로

황칠나무에서 얻어진다. 일부에서는 황금으로 도금한 것 같다 하여 아예 금칠(金漆)이라 부르기도 한다.

황칠나무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本紀)〉 ‘보장왕 4년(645) 조’에 등장한다. 이해 봄,

당 태종은 명장 이세적을 선봉으로 삼아 직접 요동성을 공격하여 12일 만에 함락시킨다. 이 작전에 “백제는

금 옻칠한 갑옷(金?鎧)을 바치고 군사를 파견했다. 태종이 이세적과 만날 때 갑옷의 광채가 햇빛에 번쩍

거렸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금 옻칠은 바로 황칠을 말한다. 실증자료도 있다. 2007년 경주 황남동 통일신라

시대 유적지에서 나온 항아리 밑바닥의 유기물 덩어리를 분석하였더니 황칠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황칠은 중국 쪽에 더 잘 알려졌다. 《계림지(鷄林志)》라는 고문헌에 보면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나고

본래 백제에서 산출된다. 절강성 사람들은 신라칠이라고 부른다”라고 하였으며, 《해동역사(海東繹史)》

각주에는 “백제 서남해에서 나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라고 하여

삼국시대부터 귀중한 특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황칠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던 발해는 서기 777년에

사신 사도몽을 보내 일본 황칠을 수입하기도 했다. 고려에 들어서는 원나라에서 황칠을 보내달라는 요구가

여러 번 있었다. 원종 12년(1271)에 왕은 “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 때 모두

잃어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역적들이 왕래하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틈을 보아서 가져다가 보내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그 역즙(瀝汁)을 만드는 장인은

황칠이 산출되는 지방에서 징발하여 보내겠다”라고 하였으며, 이어서 충렬왕 2년(1276)과 8년(1282)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가져다주었다. 조선왕조 때는 정조 18년(1794)에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 “완도의 황칠은 근년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아전들의 농간이 극심하니 엄격히 규제하여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황칠과 관련된 기록은 잠깐 훑어보아도 이와 같이 수없이 나온다. 불과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장 품질 좋은 황칠 생산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오면서 안타깝게도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심기를 꺼려 하여 아예 맥이 끊겨 버렸다. 최근에 들어서야 전통 황칠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황칠나무는 남부 해안 및 섬 지방에서 자라는 늘푸른 넓은 잎 큰 나무로 키가 15미터에 이른다. 껍질은 갈라

지지 않아 매끄럽고 어린 가지는 초록빛이며 윤기가 난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처음에는 3~5개로

갈라지나 나이를 먹으면서 긴 타원형에 톱니가 없는 보통 모양의 잎만 남는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6월에

흰빛으로 피며, 타원형의 열매는 30~40여 개씩 공처럼 모여 달리고 10월에 검게 익는다. 황칠나무에는

우리나라 천여 종의 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수평수지구(水平樹脂溝)’라는 세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황칠은 음력 6월쯤 나무줄기에 칼로 금을 그어서 채취한다. 매우 적은 양이 나오며 처음에는 우윳빛이나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 황색이 된다. 황칠을 하면 금빛을 띠고 있으면서도 투명하여 바탕의 나뭇결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금빛을 더욱 강하게 내기 위하여 먼저 치자 물을 올린 다음 황칠로 마감하기도 한다.


Daum 백과사전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1XXXXX00124




황칠나무 통해 고부가 벌꿀 수확 가능

국립산림과학원, 도료-식,약용-밀원 자원 등 다목적 소득 예상


국립산림과학원(원장 윤영균)은 밀원이 부족한 한여름에 양봉 농가의 시름을 해결해줄 황칠나무의 밀원적

특성을 구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 벌꿀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아까시나무가 노화 등으로 쇠퇴해

2003년 3만352톤이던 벌꿀 생산량이 2014년 2만1,500톤으로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대체 밀원을 발굴한

것이다. 황칠나무는 뚜렷한 밀원이 없는 7~8월 무밀기에 개화한다. 개화량이 많아 꿀벌 선호도가 매우 높다.

꽃 하나당 화밀분비량은 3.7㎕로 아까시나무 2.2㎕보다 1.7배 이상 많아 밀원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뿐 아니라 황칠나무는 천연도료 및 식 약용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전통도료 황칠은 삼국시대부터 황제 국왕 제왕의 갑옷, 투구, 기타 금속장신구 등의

황금색을 발하는 진귀한 도료로 이용돼 왔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도료인 황칠은 다른 천연도료는 물론

수많은 인공도료에서도 발현하기 힘든 수려한 황금빛 색감과 안식향이라는 천연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경 안정, 우울증 치료, 전립선비대증 치료, 황산화활성, 항암활성 등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세현 특용자원연구과장은 “화밀분비량이 많은 황칠나무 품종이 육성, 보급되면 황칠나무를

이용한 밀원자원 및 천연도료, 식 약용자원 등으로 소득다원화가 가능해 재배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은 재배 농가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기 위해 대체 밀원 개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황칠나무 꽃 꿀>



월경불순을 다스리는 황칠나무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는 두릅나무과(오갈피나무과) 황칠나무속으로 동아시아, 말레이

반도,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 약 75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 일본, 중국, 대만에 분포 아열대 활엽 상록수로
우리나라에는 1종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남쪽 및 제주도의 바닷가와 섬의 그늘지고 습한 늘푸른

활엽수림 또는 산비탈의 관목림 속에 자라는 늘 푸른 큰기나무이다.
키는 15미터 가량 자란다. 잎은 표면에 털이 없고 매끈하며 어긋나고 달걀형~타원형으로 잎몸이 전혀 갈라

지지 않거나 3~5갈래로 손가락처럼 깊게 갈라지는 것도 있으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오래된 노거목의

잎들은 보통 둥근 형태인데 반해서 새로 나온 잎들이 갈라지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여름에 가지 끝의

산형꽃차례에 자잘한 황록색 꽃이 모여 핀다. 핵과 열매는 거의 타원형이며 5개의 모서리가 있으며 각

모서리에는 또 세로의 모서리가 3개 있다. 검은색으로 익는다. 개화기는 6~8월이고 결실기는 10월이다.

꽃은 양성화이고 꿀샘이 있으며 꽃자루는 길이 5~10mm이고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끌이 5갈래이며 꽃잎도

5장이다. 수술은 5개이고 씨방은 5실이며, 암술머리는 5갈래이다. 우리나라 황칠나무의 분포도를 보면 제주도,

전남 완도, 대흑산도, 거문도, 외나로도, 전북 어청도, 경남일대 바닷가 등에서 자라고 있다. 황칠나무라는

뜻의 학명은 나무인삼이라는 뜻(Dendro-panax Morbifera Nakai)을 가지고 있다.


진통작용, 혈액순환촉진작용, 풍사를 몰아내는데, 습사를 없애는데, 근육과 힘줄을 푸는데, 통을 완화

시키는데, 중풍, 사지마비동통, 반신 불수, 관절염, 염좌상, 안식향, 풍습비통, 편두통, 황금색의 천연 도료..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황칠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액체가 마치 옻나무의 옻칠처럼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황칠나무를 노란옻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잎이마치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목(鴨脚木) 또는 압각판(鴨脚板), 압장시(鴨掌柴)라고도 부르며,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황금색이 나는 칠을 옛날에 가구에 칠하였는데 번쩍거리는

황금색의 이 도료(塗料)는 귀중한 칠 재료로 사용되어 온 나무이다.


황칠나무의 다른이름은 풍하리(楓荷梨), 노란옻나무 등으로 부른다.


[채취]


황칠나무의 뿌리 및 줄기를 가을 또는 겨울에 채취한다.


[성미]


<강서초약>: "맛은 달며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


풍사(風邪)를 몰아내고 습사(濕邪)를 없애며 혈맥을 잘 통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풍습 비통, 반신 불수,

편두통, 월경 불순을 치료한다.

1, <강서초약>: "풍사를 몰아내고 습사를 없애며 월경을 조절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

2, <절강민간상용초약>: "풍사를 몰아내고 습사를 없애며 근육과 힘줄을 풀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며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하루 20~40그램을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또는 술에 담가서 복용한다.


[주의사항]


<강서, 중초약학>: "임신부는 금기이다."


황칠나무에 대해 안덕균의 <한국본초도감>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풍하리(楓荷梨)


두릅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의 뿌리와 가지이다.

성미: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 거풍습(祛風濕), 활혈맥(活血脈)

해설: ① 풍습성으로 인한 반신불수, 사지마비동통에 유효하며,

        ② 생리불순에는 이 약물 20그램에 물 500ml를 넣고 달여서 복용한다.]


황칠나무와 비슷한 변종에 대해서 중국에서 펴낸 <중국본초도록>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백반풍하(白半楓荷)  


기원: 오갈피나무과(두릅나무과;Araliaceae)식물인 변엽수삼[變葉樹參: Dendropanax proteus (Champ.)

Benth.]의 뿌리이다.

형태: 소교목이다. 잎은 단엽(單葉)으로 어긋나며 혁질(革質) 또는 지질(紙質)이고 선점(腺點)은 없으며

잎의 형태는 변이가 많아서  분열하지 않는 잎은 타원형(?圓形)이거나 타원상(?圓狀) 피침형(披針形) 내지

선상(線狀) 피침형(披針形)이며, 분열하는 잎은 도삼각형(倒三角形)이고 2∼3갈래로 얕게 갈라지며 양면에는

털이 없고 기출맥(基出脈)은 3개이며 뚜렷하지 않을때도 있다. 화서(花序)는 산형화서(傘形花序)로 단생

(單生)하거나 2∼3개가 취생(聚生)하며 꽃잎은 5장이고, 암술대는 합생(合生)하여 주상(柱狀)을 이룬다.

열매는 구형(球形)으로 세로로 된 능선이 없고 직경은 5∼6mm이다. 
 
분포: 산골짜기나 시냇가의 숲속 또는 산비탈 길가에서 자란다. 중국의 화남(華南) 및 호남(湖南), 복건(福建)

에 분포한다.


채취 및 제법: 가을과 겨울철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효능: 거풍제습(祛風除濕), 서근활혈(舒筋活血).

주치: 풍습비통(風濕痺痛), 반신불수(半身不垂), 염좌상(捻挫傷), 편두통(偏頭痛).

용량: 하루 15∼30g을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참고 문헌: <광서약용식물명록(廣西藥用植物名錄)>, 331면.]


황칠나무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풍습비통(風濕痺痛)


황칠나무뿌리, 구등근(鉤藤根), 각 37.5그램, 우슬초뿌리, 계지(桂枝) 각 12그램, 홍당(紅糖), 미주(迷酒) 등을

섞어 달여서 차처럼 만들어 마신다. 연속 3일 복용하고 2일 중지한다. 이것을 1치료 기간으로 하여 5치료

기간을 계속한다. [강서초약(江西草藥)]


2, 진상(陳傷), 풍습성 관절염


황칠나무뿌리, 호장근(虎杖根), 홍총목근(紅?木根: 서향나무의 뿌리), 발려근(??根: 청미래덩굴뿌리)

각 600그램, 목통(木通: 으름덩굴줄기) 300그램을 소주 3600그램에 담가 7일 동안 두면 풍습주(風濕酒)가

된다.  이것을 하루에 한 작은 술잔씩 복용한다. [강서민간상용초약(江西民間常用草藥)]


3, 편탄(偏?: 사지마비, 중풍)


황칠나무뿌리 20~40그램을 물로 달여 3개월 동안 계속 복용한다. [강서민간상용초약(江西民間常用草藥)]


4, 편두통


황칠나무 줄기 75그램을 물로 달여서 찌꺼기를 버린 후 계란 한 개를 넣고 끓여서 즙과 계란을 복용한다.

[강서초약(江西草藥)]


5, 월경 불순


황칠나무 뿌리 19그램을 술로 볶은 후 달여서 1일 1컵씩 빈속에 복용한다. [강서초약(江西草藥)]

황칠나무는 종자로도 번식이 되며 꺽꽂이로도 번식되므로 잘 가꾸기만 하면 용도가 매우 다양한 나무로써

조경수, 공원수, 약용 및 천연도료 등 그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라남도 완도 정자리의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u.)는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황칠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의 학술적 가치는 물론 황칠나무를

대표하는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효능이 뛰어나고 귀해 주로 왕실이나 황실에서 사용해 왔던 전통도료 황칠과

관련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황칠도료의 우수성에 대해 백제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기록이 있으며, 신들린

나무로 인식해 마을 가까이 위치한 유용자원인데도 보존해 온 역사적 및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하여 2007년

현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 나무의 서식지는 정확히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산115-7번지, 전라남도 기념물 제 154호, 수고 15m,

밑동둘레 1.8m, 흉고둘레 북쪽가지 0.9m, 남쪽가지 1.24m, 문화재보호구역 1필지 1256㎡(나무주위 반경 20m)

이다.

황칠나무의 향은 안식향으로 향기가 좋아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와 동시에 아름다운 황금빛 천연 투명

도료인 황칠을 많이 심고 가꾸어 옛정신을 되살리고 냄새도 역겹고 인체에 해로운 화학 페인트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간절히 고대해 본다.



 

남해안 황칠나무
 
두릅나무과 식물은 세계적으로 80여속 90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8속 14종 5변종 1품종으로

모두 20종류가 자생하고 있다. 그 중 황칠나무속(Dendropanax)은 동아시아속으로 3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황칠나무 1종이 자생하고 있다. 황칠나무는 1910년 Leveille에 의해 Dendropanax morbifera로

명명되었으며, Nakai는 제주도 및 완도 식물조사 보고서에서 이곳에 자생하고 있는 황칠나무를 일본에 자생

하는 Gilibertila tripida와 동일하게 취급하였으나, 그 후 1927년 조선 산림식물편에서 Textoria morbifera로

속을 달리 명명하고, 제주도, 완도, 보길도, 주도, 대흑산도에 분포하다고 보고하였다.

한반도의 식물상과 식생에 관한보고는 많으나 상록활엽수에 관한 보고는 Uyeki의「조선식물대」와 1941년「조선 상록활엽수 북한대에 관하여」에서 시작되었으며,
정태현은 황칠나무를 Nakai가 명명한 학명으로 한국식물도감 상권에 수록하고 제주도, 완도, 대흑산도,

어청도, 경남의 도서지역에 자생한다고 보고하였다.
임형탁은 식물지사학적으로 볼 때 제 3기 이후 빙기와 간빙기의 주기적 교대에 의한 한랭한 시대와 온난한

시대가 되풀이 되면서 그에 따른 종 이동으로 인하여 제주도와 Tokara해협 이남의 일본난대, 아열대 및

타이완에서 황칠나무가 분화되어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서해안 및 도서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최근의 황칠나무 분포에 관한 연구는 어청도, 거제도 갈곶도, 완도, 보길도, 거문도, 해남, 주도, 홍도,

외연열도, 제주도, 고흥 등에서 보고되고 있다. 또한 Yang은 남부지역의 상록활엽수는 울릉도, 거제도,

남해도, 완도, 진도, 제주도, 대흑산도 등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89종이 분포하고 한랭지수 -15℃선의

해안도서 지역이 대체로 그 분포의 북한계라고 밝혔다.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황칠은 옛부터 진귀한 도료로 이용되어 왔으며, 그 도료적 가치가 현대의 어떠한

도료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다 최근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고급공예품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서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농촌인구의 감소 및 농업채산성의

악화로 농한지, 유휴지 및 한계경작지의 면적이 늘어감에 따라서 농가에서는 다양한 대체 작목들에 대한

수익성 조사와 특산 수종에 대한 관심을 갖는 등 자구의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분야의 하나는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자생식물을

활용하여 우리 기후풍토에 알맞은 식물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 중에는 그 특수성을 비롯한 품질의 우수성이 매우 뛰어남은 물론 세계적인

희귀성과 함께 개발 가능성이 높은 식물들이 많으며, 이들 이용 가능한 유용 식물자원을 검색하고 그의

용도 개발을 위하여 그 식물이 갖는 식용, 약용, 도료, 기호식품 등의 다양한 가치를 개발하는 것은 자원의

합리적인 관리 및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특산식물인 황칠나무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이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황칠나무의 천연도료적 가치의 우수성은 재인식되고 있으나 이를 산업적으로 육성하기 위하여서는 무엇

보다도 먼저 황칠의 충분한 물량 확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즉, 수요의 급격한 증가에 대비한 소득 작목으로

개발하기 위하여서는 가장 먼저 칠액 생산량을 증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서는 우선 황칠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을 면밀히 파악하여야 하고 다음으로 황칠생산량이 많은

황칠나무 집단과 우량개체를 선발하여 이들에 대한 외부 형태적특성, 유전인자들을 파악하고 나아가 황칠분비

촉진 방법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황칠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조사 결과에 의하면 황칠나무 천연분포지는 남부 서해안의 일부 도서지방 및

제주도 지역의 남서?남동향 및 북동향의 비옥하고 수분이 많은 계곡의 일부지역에 국소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나 생육범위가 제한적이며 조림적지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황칠나무는 우리나라 특산

수종으로 우리나라 해안지방과 도서지역에서 재배지를 넓혀간다면 세계시장을 겨냥한 소득작목으로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황칠나무 특성


황칠나무는 난대상록활엽수이고 우리나라 전통 도료자원 및 조경 수종의 하나로 남?서 해안 및 일부 도서

지역에 제한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우리나라 특산수종이다. 황칠나무의 어린가지는 털이 없고 윤택이 나며,

잎은 호생하고 길이는 8~10㎝로 양면에 털이 없다.
주로 성숙지의 잎은 난형이고 가장자리가 분열되지 않지만 맹아지나 미성숙지는 장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3~5개로 크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엽병의 길이는 3~5㎝로 털이 없고 뒷면이 평평하거나 홈이 파여 있다.
꽃은 산형화서 또는 복합산형화서로서 7~9월에 황백색으로 가지끝에 달리며 화경의 길이는 3~5㎝, 소화경의

길이는 5~10㎜정도이다. 양성화인 꽃은 꽃잎과 수술이 각각 5개이며 꽃받침은 종형 또는 도란형으로 끝이

5개로 갈라진다.
화반에는 밀선이 있고 자방은 5실, 암술대는 5개로서 윗부분까지 합쳐져 있다. 열매는 장과인데 타원형으로서

8~11㎜정도이고 11~12월에 검정색으로 성숙한다.



황칠나무 이용특성


전통도료 황칠은 삼국시대부터 황제, 국왕, 제왕의 갑옷, 투구, 기타 금속장신구의 황금색을 발하는 진귀한

도료로 이용되어 왔으며, 고려시대에 쓰여진 중국의 鷄林類事, 鷄林志, 海東繹史에 우리나라 전남 도서지방

에서 나는 황칠의 산지, 채취시기, 사용목적 등이 기록된 것으로 봐서 그 당시 중국에서도 황칠에 대하여

상당한 인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황금색 색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온 황칠은 다른 천연도료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의

수많은 인공도료에서 발현하기 힘든 황금빛 수려한 색감과 안식향이라는 천연향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도료이다.
이러한 귀중한 문화유산인 황칠에 대하여는 전통 칠장인들도 지식과 정보가 전혀없고, 황칠공예 장인도 현존

하지 않고 있어 사실 그 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최근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고급공예품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서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으며, 황금빛의 수려한 색깔을

발현하며, 향기까지 더불어 지닌 황칠 재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 특산식물인 황칠나무 수지액의 특성과 천연도료적 가치의

우수성을 재인식시키며, 이를 산업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1) 중국의 기록


중국 당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金漆을 구하여 투구ㆍ갑옷 등을 황금빛으로 치장(冊俯元龜, 당태종 정관

19년 백제 의자왕, 서기 645년) 명나라때는 도료 및 약용으로도 사용하였다고 기록(本草綱目, 1590년)

고려숙중(1095-1105)때 송나라 사신으로 온 손목(孫穆)이 기록한 鷄林類事에 ?漆日黃漆?이라고 기록,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난다, 본래 백제에서 산출 되는데, 신라칠이라고 부른다’고 소개 고려도경(高麗圖經) 인종

1년(1123년)에 황칠이 나주의 조공품이라고 소개
 
(2) 삼국시대의 기록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황칠은 백제 서남해에 나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 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 하여 삼국시대부터 귀중한 특산물임을 알수 있다.
 
(3) 고려시대의 기록


고려 원종 12년(1271년) 왕은‘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때 모두 잃어 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일본왜적들이 왕래하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틈을 보아서

가져다가 보내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그 역즙(?汁)을 만드는 장인은 황칠이 산출

되는 지방에서 징발하여 보내겠다’하였으며, 고려 충렬왕 2년(1276년)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보냄.
 
(4) 조선시대의 기록


조선왕조 정조 18년(1794년)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 ‘완도의 황칠의 산출은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과외로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규제하여

영원히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라고 기록.




 


조선후기에 小盤항목 중 ‘통영의 紋木盤으로서 황칠한 것이 명품 이라’고 소개, 또한, 부채에 황칠을 칠하여

사용하였으며,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목물이나 화선지 등에도 사용하였다. 
그 외, 삼국사기, 고려사절요 등 여러 문헌자료에 기록
 
(5) 최근의 기록


寺田(1993)는 Dendropanax trifidus는 황칠 수액을 채취가 가능하나, Acantho-panax sciadophylloides는

수액이 채취되지 않았다고 보고 하였고.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1928년)에서 ‘황칠의 성분 및 함유하는

정유의 성상에 대한 연구결과 소개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중앙시험소(1937년)에서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

라는 논문을 보고하였다.
 
홍사준교수(1972년) “백제산업” 이라는 논고에서 황칠을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 소개하였으며,

문화재 위원 이종석(1979년)은 고고미술에 기재한 “조선칠의 특성에 관하여” 라는 논고에서 문헌상의 황칠을

더 구체적으로 소개 하였다.
 
동국대 정명호교수와 옻칠 연구가 홍동화(1988년) 등이 황칠나무 조사를 위한 현장답사 등을 실시하여

완도에서 황칠나무의 수액을 채취 확인하였으며, 데라다(寺田, 1988년)는 한국 황칠의 주성분은 세스퀴테르펜

이라고 보고하였다.
 
황칠의 도료적 특성

 
황칠나무의 수지액인 황칠은 투명한 황금빛의 천연도료로 목공예품의 가치를 높이는데 우수한 재료이다.
옛날에는 주로 전투용갑옷, 산문갑 등 궁중의 귀중품을 만드는데 이용하였으나 현재에는 그 활용도가 높아

목공예는 물론 금속, 가죽, 종이 등의 다양한 공예분야의 도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황칠에는 정유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옛날에는 안식향이라고 불러왔으며 천연향수나 약용으로

서도 가치가 매우 크다.
 
황칠의 주요성분


황칠의 주요 구성 성분은 크게 나누어 황금색의 도막을 형성하는 도료성분인 비휘발성분과 방향성성분이

약 77%를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수분과 고형분으로 되어 있다. 또한 황칠을 이루고 있는 주요 성분으로는

α-Cubebene, β-Elemene, β-Gurjunene, Germacrene D, Elixene, β-Cubebene, β-Selinene, γ-Selinene,

α-Muurolene, γ-Cadinene, δ-Cadinene,
Juniper camphor 등과 같은 sesquiterpenoid 화합물과 steroid인 β-sitosterol 등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스퀴테르펜류의 β-Cubebene(30.1%), γ-Selinene(,16.1%), δ-Cadinene (13.5%)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었다.

 

 

1. 정혈 작용
 
만병의 원인은 피의 흐름이 원활치 못한 탓입니다.
황칠은 혈액 내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은 감소시키는 반면,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은 증가시키는 등
피를 맑게 하여 혈류ㆍ혈압ㆍ동맥ㆍ생리 기능을 증진시키고,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간기능 개선 


간은 해독, 영양소의 대사, 저장 등의 작용을 하는, 생명 유지에 불가결한 장기입니다.
황칠은 간의 기능을 증진하여 숙취 해소, 피로 회복, 각종 해독작용,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을 때 도움이

됩니다.
 
3. 항산화 작용


호흡으로 들여 마신 산소 중 일부분은 활성산소라고 하는 유독물질로 전환되어 면역체계를 파괴하고
노화 및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황칠은 항산화 작용이 있어 노화 방지, 피부 미백, 주름 방지 기능을

증진시키고,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경조직(뼈와 치아)재생


황칠은 뼈와 치아의 기능을 증진시켜 충치ㆍ치주질환ㆍ골다공증ㆍ관절염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조골세포(뼈를 만드는 세포) 증식을 도와 어린이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5. 면역력 증진


면역은 침입한 유해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방어작용입니다.
황칠은 면역세포 생육을 촉진시켜 각종 질병을 야기하는 원인들에 대한 조기 면역체계 및 생체방어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신경 안정


황칠은 신경 안정 효능이 있어서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잠을 편히 못자거나, 짜증ㆍ스트레스가 심한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안식향이 나오므로 우울증 환자에게 좋다고 전해진다.
 
7. 항균 작용


식중독 원인균인 황색포도상구균, 클로스트리듐 퍼프린젠스, 비브리오균 등의 생육을 저해하는 효과가 확인

됐다

8. 암세포 증식 억제


실험 결과 간암ㆍ폐암ㆍ위암ㆍ유방암ㆍ백혈병 세포의 증식 억제 효과가 있어서 암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무인삼`이라는 뜻의 학명을 가진 황칠나무.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자취를 감추었다.
 
황칠의 주성분은 세쓰키테르펜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
황칠 수지액은 거풍습(풍-신경마비, 습-신경통을 제하고) 및 활혈(혈액순환)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생리 불순에도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근래에는 간기능과 암예방, 중풍 등의 황칠나무 진액효과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새순이 나올 쯤, 덖음차로 마셔도 좋은 황칠차


1, 가지와 잎을 착착이 썬다.
2, 깨끗이 씻는다.
3, 약재에 시럽을 만들어 넣어준다.
4, 10개월간 숙성 시킨다.
5, 10개월 후 약재을 건진 후 원액은 2차 발효한다.
6, 2-3년 후 음료로 복용하면 약성이 좋다.

 

 

황칠(黃漆)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u.)


학명은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한때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했다는 제주도는 도민들 대부분이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서귀포시 상효동의 자생군락지)에만 남아 있다.

황칠은 옻칠처럼 나무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받아낸 수액을 정제해 만드는 도료이다. 성질이 맑고 투명하여

장식물이 가진 본연의 재질을 살려주면서도 스스로 화려한 황금 빛을 내뿜는다. 그 빛은 매혹적이나 천박하지

않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 황칠나무에서 채취하는 황칠액에는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있다.

아름다운 '황금빛을 내는 금빛 수액'으로 천연투명도료로서 매우 귀하게 사용된다.
그 향은 ‘베타큐버빈’이라는 방향성 정유성분인 '안식향'으로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맑게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200도를 견뎌내는 내열성과 내구성, 내습성, 빛깔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으며,자외선 흡수도 뛰어

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황칠은 예전엔 도료로서의 가치를 우선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원료 물질로서의 가치도 중요시 되고있다. 또한 항산화성이 뛰어난 생약성분을 가지고 있어

여러가지 치료제로도 한창 개발중이다.

 

황칠나무의 역사


황칠나무는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 수종이다.

삼국이 정립한 이래, 백제는 활발한 무역을 통하여 인삼과 황칠, 모시저포를 중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하였다.

(홍사준 1972) 따라서 백제에서 산출되는 황칠은 이미 인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백제 무왕 25년(627),

당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다.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조) 당시 당고조는 618년에 일반 백성들이 의복을 적황(赤黃)으로 염색하는 것을

금지 시킨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빛으로 우러나는 갑옷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당태종도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신당서, 동이 고려전)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금칠에 대한 중국인의 인상은 아주 깊었다. 당나라 때 두우(枓祐)는 『통전(通典)』에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 즉 제주도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후 ≪당서≫를 비롯한 숱한 기록들이 금칠에 주목하였고,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등 황실과

이 땅에 온 많은 사신들이 황칠을 요청했던 것도 신비로운 금칠나무였기 때문이었다.

 

 

황칠나무의 정혈 효과


약용으로서의 가치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안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

하였는데, 황칠은 상쾌한 향기를 방출하고 쓴맛을 나타낸다.

주 성분은 세쓰키테르펜(Sesquiterpene)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

1990년 농진회에서 펴낸 한국의 자생식물(목본류 267p.)에 의하면 황칠 수지액은 거풍습(풍-신경마비, 습-

신경통을 제하고) 및 활혈(혈액순환)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황칠은 민간에서 위장, 생리불순 등의

약용으로도 쓰이고 있다. 또한 염료분야에서는 황금빛 천연염색에 모기 등 각종 해충을 퇴치하는 독특한 향을

지닌 의류제품을 상품화 시킬 수 있어 염료사업에 밝은 전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황백 전남대 교수(생명과학부)는 “황칠은 진정효과가 뛰어나 향수, 방향성 약품개발과 방부·방음제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전남 함평의 유모(乳母)사의 공락 스님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고 오랜 황칠나무

연구자이자 가장 오래 재배해 오신 분으로 알려 졌는데 공락스님께서 황칠을 합죽선 약 60개를 칠해 나누어

주신적이 있었는데 중풍에 쓰러진 사람이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서 합죽선 요청이

쇄도한 경우도 있었다. 이경우는 황칠의 안식향 때문으로 여겨진다.

황칠은 금칠이란 도료적 특성, 안식향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다음과 같은 기능성 약리 효과가 있습니다.


황칠이 함유하고 있는 각 성분 별 약리 효과


* 알파-Cubebene : 간질,신경장애,불면증,실신,히스테리,편두통,우울증 치료에 쓰임
* 베타-Elemene : 중앙신경계와 호르몬계를 자극하여 남성 호르몬계와 우울증 치료에 사용
* 베타 -Selinene : 식욕자극제,구토와 설사, 임신중의 구토에 효과
* 알파-Muurolene : 소화기 질환,강장제,발한제 감정완화와 진정제에 쓰임
* Germacrene D : 신경통,얼경불순,두통,혈뇨치료,및 지혈
* 베타-Sitosterol :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시토닐" 현대약품)의 주요성분


1. 간세포 보호 효과 (특허출원:2002-18063호)
간세포 보호효과를 갖는 황칠 추출물,분획물 및 이들을 함유한 약학 조성물


2. 골조송증 및 치주 질환 (특허출원: 2002-15621)
경 조직 재생 및 증식효과를 가지는 황칠 추출물, 황칠 분획물 및 이를 함유한 약학 조성물 경 조직을 재생

하고 현재까지 연구되어 온 것 (염증치유인대 세포증식, 치은 세포 증식)과 달리 조골세포의 증식을 증가 시켜

치료하는 물질.


3. 항산화 효과
천연 항산화제로 사용되는 a-Tocopherol과 같은 항산화 효과(노화방지)를 나타냄.


4. 번열제거, 술해독, 안질 및 황달치료, 화상치료, 나병 치료에 효과
이시진, 본초강목, 중국 문광 도서


5. 안식향 효과
갑작스런 가슴아픔(卒然心痛), 어린이 복통(小兒腹痛), 어린이 경기(小兒驚邪), 관절통(歷節風痛)
이시진, 본초강목, 중국 문광 도서


이러한 효과로 인해 안식향은 많은 약재로서도 사용되었는데 명나라때 주숙은 그의 저서《보제방》에서

안식향으로 만들 수 있는 약재를 무려 100여 가지가 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숙종 때에 이미

안식향으로 ‘지보단(至寶丹)’을 만들었는데, 이 약재는 열을 내리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세가지 보약인

온병삼보(溫病三寶): 우황안궁환, 지보단, 자설단)에 들 정도이다.

이 약재는 효과가 현저하고 약품이 귀중하여 ‘지극한 보배(지보 : 至寶)로 불리게 되었는데,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데 사용되었고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들어가 답답한 경우나 어린 아이의 경기,

중풍, 더위 먹은데 효과가 크다 하였다. (진사문(陳師文),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


이처럼 안식향은 향 뿐만이 아니라 약재로서도 중요했기 때문에 왕실의 건강을 담당하는 전의감이나 백성의

병을 돌보는 혜민서에서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약재였다.






약초연구가 전동명의 치료제로서의 황칠나무


http://cafe.daum.net/namu8386/4iWP/85  (글/ 약초연구가 전동명 )


혈액순환촉진 관절염 편두통 중풍에 효험


진통작용, 염좌상, 안식향, 황금색의 천연 도료, 풍습비통, 반신 불수, 혈액순환촉진, 중풍, 편두통,

월경불순, 관절염,


사지마비 동통에 효험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는 두릅나무과(오갈피나무과) 황칠나무속으로 동아시아, 말레이

반도,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 약 75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종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남쪽 및 제주도의 바닷가와 섬의 그늘지고 습한 늘푸른 활엽수림 또는 산비탈의 관목림 속에 자라는

늘 푸른 큰키나무이다. 키는 15미터 가량 자란다. 잎은 표면에 털이 없고 매끈하며 어긋나고 달걀형~타원형

으로 잎몸이 전혀 갈라지지 않거나 3~5갈래로 손가락처럼 깊게 갈라지는 것도 있으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오래된 노거목의 잎들은 보통 둥근 형태인데 반해서 새로 나온 잎들이 갈라지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여름에 가지 끝의 산형꽃차례에 자잘한 황록색 꽃이 모여 핀다.
핵과 열매는 거의 타원형이며 5개의 모서리가 있으며 각 모서리에는 또 세로의 모서리가 3개 있다. 검은색으로

익는다. 개화기는 6~8월이고 결실기는 10월이다. 꽃은 양성화이고 꿀샘이 있으며 꽃자루는 길이 5~10mm이고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끌이 5갈래이며 꽃잎도 5장이다. 수술은 5개, 씨방은 5실이며, 암술머리는 5갈래이다.

우리나라 황칠나무의 분포도를 보면 제주도, 전남 완도, 대흑산도, 거문도, 외나로도, 전북 어청도, 경남일대

바닷가 등에서 자라고 있다.


황칠나무라는 뜻의 학명은 <나무인삼>이라는 뜻(Dendro-panax Morbifera Nakai)을 가지고 있다.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황칠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액체가 마치 옻나무의 옻칠처럼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황칠나무를 <노란옻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잎이 마치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목(鴨脚木) 또는 압각판(鴨脚板), 압장시(鴨掌柴)라고도 부르며,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황금색이 나는 칠을 옛날에 가구에 칠하였는데 번쩍거리는 황금색의 이 도료(塗料)는 귀중한 칠 재료로

사용되어 온 나무이다.
황칠나무의 다른이름은 풍하리(楓荷梨, 편하풍:偏荷楓, 압각목:鴨脚木, 이하풍:梨荷楓, 반하풍:半荷楓:

강서초약), 이풍도(梨楓桃, 목하풍:木荷楓, 오가피:五加皮, 풍기수:?氣樹, 압각판:鴨脚板, 반변풍:半邊楓,

변하풍:邊荷楓, 압장시:鴨掌柴, 백산계골:白山鷄骨, 금계지:金鷄趾: 절강민간상용초약), 수삼(樹參: 중약대

사전), 황칠나무, 노란옻나무 등으로 부른다.


《茶山詩文集》권4, 詩 黃漆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가고 〔貢苞年年輸匠作〕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 〔胥吏徵求奸莫防〕
지방민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土人指樹僞惡木〕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每夜村斧潛來?〕


이 시는 당시 명나라의 공물로 중요시 되었던 황칠 때문에 백성의 수난을 적은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은 공물 수탈을 피하고자 나무를 베어내고 또 있는 곳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와 완도, 보길도 등에 있던 황칠나무는 서서히 잊혀져 갔던 것이다.


고문서에 등장하는 황칠



고전에 나오는 황칠의 쓰임

 

황칠은 가구의 도료로 쓰이는데,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궁중에서 가구, 갑옷, 투구에 쓰였구 지금에 와서는

주로 나무목재류의 칠에 쓰입니다. (찻잔 받침. 탁자. 나무 예술품, 도자기 등 많은 곳에 쓰임니다.)

물명고(物名攷)(순조 때 유희) : ‘기름같이 맑은 것은 수안식향으로 삼고, 말려서 덩어리 된 것은 건 안식향

으로 삼는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안식향은 사람을 편하게 하고 여러 종류의 역기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어, 이를

향으로 피우면 피로가 풀리고 남성에게는 신장을 강화시켜주고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등을 해소해주며

갑작스런 심장병이나 어린이 복통, 어린이가 놀랐을 때, 관절통에 효과가 있다’

보제방(普濟方) : 치루에 효능이 있다’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濟局方)(진사문) :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데 사용 되며,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들어가 답답한 경우나 어린아이의 경기, 중풍, 더위 먹은 데 효과가 크다.’

의방유취(醫方類聚) : ‘부녀자의 풍혈적체치료, 매번 월경 시에 무릎아래 통증이 있을 때 효과가 있다.’

중국 25史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 신라 때 해상 왕 장보고의 교역 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전한다.

해동역사(海東繹史) : ‘백제 서남해에 나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 ‘

외신부 조공조책부원구(外臣部 朝貢朝冊府元龜) : 백제무왕 때, 당 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습니다.

신당서(新唐書). 동이고려전(東夷高麗箭) : 당 태종은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을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통전(通典) : 당나라 때 두우는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

중국통전(中國通典) : 백제의 서남쪽 바다 세 군데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수액을 음력 6월에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백제로부터 조공으로 황칠 5되 3홉을 거두었다

지봉유설(芝峯類說) : ‘세상에 이보다 더 한 보물이 있겠는가'



고문서에 등장하는 황칠


우리의 전통 칠은 옻나무 진에서 얻어지는 옻으로 짙은 적갈색을 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린

칠 공예의 한 기법으로 황금빛이 나는 황칠(黃漆)이 있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바로 황칠나무에서 얻어진다. "황금으로 도금한 것 같다"하여 아예 금칠(金漆)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황칠은 중국 쪽에 더 잘 알려졌다.

계림지(鷄林志)라는 고문헌에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나고 본래 백제에서 산출된다. 절인(浙人)은 신라칠이라고

부른다"하였으며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백제 서남해 바다 속에 3섬이 있고 그곳에 황칠수(黃漆樹)가

있는데 칠이 황금빛과 같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삼국 시대부터 귀중한

특산물임을 알 수 있다.


황칠은 백제시대의 당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서 금칠을 채취하여 산문갑(山文甲)에 칠하거나 전투용

갑옷과 투구에 칠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도 귀히 대접하였다.

중국 책부원구(冊府元龜),영파사지(英坡寺誌), 등 각종 박물지에는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다 라고 전한다.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주역(周易)의 서문(序文)

에도 황칠판(黃漆板) 위에서 이 책을 명상하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고려도경, 고려사절요, 임원경제십육지, 통전, 지봉유설, 등에는 '세상에 이보다 더한 보물이 있겠느냐?' 하는

구절이 나오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징기즈칸은 황금마차를 타고 황금 투구를 쓰며 황금 기갑부대를

거느렸는데, 이는 백제국에서 나는 것으로 황제가 아니면 쓰지 못하며 황제가 쓰는 모든 기물은 이황칠로

칠하였다, 라는 구절이나온다.

우리의 황칠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던 발해는 서기 777년 사신 사도몽을 보내어 일본 황칠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원나라에서 황칠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여러번 있었다.

원종 12년(1271) 왕은 '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 때 모두 잃어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역적들이 왕래하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틈을 보아서

가져다가 보내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그 역즙(瀝汁)을 만드는 장인은 "황칠이

산출되는 지방에서 징발하여 보내겠다" 하였으며 이어서 충렬왕 2년(1276)과 8년(1282)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가져다 주었다.


150여년전 다산 정약용의 시에 보면 황칠에 관한시가 나오는데 읽어보면 당시에도 채취하기가 매우 어려웠

음을 알수 있다.
궁복산(弓福山) 가득한 황금빛 액 / 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 /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

조선왕조실록 정조18년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장계에 본도의 지방인 강진·해남·영암 등 세 읍에다 모두

연례적으로 황칠을 바치는 것이 있었고 왕왕 더 징수하는 폐단이 있었다.

<근년 이래로 황칠나무의 산출은 점점 전보다 못한데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힘든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근년에 바람의 재해를 입은 후에 큰 나무는 또한 말라 죽은 것이 많고 겨우 어린 나무 약간밖에

남지않았으니 마땅히 심고 가꾸어 국용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동안은 조공을 금하여

으레 바쳐오던 것을 감면하여 크게 키워 많이 수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옛날 상태를 회복하여 예전대로

납부하게 될지라도 법외에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영을세워 일체 엄금해서 백성들의 민폐를 풀어주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황칠은 이와 같이 200여년 전만 하여도 널리 재배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자 백성들이

심기를 꺼려하여 차츰 맥이 끊겨 버렸다. 최근 전통 황칠을 다시 살리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황칠나무에 대해 다시 연구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도료와 염료, 건강식품과

음료, 생의약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로서 20여건의 특허가

등록을 마친 상태다. 일천여년 동안 내려온 우리 수종 황칠나무가 21세기에 이르러 서서히 그 신비한 모습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황칠 특허 및 임상자료


황칠나무의 발굴


중국의 사서에 백제에서 가져다 썼다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문헌에 황칠이 등장하지만 정작 우리 땅

에서는 100여년 전부터 명맥이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칠은 한반도의 서남해지방에서만

자생하는데다가 그 생산량도 미미하기 짝이 없어, 그 희소성으로 인해 엄청난 수탈과 노역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다산 정약용의 시에 씌어 있기를 ‘백성들은 이 황칠나무를 악목(惡木)이라 하여 모두

베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 전통 또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의 황칠나무 발굴이야기
도료의 황제(黃帝) 황칠 다시 살아나다.

황금빛 비색, 탁월한 내열, 내구성… 전자파 완전 흡수, 이용 가능한 곳 무궁무진


칭기즈칸 테무진의 갑옷과 천막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이는 ‘황칠’이라는 비기(秘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전과 집기류 등 황제의것이 아니고는 사용치 못했으며 불화살로도 뚫을 수 없는 신비의

칠이라고 전한다.’(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백제의 서남쪽 바다 세 군데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수액을 6월에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백제로부터 토공(공납)으로 황칠 5되 3홉을 거두었다.’(중국 통전)

‘황칠’(黃漆).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

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중국 25사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각종 역사책들은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

었다고 전한다. 심지어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주역의 서문에도 ‘황칠판 위에서 이 책을 명상하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황칠나무의 국제학명조차도 덴드로-파낙스(Dendro Panax),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에만 존재했다던 황칠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토록 유명했던

황칠을 우리는 왜 모르고 있는가. 중국의 사서(史書)들은 낯설기만 한 황칠나무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해남에 ‘황칠나무’ 3천 그루 자생


하지만 황칠나무는 이제 전남 해남군 일대와 완도지역에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순금의 비색과 신비한

약효로 ‘사라진 나무’라 칭해졌던 황칠나무가 전남 해남군 서남해 일대에 실존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닌 수만 그루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나무에 대한 양묘사업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1000년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49)가 그

주인공.
 
 
황칠 관련 고문헌을 보여주는 '황칠 박사' 정순태 씨 
 

공학도로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던 그는 지난 80년 한학자인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와서 지은 시(詩)에서 ‘황칠(黃漆)’ 이라는 시를 우연히 발견하며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그대 아니 보았는가. 궁복(장보고의 호)산 가득한 황금빛 수액을. 그빛이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길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색

없어지니 잘 익은 치자물감 어찌 이와 견주리요. 이 나무의 명성이 천하에 자자해서 박물지에 줄줄이 그 이름

올라 있네…(중략)

서예가의 경황지(硬黃紙) 이로 하여 더 좋으니 납지(蠟紙), 양각(洋角) 모두 다 무색해서 물러나네.


이후 그는 중국 문헌은 물론 우리의 사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천금목(千金木)이라 하여 그 진은 안식향(安息香)으로 쓴다’ (임원십육지), ‘황칠의 주산지는 전라도 완도

’(해동역사)
문헌을 바탕으로 10년간 틈틈이 서남해안 섬들과 해남 지역을 헤매던 그는 결국 완도 상황봉과 보길도, 진도

첨찰산, 해남군 두륜산 등 전남 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에서 황칠나무가 자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지난 90년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가족과 함께 해남 땅으로 내려와 귀농 생활에 들어간 것.


순금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황금빛 비색과 상상을 초월하는 내열성과 내구성, 벌레를 쫓아내고 정신을

맑게 하는 안식향(安息香), 중풍 - 오십견 - 항암제로도 사용되는 약용 성분 등 각종 문헌들에서 밝혀진

황칠의 역사적 효능들은 그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다산의 황칠시에서 ‘아름드리에 겨우 한 잔’이라고 표현했듯, 문헌상의 채취 방법으로는 도저히 경제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각 지역에 흩어진 자생림이 모두 50년생 안팎의 황칠나무인 것을 알고는 크게 낙담했다. 그 수액을

채취한 결과 극소량인 점을 알게 된 것. 동시에 바로 이 점이 황칠나무의 존재를 우리 역사에서 증발시킨

장본인이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에게 옮기는데 관리들 농간을 막을 길이 없다. 지방민이 이 나무를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다산의 황칠시의 한 부분은 황칠의 희귀함에서 오는 민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자금성의 용상과 어좌를 비롯한 각종 집기류와 천장, 벽면을 모두 도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황칠액이

필요했겠는가. 병자호란을 거친 후 청나라는 조선의 임금에게까지 황칠 사용을 금지한 뒤, 세계 유일의 황칠

생산지인 전남 해안에 대한 감시와 수탈을 강화한다.

‘수탈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를 넣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아예 베어내 버렸다’ (목민심서 ‘산림’편) ‘갑인년 어느날 소금비 내린 뒤로 모조리 말랐다.’ (다산 탐진촌요

제2수) 


다산은 황칠나무의 ‘멸종’을 중국 황실의 횡포와 1801년에 내린 소금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다산에서 시작해서, 그에게 절망하고, 다산에서 다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정씨는 다산의 시 모음집인 탐진촌요(耽津村謠) 제8수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 지난해 황칠 공납이 없어진 뒤 베어낸 밑둥치에서 새싹이 나고 가지가 뻗었다.’

1803년에 쓰인 이 시가 해남 유배 당시 쓰인 점에 착안한 그는 해남 지역 산지를 샅샅이 훑었다.
그 당시에 다시 싹이 났다면 대단위 군락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

랄까. 지난 95년 그는 해남 모 지역에서 200년 이상 된 3000여 그루의 황칠나무 군락을 발견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허리까지 다쳐 한 달 동안 기어다니다시피 하다가, 이제 오늘까지만

하고 집어 치우자 하고 산으로 올라 갔어요.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굴렀는데 깨어나 보니,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수백년생 황칠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거요. '아! 이제 내가 죽었구나, 그토록 만나고자

했더니 저승 가는 길에서야 만나는구나' 하는데 멀리 절에서 저녁공양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거요. 이게 꿈이

아니라니! 3백년생 황칠나무를 끌어 안고 원없이 울었소."


정순태씨가 황칠나무 기르기를 포기하기 직전에 발견한 3백년생 황칠나무. 
수백년 전에 수액을 채취했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다.

 
제주에 대한 애착이 강한 구씨는 한미FTA체결로 생명산업에서 위협받고 있는 감귤을 황칠나무가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단연 최고품질의 제주황칠은 수입창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차원에서 전략

사업으로 추진하고 연구소 설립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영국씨는=1978년 나전칠기의 화려함에 이끌려 공예계에 입문 후 장인들을 사사하며 전통공예 디자인에

몰두했다. 그러다 1985년, 금산사 노스님에게서 “백제 때부터 전래되던 신비의 도료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사로잡힌 그는 구체적 기록도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연구에 매달린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1990년 이후

각국 박람회에 황칠공예품을 출품했다. “금칠과 달리 편안하고 질리지 않는 빛”이라고 호평 받았다.
1991년 청와대 신축본관과 영부인 접견실에 문갑, 문장대, 이층장 등을 전시했다. 2002년 신미술대전 대상,

2003년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 특별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파리국제박람회, 벨기에 왕국전통공예, 미국 세계

예술페스티벌 등에 초대됐다. 서울산업대 평생교육원에서 황칠공예를 강의중이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한국의 황칠나무 분포와 성분 등을 조사해 자국에 이식하려 했으나 기후가 안맞아

실패한 걸로 알려졌다.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안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였는데, 황칠은 상쾌한 향기를 방출하고 쓴맛을 나타낸다고 적혀있다.
 


황칠나무와 일본 그리고 스텔스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일종의 스텔스 원료이자 이를 가공한 도료는 매우 환상적인 금빛색상을 일구어

내기에 '신비스런 종'으로 알려진 원료.


'황칠'(黃漆)


중요한것은 황칠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한다는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임과 동시에 한국에게는 최고의 호기가 될것이다.

지금의 전장은 진화하고 있다. 차츰차츰... 스텔스화된 병기로 육-해-공 전장에 배치 되어질것이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스텔스 기능..그중에서도 단연 스텔스화 시키기위한 원리.. 즉, 스텔스의 원리인것이다.

(현재 스텔스 기술을 완전히 보유한나라는 미국과 일본 두나라 뿐이다. 프랑스와 독일,영국등은 기초적인

스텔스 기술을 보유 했을뿐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그 답을 일부 얻어 내었다. 황칠이란 나무가 스텔스 효과가 아주 탁월한 완전한 전자파-

흡수재이기 때문이다. 스텔스 폭격기의 원조 도장사가 일본인인것을 아는 사람은 다들 아실것이다.
(최초로 스텔스 기술이 나온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에 군비를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취약점인 레이더에 잘 노출되지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가볍고 전파의 흡수능력을 가진 재료의 발굴에 힘을 쏟게 된다. 그 결과 당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

자생하는 나무에서 그답을 얻게 된다. 그리고 황칠이란 나무를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가서 성분분석과 그

효능을 테스트하게 된다. 또, 이 나무를 이용하여 레이더에 잘 걸리지않는 항공기, 이른바 스텔스 항공기를

개발 하기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당시의 일본의 공업력으로서는 그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일본이 일제시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황칠을 훔쳐간 사실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왜? 일본은 '황칠'이란 나무를 그리도 꾸준히 도둑질하였을까?


황칠나무란.. 위에서 밝힌바와 같이 전자파 즉, 모든 전파를 완전히 흡수하는 타고난 전파 흡수재이니 만큼...

그들은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황칠'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항공기의 스텔스

도료로 사용하고자 수십년간 암암리에 도둑질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들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그들이 훔쳐간 일본의 황칠나무

에서는 더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않고있다.. 이는 지질학상으로 한반도의 지질과 화산재로 주로 구성된 일본

지질과의 차이가 엄격히 나기때문에 더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못하는것이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황칠같은 경우에는 수백년간 계속 수액이 나왔던것과 비교해서 일본의 것이 1세기도 안되

어서 수액이 더이상 안나온다는 것은 일본의 지질이 한국의 황칠이 주로 자생하는"전라남도 완도 상황봉"과

"보길도","진도 첨찰산","해남군 두륜산"등 '전남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의 토양과 지질 특성이

판이하게 차이가 났으므로 일본의 황칠나무는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이제 '종의 운명'을 다하게 된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앞으로 스텔스화된 병기가 육-해-공 전장에서 활약하게될 가까운 미래에도

우리는 '황칠'이란 원료를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기술로 우리 나름대로의 스텔스 기술을 보유하고 활용할 날도

머지않을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종'에서 보는것처럼 '황칠'나무가 고갈되지 않도록 '황칠나무'를

보호하고 장려-재배해야 할것이다.



마음에 드는 황칠나무 분재



흉내를 내어보려고 묘목 7주를 구해서 일단 분에다 심은 황칠나무입니다.

그 너머로 잘잘하게 보이는 것들은 그라비올라, 삼백초입니다.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황칠나무..

식용, 약용뿐 아니라 전통칠과 첨단소재의 칠로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남부 서해안에서만 자생하고 거기서 자란 것만이라야 하는 황칠나무..

엄청난 보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黃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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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5.10 09:23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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