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미술계를 회고함 : 텅 빈 것 같으면서도 가득 찬 05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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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미술계를 회고함 : 텅 빈 것 같으면서도 가득 찬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새로운 세기에 대한 섣부른 희망으로 떠들썩했던 것이 몇 년 전인데, 어느새 한해 한해의 흐름은 그저 하루하루의 흐름과도 같이 일상적인 변화나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문화의 세기라는 막연한 구호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21세기 초엽의 2004년 한해도 그렇게 흘렀다. 역사의 흐름은 새로운 세기에도 여전히 암연과 서광을 오가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비단 한반도 남쪽만의 문제가 아닐 터, 자본과 제국의 패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작동하며 전지구화를 재촉하고 있고,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화해, 풍요와 빈곤이 교차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삶의 한 가운데에서, 2004년 한국미술계를 되돌아본다. 몇몇 전시를 놓고 좋고 나쁨을 가르기도 어렵거니와 ‘전시장이 곧 미술계’라는 등식은 이제 너무 식상하다. 전시 행사를 비롯한 제도와 정책 현안 등의 미술계 전반을 두루 헤아려봄으로써 나름의 지형도를 그려볼 셈이다. 비엔날레 공화국의 속빈 자화상한국 미술계의 2004년은 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비엔날레의 해’였다. 부산, 광주, 서울로 이어지는 비엔날레 퍼레이드. 해를 거듭하면서 경륜을 쌓아간다지만, 각 프로젝트가 진정한 문화생산의 장으로서 순기능을 키워나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광주비엔날레는 외화내빈이라는 빈축을 샀다. 아무리 겉모습을 잘 다듬어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예술의 깊이가 담보되지 않으면 겉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기 십상이다. 전반적으로 별무리 없이 진행된 전시 행정과 참여관객제 도입 등을 내세워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외형에 비해 비엔날레다운 이슈를 던지지 못했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몇몇 작가들의 꽉 찬 작품들이 눈에 띄었지만 전반적으로 전시주제나 전시행정이 작가들의 작품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게 미술계의 중평이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광주비엔날레는 여전히 한국미술계의 큰손이다. 이제는 광주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와 맞물려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비엔날레를 굴리는 시스템이 얼마나 적응력 있게 변화하는 추세를 따라잡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덩치 큰 공룡이 제풀에 쓰러지는 일보다 먼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부산비엔날레는 (미술)문화 불모지 부산을 견인하는 부산시립미술관과 더불어 지역문화 활성화의 중요한 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비해야할 틀거리가 많다. 광주나 서울에 비해 미술문화의 존립 근거가 약하다는 점, 거기에다 예산 또한 턱없이 빈약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개선의 여지가 더 많아 보인다. 2004년 행사는 영상작업을 과도하게 선보임으로써 관람 자체가 매우 혼란스러웠고, 국제비엔날레라는 규모의 중압감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큐레이터의 카리스마가 분산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힘겹게 또 한 번의 행사를 꾸렸지만, 차제에 혁신적인 운영상의 변모를 꾀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미술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여러모로 환골탈태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일각의 비엔날레 통폐합 논의와 같은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갈 것이다.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평균점 이하는 모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게임’의 논리에 포박된 예술 게임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미디어아트가 한국현대미술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지만, 아직은 국제적인 흐름에 어깨를 견주며 진득하게 성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짧은 탓일 것이다. 컨탠츠 부족이 여실해 보이는 가운데서도 외형적인 성장이 왕성하다는 것이다. 소화불량 상태를 넘기기 위한 기초 다지기가 필요하다. 이렇듯 비엔날레 공화국, 대한민국의 미술문화 지표는 엉뚱하게도 샤갈과 달리의 대박이라는 일대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올해 최고의 흥행대박 샤갈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0만의 대기록을 만들고 부산시립미술관의 20만 흥행기록으로 이어졌다.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문화식민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국민들 다수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준 혹은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 샤갈과 달리 급의 블록보스터급 전시가 얼마나 혹세무민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반을 풍미한 유럽의 거장들이 21세기 초엽의 대한민국 국민들 속에 이렇듯 절절이 살아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한국현대미술계에서 붓질하고 망치질하는 사람들, 혹은 자판 두들기거나 세치 혀를 놀리는 사람들 모두 깊이 새겨볼 문제이다. 공공미술관 공간을 이용해서 특정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남기는 수입전시를 여는 관행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달리전은 주최 측과 장동광 평론가와의 진위공방으로 비평문화에 관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논란쯤은 마케팅을 위한 가십거리로 오히려 순기능을 한다. 이쯤 되면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외형 빵빵한 비엔날레 공화국의 미술문화지표. 외화내빈 그 자체다. 이 질곡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우리미술계는 문화의 세기 21세기 내낸 문화적 20세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작지만 큰 프로젝트들의 공존하지만 큰 것 말고 작은 것들 가운데 반짝이는 것들을 잘 살펴보는 지혜가 있다면, 비관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국책 프로젝트들이 거대한 덩치로 갈지자 행보를 할 때, 작지만 큰 프로젝트들이 순발력 있게 예술의 존립 근거를 넓히면서 기지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모양새는 미술계 주변 사람들 모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할만 한다. 안양천프로젝트는 안양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이뤄진 행사라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박찬응, 백기영 등의 미술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일궈낸 중요한 미술행사였다. 다들 말로만 미술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데, 안양의 그 알찬 행사는 삶의 현장에서 공공성을 목표로 접근한 의미있는 프로젝트였다. 예술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유지해야할 거리는 어느 정도라야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안양천을 중심으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아서 만들어낸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애정 어린 시선은 어려운 살림살이에 그런 일을 치러낸 게 어디냐는 식의 너그러운 비평을 오래 지속하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해를 거듭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다보면 머지않아 첫 마음을 그리워할 것이다. 안양프로젝트 2004년의 첫 마음을 깊이 새겨볼 일이다. 목동예술인회관점거프로젝트는 행동주의 예술가 그룹을 표방하는 오아시스프로젝트는 한국사회에서 불가능에 가까워보이던 점거프로젝트를 통해서 문화부의 예총지원금 환수결정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낸 드문 경우이다. 처음에는 목동예술인회관을 점거하고 나서 순순히 쫓겨나던 모습을 보고 적잖은 사람들이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이들의 법정투쟁과 지속적인 홍보전략은 말 그대로 예술로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연말 들어 문화관광부 정문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목동예술인회관 정상화를 위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분간 이들의 작업실은 거리 그 자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작업실 바깥 거리의 예술가, 갤러리 바깥 광장의 예술, 결과 뿐만이 아니라 과정이기도 한 예술, 벽면이나 바닥에 들러붙은 물건만이 아니라 생동하는 정신으로 살아 움직이는 행동주의 미학으로 세상을 바꾸는 예술의 힘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이들이 버텨내는 기나긴 겨울 이후에 맞이할 눈부시게 푸른 봄날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밖에도 사회적 이슈를 담은 게릴라성 프로젝트들이 많이 열렸다.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이해서 미술인들이 인사동에 모여 거리퍼포먼스를 벌이고 거리시위에 집단적으로 참여하는가하면 <국회탄핵전>(까페시월) 같은 게릴라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일면서 <국가보안법폐지 문화행동 주간 시국선언展>, (이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전시장) 등의 전시가 마련되기도 했다. 미술이 특정 이슈에 반응하는 모습들도 이제는 참 다양해졌다. 이러한 다양성 앞에 과거식의 노선투쟁은 발붙일 틈이 없어보인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처소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이야기들, 이것이 공존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특히 아름다운 모습은 과거와 현재, 허리 세대와 젊은 세대의 공존이다. 허리세대의 변화 또는 변신이 두드러졌다는 것은 2004년 이전과 대별되는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다. 특정 아이콘을 가지고 울궈먹기식 전시를 남발하기 십상인 중견, 중진 작가들이 나름대로 변모를 모색하는 신작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권여현, 김보중, 김을, 김지원, 서용선, 정현 등의 작가들이 그들이다. 김준권, 민정기 등의 작가들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망라해 20여년동안의 변모과정을 보여주었다. 발군의 젊은 세대 작가들 또한 분주히 활동했다. 김지현, 김정욱, 이순주 등의 여성작가들이 각 장르에서 돋보이는 개인전을 열었다. 김태헌, 노순택, 노재운, 박영균, 백기영, 이중재 등의 개인전도 21세기 리얼리즘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전시로 꼽을 수 있다. 유근택, 박병춘, 박종갑 등 수묵화 3인방의 개인전도 전통회화의 변모를 보여주었다. 20대 젊은 작가들 가운데서는 애희, 이동욱, 함진 등의 전시가 주목을 받았다. 과거를 돌아보는 전시들이 주목을 받은 것도 나름의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고난속에 핀 추상>(MIA), <당신은 나의 태양>(토탈미술관), <리얼링15년>(사비나미술관),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미술가전>(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기획전들이 특정 장르나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과거의 작품들을 되돌아보는 아카이브 전시로서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기획자의 시각에 따라 판이하게 인식을 달리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미술사적 논란과 더불어 미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은 지금까지 고착화된 미술사적 고정관념들을 깨고 새로운 역사인식을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힘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작고작가 회고전들도 많이 열렸다. 구본주, 류인, 박생광, 손상기, 이응노 등의 작고 작가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박생광과 이응노의 경우 한국현대미술이 내세울만한 대표적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만들고 알리는 데 있어서 좀 더 일이 잘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류인과 구본주는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 이들의 유작전을 통해서 한국형상조각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상기전은 요절 화가의 열정을 아낌없이 보여준 잘 만들어진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개혁의제 나빌레라 바야흐로 개혁의 시대. 난무하는 개혁의제 속에서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손대기 어려운 것이 삐뚤어진 제도와 관습을 바꾸는 일이다. 양도소득세 폐지, 문예진흥원의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환,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화, 공공미술제도 개선, 미술은행 설립, 사립미술관 지원정책, 그리고 최근의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통령상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추진된 것이 없다. 한 해를 두고 어르고 재 보았지만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해를 넘긴 사안들이 많이있다. 이것이 개혁의 어려움이다. 논의 과정마다 첨예하게 이해를 달리하는 여러 개인과 집단 간의 이견이 드러났다. 때로는 구태와 악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용케도 새로운 물꼬를 터놓고도 실행능력이 없어서 지지부진하다가 파행을 거듭하기도 했다. 거듭되는 개혁의 좌초. 참여정부의 정치나 경제와 관련한 의제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미술계에서도 유사하게 벌어진 현상이다. 지난 10년간 화랑계를 조여 오던 양도소득세가 폐지된 것은 일면 미술계 공론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일면은 시스템 부재의 한국 유통구조에 면죄부를 부여한 격이다. 대다수의 미술인들은 양도소득세의 폐지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문제는 그 이후의 대책 없음이었다. 민심 승리에 도취했을 뿐, 투명한 거래관행을 만들어 나가는 데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투명성 제고를 통한 시장활성화를 꾀하기 보다는 곪은 상처를 두고 그대로 두고 서둘러 봉합해버린 꼴일 수도 있다. 2004년 벽두에 일어난 이 사건이 개혁의 좌초인지, 민의의 반영인지, 아니면 기득권 수구의 발호인지 시장자율성 살리기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시장구조의 개혁을 위한 여타의 조치가 부진하다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할만한 일이다. 정부의 정책은 기업의 미술품 구입에 대해 손비처리하는 방향으로까지 열리고 있는데, 미술계의 시장마인드는 아직도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점을 감한할 때, 양도소득세 폐지가 혹여 자승자박으로 둔갑하지는 않을지 깊게 헤아려보아야 한다. 문예진흥원의 문예진흥위원회 전환은 긴 논의 끝에 국회를 통과해서 2005년 중반 이후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04년 연초부터 불거져 나온 문예진흥기금 편파 논란은 결국 미술계 내부가 먹거리를 두고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도 80년대 이래의 진영테제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이다. 새로 꾸려지는 문예진흥위원회의 핵심은 기관의 성격이 ‘민간의 합의체’라는 점이다. 미술계 전체에 한 자리가 배당될 것으로 보이는 위원 1인을 어떤 과정을 통해 선출할 것인가에 따라 말 그대로 민간의 합의 정신에 대한 정당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붕당을 만드는 것이 인류사의 보편적 질서라지만, 지금과 같은 낡은 진영테제에 근거를 둔 대립은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진영이기주의에 근거한 세대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질곡을 넘어서는 깊은 마음이 절실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 논란은 2004년 여름을 후끈 달궜다. 국립현대미술관 대다수 구성원들이 정면 반발하고 나선 것. 국립미술관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지켜내는 일과 전문가집단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일이 서로 다른 일이 아닐 텐데, 이토록 정부의 방침이 먹혀들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름 아닌 진정성의 부재 때문이다. 진정 국립현대미술관의 자율성을 원한다면, 책임운영기관 운운할 것이 아니라, 독립법인을 만들면 그 뿐이다. 너무나 깔끔하게 자율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그 질기디 질긴 문화부 산하기관이라는 꼬리는 스스로 잘라낼 수 있는 도마뱀 꼬리와는 다르다는 점, 책임운영기관화 논란의 드러나지 않는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여론을 의식해 잠재해 있는 이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가장 선명하게 본질을 파고드는 논의가 절실한 의제이다. 공공미술제도 개선 논의도 마찬가지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모뉴멘트-환경조형물 먹거리는 적지 않은 미술인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 나머지는 죄다 무관심. 따라서 공공미술 개선 논의는 공론의 장에서 제대로 논의 되지도 못한 채, 일각에서 변죽만 울리다가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다. 조만 공공 연구기관에서 심도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다시 논란이 불거진 테지만, 그래도 애초의 거센 반발은 상당히 무뎌진 것으로 예측들을 하고 있다. 이것이 시대의 대세가 개혁이라는 점을 너나없이 공감해가는 과정을 것이다. 어절씨구 개혁의제 나빌레라. 그러나 갈 길은 너무 멀고, 개혁 프로젝트를 끌고 갈 경륜과 패기의 조화가 아쉽다. 미술계로서는 미술은행의 설립 또한 파격적인 정책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연간 25억의 공적자금이 미술계에 투여되는 것. 그러나 이 또한 궁극적인 사업 취지가 작가지원이냐 시민 문화권 향수냐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이 문제를 놓고도 정책 당국과 미술계의 시각은 입장에 따라 조금 달랐다. 재경부는 프로젝트의 사회적 효용가치를 우선시하는 반면 미술계는 궁핍한 살림살이에 도움되는 먹거리로 기능하기를 바라는 속생각을 숨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는 미술계 전체의 공의를 제대로 살리지 않으면 낭패를 볼 사안이다. 매 안건마다 각각의 입장마다 미사여구와 절절한 논변이 따라붙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허망하게 흘러가고 홀로 외로이 “개혁의제 나빌레라”.
이상에서 되짚어본 2004년 한해는 비엔날레를 비롯한 대형미술프로젝트들과 의미 있는 작은 프로젝트들이 명암을 드리우며 공존했다는 점, 과거와 현재, 중견과 신진들이 활발하게 제 몫을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풍년은 아니어도 평작 이상은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곡절의 20세기를 버텨오면서 어렵사리 불씨를 살려는 한국 미술계로서는 동북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창작과 전시의 물량공세를 자랑한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큐레이터나 비평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동시대 미술을 가지고 들입다 뛰어 봐도 축적된 저력을 가지지 못하면 사상누각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깊은 눈이 필요하다. 먼 과거가 단절과 이식의 문화에 의해 너무 흐릿하게 보인다면, 가까운 과거부터라도 차분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책 현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반이 무언가 바꿔나가는 분위기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개혁의제가 쏟아진다. 해를 넘긴 2005년에 접어들어서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통령상 부활, 미술관 박물관의 작품 거래알선 허용 등 민감한 현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혁의 깃발을 휘날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무지와 무능의 우를 범하지 않는 일이다. 예술의 영역이 제도와 관습과 얼마나 밀접하게 이어져있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면 그것이 전시이건 정책현안이건 간에 우리 모두 공론의 장으로 모여 세심하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앞일까지도 차분하게 챙겨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너나없이 마음과 뜻을 모아서 ‘텅 빈 것 같으면서도 가득 찬’ 우리 미술계를 품어 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