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의자
이상인
지루한 계절이 달그락거리며 지나가고
그의 품은 조금씩 낡아 갔다.
은행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온 바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지나가고
새들은 처음부터 얼씬하지도 않았다.
고개를 수그리고 뭔가를 읽는 척
뭔가를 신중하게 메모하는 척
그의 동작이 멈추어 있다.
누군가를 안아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들이 삐거덕거리며 무릎 사이로
흘러내리고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또 한 번의 가을이 잠시 앉았다 가고
봉숭아 꽃물이 지워지고도 한참 뒤였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뒤에서 편하게 안아 주는 것이라고
가만가만 일러 주는 오랜 시간이
자꾸자꾸 눈을 꿈적거려서
엉거주춤 그는
벌떡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시집 『불쑥 물앵두꽃이 피었다』 2023.11
이상인|전남 담양 출생. 1992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시, 2020년 《푸른사상》신인상 에 동시 등단. 시집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툭, 건드려 주었다』 『UFO 소나무』 『연둣빛 치어들』 『해변주점』, 동시집 『민들레 편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