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젠가입력 2024.01.01. 15:57김혜진 기자
그림 임근재 서양화가
젠가
-홍다미
우리는 즐거움을 쌓기 시작했죠
딱딱한 어깨를 내어주며 무너지지 않게 한 계단 한 계단 다짐을 쌓았죠 대나무가 마디를 쌓듯 빌딩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도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를
오지 않는 내일을 오늘처럼 지금처럼
바람 무게를 견디려면 마스크
쓴 계절도 빙하 녹는 북극도 쌓아야 하는데
밤하늘이 별빛을 빼내고 있었죠
쌓기만 하는 뉴스는
싫증나고요
거꾸로 가는 놀이를 해볼까요
쌓아놓은 블록을 하나씩 빼내는 놀이
장난감을 빼버리면 아이는 자라서 부모 눈물을 쏙 빼버리고 최저임금을 빼내면 알바는 끼니를 빼먹고 잠을 빼내면 기사님은 안전이란 블록을 빼내고야 말겠죠
언젠가 도심 백화점도 한강 다리도 이 놀이를 즐기다 쏟아졌고
모닝 키스도 굿나잇 인사도 기념일도 블록으로 빼내면 연애도 와장창 무너지겠죠
한순간 한 방이면 끝나는 게임
손끝의 감각을 믿기로 해요
쌓아 올린 우리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우린 서로의 빈틈을 살짝 비껴가는 중이죠
첫댓글 [제36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시의 몸을 만드는 일은 즐겁고도 고단한 것"
입력 2024.01.01. 16:06
김혜진 기자
홍다미 시 부문 당선자
올려다봅니다.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던, 매달리면 흩어지던,
운동장 한쪽에는 구름사다리가 있어요. 건너간 친구들은 모두 귀가했고, 나는 높이를 가늠해봅니다. 봉을 밟고 올라서서 매달려봅니다. 뻗어 있는 곳은 귀가의 방향, 내 두 다리는 바닥을 벗어납니다. 왼팔로 견디며 흔들거리며 오른팔을 뻗는 동안 사다리는 머리 위 구름의 자세로 손을 내밉니다. 잡는 순간 놓아버릴 것만 같은, 미끄럽고 차가운,
모래놀이, 오징어, 시소, 타이어는 바닥에 놓여 있고 나는 공중에 매달려 있어요. 매달린 손바닥이 뜨거워집니다. 저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고, 한 칸씩 나아갈수록 사다리는 길어집니다.
두 팔을 두고 돌아왔어요.
종일 카페에 앉아 동작을 연습해봅니다. 한 팔로 매달려 버둥거리며 왼팔 오른팔을 옮겨가는 연습, 긴팔원숭이가 되어 정글을 날아다니는 연습, 나뭇가지를 타고 둥글게 휘어집니다. 매달리는 동작이 흘러가는 감각으로 변할 때까지, 쓰고 지우고 손을 바꿔가며 고쳐 쓰다가 나는 구름과 사다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