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희곡)와 2001년 《세계의 문학》(소설)으로 등단.
⊙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내 아들의 연인》.
⊙ 장편소설: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등.
⊙ 오늘의 작가상, 이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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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덕수궁에서는 <명화를 만나다-한국근대현대회화 100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박수근, 이중섭, 이인성, 천경자, 낯익은 작가의 그림을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거리에서 구경하고, 벽에 걸린 그림은 밀려오는 인파를 신기한 듯 구경한다. 선과 색이 다양한 네모 액자 속엔 인간이 있고, 우주가 있다.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속 화가에게 말을 걸어본다. 어서 나와 미완의 대지를 향해 붓을 들어보라고.
돌담길을 돌고, 금잔디를 가로질러 봄빛 속으로 걸어들어오는 사람들, 척박한 삶을 뒤로하고 명화를 보고자 고궁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인상파 화가 고흐를 만나고 입체파 화가 피카소를 만난다 한들 오늘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파도처럼 물결을 그리는 기와지붕은 고궁 주변에 솟아난 콘크리트 건물을 초라하게 만든다. 갑자기 눈앞에 <별에서 온 그대> ‘도 매니저’가 순간이동하여 나타난다면 이보다 황홀한 오후가 또 있을까.
내게 P는 라이벌이었을까. 그러지 못했다. 라이벌이란, 강을 사이에 두고 강변의 양안을 달리는 자,에서 어원을 가져왔다 했던가. 서로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터질 듯한 심장과 경련을 일으키는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기어이 나를 달리게 하는 자. 그러나 나는 한 번도 P와 나란히 달려보지 못했다. P의 뒤에서 늘 숨이 찼다. 강 저쪽 아득한 앞에서나마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바로 길을 잃었다. 그가 사라졌을 때의 좌절이 그가 있을 때의 좌절보다 크게 다가온 것은 예기치 못한 감정이었다. P는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었고, 보이긴 하지만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무지개였다. 이즈음도 가끔 꿈을 꾼다. 안개 짙은 강변, 푸르스름한 안개 저편 강가에 차갑고도 단정한 프로필로 달려가는 한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결코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본문에서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는 성공한 영화감독이 노르웨이에 사는 친구와 10년 만에 해후하는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친구 P는 공부만 잘하는 수재가 아니라, 상상력 또한 뛰어났다. P에게 자신은 언제나 뒤떨어지는 2등이었다. 그와 나란히 명문대 의대를 들어갔지만, 대학에서도 P는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환자의 수술 부위를 꿰매는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 코리안 퀼트라는 별명까지 가졌다. 미국에 가서도 그의 명성은 국내에까지 자자했다. 그런 P가 노르웨이의 한적한 시골 마을 언덕 집에서 와이프와 단둘이 살고 있다. 한눈에 봐도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P는 여전히 넘치는 상상력으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2등으로 내려 앉힌다. 뇌의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영혼의 면역제를 만들겠다는 허언 앞에서도 친구의 말을 믿는다. 자신의 성공담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자꾸만 술을 마시는 P는 심한 알코올릭이었다. 미국 병원에서도 그 때문에 해고가 된 상태였다. 그는 쓸쓸히 P의 집을 나오지만 끝까지 친구의 몰락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노르웨이로 여행 가서 소설 구상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는 넬리 작스의 시에 윤이상 작곡가가 곡을 붙이기도 했는데 주인공이 윤이상 작곡가입니까.
“윤이상 선생은 제목 외에는 연관이 없어요. 그분의 작품이 대부분 그러한데, 굉장히 난해하고 괴기스럽고 음울해요. 날카로운 고음도 나오고요. 언젠가 윤이상 선생의 연주회 팸플릿 제목을 보고 순간 필이 꽂혔어요. 《밤이여, 나뉘어라》는 글을 쓰기 전부터 제목을 미리 생각해 두었던 작품이에요.”
—소설의 배경은 어떻게 설정한 겁니까.
“꽤 오래전에 노르웨이로 여행을 갔었어요. 당시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는데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었죠. 그때 만난 사람들에게서 많은 걸 느꼈어요. 서로 각자 자신들의 고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토로하는데 저에 비하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고민이었어요. 그들은 심각하게 털어놓는 데도 저는 그마저도 부러워하며 쳐다보았어요.”
—여행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하고 갔습니까.
“독일에서 공부하던 후배하고 갔어요. 그 친구도 귀국을 앞두고 한국에 가면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막막한 마음을 토로하는데, 그런 고민도 제게는 행복해 보이고 귀여워 보였어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여행을 했는데, 당시 후배가 임신 중이었어요. 한 3개월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피오르만을 보러 갔는데 그 물이 굉장히 압도적이고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암청색이었어요. 사람들과 해안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데 후배가 암청색 물을 보고 무섭다고 하니까 모두 웃었어요. 그런데 그날 밤 숙소에서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임신 중인데 배가 아프다고 하니까 마음이 불안했죠. 노르웨이의 날카롭고 압도적인 자연, 시원의 풍경 같은 자연이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후배에게는 위로가 되기보다 압박이 되었나 봐요. 할 수 없이 허겁지겁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달려 내려 왔죠.”
—그래서 후배는 어떻게 되었나요.
“해안을 따라가다가 길거리에 있는 숙소를 찾아갔는데 그곳도 굉장히 천국 같은 풍경이었어요. ‘운자크레보’라고…. 마을 이름인 줄 알았는데, 숙소 옆에 있는 곡식 창고 이름이었어요.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산언덕에 올라가면 야생의 블루베리밭이 펼쳐져 있고, 조그만 사과도 달려 있고, 마당에는 그네가 있고 내면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천국이었어요. 그곳에서 후배한테 미역국하고 김칫국을 끓여 줬는데 자기는 양파나 마늘 그런 건 안 먹는다더니 웬걸요, 솥을 끌어안고 먹더라고요. 치유의 음식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어요.”
—작중에 뭉크 전시회는 그 당시 여행에서 가본 겁니까.
“네. 오슬로였어요. 저는 〈절규〉라는 작품이 하나인 줄 알았는데 꽤 큰 방에 뭉크가 다양한 재료와 조금씩 다른 구도로 제작해 놓은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경비가 이렇게 허술해도 될까 싶었는데 제가 보고 왔던 그해 실제로 도난을 당했어요. 그 후 다시 찾기는 했지만.”
—결국 도망치듯 떠난 여행지가 소설의 멋진 배경이 되었네요.
“그런 셈이네요. 이 작품은 제가 마흔다섯 살에 썼어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 마흔다섯에 보면 마흔다섯은 귀신이 서 있는 게 보이는 나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오랜 기간 쉬었고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한 2001년부터 한 5년 정도 열심히 글을 썼는데, 딱 마흔다섯이 되었어요. 저는 귀신은커녕 지금 난 뭐하고 있는 건가, 그런 허무함이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젊었는데, 사람은 지금 나이가 가장 많은 나이잖아요. 이 작품은 저 자신에 대한 위로 같은 것이었어요. 사람이 꼭 꿈을 이루어야 하나,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가지는 것도 좋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어요.”
“러브피아라는 알약이 필요하다면 사랑이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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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힘든 마음을 삭이는 P의 아내 M은 그 당시 작가의 마음을 투영한 건가요.
“그렇겠죠. 모든 소설은 자서전인데, M이 아주 괴로운 순간을 뭉크의 작품을 보면서 위로를 받잖아요. 그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예술의 역할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괴로움이 있고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분명히 있듯이. 그럴 때 그림이 됐든, 문학이 됐든, 음악이 됐든, 큰 힘이 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어요. 뭉크도 작품에서 보면 선병질적이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실제로도 강박증, 불안장애, 평생 신경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하겠다고 시도했는데, 실제로는 80을 넘게 살았어요. 절규라는 것은 자기 안에만 있는 거죠. 누구나 그건 있는 거죠.”
—천재지만 알코올릭에 빠진 남편, 사회문제로 들어갔을 때는 이렇게까지 참고 살아야 하나 그런 점이 있어요.
“그게 많은 여성의 딜레마죠. 지금 막 생각이 났는데 정말 예쁘고 똑똑하고 모든 여성의 우상이던 여자 아나운서가 결혼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현재 이혼소송 중이잖아요.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아내를 왜 때렸으며, 그녀는 왜 참고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누구나 했을 거라고요. 물론 그 아나운서는 작중의 M과는 달리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 거죠. 결국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 때문에 끝까지 버텨보려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여자들만 그런 것 같지 않고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 같은 경우, 대통령이 되고 나서 엘리제궁에서 와이프하고 살기는 했지만 항상 잠은 애인 집에 가서 잤대요. 퇴근 후 애인하고 잠시 만나 헤어지는 그런 사이가 아닌 수십 년이 된 애인이었어요. 그 사이에 딸도 있었고 그 딸은 아버지가 대통령인 것을 알고 자랐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 껍데기뿐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거예요. 여자들이 자기운명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내가 그 입장이 되기 전에는 저 사람이 왜 저럴까 함부로 정죄할 수 없게 되죠.”
—이 소설에서 P가 개발하겠다는 기억과 욕망을 제어하는 ‘러브피아’ 그런 알약이 존재하는 시대가 올까요. 저는 올 것 같습니다만.
“그래요? 올 것 같아요? 그럴까요? P가 그런 약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허언이죠. 제가 설정한 것도 불가능한 것이고요. P라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건 뭐든지 이루어내는 능력자잖아요. 그런 사람에게도 삶의 불가능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잡한 신약 개발을 하겠다는 꿈을 꾸게 한 거죠. 결국 삶에서 아무리 자기가 아득바득 매달려도 안 되는 순간 자기를 놓아버리고 알코올릭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죠. P라는 인물을 쓰게 된 건 우리 사회에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도 어느 순간 심한 알코올릭에 빠져 삶이 망가지는 사람이 많고, 또 제 주변에서도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P는 그 알약을 천사 같은 아내 M과 나눠 먹기 위해 발명하려 한 건 아니죠.
“그건 전혀 아니죠.”
—그런 알약을 복용해 사랑의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싶은가요.
“벌써 그 약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사랑이 없는 거죠. 사랑이라는 것은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어요. 사랑이 화학물질의 작용이다, 2년, 3년 간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해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환경이나 정서, 어떤 계기에 따라 만명의 사람에게 만 가지 사랑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을 정의할 수 있겠어요. 저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사랑도 생로병사를 지켜보고 싶지 영원히 지속시키고 싶지 않아요. 내 인생이 변하는데 사랑도 변해야지 사랑도 변해야 되는 거예요. 사랑도 생로병사가 있어야지, 징그럽잖아요.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저라면 그 약을 먹을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비아그라가 가짜까지 많이 팔린다니까.”
—최소한 또 다음 사람을 사랑하는 이론을 불식시킬 수 있지 않나요.
“근데 한 번뿐인 인생인데 꼭 그러셔야겠어요?”(웃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려면 상상력이 중요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onthly.chosun.com%2Fupload%2F1404%2F1404_509_2.jpg)
—작중에서 화자와 P의 관계는 고등학교 때부터 라이벌 관계인데, 한편은 신선한 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자에게 P라는 친구는 라이벌이라고 볼 수도 없는, 너무나 아득한 앞에서 멀리 뛰어가죠. 항상 그런 그를 주시하며 달려왔는데, 10년 만에 그를 만나려고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적한 시골까지 찾아왔는데, 자기의 이데아의 모습이 알코올릭으로 처참하게 망가져 있는 모습을 봤을 때 화자도 엄청나게 휘청거리죠. 자신의 부족함, 그런 것에서 오는 결핍, 오히려 그게 삶을 붙들어주는 요소가 아닌가 싶어요.”
—건전하든 불온하든 ‘상상력’이 열등감을 자극할 수도 있고, 그냥 재능이라고 해도 될 표현을 작가는 ‘상상력’이라고 표현하셨어요.
“현대사회는 어떤 분야든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고 기존의 이론을 답습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을 올라가려면 어떤 분야든 상상력의 문제라고 봐요.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당장 대학만 들어가도 어떤 벽에 부딪혀요. 고등학교 때 정말 그림을 잘 그린다는 얘기를 들었던 애들 중 몇몇은 대학 가서 좌절하고 그만둬요. 물론 먼 길을 갔다가 예술적인 상상력에 자기를 쏟아붓는 일 외에는 아무런 삶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예술 쪽으로 오는 사람도 있지요. 결국 사람이 머리가 좋다, 뭔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상상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영역이라고 봐요. 너무 상상력이 과도하게 앞서 가면 사기꾼이 되죠. 텔레비전 같은 것도 처음 나왔을 때 저거 6개월만 지나면 식상해서 그 나무통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엄청난 진화를 거듭하고 있잖아요. 결국 머리가 좋다는 것은 상상력의 문제이지, 스킬이라는 것은 어느 한계까지 올라가면 소용이 없어요.”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상상력의 영역은 뇌의 또 다른 메커니즘으로 보는 거죠.
“그렇기도 하고, 또 스킬 부분이 어느 정도 숙련되다 보니 시너지도 생기는 거죠. 뇌라는 게, 우리 머릿속엔 우주가 들어 있잖아요. 정확한 퍼센트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뇌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사용하지 못하잖아요. 머리가 좋다 안 좋다 하는 것은 자연과학 분야라든지 예술분야라든지 결국 얼마나 남이 생각해 내지 못한 부분을 상상해 내느냐 그 상상해 낸 것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느냐 그게 천재가 아니겠어요? 의학 쪽도 그렇고, 실제로 그 러브피아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보겠다고 매달려볼 수도 있겠죠. 비아그라도 상상력에서 나온 거 아니겠어요.”
—소설 속 주인공은 직업이 있고, 전문직에 속한 인물들입니다.
“현대인에게 있어 직업은 그 사람과 분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렌즈 같은 것이죠. 제가 전문직을 가진 주인공을 많이 쓰기는 하지만 고급 전문직만은 아니에요. 나름 사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두 번째 장편인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는 주식거래를 하는 사람이 나와요. 그 작품을 쓰기 위해 실제 주식거래를 해보기도 했죠. 주식이라는 게 오르면 돈을 벌고 떨어지면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매수타임과 매도타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걸 배웠어요. 원고 쓰고 있으면 돈이 다 날아가고, 엄청나게 비싼 수험료를 지불하면서 그런 세계도 경험했어요. 단편소설 《내 아들의 연인》이라는 작품에서는 상류층 부인이 아주 럭셔리한 스파에서 마사지받는 묘사가 있어요. 그런 건 간접적으로 취재한 건데, 같이 소설 쓰는 사람들도 물어봐요. 그런데는 얼마나 비싼가요? 하고. 저도 안 가봤는데요, 하니까 안 믿는 눈치더라고요.”
—다른 소설도 제목을 처음부터 정하고 씁니까.
“전부 그렇지는 않아요. 소설을 쓸 때마다 정해진 틀을 만들어놓고 진행하지는 않죠. 작품하고 연관시켜 얘기해 보면 현대인은 늘 바쁘고 쫓기듯 살아요. 저는 잠이 좀 많아요. 하루 4~5시간 자고도 정상활동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러워요. 저는 최소한 7시간을 안 자면 그 다음날이 힘들어요. 어떤 때는 아, 안 먹고 안 자고 살 수 없나 하죠. 한데 여행 가서 ‘백야’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밤도 있어야 하고, 사람도 자야 될 때는 자야겠더라고요. 처음에는 밤도 환하니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책도 더 읽고 작품도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고…. 하얀 밤 때문에 덧창을 닫고 자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대로 낮만 지속된다면 미쳐버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또한 삶에서 이루어지는 부분과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같이 있어야 사는 게 아닌가, 삶에서도 하얀 밤만 계속된다면 더 많이 일하고 성취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는 거죠. 행복도 좋지만, 고통이라든가 슬픔 그런 것도 사람에게는 있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소설은 노경의 문학 —어느 인터뷰에 보니 남편이 화가던데, 화가의 영혼과 작가의 영혼 중 누가 더 자유롭다고 봅니까.
“자유의 문제는 장르보다는 개인의 차이가 크겠지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아이와 같은 유아성 또는 심성을 상실하지 않고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은 아닌가요.
“소설은 정반대로 노경(老境)의 문학이에요. 생물학적인 나이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 자기 삶에 어떤 체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것은 오히려 노경의 문학이라고 봐요. 화가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안 들어요. 거의 다 그래요. 피카소라든지 달리 같은 사람들 보면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들었어요. 그런데 문학 하는 사람들은 10, 20대부터 애늙은이 같아요. 그건 장르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남편이 아이로 보일 때가 많겠네요.
“그래도 생물학적인 나이가 있기 때문에 늘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순간이 많아요.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면모를 볼 때마다 지적하지만, 자신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단순한 컴퓨터 사용법조차 익히려고 하지 않아요.”
—옷 같은 것을 특이하게 입진 않나요.
“네, 아주 아방가르드하게 입지는 않지만, 그래도 독특하게 입는 편이죠. 미키마우스 그런 티셔츠를 입기도 하고. 가끔씩 몰래 버리기도 해요.”
—예술가의 열정이 넘치는 분일 것 같아요.
“굉장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 유아성과 열정이 저를 끌어당긴 거죠.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건 정말 분석이 불가능해요. 왜 무엇 때문이지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다 보면 오류에 빠지는 거죠.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죠.”
—아이들은 누구의 영혼을 더 닮았나요.
“지금 둘 다 미술 쪽을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그게 좋아요. 글 쓰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애들이 글 쓴다고 나서는 게 무서워요.”
—신작은 언제쯤 발표할 예정입니까.
“장편연재를 봄호부터 시작했어요. 가수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이돌가수는 아니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 가수 이야기예요. 예술에 대한 메타픽션으로 볼 수 있고, 예술가라는 틀에서 보면 다 적용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라고 해둘까요.”
—제목은 무엇입니까.
“《가수는 입을 다무네》 기형도 시인의 시예요.”
—희곡으로 등단하고 10년 후 소설로 등단했어요. 희곡과 소설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대학 다닐 때부터 원래 소설을 썼어요. 학내 문학상에서 해마다 상을 하나씩 받았어요. 중편소설, 단편소설 심지어 콩트까지요. 결혼을 일찍 했어요. 아이를 낳고 1년이면 다 키운다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틈틈이 희곡을 써봤어요. 그런데 딱 한 편 써본 희곡으로 《중앙일보》 희곡에 당선이 됐어요. 그다음 이화 100주년 기념공모에서도 희곡으로 상을 받았어요. 희곡이란 게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게 아니고 무대에 올려야 되는데, 제가 지금은 성격이 많이 사회화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사회성이 너무 없었어요.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게 힘들고 어려웠어요. 그러다 둘째가 태어났고 또 한동안 아줌마의 삶을 살았죠.”
—100세 시대에 100세까지 산다면 계속 소설을 쓸 건가요.
“100세까진 안 쓸 것 같아요. 나이가 많이 들면 행복한 독자로 남아 있고 싶어요. 글을 못 쓰고 지나가는 날은 많지만, 책을 안 읽고 넘어가는 날은 없으니까요. 바쁘니까 못 보고 쌓아놓은 책을 날마다 조금씩 읽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오늘 덕수궁 한국근대현대회화전을 보시고 느낌이 어땠어요.
“사실 그림을 그리는 사람하고 살다 보니까 그림은 멀미가 나도록 봤어요. 그래도 매번 볼 때마다 느낌이 있어요. 사회가 점점 계량화된 가치만 중요한 것처럼 몰아가고 그런 식의 성취 방법만 가르치려고 하잖아요. 말은 하지 않아도 누구나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살아가죠. 내가 정말 미친다니까, 내가 미쳐, 이런 순간이 다 있잖아요. 그럴 때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나, 일제시대 40~50년대에 그때 사람들 얼마나 힘들었어요. 박수근 선생님 일화를 보면 조선호텔에 있는 화랑에 와서 맡겨놓은 작품이 팔렸느냐고 넌지시 물어보곤 했대요. 쌀이 떨어진 거죠. 그 시절에는 그림을 판다는 개념이 없었는데, 그나마 박수근 선생님 작품을 샀던 사람이 미군 소위였다고 해요. 자식들이 끼니를 거르는 상황에서도 붓을 들었다는 건 예술이 본능이란 증거겠죠. 인간은 결국 예술을 통해서 구원받아야 하지 않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남녀노소가 뒤섞여 예술에 대한 감식안이 없는 사람들도 빼곡하게 들어서서 즐겁게 그림을 구경하는 걸 보니까, 아 저렇게라도 삶과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이런 것마저 없다면 얼마나 인간세상이 팍팍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