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쓰기]
제 3차 장정을 마치고 돌아 온 지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여행기록의 정리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이 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중국에서의 1,2차 장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열심히 자료를 정리하고 기행문을 작성하여 인터넷의 여러 싸이트에 꾸준히 올린 결과 화서당이라는 출판사에서 "자전거 탄 풍경"이라는 책으로 엮어져 나오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 나는, 제 3 차 고국에서의 장정도 반듯이 책으로 엮어져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린 채 자전거를 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
자전거 타는 일 이외에 더 많은 일에 정신을 집중하다가 보니, A4용지 80여장을 앞뒤로 기록하여 온 2차 장정에 비하여 10분의 1도 안 되는 분량이다.
즉,
자전거 타는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관계로 인하여 자전거 타는 것보다는 중국인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 했고.... 중국에서 할 때는 현지인들이 밥집을 찾아서 주문하고 계산하고... 잠자리도 그들이 찾아서 정하고 했는데.... 고국에서의 3차 장정은 그들의 자전거 타는 것 이외의 것은, 박운상과 이상용이 많이 도와 주기는 했지만 거의 내가 쫓아다니면서 안배를 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중에 기록이 없으니 기행문을 정리하려면 같이 여행을 했던, 박운상이나 이상용군을 많이 귀찮게 해야 어렵게 꾸며져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줄인 1,2차 장정]
맨 먼저 참가자부터 소개하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 장정의 정리는 이후에도 계속 될 것이다. 사진을 정리하여 앨범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제4차 장정인 실크로드로 떠나는 계획까지....
나는 중국 싼둥의 칭다오시[山東省 靑島市]에서 6년째 살고 있으며, 북경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까지 해마다 2번씩 자전거를 타고 현지의 동지들과 전세계를 자전거로 장정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기행문은
그 간에 여기서 같이 탔던 동지들과 같이 고국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열심히 정리하고자 하는데....
참고로
제1,2차 장정기록이 http://suro61.netian.com/의 "자전거 장정"에 자세히 올려져 있으며, 그 장정을 간략히 말씀 드리면,....
제 1차 장정은
지난해(2002) 5월 9일부터 6월 2일까지, 총 24일간에 거쳐,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중국이 16강 진출 기원과, 한중 수교 10주년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축하를 위한 장정으로, 중국의 칭다오[靑島]를 출발하여 아래로 샹하이[上海], 난징[南京], 쉬저우[徐州]와 중간의 지난[濟南], 티엔진[天津]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닿는 2,397km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으며....
제 2차 장정은
차를 타고 칭다오를 떠나서 싼뚱성의 지난과 료청[聊城]을 통과하고 허난성의 뤄양[洛陽] 그리고 싼씨[陝西]성의 씨안[西安:장안]을 지나고, 빠오지[寶鷄] 그리고 깐쑤성의 티엔 수웨이[天水]를 거쳐 자전거 출발점인 깐쑤[甘肅]성 징닝현[靜寧縣]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자전거로 출발을 하여 깐쑤성과 닝씨아[寧夏] 회족 자치구를 통과하여 싼씨[陝西]성에 있는 중국의 천년고도 씨안[西安:장안]을 지나고, 해발 2,160m에 이르는 서악 화산[華山]에 올랐으며, 싼씨[山西]성을 잠깐 스치고, 허난[河南]성 싼먼씨아[三門峽]를 지나서, 또 다른 천년 고도인 뤄양을 거쳐 백마사[白馬寺]와 소림사[少林寺]를 보고 성도 쩡저우[鄭州]를 거쳐서 싼둥[山東]성의 허쩌[河澤]와 량싼[梁山]을 들려서 동악 타이산[泰山] 에 오르고 칭다오로 돌아오는 5천리 길(왕복 3,924km)을 25일에 거쳐 성공리에 마쳤다.
이 장정은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장정이었다.
[출발식]
고국에서의 제 3차 장정은
2003년 6월 18일 우리가 칭다오에서 출발식을 함으로 시작이 되었다.
마침 며칠 전에 칭다오에는 오범위[奧帆委]라는 해양 올림픽 조직위가 결성이 되기도하여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그 단체의 장과 체육국은 물론 체육총회라는 단체에서 적극적인 지지로 뜨거운 환송속에 우리는 출발식을 하였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장정을 더욱 빛내 주기 위하여 칭다오 노인 자전거 협회 회원 30여명이 참가를 해 주었으며, 미장원 식구들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를 쓴 유춘란[柳春蘭]경리와 란란으로 부르는 전순화, 그리고 한족으로 주근깨가 총총히 박혀 깜찍한 후이후이[慧慧].....귀여운 쓰푸[師傅:미발사] "비[飛]"와 자전거타는 운동을 가장 많이 같이 간 저우쮠펑[周俊峰]도 나왔고.... 나를 제일 많이 도와 주는 동포 이은영 여사와 박철이의 어머니와 동생 춘옥등등 이번에도 수없이 많은 분들이 참가를 해 주셨다.
막 출범한 오범위에서 출박식과 간단한 기자회견이 끝나고 뒷풀이를 하려고 시청앞의 오사광장으로 옮겨 갔을 때에, 허겁지겁 달려온 쑈팡즈[小肪子:귀여운 뚱땡이]가 있었으니,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날에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서 아명을 하얀 눈꽃 '송이'라고 지은 나의 작은 딸 선윤[善允]이었다.
[공항으로]
19일 아침에 서둘러 미장원에를 갔더니, 해외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짐을 잘못 꾸려 놓았으니.... 자전거 6대를 한 박스 안에 짚어 넣었는데, 크기도 크기지만 그 무게로 인하여 장정 대여섯명이 달라 붙는다 해도 .....
그렇지 않아도 이전에 짐을 쌓아 본 하이쵸[海超]에게 이렇게 저렇게 싸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이 녀석이 자기 것은 그렇게 묶어 놓았지만 다른 사람들 것은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 것을 다시 해체를 해서 꾸리자니 한시간 반이 훌쩍 지나 갔고.....
연락도 안했는데 청도TV의 뉴스취재기자 웅위[熊偉]가 카메라맨을 데리고 나타나는 바람에 더 바쁜 시간을 보냈야 하였다.
[참여자]
참가 인원을 보자면
같이 비행기를 탄 중국인으로는 칭다오 체육총회 주석이 소개 한 칭다오조보 체육부기자로 이틀 전에 결정이 되서 하루전에 겨우 비자를 받아 참가를 하게된 첫 번째 참가자 한꽝리양[韓光亮]이다. 그 친구는 지난해 월드컵 때에도 취재 차 대구에 갔었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하는 28세의 총각이다.
통역을 자임하고 나선 두 번째 참가자로 현지에서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동포 박철[朴哲:표저]. 성질이 휘발유 같으나 나에게는 꼼짝 못하는 뜨거운 남자. 그는 이번에 참가하여 하찮은 잔심부름에서 부터, 제일 큰일인 통역까지 막중한 임무를 뛰고 가는데, 다섯번째로 고국 땅을 방문하는 화려한 경력을 가졌으나 너무도 고르는 탓에 아직 장가를 못간 친구이다.
그리고
세 번째 참가자로 1차 장정에도 참가를 했던 위쓰쥔[于世君;여,50년 생](이하 위지에[于姐: 우누나]로...) 쓔엔밍[修延明]아저씨와 함께 참가를 하네 마네, 혹은 왕복 항공료를 포함해서 3,800위엔의 참가비용이 비싸네 어쩌네 등등으로 말이 많았는데, 끝내 슈아저씨는 경비가 부족한 듯 허리가 안 좋다는 핑계로 빠지고 위지에만이 참가를 하게되었다.
매일아침 바다에 나가서 수영을 하는데, 한겨울에도 바닷수영을 즐기는 맹렬 여성동지이며, 상해를 거쳐 북경까지 탄 1차 장정 때에는 상해 부근에서 차에 앉아서 가는 불행한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성공을 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보다도 더 했을 위지에....
또,
서울에 입성하던 날. 목욕탕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꿰매야하는 중상을 입고도 "메이쓰얼"[沒事兒 : 괜찮다]이라고 했던 대단한 아줌마이기도 하다. 결국에는 일요일인데다가 밤이 늦은 시간이라서 강남성모병원까지 가서 새벽까지 20여 바늘을 꿰매고 왔다.
전반에서 중반 까지인 속초에 닿을 때 까지는 뚀지에[ 葵玲:하이쵸 엄마]가 늘 쳐지고 위 지에는 앞으로 치고 나갔는데, 나이를 속일 수가 없는가? 속초를 지나고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서 포항까지 계속 내려(?)가는 언덕이 많은 7번 국도에서는 위지에가 일행을 따라 오지 못하고 조금 비탈이 높다 싶으면 자전거에서 내리는등 쳐지는 수가 많았는데, 나는 이것을 오기(일명 깡)와 나이로 풀이를 해 보았다.
평소 운동을 즐겨 했던 위지에가 초,중반에는 이미 다져진 기초 체력으로 충분히 앞으로 치고 나갔지만, 그래도 젊었던 시절 한가락 했던 뚀지에도 이에 질세라 보름을 넘게 자전거를 타면서 다져진 체력에 깡이 보태지니 늙은(?) 위지에 정도는 제끼고 치고 나갈 수가 있었다는 말씀이다.
하여간 오랜 시간 펼쳐지는 장정 중에 두 아줌마의 레이스는 볼만한 구경거리중에 하나였다.
위지에에 대하여 한마디 더 보탤 것은
자전거 탈 때에 뒤에서 보면 전혀 흩어지지 않는 자세에, 군살 한 점 없는 몸매는 많은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그녀 만의 자랑일 것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뚀지에[ 葵玲:하이쵸 엄마]이다.
원래는 잘나가던 택시 기사였는데 이차저차하여 택시를 처분하고, 우리와 동행하여 한국으로 날아간 유부녀(?).
젊었던 시절에는 칭다오에서 자기의 고향인 펑라이[逢萊]까지 무쇠덩어리 고물 자전거로 220여 km길을 단 하루만에 달렸다고 하기에, 당시 나는 웃기지 말라고 말을 했었는데, 이번에 같이 자전거를 타보니 가능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언제 날 잡아서 도전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마라톤 코스가 42.,295가 된 것 같이 일반인들이 쉬지 않고 하루 안에 가장 멀리 달리는 최고 먼 거리를 세우는 기록 같은 것.....
그녀는 떠나기 전에 아내의 묵인(?)하에 나와 둘이서 칭다오 근처인 교주와 즉묵, 그리고 로산에도 서너차례 다녀오는 둥의 충분치 못한 훈련을 했지만, 그 당시의 느낌은 그녀에게 말을 했듯이 "이번에도 당신의 아들은 성공을 못할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문제없이 성공을 할 것이다"고 말을 했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또 그렇게 되었다.
이유인즉,
그녀는 철저히 나의 말대로 자전거를 탔기 때문이다. 짧은 훈련기간이었지만, 나는 자전거 타는 나의 노-하우를 그녀에게 충분히 교육을 시킬 수가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성공을 이룬 것이다. 또 한가지로 그녀 역시 누구 못지 않은 중국의 맹렬 여성이라는 말씀이다.
다섯 번째는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 이미 중국에서 있었던 두 번의 장정을 나와 같이 한 위하이쵸[于海超:우해초]. 그를 정비 담당으로 정해 놓았지만, 정녕 장정중에는 정비 담당으로 써먹어 본 일이 없었다.
이 녀석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철이 없고, 이번에는 같이 간 엄마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자꾸 큰소리를 쳐서 내게 미움도 받았다. 더구나 자전거를 타는 것도, 그 녀석 만은 독립군이었다. 자기 혼자 저 뒤에 떨어져 오든가, 아니면 다 제치고 제일 앞으로 나가서 치고 나가던가하는 식의 말썽 꾸러기 였다. 또 이번에도 늦잠을 자는 버릇이 여전하여 결국은 그것으로 인하여 속초에서는 내게 아주 엄한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돌아온 지금은 꾸려온 자전거를 미장원에 팽개쳐 둔 채로 직업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는데... 언제나 와서 맞추어 탈는지....
여섯 번째는 저우지엔궈[周建國:주건국]로 아내가 공장을 꾸렸을 때에 많은 고생을 했다는 친구로 이번의 자전거 장정은 일종의 포상휴가(?)로 가게 된 것인데, 56개 민족 중에서 95%를 차지 한다는 한족이면서 눈알이 크고 잘 생긴 청년임. 79년 1월 9일생이며 아내가 오래도록 데리고 있었던 짱핑[張萍]이 지금은 그의 아내가 거의(?) 되어 있다. 못하는 일이 없는 팔방미인으로 굳이 직업을 말하라면 봉제 완구 품질 검사원이고, 부잣집 아들이기도 하다.
일곱 번째는 뚱하이풔[董海波동해파]로 출생년월일이 84년 9월 12일로 하이쵸보다 생일이 다소 늦은 소화자[小 子:젊은이]이며, 직업은 없고 역시 먹고 살만한 대업[待業:취업대기]자임. 어린 나이임에도 엄마가 돌아 가시고 안 계신 불우한 가정 환경에 비하여 매사에 잘 웃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 나는 그에게 "벙글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늘 180cm가 넘는 큰 키에 긴 다리를 이용하여 저우지엔궈와 함께 늘 앞으로 100여m이상 나가서 타는 말썽꾸러기이기도 하였다.
이 녀석은 7월 1일 서울 홍제동에 있다가 33km를 이동하여 나의 고향집에 짐을 풀고, 의정부에서 식당을 하는 나의 친구의 초청을 받고 나가서 삼겹살과 소주로 밤늦게 까지 냉장고의 소주를 다 비우고는 다음날 아침에 숙소를 빠져나가서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아주 괘씸한 녀석이기도 하다.
여덟번째는 쏭양핑[宋陽平:송양평]이라고 불리는 금년 18세의 꾸냥[姑娘:처녀]으로 자전거는 단 하루도 제대로 탄 날이 없는 만주에서 온 꾸냥.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차 안에 앉아 있었던 시간이 훨씬 많았던 꾸냥.
돌아 온 지금 그녀의 머릿 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또, 한 사람은 일이 있어서 들어 가면서 우리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하여 같이 들어 간 전향순이가 있다.
그리고 끝으로
내가하는 일을 못 믿어서 같이 비행기를 탔다가 거의 전과정을 같이 하게 된 아내는 장정 내내 나의 분풀이와 짜증을 한 몸으로 다 받는 고통을 감수하기도 했는데....
부족한 돈의 들고 남을 따지는 회계에서부터...
아침에 먹을 라면을 끊이는 일과....
자전거 타다가 꼭 먹어야 하는 간식을 준비 하는 일.
맛있고 싸고 양도 많은 식당을 찾는 일.
조용하고 방바닥이 따스하며 값도 싼 잠자리를 구하는 일...
우리에게 관심도 없는 언론 섭외하는 일 등등
굳은 일을 자처(?)해서 맡아보고는 장정이 끝이 난 지금 내가 마음에 차지 안아하자 자기에게 화살이 날아 올까봐 불안과 초조 속에 숨을 죽이고 있는 아내이다.
그 동안에 싸스[非典]로 인하여 장기간 비행이 중단되었던 칭다오 대구 로선의 첫 번째 비행기에 우리 일행은 설레이며 몸을 실었다. 그 비행기에는 모두 28명의 승객이 있었는데, 그 중에 우리 11명이 좌석을 차지하고 앉은 것이다.
대구의 공항에는
꼭 참가를 한다고 다짐을 한 한국인 청년 박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70년 4월 12일 생으로 꼼꼼하고도 얌전한 스타일을 가진 남자로 어디나무랄데가 없는 청년이다. 마침 대구광역시 비산동에 살고 있으며, 이번 장정을 제일 많이 기다린 사람중에 한사람으로, 그가 중국에서 근무를 할 때에 나를 만났고, 중국에서도 같이 라이딩을 하기도 했었다.
장정이 두 달여가 미루어지는 바람에 일본에 가는 일정은 빠지고 4일 후에 하동 진교에 있을 때에 참가하였다.
또, 한남자가 있었으니 이번 장정에 제일로 많은 수고를 한 청년 이상용[李尙容]이다.
대~한국인으로 경남 양산산이고, 금년 29세로 장정중에 매일밤마다 묘령의 아가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나의 단잠을 방해한 장본인이기도 한데, 그 결과 장가보낼 걱정을 덜기도 했다.
그도 중국에서 한 제1차 장정에 참가한 의지의 대~한국인으로 처음 중국에 왔음에도 당시 4년을 넘게 살은 나보다 뭐든지 잘먹어서 부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자기의 6인승 승합차를 끌고 와서, 대구 U대회 홍보물과 우리의 활동을 광고함은 물론 화서당에서 출판한 나의 책 "자전거 탄 풍경"의 광고지를 붙이기도 하고, 우리일행의 짐을 싣고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밖에는
저우지엔궈의 소개로 여권까지 만들었다가 막판에 빠진 한족 청년 류시엔펑[劉先峰:류선봉] 77년 4월 23일 생으로 남자이고 자영업을 하는 부자(?)이며, 페이페이[菲菲]라는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버지 였는데....
또 한 사람은
꼭 참가를 하고 싶다는 예쁜 중국인 미시 황연[黃涓]여사 였는데, 떠날 때가 되어서는 꼬리를 내리고 뒤로 빠졌고...
또,
나의 홈으로 찾아 왔다가 참가를 하겠다고 했던 서울에 사시는 김 선생은 연락을 제대로 못하였고,
다음 까페에서 만난 사자쌔끼라는 동호인은 부분적으로라도 참가를 하겠다고 하였는데,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아서....
이외에도 참가를 하고자 하는 분들이 여럿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참가는 하지 못하여 안타까움이 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