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자 | 지 역 | 교통편 | 시 간 | 일 정 | 식 사 |
제1일 10월 6일(화) | 인천 양곤
| KE471
전용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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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 22:25
| 미팅- 오후 4시 : 인천공항 C카운터 인천 국제 공항 출발 양곤 국제 공항 도착 후 가이드미팅 호텔 투숙 및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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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 미얀마 라이프호텔 [3성] 또는 동급 | |||||
제2일 10월7일(수) | 양곤
시리암
양곤
| 전용차량 | 시리암 | 호텔 조식 후 농촌 마을과 전원 풍경을 구경하며 시리암 유적지로 이동 남부 버마를 지배하였던 옛 포르투칼의 유적지 관광 홍수가 나도 물에 잠기지 않는 양곤강의 여래 파고다 순례 중식 후 미얀마 8개 대표종족의 거주상을 보여주는 민속촌 관광 내셔널 빌리지 관광 (전동카 탑승) 전망 탑에 올라 숲의 도시 양곤 전망 조망 양곤 귀환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 조:호텔식 중:한식 석:샤브사브 |
HOTEL : 미얀마 라이프호텔 [3성] 또는 동급 | |||||
제3일 10월8일(목) | 양곤
바고
양곤 | 전용차량 | 바고 | 호텔 조식 후 전용버스로 바고로 이동 (약 2시간소요) 한따와디 9세기, 11세기 유적지인 바고관광 천여명 수도승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짜가와디 수도원 미얀마 최대 높이(113M)의 황금 대탑 쉐모도 파고다 거대한 사면불을 조성한 짜익푼 파고다, 몬 왕조의 바고 왕궁 자애로운 미소로 유명한 55M 길이의 쉐달랴웅 와불 양곤으로 귀환 후 세계 최대의 백옥으로 조성한 로카찬다 파고다 순례 석식[삼겹살] 호텔 투숙 및 휴식 |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한식 |
HOTEL : 미얀마 라이프호텔 [3성] 또는 동급 | |||||
제4일 10월9일(금) | 양곤 | 전용차량 | 시리암 | 호텔 조식 후 위빠사나 명상센터인 마하시 수도원 방문 부처님 치아사리가 모셔진 황금빛 쉐도 파고다 순례 중식[쌀국수+튀김정식] 후 아름답고 수려한 67미터 와불인 차욱타지 파고다 순례 83년 미얀마폭파사건의 현장인 아웅산 추모탑 경유 (차장관람)후 중식 마하파라나구하 동굴사원 관람 , 까바에 파고다 순례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99M 황금대탑 쉐다곤 파고다 관광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한식 |
HOTEL : 미얀마 라이프호텔[3성] 또는 동급 | |||||
제5일 10월10일(토) | 양곤 | 전용차량
KE472 |
23:30 | 호텔 조식 후 체크아웃 여객선을 탑승하여 양곤강을 건너 달라섬 이동 미얀마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달라섬관광 & 트라이쇼탑승 딤섬 중식 후 양곤의 열대수목원 , 깐도지 호수산책 양곤 최대 마켓인 보족마켓 관광 양곤 토산품점 쇼핑 관광후 석식 양곤 국제공항으로 이동 양곤 국제공항 출발 | 조:호텔식 중:딤섬 석:한식 |
제6일 10월11일(일) | 인천 |
| 07:50 | 인천 국제공항 도착 후 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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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Myanmar) 개요
그 동안 미얀마는 두 차례의 국명 변경이 있었다. 1948년 1월 4일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국명을 ‘버마연방(Union of Burma)’이라 정했으나 1988년 9월 군사 정부가 등장해 1989년 6월 ‘미얀마연방(The Union of Myanmar)’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2010년 10월 21일 신헌법의 규정에 따라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미얀마는 독립기념일인 1월 4일을 국경일로 삼고 있다. 그리고 1948년 4월 19일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에 가입하였다.
미얀마는 인도차이나 북서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676,578㎢로 한반도의 3배다. 미얀마의 인구는 2013년 기준 6,098만 명이고, 전체 인구의 89.4%가 불교도이다. 미얀마 국민의 70%는 버마족이고, 25%는 카렌(Karen), 카친(Kachin) 등의 소수민족이고, 나머지 5%는 중국계와 인도계이다.
수도는 네피도(Naypyidaw)이며, 99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2005년 11월 이전에는 양곤(Yangon)이 수도였다. 2005년 11월 6일부터 미얀마 중부 지역에 있는 네피도로 행정수도 이전을 개시해 2006년 2월 중순 무렵에 일단락되었다. 주요 도시로는 양곤 디비전(Yangon Division: 약 685만 명), 만달레이 디비전(Mandalay Division: 약 800만 명), 에야와디 디비전(Ayeyarwaddy Division: 약 785만), 바고(Bago Division: 약 580만 명), 샨 주(Shan State: 약 553만 명), 몬 주(Mon State: 약 30만 명) 등이 있다.
2010년 기준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은 3.1%, 인플레이션율은 10.9%, 외환보유고는 37억 6000만 달러, 교역액은 131억 2000만 달러(수입 43억 달러, 수출 88억 2000만 달러), 외채는 73억 달러이다. 주요 자원은 쌀, 티크, 원유, 천연가스, 구리, 납, 아연, 텅스텐, 다이아몬드, 루비 등으로 산림, 광물, 농수산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농업 위주의 산업 정책 추진을 추진해 인프라 기반이 취약하고, 자본이 부족하다. 게다가 행정 규제가 심하고 제도 부족 등으로 경제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의 표준시는 한국 표준시보다 2시간 30분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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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Myanmar) 개관 |
국명 |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
위치 |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북서쪽 |
면적 | 676,578㎢(한반도의 3배) |
민족 | 버마족 70%, 소수족 25%(카친, 카렌, 친, 샨, 꺼야, 몬, 라카인), 기타 5%(중국계, 인도계 등) |
언어 | 미얀마어(정부, 기업인, 호텔 종사자들은 영어 구사하나 대부분은 영어구사 불가), 소수민족 고유어 |
종교 | 불교 89.4%, 기독교 4.9%, 이슬람교 3.9%, 힌두교 0.5%, 토속신앙 1.2%, 기타 0.1% |
기후 | 고온다습한 열대 몬순기후이나 북부지방은 아열대성 기후 |
인구 | 6,098만 명(2013년 4월 정부 발표), 가용 노동인구(3,735만 명) |
수도 | 네피도(Naypyidaw, 인구 99만 명, 2010년 기준) |
국가형태 | 공화국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
주요인사 | 대통령: 테인 셰인(Thein Sein), 부통령: 티하 투라 틴 아웅 민트 오(Thiha Thura U Tin Aung Myint), 사이 마묵 캄(Dr. Sai Mauk Kham) |
행정단위 | 연방 정부와 14개 지방 정부로 구성 |
국내총생산(GDP) | US$ 594.27억(2013년 추정치) |
1인당 국민소득 | US$ 914.94(2013년 추정치) |
화폐단위 | 챠트(Kyat), 2011년 5월 기준 1달러 = 약 5.63챠트(비공식 시장 환율은 1달러 = 약 840챠트) |
국경일 | 1월 4일 |
수도 네피도(Naypyidaw) *2005년까지는 “양곤”이 수도였으나 군사정권이 네피도(Naypyidaw)로 수도를 이전하였으나 지금도 여전히 양곤이 정치나 경제의 중심지이다. |
양곤(Yangon) *양곤(Yangon-현지 발음으로 ‘양공’이리고도 함)은 미얀마의 종전 수도이다. 아름다운 호수와 수목공원이 있는 잘 어우러진 도시이다. *면적 199㎢, 인구 336만명(1993)으로 영국 식만지 시절에는 랑군(Rangoon)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본 도시명은 ‘양곤’이다. *1755년 미안마의 알라 웅파아왕이 몬족의 다곤 마을을 정복하고 그곳을 전쟁의 끝이라는 뜻의 ‘양곤’으로 개명하여 미안마의 수도로 지정하였다. *이 도시의 상징은 매년 수 만명의 순례자들이 다녀가는 ‘쉐다곤 파고다’이다. 이 탑의 역사는 2,5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부처의 8가닥 머리카락을 모셔두기 위해 건립했다. |
▣ 10월 6일 ▣
◼우리 일행 22명은 희희낙락하는 기분으로 인천공항에 오후 4시 약속시간에 맞추어 모여 반가이 조우를 했다. 오후 6시 45분에 출발하여 장장 6시간을 비행하여 양곤공항에 현지시각으로 밤 10시 10분에 도착했다.
◼통관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국처럼 신속히 통관시키는 나라가 드물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니까!!!
◼한참을 달려 도심을 벗어난 곳에 도착한 호텔에서 배정 받은 방은 흩어지긴 했으나 모두 1층이었다.
로얄 골든 뷰 호텔(Royal Golden View Hotel)에 투숙 |
◼도심을 써억 벗어나 한적한 곳에 위치한 호텔은 황톳물이 도도히 흐르는 제법 넓은 강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당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야자나무와 아름다운 열대 식물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호텔 밖은 시골 풍경 그대로이고 아주 허름한 구멍가게들이 호텔과 어울리지 않게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우리는 이 호텔에서 온 나흘을 묵었는데 아침식사는 호텔식 뷔페였다. 서양처럼 아침식사는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객실은 비교적 깨끗하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가이드 구희창씨
*성지순례 전문 가이드로 국가관이 투철하고 애국심이 넘치는 분으로 불교에 대한 전문지식이 대단해 우리 일행들이 ‘박사님’, ‘교수님‘이라 불렀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양곤지회 사무장으로 봉사 중
◼미얀마는 2500년간 불교를 통해 발전해 온 나라 - 국민이 자존심이 강하다. 우리(타국 관광객)는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얀마의 독특한 문회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미얀마의 상징적인 존재 - 아래 3가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관광에 임하라.
1. 아웅산장군
2. 군부에 의해 50년간 철권통치를 했던 나라
3. 탑의 나라 : 미얀마의 상징 ‘황금대탑 쉐다곤.
◼미얀마에는 400만 개의 사원이 있다.
◼미얀마는 한국의 193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70년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얀마를 “불쌍하다", ”안됐다“라고 봐서는 안 된다. 우리의 1970년대의 눈높이로 보자. 지금 그들은 행복해 하고 있고 맑은 정신문화를 소유하고 있으며 자연은 청정함 그대로를 소유하고 있다.
◼인간의 香은 자연의 香을 능가할 수 없다.
◼우리 관광객은
*눈으로 보는 즐거움
*귀로 듣는 즐거움 을 음미하자.
*혀로 맛보는 즐거움
◼미얀마는 관광 인프라가 안 되어 있다.
*국고가 비어 이를 보충코자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으나 호텔, 리조트 등 인프라가 안 됨. 현재 호텔은 주로 3성급이 主
◼防 對 房 - 객실 내 인터폰, 상대 방 번호 누르면 통화 됨
◼중식과 석식은 일정표대로이지만 그 내용과 질은 가이드의 역량(?).
◼망고가 흔하고 싸니 많이 사 드시라!
◼내일 사원 방문 시 맨발로 다님
◼내일 모닝 콜 - 07:00
출발 - 09:00
아침 식사는 07:00부터 가능
▣ 10월 7일 ▣
◉오늘의 관광 일정
◼사면불 짜익푼 파고다→황금 대탑 쉐모도 파고다→짜가와디 수도원→쉐달나웅 와불→로카찬다 파고다(옥불)→夜會
◼호텔 내 주차장에 밤새 세워둔 관광버스에 올라 일정 시작
◼양곤 시내의 아침 - 자동차로 엄청 막힘.
◼집들은 낡고 허름함.
◼한국은 ‘박정희’가 있어서 현재 부강한 나라가 됨
◉오늘 관광 할 시리암 유적지 - 한국의 ‘慶州’에 비유될 古都
시리암 유적지 남부 버마를 지배하였던 옛 유적지, 황토빛 양곤 강에 세워진 '물의사원' 예례 파고다‘가 있고 미안마 8개 대표 종족의 거주상을 보여주는 내셔널 빌리지 관광을 할 수 있다. |
◼미얀마의 불교 역사는 2500년이나 되고 세계에서 살아있는 불교의 중심지는 미얀마라 할 수 있다.
◼미얀마는 네윈장군이 20년간 군사 독재에서 군부 통치시대 연속
- 시간이 멈춘 땅
◼지금의 건물의 70% 이상이 196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
◼1960년 전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과 도시계획, 철도가 그대로...
◼조선시대에 서양인들이 본 조선인 - 매우 게을렀다.
- ‘새마을운동’이 부지런한 민족으로 바꿈
◼60년대 이전 - 양곤은 매우 아름다운 도시
- 싱가포르가 양곤을 모방해 도시계획을 세움
◼양곤 시내 - 숲이 많아 ‘정원의 도시’라 별칭 붙음
◼쇄국(鎖國) - 외국 출입이 안 되어 발전되지 못함
◼군부통치의 장점 - 강력한 법으로 분열 막음
- 종족의 수 - 135개
- 공용어 - 버마어. 언어가 230가지
◼피로할 때 ‘꽁양’이라는 열매 씹음
◼남자가 치마를 입고 앉아서 소변 봄
- 자기네 문화 지킴 : 자존심
◼한국에서는 폐차해야 할 차들이 운행됨
- 매연이 안 나옴
- 80% 이상이 천연가스 차임
- 와이셔츠 때 안 탐
◼전 세계에서 천연가스 매장량 최고
◼영국이 60년 간 식민지 지배
일본이 3년간 식민지 지배 - 쇄국하게 된 큰 이유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왕조가 사라짐
◼水道 없고 다 지하수 사용
◼양곤의 인구 - 약 600만 명
◼양곤은 120년간 首都였음
◼‘시리암 유적지’는 『바고왕조』의 首都
◼미얀마의 왕조는 가장 긴 것이 500년, 그리고 300년, 200년...
- 왕조의 부침(浮沈)이 심했음
◼바고 지역 - 곡창지대로 미얀마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
◼미얀마어의 語順 - 한국과 같음
◼전통 가요 - 한국과 비슷
◼성격 - 급하고 배타적임
짜익푼 파고다 짜익푼 파고다는 네 자매가 독신 선언을 하여 네 방향으로 부처의 얼글을 만들어 봉헌했다고 합니다. 짜익푼 파고다의 높이는 무려 30m, 각각 다른 형상으로 앉아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어요. 이 파고다가 발견될 당시 한쪽 면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야기에 따르면 독신 선언한 네 자매 중 한 명이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하자 한쪽이 붕괴되었다고 하데요. 최근에 다시 붕괴된 한 면을 복구하였다고 합니다. |
◼처음으로 탐방한 파고다인데 맨발로 올라가니 그 기분이 묘하다. 발바닥이 얼얼하고 시원하고 지압을 하는 기분이라 상쾌하기도 하다. 현지인들의 발은 검스레한데 우리 일행의 발은 뽀얗다. 정말 발이 오랜만에 세상 공기를 맛보고 햇볕을 쐬서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파고다의 크기가 사람 마음을 압도한다. 높이가 30m!!!!
◼"구희창 가이드“의 해박한 ‘불교문화해설’에 입이 벌어졌다.
파고다를 참배할 땐 언제나 맨발이라야 가능
◼미얀마는 개들의 천국이다. 파고다의 입구 가운데를 차지하고 편안히 누워 계시고(?) 사람들이 지나가도 꿈쩍을 않는다. 매일 한 끼씩 개들에게 밥을 주는 공무원이 따로 있고 길거리 개가 굶어 죽으면 담당 공무원이 엄중 문책을 받는단다.
◉한국 문화에는 인도 문화가 베어 있다.
*‘토끼와 거북이’ - 인도의 것
*판소리 ‘수궁가’ - 인도의 것
*‘아궁이’ - 인도 말. 인도의 불의 신이 ‘아궁이’
*우리 관습에 ‘문지방’ 못 밟게 함
- 인도에서 門을 지켜주는 신이 ‘문지방’
- 악귀가 못 들어오게
*김해 지방의 사찰 - 魚神 그림
-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 황후가 인도에서 전한 것
*백수 “건달” - 인도의 빈둥빈둥 노는 신이 ‘건달’
◼영국과 전쟁 시 폭격 덜 받은 곳 - ‘바간’ - 바고 지역
◼영국이 60년 간 지배한 것 보다 일본이 3년간 지배한 시기에 더 많은 피해 입음.
◼일본이 태국의 ‘콰이강의 다리‘ 건설하며 미얀마인 데려다 20만 명 희생시킴
◼지금 미얀마 내 車의 70% 이상이 일본 차
◼아우산장군이 영국과의 독립전쟁 할 때 일본군인 도움 받음 - 영국 몰아 냄
◼아웅산장군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33세에 政敵에게 암살 당함 - 아웅산 장군의 미얀마인들이 추앙하는 國父 - 수치 여사의 아버지
◼미얀마 - 3면이 바다, 해안선 길이 3000Km, 예쁜 바다 많지만 호텔이 없어 관광객 접근 어려움
- 정신적 통일에 불교가 기여
◼미얀마 국토의 면적 - 세계에서 49위
- 남한의 7배, 남북한 합쳐 3.5배
◼미얀마의 문자 - 쓴다(書)기 보다 그린다(劃)가 맞음(???)
*안녕하세요? - ‘밍글라바’
*고맙다 - ‘지수째’
*화장실 - ‘애인따’
*얼마냐? - ‘맹글라바’
◼합장(合掌) 모양 - 연꽃 모양
- 상대방에 대한 공경심
◼미얀마의 젊은이 - 한국 많이 감. 택시 운전기사 중 한국말 알아 듣는 사람 있으니 유의하실 것
◼쌀을 3모작 함
- 6.25때 안남미 쌀 원조
◼세계에서 현찰 기부 제일 많이 하는 나라
- 미얀마는 보시(普施)의 나라
- 나무에 벼 이삭 묶어 놓는 풍습 - 새들에게 보시
◼스님들이 공양(供養) - 오전 10시〜10시 30분 - 1끼 공양
◼탁발(托鉢) 시 - 맨발
-살생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미얀마에서 관광객에게 구걸하는 것 거의 보지 못함
◼性 범죄 적고 살인사건 적음
◼호텔에서 “모기 잡아 달라”
- 호텔 종업원들이 모기를 잡지 않고 쫓음
- 호텔의 도마뱀 - 모기 파리 거미 잡아먹음
◼부처님 -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살 권리가 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스승은 부모님이다.’
◼학생들이 스님 다음 존경하는 이가 ‘선생님’
◼미얀마의 법은 살아 있다.
◼미양마의 국토는 60%의 산과 40%의 평야로 황금 비율
- 북쪽 - 히말라야산맥
- 서쪽 - 방글라데시
- 북서쪽 - 인도
- 아래 - 라오스
- 더 아래 - 태국
◼5〜10월 - 雨期
- 여름이 짧고 엄청 더움 - 3〜5월 기온이 47도C
- 12월 - 한국의 초겨울 날씨
- 중부지방 - 난방을 해야 할 정도로 추움
◼지붕 고쳐주는 총각 - 최고의 신랑감
- 가이드가 시골의 가난한 집을 봉사 차원에서 고쳐 주었더니 밤에 그 집 딸이 침실에 들어와 난감해 한 적이 있다고 함
◼이성(異性)의 발을 밟으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북쪽 소수민족인 「카렌족」
- 목에 링 무게 8Kg 단 여성 있음
- 카렌족 여성은 미녀가 많아 타 부족 사람들이 납치해 가 이를 막기 위해 링 채움
◼여성은 거의 다가 “다나카”라는 나무를 갈아 얼굴에 바름
- 분 냄새가 남
- 자외선 차단
- 저녁에 세수하면 얼굴 촉촉
얼굴에 다나카 바른 여성↓
바고 양곤에서 버스로 약 2시간30분에 옛날 불교왕국이었던 바고 왕국이 있다. 오늘은 바고 지방을.......불교왕국답게 많은 파고다와 유물이......
우리는 1100명의 수도승이 수련하는 짜까와디 수도원과 쉐모도 파고다, 짜익푼 파고다, 바고 왕궁, 쉐달라웅 와불(臥佛)을 보고 로카찬다 파고다를 순례할 것이다. |
◼바고의 인구 - 500만 명
◼‘몬족’이 세운 나라
◉미얀마의 교육 제도
◼미얀마의 學制
- 과거 : 4(초) 4(중) 2(고) 2(대)
- 현재 : 4(초) 4(중) 2(고) 4(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교복을 입음
- 학생 : 흰색 저고리에 녹색치마(남학생도 치마 입음)
- 교사 : 학생과 같은 교복 입음
◼간호사의 복장 - 흰색 윗옷에 빨강색 치마
◉미얀마의 정치 제도
◼1989년 사회주위 끝나고 ‘자유만주주의극가’로 변신
◼민간 정부 들어 선 것이 5년 전
◼5년 단임제 대통령
◼‘수치 여사’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
- 이유 :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독립전쟁 당시의 약속이 독립하면 소수민족의 자주권을 인정하겠다고 했던 바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의 공약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어 나라가 수십 쪽으로 갈라질 수 밖에 없으므로 지금대로 유력한 정치 지도자로 남을 것 예상
◼지금도 99%가 군부 세력
◼군부 철권 통치 시절 - 달러 소지자는 범법자로 취급.
- 지금도 시골 가게에서 달러를 주면 겁 먹음
◼미얀마인들 - 새돈만 받음. 「내셔날 빌리지」의 가게 여주인이 우리 일행이 준 구겨진 돈 안 받겠다고 거절. 새 돈으로 바꿔 다시 지불함
- 구김 있거나 낙서한 달러 안 받음
◼지금 군인 가족만 다니는 학교 따로 있음
◼군 장교나 장성은 예편하면 국가에서 땅을 줌
◉군부 출신인 현 땡인생 대통령
◼민주화 작업 엄청 많은 변화 시킴
- 국민들 땡인생 대통령이 한 번 더 집권했으면 함
- 그러나 헌법이 단임제로 되어 있어 불가
◼기업인 - 마약왕 쿤사의 부하 : 군부와 연관
◼한국의 「대우인터네서날」- 미얀마의 가스 도입 중
- 미국의 압력에 타국 기업은 다 철수 했으나 대우인터네셔날과 포스코가 버텨줘서 미얀마 정부가 감사해 대우인터네셔날에게는 가스 반출권을 주고 포스코는 제철소 건설을 허가해 줌
◼과거에는 미얀마와 북한이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나 아웅산 사태 후 북한과는 단절하고 사회주의 버리고 한국과 가까워짐. 이명박 정부 때부터 관계 개선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미얀마 방문하게 됨
◼교민 1500여 명. 주로 봉재업에 종사하고 있음
◼한국 건설업체 들어 옴. 한국의 “빨리빨리”가 호감 삼
- 한국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 보고 경탄함
- 미얀마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 - 내부 시설은 모두 입주자가 자기 돈으로 내부 시설해야 함
◼양곤의 가장 높은 빌딩 - 20층
◉옵션 투어 제안 받다.
가이드로부터 옵션투어를 제안 받았다.
*전신맛사지 - 2시간에 40$
*시티투어(기차 타고 교외 관광) - 30$ 1인당 70$
*매장 방문 - 상황버섯 가게
- 농산품 가게 - 강황, 참깨, 꿀 등
황금 대탑 쉐모도 파고다 이 파고다는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파고다로서 높이가 114m 에 이른다. 약 2,200년 전에 조성되었으며 과거 왕들이 가장 점령 하고 싶어 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치열한 전투들이 벌어진 곳이다. 또한 이 파고다는 옛날 페구왕조의 영화를 한눈에 볼 수가 있는 파고다이며 지금 현재에도 계속 보수 수리되고 있으며 많은 참배객들이 오고 있다. 쉐모도 파고다는 탑을 빙 둘러 있는 작은 공간 마다 부처님을 모셔 놓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쉐모도 파고다는 황금박이 아니라 앏은 판을 벽돌 모양으로 붙였다고 한다. 인간의 정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쉐모도 파고다에는 승려가 없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많다. 탑을 배경 삼아 여러 대중들이 먹고 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실천이라고 하는데 ~쉐모도 파고다에 탑을 에둘러 싼 기단에는 많은 부처와 보살상이 있는데 좌대는 은이나 크리스탈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쉐모도 파고다 입구에서 수도원과 사리탑 경내에 들어가는 경우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하므로 슬리퍼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승려의 그림자를 밟으면 안되며, 여성이 승려의 몸에 손을 대서도 안된다. 승려나 수도승에게 악수를 청해서도 안된다. 미얀마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다 보니 도둑이 없고 또한 남의 것에 대한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사원내에서 사진을 쵤영 하는 경우 소정의 비용을 납부해야 하는데, 특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나 불교성지 바간의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사원 등에서는 필수적이다. |
◼‘쉐모도, 쉐다곤, 쉐달랴웅, 쉐도 파고다의 ’쉐‘는 황금을 의미함
◼황금 대탑 쉬모도 파고다는 높이가 114m로 바고의 중심, 그 규모와 크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음.
- 외부를 황금 색칠을 했는데 상부는 진짜 순금
- 부처님 사리 소장
- 많은 현지인과 승려들이 순례차 방문하고 기도하는 모습 보임
- 중상부는 수리 중임
- 바닥이 대리석이라 비가 와 미끄러워 혹 다칠가 봐 보조 가이드가 많은 배려를 해 줌
안사11 여성 회원들만...
짜가와디 수도원 양곤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바고에 위치한 '짜가와디' 수도원. 1천여명의 수도승들이 있는 곳이다. |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였으나 회랑 안을 걷게 된 건물 구조라 우산을 받지 않고도 역내를 모두 살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실내는 어두컴컴했다.
◼들어서자 얼마 안 가 우측에 높이 말을 탄 아웅산 장군상이 방문객을 맞았다. 33세에 정적에게 암살당했다는데 말 위의 아웅산은 새파란 젊은 청년이었다.
◼커다란 강당 같은 실내에는 1천명은 됨직한 청소년으로 보이는 승려들이 경전을 암송하는 듯 웅장한 합창이 들렸다.
◼미안마의 남자는 소정의 이 승려 과정을 거쳐야 결혼이나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단다. 어느 정보를 보니 의무 과정이라 의욕도 없고 사명감도 없이 교육을 받는다고 했는데 우리가 갈 때 본 모습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쉐달랴웅 와불 해탈에 들어서는 고타마- The Shwethalyaung Buddha 세계 최대의 와불(Reclining Budda)이다. 길이 56m, 높이 18m의 거대한 이 불상은 해탈로 들어서는 고타마(Gautama;석가의 처음이름)를 묘사하고 있다. 1960년대 건축된 양곤의 Kyauk Htat Gyi Buddha 보다 크지 않지만 예술성과 역사적인 면에서는 보다 잘 알려져 있다.바마르족(Bamar)이 몬족(Mon)을 정복하기 진적인 994년, 미가디빠왕 1세(King Migadippa 1)때 만들어졌다. 500여년 동안이나 방치된 채, 비로소 Dhammazedi 왕조 때 복원되었으나, 2번에 걸친 바고의 파괴로 인해 Shwethalyaung Buddha는 다시금 열대초목 아래로 묻히게 되었다. 1881년, 영국의 철도 건설 공사중, 정글에 흙더미속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그 위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후, 1948년 금으로 불상을 입히고, 색칠을 다시 하는 등 보수가 이루어졌다 |
◼이 와불은 특히 와불의 발바닥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臥佛의 발바닥에는 미얀마인들이 지켜야 할 108계(戒)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발바닥의 가운데 쯤에 동심원이 여러 겹으로 그려져 있고 이곳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戒가 기록되어 있다.
로카찬다 파고다 미얀마 양곤 로카찬다 파고다 (Lokachada Pagoda) 본래 로카찬다 아바야라바무니 좌불(Lokachada Abayarabamuni image)인 이 불상은 1999년 반달레이 북쪽 석재 광산인 싸진(Sagyin)지방에서 대리석 석불을 조성하던 우 마웅 찌(U Maung Kyi)에 의해 현지에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1차로 좌불 형태가 완성 되었을 때 화물선으로 이라와디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양곤 인세인에 옮겨진 후 마무리 작업을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된 미얀마 최대의 대리석 불상이다. 이 불상의 높이는 15m가 넘고 무게는 500톤에 이른다. 이 옥불을 만달레이에서 양곤까지 이동시키는데 11일이 걸렸으나 이 기간 동안 미얀마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옥불 이동모습과 옥불 기증자 우 마웅 찌가 군부로부터 환영받는 모습 등을 그린 그림을 파고다의 계단에서 볼 수 있다. |
◼역시 비가 오는 가운데 로카찬다 파고다를 찾았다. 미끄러운 경사진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자 거대한 옥불이 유리 상자 안에 모셔져 있었다. 새똥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란다. 최상급의 비취색 옥 500톤이 한 덩어리로 원석은 이 보다 훨씬 더 컸을 거다.
◼미얀마의 불교는 개방적이다. 불상 근처에서 집에서 싸 온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또 불상 주위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쉬는 모습은 일반적이다.
우리들만의 정겨운 夜會 갖다.
제2일 밤, 20시 30분부터 미리 부탁해 마련해 둔 우리 호텔 식당에서 우리들만의 정겨운 夜會를 가졌다. 낮에 사 온 수박과 멜론, 그리고 맛있는 미얀마 맥주 8병, 몇몇 친구가 가져온 과자류,,, 차리고 보니 우아한 파티가 되었다.
우리 김정녀 회장님의 인사에 이어 대구 이평직 회원의 인사, 안동의 천세창 회원의 인사, 대구 김종만 회원의 인사, 경주의 김중진 회원의 인사, 청주 신청자 회원의 인사...
그리곤 자유로이 너도 나도 자유로이 발언도 히고 앞 옆 친구와 정담도 나누고...
▣ 10월 8일 ▣
◼모닝 콜 - 07:30
출발 - 09:00
- 여기 미얀마 관광은 아침 출발이 늦으막한 9시라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어 좋았다. 7시부터 시작되는 朝飯하고 자기 방으로 와 이 닦고 방 마다 비치된 커피포트에 물을 데워 각자 가져간 커피믹스로 익숙한 우리 커피를 한잔씩 하고...
◉오늘의 관광 일정
◼재래시장→예레 파고다→쌈밥→내셔널 빌리지→20층 건물 오르다→두리안과 망고 포식하기
재래시장 구경 |
◼어느 나라를 여행하던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일을 즐겁다.
예레 파고다 가는 길에 요란한 행렬의 총선거 遊說 車를 보는 일도 행운이었다. 와! 골목 복잡하다. 시장은 더더욱 복잡했다. 이름 모를 열대과일을 파는 노점상, 그리고 대나무 광주리에 담긴 하트 모양의 잎(아마 채소의 일종??)을 차곡차곡 뱅그르르 돌려 쟁여놓은 솜씨 또한 신기했다. 또 밤 모양인데 가이드에게 ‘밤이냐?’라고 물으니 밤이 아니란다. 더 물어 볼 시간도 없어 지나쳤는데 지금도 궁금하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바나나도 엄청 많이 진열되어 있고 야자 열매도 풍성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근처 강에서 잡은 벼라별 민물고기도 얼음 속에 진열되어 있어 구경 한번 잘 했다.
양곤강의 예레 파고다 순례 |
◼황톳빛 양곤강에 세워진 "물 위에 떠 있는 사원“이라 일컷는 예레 파고다 _ 미얀마의 많은 사찰 중에 참배 사찰로 나룻배를 타고 10분도 안 걸리는 물 위의 사찰을 참배했다.
◼ “예” - 물
“레” - 떠 있다.
◼나룻배를 기다리는 시간, 보통 뭘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한 것! 그러나 여기서는 지루한 게 아니고 즐거웠다. 현지 소년(나이로 짐작컨대 15〜6세)이 싸이의 말춤 추는 것도 재미있게 보며 한껏 웃었다.
배에다 신발을 벗어둔 채 맨발로 그리고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바지라야 참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관람 시간은 1시간 정도이고 배를 타고 이동을 한다.
◼깐도지강 건너다 보이는 예레파고다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이었다. 황금빛 원뿔형 가지가지 파고다는 물과 강가에 드리워진 나무와 건너다니는 나룻배가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파고다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의 손에는 대부분 크지는 않지만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예배 드릴 때 부처님께 바칠 예물인 것!
◼나룻배를 건너 파고다 안에 들어서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람들이 만든 조형물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모양이 탑이 눈앞에 전개 되었다.
◼큰일날뻔 했다.
경주의 김중진 회원이 예레 파고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룻배를 타려는 순간 균형을 잃고 강물로 휘청 빠질번 했다. 다행히 바로 옆 가까이에 있던 기록자 나(김정태)가 순간적으로 김중진 회원의 팔을 잡았다. 이미 몸은 물과 배 사이의 허공에 떠 있고... 뱃사공이 달려와 허공에 떠 있는 김중진 회원을 안아 올려 물에 빠지는 건 면했다. 나중에 괜찮으냐고 물으니 괜찮다고는 하나 허공에서 팔만 잡혔으니 팔이 안 아플 리가 없어 다시 물으니 좀 아프시단다. 내가 팔을 안 잡았다면 완전 물에...다행인가, 불행인가?
내셔널 빌리지 미얀마에 살고 있는 8개 대표적 소수민족의 생활양식을 볼 수 있는 민속촌으로 버마족, 산족, 몬족, 카인족 등 버마를 이루고 있는 민족들의 역사, 문화, 그리고 독특한 생활 도구 등을 한문에 볼 수 있으며 내부에는 작은 악어농장과 휴게소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같은 곳! 내부를 둘러보자면 상당한 거리여서 전동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내려서 색다른 소수민족들의 주거 형태도 보고 생활 용품도 보았다. 신앙과 관련된 전시물도 있었다. 작은 호수도 있고 현대적 건물은 아마 전시장인 것 같았다. 역사도 쌓인 듯 수목들도 거목으로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넓이에 비해 꾸며진 게 좀 엉성하고 눈을 확 끄는 게 별로 없어서 구경하기가 심심했다.
◼내셔널 빌리지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많이 이용된다는데
- 처음 : 여자 친구가 자기 여자 친구들을 여러 사람 데리고 온단다. 이때 드는 비용은 남자가 부담. 이유는 자기가 사귀는 남자를 감식하고 됨됨이를 평가해 달리는 의미가 첫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나 이런 멋진 남자 사귀고 있다 - 자랑하기 위함이란다.
- 한 일년 사귀면 여자가 남자에게 “우산 갖고 나와라”라고 한단다. 우산의 용도는? 가리고 키스하기 위함. 입술 허용!!!
- 사이가 더 깊어지면 남녀가 각기 우산 쓰고 나오는데 이는 우산으로 두 몸을 가리고 끝장 보는 사랑 노름하기 위함이란다.
◼내셔널 빌리지 가까이를 흐르는 강 - 에와야디강
- 길이 200〜300Km의 큰 강.
- 히말라야에서 발원
- 강 폭이 1.8Km, 넓는 곳은 2Km나 됨.
- 좀 더 내려가면 바다
- 우리가 지나가는 강에 모래 채취선이 보이는데 강 바닥에서 모래 채취함 - 이 강의 모래의 품질이 좋아 건물 오래간다고 함
◼미얀마는 세계에서 시멘트 생산량 많고 품질 좋음
◼강에 커다란 티크 목재 운반선 지나가는 것 보임
◼강 바닥에 진흙이 쌓여 있는데 물빛은 황토색임
◼대부분의 강은 물의 흐름이 빠름 - 산이 많아 경사가 커서
◼미얀마는 여성들이 살기에 불편함 많은 나라 - 현대화된 쇼핑 시설 없음
◼차 번호판
- 노랑색 : 불교 관련 차량
- 흰색 : 관공서 차량
- 빨강색 : 영업용 차량
- 깜장색 : 자가용
◼아파트 7,8층에 에레베이터가 없음. 윗층 아파트에서 바닥까지 줄이 내려져 있고 줄에는 작은 바구니가 매여져 있음
- 우유나 세금 또는 요금 고지서 담아 올림
- 남편이 퇴근하면 열쇠 묶어 내림
- 거지가 바구니에 쪽지 담아 올림 “나 지금 배가 몹시 고파요”
◼한국 제품은 고급이고 우수하다???
- 대형 버스에 ‘서울↔안동’써 진 것 그대로 사용 : 새로 도색하면 찻값이 떨어짐
- "상계동 삼계탕“ 한글 쓰인 T셔츠 입고 다님
◼운전석이 오른 쪽인 차와 왼쪽인 차가 모두 편안히 운행 중
- 운전석이 우측인 차 - 영국 식민지여서
- 우리가 4박 6일간 사용한 차도 오른 쪽에 운전석이 있어서 승객이 차들이 쌩쌩 다니는 왼쪽으로 내릴 때에 조수가 사고 안 나도록 하차 도움
- 미얀마는 차량은 우측 통행이므로 운전석이 오른 쪽인 차량은 하차시 각별 조심해야 함
◼미얀마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은 건물 아직 많이 남아 있음
◼舊 양곤시청 - 빨강 벽돌로 지은 영국 건물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 - 거의 다 잘 살아 : 수탈했지만 기술 傳함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 - 거의 못살아 : 빼앗아가기만 함
- 미얀마인들 - 영국에 적대감 적음
◼포르투갈인들이 500년 전에 지은 성당 : 지금도 멀쩡함
◼미얀마인들은 인도 문화 받아들여(힌두교 영향) 쇠고기 안 먹음
◼한국의 ‘롯데리아’ 양곤 진출 대박
- 치킨 1인 6,000원, 2인 12,000원 : 소득에 비하면 엄청난 지출
◼미얀마인들 -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 많음
◼과거의 건물 - 별도의 주차 시설 없어서 건물 앞 한 차선을 점령
◼미얀마에는 ‘차이나타운’ 없으나 商權은 화교들이 쥐고 있음
- 漢子 간판 걸면 거부감 느낌
◼우리 가이드는 여기 미얀마에 오기 전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이드 생활함
- 터키에서 IMF 위기 시 느낀 것 : 우리나라(모국)가 잘 살아야 교민이 행복
- IMF 위기 시 한화 갖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식사한 후 환화로 식대 지불하려 했으나 한화 받기를 거절
◼대우 김우중 회장 - 베트남 정부에서 VIP로 정부가 보호
◼미얀마에서 교민끼리 모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음
- 만나자는 사람이 밥값 내야 함으로
◼양곤시에서는 도심에 오토바이 진입 금지
- 그래서 자동차가 엄청 많아 극심한 교통 체증 유발 - 시고 때도 없는 체증
- 오토바이가 없어 배달문화 없음
◼음주운전 - 1회 500원, 2회 1000원, 3회 1500원,
4회 무조건 구속 : 봐 주는 일 없음
◼죄 지은 사람 - 무겁게 형벌
◼세금 폭탄 - 용서 안함
◼죄수가 형무소 내에서 형기 중 죽으면 형기가 끝날 때까지 시신 안 내보냄
◼7,8월에 내리는 빗줄기 굵어 맞으면 머리가 아픔
- 우기에는 우산 갖고 다니는 게 일상
◉쌈밥 식사하다
◼오늘 점심에는 중국식 쌈밥 식사를 했다. 갖가지 향기 나는 현지 쌈채소와 양념, 그리고 고명에 해당하는 푸짐한 재료로 넉넉한 점심 식사를 했다. 모두가 만족한 표정! 곁드려 미얀마 맥주도 나왔고...
양곤에서 제일 높은 20층 건물 오르다 |
◼20층에 오르니 더 높은 건물은 없었다.
◼지평선도 뚜렷이 보이고 멀리 쉐다곤 파고다도 보였다.
◼500년 전에 지은 빨강 지붕의 포루투갈인들이 지은 성당이 멋져 보였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맛 좋기로 이름난 미얀마 맥주고 시음하고 이곳에선 고급인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 10월 9일 ▣
◼모닝 콜 - 07:00
출발 - 08:30
◉오늘의 관광 일정
◼마하시 수도원→차욱타지 파고다→달라섬 관광→아웅산 추모탑 참배→쉐다곤 파고다→씨푸드 특식
마하시 수도원 |
◼세계적인 명상 센터
◼‘마하시 선사’가 창안한 명상법 수련장
- 1개원, 3개월, 1년 코스
- 일반인, 스님들이 많이 찾음
11일 오전 6시 미얀마 수도 양곤의 마하시 수도원. 자주색 가사를 입고 발우(그릇)를 품은 스님 70여명이 수도원 앞길로 총총히 모여들었다.우기에 접어들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맨발의 스님들은 긴 행렬을 이루며 수도원을 나섰다. 한국, 중국 등에서는 이미 사라진 탁발(托鉢)을 하기 위해서였다. 스님들은 1시간 반 가량 인근 동네의 일곱 집을돌며 보시받은 음식으로 사시(巳時ㆍ오전 9~11시) 공양을 하고 오후부터는 간단한 음료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수행에 몰두한다.남방불교의 대표적 나라인 미얀마 불교의 수행 현장을 찾았다.무소유의 삶을 보여주는 탁발 공양을 하며,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수행법인 위파사나 (‘통찰’이라는 뜻의 팔리어)를 체계화하는 등 초기 불교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새삼 불교계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30여명의 스님과 300여명의 일반인이 함께 수행하고 있는 마하시 수도원은 5만개가 넘는 수도원을 가진 미얀마 불교의 대표적 수도원이다. 위파사나 수행법을 체계화해 보급한 마하시 사야도(1904~1982)가 1947년 설립한 곳으로 양곤 시내의 본원을 비롯해 미국 영국 태국 등 8개국에 17개 분원을 갖고 있다.본원 곳곳에서는 방문객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잊은 채 천천히 걷고 있는 수행자들을 볼 수 있다. 위파사나의 기초 수련인 경행 (經行) 수행이다. 천천히 발을 내디디면서 ‘발을들어올림’ ‘움직임’ ‘내려놓음’ 등 행동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이며 스스로의 몸 움직임을 관찰한다.이곳에서 외국인을 지도하고 있는 우 제티라 스님은 “신체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각하는 '알아차림'으로써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라며“위파사나는 몸(身)의 움직임에서부터 느낌(受), 마음(心), 생각의 대상(法) 등 사념처(四念處)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통찰해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이라고 말했다.새벽 3시부터 밤 11시까지 반복되는 경행과 좌선 수행 뿐 아니라 공양시간도 수행의 연속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씹음’ ‘삼킴’ 등의 이름을 매기며 관찰하는 것. 이들은 지도스님과의 면담을 통해 매일매일 수행의 진척도를 점검 받게 된다.위파사나 수행은 화두를 붙잡고 참선하는 한국의 전통적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과는먼 거리에 있지만 석가모니가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방법이라고 전한다. 한국 불교에서는 그동안 금기시돼 왔지만 간화선이 최근 내적위기를 겪으면서 위파사나 수행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우 산 와라 수도원장은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위파사나 수행이 바로갈 수 있는 길이며 대부분의 수도원이 이 방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인구 5,500만 가운데 90%가 불교를 믿으며 승려 수가 20만명을 넘을 만큼 미얀마는 온 국민이 불교와 함께 숨 쉬는 나라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10~15일간 단기 출가를 수시로 하며 수행의 삶에 동참한다. 단기 출가 경험이 취직과 결혼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다.수행자들이 청정한 수행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국민들의 든든한 관심과 후원 덕분이다. 스님한 명에 두 명의 신도가 후원자가 돼 스님들의 생활용품을 제공하며 일상 생활 걱정을 덜어준다.위파사나 수행은 중생 전체를 제도하는 자비의 보살행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적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수행이 아닐까. 이의문에 우 산 와라 원장은 “청정한 수행자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주며 그들의 삶을 이끌 수 있다”고 답했다.
◼우리가 마하시 수도원에 닿자마자 탁발하려 도열해 가는 스님과 여승 그리고 일반 신도의 행렬을 만났다.
◼발우를 옆에 끼고 가는 행령 자체가 장관이었다. 袈裟의 색깔은 약간 어두운 붉은색으로 오른 쪽 어깨를 들어낸 복장이었다. 신발은 모두 끈만으로 된 샌들, 여승들은 분홍색 袈裟를 입고 있어서 확연히 구별 되었다.
◼이어서 커다란 방에서 여러 스님들이 함께 탁발(식사)하는 모습은 한편으론 경건하기 까지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식사를 하는데도 말소리 하나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도 둘리지 않았다. 과연 수도하는 분들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적만 흘렀다.
◼탁발하는 모습 촬영을 끝내고 나오자 용케 원장스님의 지나가는 길과 마주쳤다. 우리 일행은 원장스님과 기념 촬영을 하는 행운을 잡았다.
◼그리고 또 우리와는 다른 팀에서 원장스님께 ‘명상 강의’를 신청했다고 해 함께 ‘명상 강의’를 듣게 되었다. 원장 스님께서 미얀마어로 강의를 하면 한국어 하는 분이 통역을 해 좋은 강의를 듣게 되었다.
◼미얀마의 승려 - 매일 탁발을 나감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얀마에서는 비구니가 없다.
- 법명을 주지 않고 계(戒)를 주지 않음
- 분홍색 승려복 - ‘세속에 있다’란 의미
◼승려 - 오른 쪽 어깨를 내놓고 왼쪽 어깨는 가림
- 왼손 : 부정한 손, 반지를 껴서 부정한 것을 가림
◼예수 - ‘천국이 어디 있느냐?’
답 - “마음에 있다.”
◼내 몸 - 부모가 주심 - 자살, 문신, 자해 - 용서가 안 됨
◼무덤의 봉분(封墳)을 만드는 이유
- 관 : 어머니의 자궁, 광목을 자르는 행위 : 탯줄 자르는 의미
- 봉분 : 어머니의 배
◼시신의 머리를 북쪽으로 가게 안치하는 것은 북쪽이 신의 세계이므로
◼‘통반’ - 탁발이 끝남을 의미. 양쪽 어깨를 가림
◼미얀마에서는 승려가 고기를 먹고 담배를 피움
◼음식을 먹되 살 찌우기 위해 먹으면 안 됨
◼석가모니께서 수제자 중 한명 - 탁발한 음식이 맛없는 음식만 받아 옴 : 이유는 가난한 집에서 탁발 받아 와서
〃 - 좋은 음식만 받아 옴 - 부잣집 문을 안 열어 줌 : 기다렸다가 받아 옴
◼탁발은 7집만 가서 탁발함. 못 받아 오면 그 날은 굶음
◼탁발은 30명〜50명이 무리로 탁발 나감
◼탁발 - 밥만 주고 반찬은 안줌
◼승려의 재산 - 가사(袈裟) 2벌, 우산, 걸망(가방), 부채, 신발(쪼리, 슬리퍼), 바리때(밥그릇), 면도
◼신자들은 스님들께 돈을 주지 않음
- 스님은 돈을 만지면 안 됨
◼승려는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음
◼성철 스님 - 전두환대통령이 만나자고 하자
‘나를 만나자면 3000만원을 마련 하거라’ - 못 만남
◼미얀마 - 정신이 청정한 국가
◼미얀마 - 도둑과 소매치기가 없음
◼어린이의 피는 어른의 피보다 덜 맑다.
- 피자, 햄버거, 치킨 등을 먹어서
차욱타지 파고다 차욱타지 파고다 - Kyauk Taw Gyi Pagoda 1907년 일반 신도의 보시에 의해 10년 만에 완공되었고, 내부에는 높이 18미터, 길이 69미터의 거대한 와불이 모셔져 있는데 미얀마 남부 몬주의 쉐뜰라웅와 불상에 이어 두 번 째로 큰 와불상이다. 부처님의 발바닥에는 108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속눈썹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건물 벽에는 시주자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글들도 보이며, 한국 불자들 및 사찰들의 이름도 많이 보인다. |
◼이 곳 와불상의 발바닥: 사람의 생각은 다 마음에 있다.
◼미얀마 사람들이 뚱뚱하지 않은 이유
1. 음식
2. 기후 때문
*땀을 흘리지 않는다 - 땀 흘리면 환자
*땀구멍이 항상 열려 있다.
*한국인이 겨울에 입김 나오는 걸 이들은 신기해 한다.
*코가 더운 공기를 마시기 쉽게 짧고 들려 있다.
*눈꺼풀이 얇고 쌍꺼풀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인은 미인이다.
◼한국의 집
-등 : 태양 역할
-벽지 : 숲 역할
◉오늘 점심 식사는 샤브샤브
◼오늘 점심은 샤브샤브로 했다.
◼익힌 쇠고기를 찍어 먹는 소스가 두 가지였는데
- 빨강색 : 매운맛
- 맑은색 : 보통
◼맛있게 먹긴 했으나 냉방이 잘 안되어 불 앞에서 먹는 게 고역이었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얼른 먹고 입구 쪽으로 피신을 하였다.
달라섬 관광 미얀마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양곤강 너머 섬마을 ‘달라’ 방문. 주민들의 이동 수단인 이 층짜리 유람선을 그들과 같이 탔다. 탑승시간은 10분. 이층으로 올라갔더니 지방 버스 터미널 대기실과 비슷한, 나무로 만든 붙박이 의자가 있었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쇼’를 타고 마을로... 자전거 옆에 승객용 조그만 의자가 붙어 있는데 한 명씩 탑승(앞뒤로 두 명이 탈 수 있다고 했으나 현실적으로는...) 하였다. 22대의 트라이쇼가 줄지어 달리니 정말 신이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밍글로바-안녕하세요.’ '달라섬'은 미얀마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고 하였다. 개발되지 않은 불분명한 형태의 가옥과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분위기로 빈민계층의 거주지 같아 보였다. 물론 주민들의 얼굴은 따뜻하고 여유 있어 보였지만... |
◼미얀마에 살고 있는 인도인들은 천대 받고 시내에서 쫓겨나 변두에서 살거나 달라섬으로 들어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
◼들어가는 대합실, 배 위 내려서 걸어가는 길 : 웬 사람이 이리도 많은지 내려서는 사람 무리에 떠밀려 다녔다.
◼자전거를 개조한 트라이쇼 탑승 : 우리 일행 22명이 쌩쌩 달리는 장면이 장관. 현지인들의 주거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 누더기 집에 산다.
◼현지인들 얼굴을 보다가 우리 일행 얼굴을 보니 다 富態가 흐르고 모두 사장님인 것 같다.
◼달라섬의 인구 30만명 중 2008년 태풍 때 20만 명이 사망하는 지구상 최대의 참사가 일어났던 곳
◼태풍 피해를 돕고자 나선 한국인들
- 태풍 피해 때 외국의 도움 거절
- 한국 교민들이 모금을 해서 학교를 지어 주었다,
- 한국인 몇 사람이 섬으로 들어가 시신 수습하는 봉사활동 함
- 이명박 전부 때 양곤시와 달라섬을 잇는 다리를 놓아줄 테니 한국 기업 진출하게 허락해 달라고 제안 했으나 거절당함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 방글라데시 :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주는 절대 가치가 아님을 증명함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쇼를 탄 김인자 회원
우리 일행 모두에게 여성 현지가이드가 다나카를 발라 주었다
아웅산 테러 희생 순국사절 추모비 참배 아웅산 테러 희생자 추모비 건립된다! 테러 발생 30년만.. 아웅산 국립묘지 부지에 올 10월9일 30주기 맞춰 완공 예정 아웅산 국립묘지 단지 내에 ‘아웅산 폭탄 테러’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가 건립될 전망이다. 올해는 북한의 아웅산 테러가 발발한 지 30년 되는 해이다. 한국과 미얀마 정부는 작년 10월 추모비를 건립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최근 건립 부지를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14일 "미얀마가 양국 관계를 고려, 아웅산 국립묘지의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경호동 옆의 약 260㎡(약 78평)를 추모비 건립 터로 제시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최종 수용했다"고 밝혔다. 추모비 건립 터는 아웅산 추모탑으로부터 약 50m 떨어져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불교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와도 인접해 있다. 정부는 오는 10월 9일 아웅산 테러 30주기에 맞춰 추모비를 완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외교부 남아시아·태평양국의 심의관을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다음 달 초 미얀마의 양곤에 파견해 구체적인 추모비 건립 방안을 미얀마 측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국의 대통령으로선 29년 만에 처음으로 아웅산 테러 현장을 찾아 참배하려 했지만 아무런 표지가 없어 공터에 조화(弔花)를 놓은 채 묵념하고 돌아왔다. 아웅산 테러는 1983년 10월 9일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북한 공작조가 전두환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탄을 터트린 사건이다. 북한의 폭탄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아웅산 테러를 부인하고 있다. 입장이 안되므로 차창 관광 |
◼우리 일행 22명이 열일곱 분의 추모비에 국화꽃 한 송이씩 헌화하고 오래 동안 묵도를 드렸다. 이평직 회원의 제안에 따라 애국가를 불렀는데 난 목이 메어 애국가가 제대로 불러지지 않았다. 뒤돌아 나오면서 회원들이 모두 다 나 같았단다. 눈물을 흘리는 회원도 더러 있었다.
◼추모비는 까만 오석에 내리다지 글씨로 순직한 분의 이름과 당시의 직함이 씌여 있었다.
가이드 구희창씨가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
호남 광주시내의 모 중학교 교사 32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32명 모두가 차에서 내리길 거부 했단다. 이유는 광주 사태의 원흉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하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기에 참배를 않겠다는 것!!!
- 양곤 공항에 들어서서 구희창씨가 귓속 말로 나에게 광주의 모 중학교 교사 이야기는 기록물에 기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자칫 자기에게 불이익이 올지 모르기에 부탁 드린다는 것이다.
나의 메모 노트에는 그 중학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냥 '광주 시내 모 중학교'라고만 기록한다.
◼「아웅산장군 추모탑」을 보고 싶었으나 입장이 안 된단다. 미얀마인들이 국부로 섬기는 아웅산장군이지만 군부는 이 분을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철책 밖에서 멀리 있는 추모탑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마하파라나구하 동굴사원 마하파라나구하 동굴사원으로 옮겨 갑니다. 어떻게 돌굴 안에 사원을 지을까?? 이런 의문도 가지게 되더라구요, 이 사진 동굴사원 입구입니다. 아! 이 동굴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졌구요, 이렇게 만드는 공이 정말 대단하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바위산을 형상화하여 경전 5, 6차 대전을 한 장소이구요, 7개의 문으로 통하여 세계의 스님들의 대회를 치른 곳이라고 하네요~ |
◼동굴사원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천정도 매우 높았다. 동굴 내부 공간이 넓어 동굴 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여기서 세계 스님대회를 개최했다니 의미 있는 곳이라 여겨졌다.
◼이곳에서 예쁘고 흰 드레스를 입은 新婦 한 팀을 만났는데 아마 행복한 내일을 위해 부처님께 축원을 드리러 온 모양이었다.
마하파라나구하 동굴사원 내부입니다. 뭔가 어두침침한 게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 들더라구요,
쉐다곤 파고다 세계 3대 불교 성지중의 하나인 미얀마의 양곤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를 구경했습니다. 쉐다곤 파고다(황금대탑) 주위에는 2,500 여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는데 자세히 조사해보니 쉐다곤 파고다는 탑 둘레 426m, 높이 99m로 미얀마 양곤, 미얀마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부처의 유품과 머리카락이 있는 불교의 성지다. 옛 왕조의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 만큼 황금을 보시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양의 황금이 기부돼 황금 무게만 60톤에 이른다고 한다. 黃金大塔 ‘쉐다곤 파고다’는 기원 전 6세기에 지어져 25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 동안 고쳐 짓고 늘여 지어 현재는 그 규모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 3개의 넓이에 수백 개의 원뿔형 파고다는 황금 옷을 입고 있어 화려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 99m 높은 대탑을 둘러싼 닮은 듯 다른 많은 탑들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가며 한 바퀴 둘러보는 데만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참배하고 기도하는 많은 미얀마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보였다. |
◼캄보디아에 앙코르와트가 있듯이 미얀마에는 『황금 대탑 쉐다곤 파고다』가 있다. 이 기록자도 미얀마를 여행하기 전까지 『황금 대탑 쉐다곤 파고다』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만든 이 경이로운 조형물을 보러 가라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되었다.
◼黃金大塔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의 상징이자 양곤의 상징이다.
◼黃金大塔 ‘쉐다곤 파고다’를 한 바퀴 들러보는 동안 사람의 힘의 위다함과 창조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말이 2500개라지 그 많은 아름다운 탑을 만든 미얀마인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앙심의 위대함도 절감하게 되었다. 둘러보는 2시간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참배객은 승려도 보이고 일반인도 많이 보이는데 부처님께 합장하고 경건하게 기도드리는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보기에 숙연하게 보이기도 했다. 합장 기도하는 참배객 옆을 지나칠 때는 자연 발소리까지 죽이게 되더라구요!!!
◼불교가 미얀마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범죄가 적고 부모를 잘 섬기고 청정(淸淨)한 도덕 사회를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한국 사회를 되돌이켜 보게 되었다.
여긴 안사11 남성 회원들만...
사모님들 끼리 모이다!!! 좌측부터-괄호 안은 남성 회원의 이름-
김필홍(김영길), 김이아(권오기), 김명자(신영호), 장복조(김정태), 김정자(김종만), 장옥선(천세창)
◉「씨푸드 즐기다」
◼씨푸드(Sea Food-바닷가재, 게, 왕새우 요리)를 맛보기로 했다.
몇몇 회원들이 추가 경비를 추렴하여 1100$를 만들어 1인당 58$하는 씨푸드 요리를 맛보기로 했다. 1인당 100$씩 추렴에 동참한 회원은 9명, 공동경비에서 200$을 보태 22명분의 식대 추가 소요 경비 1100$을 마련했다. 추렴에 동참한 회원들에게 동참한 회원의 이름을 밝히는 게 어떠냐고 물으니 절대 밝히지 말라고 해서 덮어두기로 했다.
◼커다란 왕새우는 정말 탐스러웠다. 크기도 컸지만 살도 많아 먹음직스러웠다. 게는 껍데기 치장뿐이고 먹을 게 별로였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바닷가재!!! 한 마리를 반으로 갈라 구웠는데 베어 물자 입안 가득한 풍미는 ‘역시’였다. 회원들의 표정을 곁눈질해 보니 먹는데 환장(미안, 죄송!!!)이 되는 표정들이었다. 와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 10월 10일 ▣
◉오늘의 관광 일정
◼쉐도 파고다(치아사리 소장)→까바에 파고다→깐도지 호수 산책→딤섬 점심→보족 마켓→기차 여행→상황버섯 매장→농산물 매장→귀국
◼양곤시 - 綠地 많고 비가 많이 와 나뭇잎에 먼지 묻는 일 없음
- 우기가 길다
- 여름이 짧다
◼미얀마에는
- 군인 : 40만명
- 스님 : 60만 명
◼만데레이 지역에 스님 많음
- 수 많은 왕조가 명멸
- 그래서 역사 복잡
- 수 많은 소수 종족 : 135개의 소수 종족
- 천년의 역사 가진 왕조가 없음
- 바간 왕조가 최장
◼터키가 한국을 ‘형제국’이라 하는 이유
- 같은 우랄알타이족
- 語順이 같다.
- 한글 : 위구르어를 본 땀
- 고려 청자 : 이슬람에게서 이어 받음
쉐도 파고다 '쉐도 파고다' 의 쉐는 '송곳니' 혹은 아주 높임말로 쓰이고 부처님의 불치사리(모조)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그 중앙에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치아가 모셔진 탑 중앙을 중심으로 8개의 나한들이 둘러싸고 있다. |
◼파고다의 중앙 유리관 속에 차아사리를 보존하고 있는데 이 사리가 위대하게 보이게 특수 조명을 하여 파고다 안에 들어오면 단번에 눈에 띄도록 해 두었다.
◼사리 주변에 8분의 나한 부처가 있는데 부처님의 손의 방향이 모두 다 달랐다. 손의 방향은 다 의미를 지녔다 한다.
◼역시 비 오는 가운데 관광을 마치고 적당한 포토죤을 찾아 단체 사진을 찍고 이동 했다.
까바에 파고다 불교경전 결집대회 장소로 부처님진신사리 3과 모셔진 까바에 파고다다. 특히 ‘평화의 상징’인 파고다라 한다 |
◼입구의 우측으로 들어가자 부처님 앞에 여승 한 분이 낭낭한 목소리로 독경을 하고 있고, 그 뒤로 여러 신도들이 합장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큰 부처님 앞에서 여신도 둘이서 작은 부처님 몸통에 금박을 붙이고 있었다.
◼둘레에는 석가모니불의 일생을 그린 벽화가 여러 장면 걸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빙 둘러 가며 여러 곳이 부처님께 바치는 祭物이 진설된 점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제물로는 각가지 열대과일, 과자, 연꽃, 향 들이었다.
여기도 안사11 남성 회원들만...
◼미얀마인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윤달 - 9월과 10월
◼우기에 스님들은 雨安居에 들어감
◼미얀마인들은 장례 시 울지(哭) 않음
◼공동묘지가 없고 화장을 하여 납골묘에 수장하거나 산골(散骨)함
깐도지 호수 산책 깐도지 호수공원(Kandawgyi Lake) 깐도지 호수공원은 쉐다곤 파고다 앞에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입니다. 양곤 시내 최고 전망을 자랑하는 호수공원으로 약 2,500년 전 쉐다곤 파고다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흙을 파 올려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산책하기 좋아 데이트 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공원 둘레가 약 3~4km 정도라고 해서 슬슬 걸어보았는데, 왜 그런지 중간 중간 길이 막혀있고 밖으로 나가서 다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다시 받아 다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최근에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입장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이렇게 해 놓은 것 같습니다. |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 간 ‘딤섬’식당이 바로 옆 깐도지 호수변에 있어서 식당 안 테이블을 거쳐 깐도지 호수에 갔다.
◼깐도지 호수는 그림엽서의 그림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눈앞에 펼쳐진 완전한 한폭의 그림이었다. 아름다운 호수와 주변의 숲, 덧붙여 장식해 놓인 구름다리, 그리고 멀리 보이는 파고다가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담소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하나 험은 고인 물이라 호수의 물이 심한 녹조로 진한 녹색이라 안타까웠다.
◼산책 나온 귀엽게 생긴 현지인 젊은 남녀 다섯 명이 나를 위해 이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딤섬」으로 점심식사하다,
◼ 이 식당은 ‘딤섬’ 전문 식당이다.
우리 일행은 한 테이블에 일곱 명이 앉았는데 작은 만두인 딤섬이 9가지가 나왔다. 한 통에 7개씩 담긴 만두가 9통이 나와 각자 자기 접시에 1개식 담으니 배부른 점심이 되었다. 제대로 된 딤섬을 먹어봤다.
보족 마켓 보족 아웅산 마켓 Bogyoke Aung San Market 양곤에서 가장 크고 시끌벅적한 시장으로. 영국식민지 시절인 1926년에 들어선 이 시장은 원래 ‘스코트 마켓’으로 불렸는데, 독립 후 미얀마의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따서 ‘보족 아웅산 마켓’ 으로 부르게 되었다. |
◼보족 마켓은 매우 큰 마켓이지만 우리는 시간 관계상, 그리고 필요에 따라 보석골목만 찾아 선물을 샀다.‘
◼우리가 찾아 간 곳은 보석가게 골목으로 많은 보석들이 휘황찬란하게 다량 진열되어 있고 상인들은 호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석가게는 조명이 매우 밝은데 여기 가게들은 보석은 찬란하나 조명이 너무 어두운 게 흠이었다.
◼그런데 미얀마는 玉이 지천으로 생산된단다. 가이드 말이 여기서는 가짜를 만들려면 진짜보다 더 비싸짐으로 가짜는 없단다. “발에 차이는 게 옥입니다.”
◼옥 목거리, 반지들이 개당 심하게는 1$ 짜리부터 대개 3〜4$, 6$을 넘지 않았다. 주먹만한 장식품을 우리 여성 회원이 깎아서 60$에 샀다고 자랑을 했다.
◼선물용으로 보따리로 사는 회원도 있는 듯...
◼세계 5대 보석
1위 - 에메랄드
2위 - 루비
3위 - 사파이어
4위 - 다이아몬드
5위 - 옥
*다이아몬드는 인조 다이아몬드 생산으로 가치가 떨어짐
기차 여행하다 옵션 투어로 기차여행을 했다. 가이드가 서울에서 천안 가는 기차 여행 한번 안해 보시겠습니까? 어리둥절했는데 양곤 근교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난한 서민들의 겉모습도 보고 농촌 모습도 볼 수 있다 해서 1인당 30$하는 투어를 했다. |
◼기차에 오르니 동승한 승객 중 인도계 가난한 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천정에 에어컨이 달려 작동되고 있었으나 내 자라의 위 에어컨이 고장 중이라 고생의 2시간을 보냈다.
◼차창 밖은 두 가지 풍경이 전개 되었다. 바나나 야자 등 우리가 보기 힘든 재미난 풍경과 철로변에 신기한 作物 재배 모습이 그 중 하나고 비참한(? 가이드가 그렇게 여기지 말라고 했는데...) 서민들의 가옥이나 가게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나머지 하나다. 집이랄 수 없는 허름하고 지저분한데서 사는 서민들의 모습이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철로변을 계속 장식(?)하고 있었다. 가난하면 집 주변 청소도 못하는가? 잡초더미에 마구 내던져 놓은 쓰레기까지 보기가 민망했다.
◼미얀마의 의료시설 열악
- 부자들과 고위직은 병나면 영국이나 싱가포르의 병원으로 가 치료
-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고 당함 - 미얀마 병원 의사의 진단 : 머리 여는 수술해야한다고 해 헬리곱터를 1200만원에 전세 내어 태국 대형병원으로 이송해 다시 진단한 결과 단순한 찰과상에 불과하다는 진단 받음
◉「미얀마의 화폐」로 일어난 비효율
◼ 미얀마 화폐 한국 원화로 환산
50찻(Kyat) 50원
100찻 100원
200찻 200원
500찻 500원
1000찻 1000원
5000찻 5000원
10000찻 10000원
◼3년 전에는 1000찻이 가장 큰 고액권이었으나
5000찻과 10000찻 신권이 3년 전에 발권 됨
◼3년 전 까지는 지방 출장 가자면 배낭에 돈 가득 넣고 가야 됨 - “밥값, 호텔비” 돈 잔뜩 넣어야 가능
◼가게 임대료 계산하는데 마대 자루로 돈 쌓아 놓음 - 트럭에 싣고 가서 지불
- 임대 업자가 일꾼 7명 데리고 옴 : 돈 세는 사람
- 3시간 걸림
◼은행 금리 年 8%
- 한국 교포들 : 현지인 명의로 예금
◼은행에 가 예금 찾는데 며칠 걸림
- 10만$ 찾는데 1주일 걸림
- 금융 거래 불편해서 교민들(사업자) 태국은행에 예금, 사업체 종사원 월급 줌
◼우리 일행이 말라리아 때문에 고심한 예기를 듣자 : 가이드 - 그런 걱정 처음 듣는단다.
-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괜한 헛 정보 퍼뜨려 우리 같은 피해자 발생
◼미얀마 - 치안 좋음
◼수치 여사 - “노벨평화상“ 아들과 남편이 대리 수상하여 민주화 사업 기금에다 기증
◼미얀마인들이 한국에서 자주 사 오는 물품
1위 - 밥솥
2위 - 신라면
3위 - 홍삼
◼미얀마의 특산품
1위 : 상황버섯 : 얼굴(버섯의 윗 부분)이 좁은 것이 上品이고 자연산이라 품질 우수함
◉「상황버섯 매장에 들르다」
◼한국인 사장이 경영하는 상황버섯 매장에 들렀다. 우리가 알기로는 상황버섯은 캄보디아 제품이 좋다고 들었는데 여기 사장님은 미얀마 산 상황버섯이 제일이란다. 회원 중 두 사람이 구입했다는데 가이드 체면은 살린 셈....
◉「농산물 매장에 들르다」
◼상황버섯 매장 가까이에 있는 농산물 매장에 들렀다.
◼우리들이 살만한 농산물이 눈길을 끄는 게 많아 회원들이 분주히 구입을 상당히 많이 한 것 같다.
◼우리 마눌도 장바구니에 꿀 2병, 강황가루 1봉, 참깨 5Kg짜리 2포를 담아서 내 카드로 결재를 했다. 집까지 끌고 오는데 고생 꾀나 했다.
(시계 방향으로 ) 권학종 프리웨이 여행사 사장, 구희창 가이드, 최영수 보조 가이드, 현지 가이드(여성)
- 딤섬 식당에서 -
◉기행록 後記
22명이란 많은 벗이 함께 한 여행이지만 잡음 한마디 없고 사고 없이 시종 유쾌히 여행을 마친 걸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미얀마.... 출발 전에는 후진국이고 볼거리가 별로일거라 미리 예단했는데 『황금 대탑 쉐다곤』등 대단한 볼거리는 우리들을 크게 만족케 했습니다.
‘구희창 가이드’같은 훌륭한 가이드를 만나게 된 것도 우리의 행운이겠지요?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우리 이 맴버가 다시 멋진 여행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대구의 김종만 회원 내외분, 이평직 회원 내외분, 안동의 천세창 회원 내외분, 경주의 김중진 회원님, 청주의 신정자 회원님, 함께 여행해 주셔셔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요!!!
미얀마 여행 기획자 안사11회 김정태
엎드려 절하고(頓首 再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