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죽음을 부르는 고속도로
공항의 대합실에는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려는 승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이 되자 단체 여행객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공항 내부의 대합실은 마치 시장처
럼 복잡하게 되었다.
한 남자가 공항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키가 커다란 그 중년 남자는 검은 선글
라스를 낀 모습이 잘 어울렸다. 가벼운 옷차림에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둘러맨 것으로
보아 그 중년 남자는 영락없는 여행객으로 보였다. 그는 비행기표의 예약을 확인하기
위해 탑승권을 발급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공항 여직원이 그 남자를 쳐다보면서 친절하게 물었다.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자는
주위를 의식하듯이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대답했다.
"바하마행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귀하의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피터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 남자는 초조한 듯이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공항 여직원은 별
로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이 컴퓨터 모니터에 나온 승객의 명단을 살펴보기 시작했
다. 이내 피터의 명단을 확인한 여직원은 그에게 비행기표를 전해 주었다.
그 남자는 사십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건장한 체격에 건강미가 넘치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활주로에는 수많은 비행기들이 줄을 지어 이륙하거나 착륙하고 있었다. 여름
휴가철은 여행의 성수기였기 때문에 공항의 활주로는 거의 뉴욕의 러시아워를 떠올릴
정도로 복잡했다. 그만큼이나 이착륙하는 비행기들도 많았고 승객 또한 많이 이동했
다.
그 남자는 자신이 탈 비행기에 올랐다. 스튜어디스의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하자 그
남자는 정중한 태도로 대답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비행기표에 적혀 있는 좌
석을 찾기 위해 승무원에게 부탁했다.
"이코노미 클라스 좌석 47 A입니다. 좀처럼 찾기가 어렵군요."
멋진 중년 남자의 정중한 부탁을 받은 스튜어디스는 친절하게 그를 좌석 47 A로 안
내해 주었다.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좌석을 안
내받은 그 남자는 상의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
용했다.
잠시 후에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하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지나자 승무원들은 승객들
에게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안전벨트를 풀고 조금 더 느긋한
자세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왜 이 비행기를 탔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여행객
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전문적으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비즈니
스맨도 그리고 어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이봐, 피터!"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언가에게 쫓기고 있거나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터도 역시 그런 경우에서 예외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피터는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을 꺼냈다.
"피터! 넌 네 인생을 결코 허비해선 안 돼. 정말로 멋지게 살다가 죽어야 해. 단 한
번만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살다가 가야 한다구. 네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라구.
네가 가야 할 곳은 오직 하나야. 너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었던 곳, 아니, 너의 인생을
아주 망쳐 버린 곳, 그곳으로 가는 거야. 바하마로... 신은 나를 이렇게 함부로 내팽개
치지 않을 거야."
그는 스스로 자신이 이렇게 비참한 신세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고 자위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사업과 새로운 일들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피터는 손
을 대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피터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벌써 길거리로 나앉아 버렸을 것이다.
그는 언제인가는 자신이 크게 성공할 거라고 지금도 믿고 싶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오래 전에 피터는 중고 자동차 매매업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업은 끊
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업계의 불황으로 인해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 피터는 초라한
월세 아파트에서 항상 집세를 걱정하며 지내야 했고 급기야는 부도를 막지 못하고 도
주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당시에 피터는 항상 술에빠져 있었다. 그는 독한 보드카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언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이 비행기를 타고 바
하마로 향하는 피터의 마음도 그 무렵의 심정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피터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계획한 것을 추진하는 일에는 대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야. 그리고 나서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거
야."
피터는 자기를 답답하게 했던 그 지긋지긋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당장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래, 이 지저분한 도시를 떠나는 거야.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아무래도 멋진
일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좋겠는데..."
피터의 머리 속에는 낭만의 섬 바하마라는 화려한 휴양지가 떠올랐다. 그는 20여 년
전에도 바하마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에게 꿈을 안겨 주었던 곳...
비록 20년 전의 일이지만 피터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그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 그 기억을 떠올리는 일에는 수많은 기억의 고리들이 필
요했다.
바하마. 피터는 드디어 그 무렵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피터는 아주 진지한
태도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피터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막 해병대를 전역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의
곳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얻은 것이라는 게 아르바이트로나 할 수 있는 자동차 세차였
다. 해병대의 생활이 몸에 밴 피터는 그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6개월 만에 그
만두었다.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던 피터는 어느 날 우연히 신문 광고에
서 바하마 해변의 수상 안전 요원을 선발하다는 문안을 보게 되었다. 피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하마로 달려갔다. 수상 안전 요원은 곧 피터의 일이었던 것이다.
피터는 당장 바하마로 달려가서 안전 요원 선발 시험에 응시했다. 건장한 체격에 아
주 잘 생긴 용모를 지닌 피터는 인명 구조 심사에 합격해서 바하마의 1급 수상 안전
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해마다 여름이 찾아오면 피터는 여행객들을 위해 분주하게 일했다. 수상
안전 요원으로 있으면서 피터에게 가장 즐거웠던 일은 젊고 섹시한 여자들을 많이 사
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피터는 수상 안전 요원으로 일하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가 구해 준 여성들은 대부분 피터에게 그날의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다가왔고 피터는
안전관리 업무가 끝나면 주위의 호텔로 바로 찾아가서 그 여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을 보냈다.
술을 한두 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서로 껴안고 춤을 추었
다. 피터가 여자들과 블루스를 한번이라도 추게 되면 여자들은 은근히 그의 품에 안겨
왔다. 그날 밤 피터는 그녀를 자동차에 태우고 해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
의 숙소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 아무런 거리감도 없이 다가오
는 여자들의 육체를 즐겼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만 의미가 있었다. 여자들은 잘 생기고
멋진 피터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던졌지만 마음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피터
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은 모두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뒤에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피터는 이렇게 사는 자신이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애정행
각을 통해서 피터는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남다르게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나
이가 마흔이 넘어선 처지였지만 피터의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불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하마에서 일하는 동안 피터에게는 수많은 여자를 사귈 수 있다는 즐거움과 함께
거액의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피터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충동을 느꼈다. 그 일은 자기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 준 일이었지만
거꾸로 바하마에서 꽃피우던 자신의 청춘을 영원히 앗아간 일이기도 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그 현실들을 애써 부인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때의 삶이 지금까지
자기 인생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바하마에서 지내던 젊은 피터는 마약상들의 밀매를 도와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
음에는 밀수꾼들의 해상 밀수를 도와주면서 돈벌이를 했으나 나중에는 직접 밀매에 손
을 대면서 돈을 받게 되었다.
해병대를 나온 피터는 수중 잠수 실력이 남달리 뛰어났던 점 때문에 마약 밀매자들
에게 아주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들의 거래는 해안 순찰대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바
다 위에서 이루어졌다. 마약 거래자들이 요트를 타고 지정된 장소에 도착을 하면 피터
는 그곳까지 잠수를 해서 다가갔다. 피터가 배 위로 올라가면 그들은 마약 상자를 꺼
내서 피터에게 먼저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피터는 마약 성분을 확인하고 돈 가방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 가방을 들고 다시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서 해변의 절벽 부근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피터가 특히 안전하
게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수상 안전 요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밤늦게라도 해
변가의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점 때문이었다.
마약 밀매를 도와주면서 피터가 벌어들인 돈은 제법 많아졌다. 하지만 돈이 불어날
수록 피터의 욕망도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는 아주 큰 거래가 있던 어느 날 밤 거래
를 마치고 돌아와서 상자를 뜯은 후에 수백 그램의 마약을 훔쳐내었다.
피터가 마약을 훔친 방법은 아주 지능적이었다. 피터는 미리 밀가루의 무게와 마약
의 무게를 비율로 따져서 일률적인 비례표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각각의 마약 봉지
에서 소량의 마약을 꺼내고 그 안에 동일한 무게만큼의 밀가루를 집어넣어서 조심스럽
게 혼합했다. 아주 많은 양의 마약에 소량의 밀가루를 섞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다.
피터는 성공적으로 훔쳐낸 마약을 팔아서 돈을 만들기 위해 직접 마약 판매 루트를
알아 보았다. 거래선을 알아 보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바하마를
찾아오는 휴양객들 중에 마약 중독자가 더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밤마다 호텔의
나이트 클럽이나 바를 얼씬거렸다.
그는 몇 번의 시도를 통해 소량의 마약을 팔 수 있었다. 피터는 그 일을 통해 아주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래선을 알아 보고 있는 피터에게
누군가 마약이 필요하다고 접근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마약 거래상의 조직원이었다.
그들이 냄새를 맡고 피터를 감시하던 중에 덜미를 잡기 위해 쳐놓은 덫에 걸려 들었던
것이다.
피터는 자신의 행위가 드러난 사실을 알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들의 손에 사로잡히
고 말았다. 피터는 피투성이가 된 채 해변의 한적한 별장의 음침한 지하실로 끌려갔
다.
그 당시에 피터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애초부터 피터는 그
들에게 두 손을 모아 애원하듯이 빌어 볼 생각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잔인성을
잘 알고 있었던 피터는 아무리 빌더라도 그들이 결코 살려두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에 피터는 그들과 맞서면서 빨리 북이라고 소리쳤다.
피터는 오랜 시간 동안 온갖 고문을 당했다. 피터는 재발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지
만 마약 밀매조직의 보스는 피터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어째서 날 죽이지 않는 거지?"
천장에 매달린 채, 끊임없이 구타를 당하던 피터가 입을 열었다. 보스는 서서히 피
터 앞으로 다가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죽여 달라는 건가? 너 하나쯤이야 사실 파리 목숨이지. 하지만 너처럼 용감한
놈을 너무 쉽게 죽이는 건 아까운 일이야. 안 그런가?"
"어차피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어떤 협박도 나에게는 안 통할 거야."
"피터, 우리 조금은 냉철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어때? 우리 타협을 한 번 해 보자
구."
보스의 말에서 타협이라는 소리를 듣자 그 순간 피터는 생명에 대한 강한 의욕이 다
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피터에게는 실날처럼 가느다란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피터는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이어서 어떤 대화도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놈을 풀어!"
피터와 대화를 나누던 보스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옆에 서 있던 부하들이 피
터를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거구가 산더미만한 놈이 다가오더니 양동이에 물을 담
아서 피터의 얼굴에 세차게 부었다.
피터는 물세례를 받고 약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보스는 피터가 어느 정도 정신
을 차리자 다시 말을 걸었다.
"한 가지 요구만 들어 주면 일단 목숨은 살려 주겠다. 어떤가?"
피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좋아, 목숨을 살려주고 마약도 돌려받지 않겠다. 그리고 자네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돈도 주겠어. 현금으로 지불하겠단 말이야."
그 상황에서 피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
었다.
"좋다. 그런 조건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
"역시 생각한 대로 똑똑한 친구로군."
"내가 할 일은?"
"살인!"
피터는 깜짝 놀라면서 보스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피터는 건달처럼 살아왔지만 그
의 직업만큼은 인명을 구조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살인이라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젊은 부부를 없애 주게. 일이 끝나면 자네는 통장으로 입금되
는 돈을 가지고 바하마를 떠나면 끝이야. 자네는 뉴욕에서 살았으니까 지리도 잘 알
거야."
피터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피터는 청부 살인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그곳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보스는 피터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
이자 다른 부하들을 시켜서 극진히 대접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열흘의 기간을
두고 피터가 제거해야 할 목표물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 뒤에 그를 뉴욕으로 보냈다.
뉴욕으로 날아온 피터는 일 주일 동안 청부 살인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그는 일단
자신이 죽여야 할 젊은 부부의 일상을 낱낱이 감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첫날부터 그
들을 미행하던 피터는 두 부부가 동일하게 연극 배우이며 그들이 며칠 후에 공연의 리
허설을 위해 보스턴으로 떠난다는 정보를 알아내었다.
피터는 보스턴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자동차를 몰았다. 젊은 부부가 보스턴으로 향
하는 날은 평일이었다. 평일에는 고속도로가 비교적 한적할 것이다. 피터는 보스턴으
로 가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두 사람을 해치우기로 결정을 하고 적절한 장소를 답사
했다.
살인을 예정했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을 때, 피터는 젊은 부부의 집으로 침입했
다. 피터는 차고로 들어가서 1단계 작전에 착수했다. 피터가 설치했던 것은 유압이
높아지면 브레이크액이 흘러나오도록 하는 장치였다. 1단계 장치를 끝내고 숙소로 돌
아온 피터는 밤새 술을 마셨다.
피터는 생전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살인할 때의 순간보다는 오히려
살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악마적인 것이었다. 피터는 위스키에 진정제를 타서 마
셨다. 아무래도 좀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더구나 새벽이 되자 비까지 내렸다.
청부 살인을 하는 전문가들은 좀처럼 긴장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을 저지르는 순
간까지, 아니 일을 저지른 순간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죽
여야 하는 사람이 자기와 어떤 원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와는 전혀 원한
관계가 없기 대문에 느낄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상대가
왜 죽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행해지는 살인이기 때문에 살인자를 더욱 편안하게 만드
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청부 살인 전문가들에게 사람의 목숨은 한낱 파리 목숨처
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피터는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했다. 새벽의 여명이 서서히 밝아 오자 몹시
피곤했던 피터는 잠시 눈을 붙였다. 피터는 자명종 소리에 기계적으로 잠에서 깨어났
다.
시계는 벌써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순간 창밖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피터는 간단하게 얼굴을 씻고 젊은 부부의 집 앞에서 대기해 놓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서 젊은 부부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그 집의 차고에서 빠져나왔다.
피터는 비를 맞으면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고 있는 젊은 부부의 검은색 자동차를 따
라가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의 자동차가 한적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평일 아침에다 비까지 내려서
인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거의 없었다. 피터는 검은색 자동차와 아주 먼 거
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따라갔다. 드디어 검은색 자동차가 가파른 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는 산등성이로 접어들었다.
피터는 점차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피터는
긴장된 상태로 젊은 부부의 자동차가 언덕길을 따라 달리다 브레이크가 파열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피터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앞에서 달려가던 검
은색 자동차가 언덕 아래에서 멈추어 선 것이다. 약간 떨어진 채 뒤따르던 피터는 무
슨 일인지 알아 보기 위해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피터의 시야에 들어온 두 부부는 자동차 안에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피터
는 계속 서행을 하면서 그들의 생동을 감시했다. 그런데 검은색 자동차에서 내린 남자
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이 자동차의 앞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도 뒤
따라 차에서 내리더니 남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남자는 자구만 자동차의 밑부
분을 들여다보면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피터는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했다. 만약 젊은 부부가 자동차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갑자기 피터는 이번 일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치
밀하게 계획했던 일을 여기에서 허무하게 마칠 수는 없었다.
'지켜보다가 여차하면 직접 해치울까?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아마도 내가 이 고속도로
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잡힐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마침내 피터의 자동차가 검은색 자동차에 거의 닿을 때까지 다가갔다. 어쩔 수 없이
피터는 서서히 자신의 자동차를 검은색 자동차 뒤에 정차시켰다. 그는 자동차에서 내
리며 젊은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피터는 젊은 부부가 서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면서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브레이크에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군요. 사흘 전에 점검받을
때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젊은 남자는 다시 자동차 밑으로 고개를 들이 밀었으며 여자는 남편이 젖지 않도록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순간 피터는 검은색 자동차의 옆을 지나가다가 차 안에 어린 아이가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피터에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피터는 젊은 부부들이 자
동차를 고치는 사이에 몰래 아이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나서 곧장 자기 차로 달려가서
아이를 싣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여자가 자동차 안을 확인하다가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큰일났어요! 아이가 없어졌어요! 저 사람이 우리 아이를 데려갔어요!"
남편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속력을 내면서 달려가는 피터의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그는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탔다. 여자도 뒤따라 자동차에 올라탔다. 젊은 남자는 다
급하게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걸리자 남자는 가속기를 힘껏 밟았다.
피터의 자동차는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미친 듯이 울부짖
었다. 남자는 점점 속력을 높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속력을 내
는지도 모르는 채 전 속력을 다해 피터를 뒤쫓기 시작했다.
피터의 자동차는 경사가 가파르고 급커브가 많은 산악 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는 의
식적으로 검은색 자동차가 거리를 좁혀 오도록 속도를 늦추었다. 검은색 자동차는 무
서운 속도로 피터의 뒤를 추격했다.
피터는 검은색 자동차의 접근을 확인한 후에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급커브길을 돌았
다. 그 뒤로 검은색 자동차도 커브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검은색 자동차는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도로를 벗어나 언덕 아래로
튕겨지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피터는 자동차를 멈추고 언덕 아래를 바라보았다. 젊은 부부가 타고 있던 검은색 자
동차는 언덕 아래로 굴러가다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요란한 소
리와 함께 불이 나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피터의 옆자리에는 젊은 부부의 아이가 피터를 향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가 언덕 아래로 굴러서 죽은 사실도 모르는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피터를
응시했던 것이다.
피터는 다시 한 번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미소는 티없이 맑게 느껴졌다. 피
터는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청부 살인을 하는 입장
에 서 있는 피터였지만 천진스러운 아이 앞에서는 결코 죽음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지? 지금 죽여야 하나? 빌어먹을!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잖아!'
피터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러면서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아이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려
두기로 결심했다.
피터는 재빨리 아이를 끌어안고 언덕을 향해 내려갔다. 자동차에 붙었던 불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고 젊은 부부는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피
터는 굴러떨어진 자동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 아기를 가만히 내려 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언덕위로 올라갔다.
피터는 언덕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 아이에 대해 더 이상의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
다. 아기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생길 위험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다음날 신문에는 그날의 사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경찰은 젊은 부부가 빗길
에 과속으로 달리다가 급커브에서 미끄러지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서 사고가 일어난 거
라고 하면서 아기가 차에서 튕겨져 나온 것에 대해서는 기적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아기가 뉴월드 그룹 회장의 손녀딸이라는 사실도 커다랗게 보도했다.
피터는 신문을 보면서 그 이름을 잊지 않기로 했다. 뉴월드 그룹 회장의 손녀딸, 로
라 해리슨...
피터가 일을 마치자 그의 은행 계좌에는 약속대로 거액의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금액은 상대가 피터에게 제시했던 금액의 절반에 불과했다. 피터는 나머지 돈도 모두
달라고 할 작정으로 다시 바하마로 갈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자신은 이미 청부 살인을 저질렀고 자신에게
살인을 교사했던 상대는 매우 위험한 조직이었다. 혼자의 몸으로 그들을 상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피터는 바하마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피터는 그
돈으로 중고차 매매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가지의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바하마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던 것이다. 피터는 그곳으로 가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피터는 승무원들이 제공하는 음료수를 애써 거절했다. 피터는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
고 싶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기나긴 삶의 과거를 떠올리기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갑자기 피터는 그 당시에 받지 못했던 나머지 돈을 다시 받아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
다. 만약 자신이 살인자라고 밝혀져도 그 사건은 공소 시효가 벌써 지났다. 그리고
증거도 불충분하다. 피터는 아무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기랄! 그놈들이 아직 거기 있을지도 몰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그 빚
을 받아내야겠어.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곳에서 부자 관광객을 상대로 건수를 올리면
될 거야. 그래, 바하마에서 멋지게 한 건 하는 거야. 호텔에서 멋진 여자들과 함께 관
광을 즐기는 거야."
피터는 간단하게 기내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마셨다. 피터는 몹시 피곤한 상
태였기 때문에 잠을 자고 싶었다. 그는 스튜어디스에게 수면용 눈가리개를 부탁했다.
잠시 후에 아름다운 금발의 스튜어디스가 다가오더니 마른 수건과 수면용 눈가리개를
건네 주었다.
피터는 잠을 자기 위해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서 아까부터 자꾸 무언가를 열심
히 읽고 있던 옆자리의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피터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는 <
비지니스 위크>를 보고 있었다. 피터는 자신의 옆자리에 멋진 미녀가 아니라 남자가
앉아있는 것을 재수없게 생각하면서 귀찮은 듯이 머리를 돌리고 잠에 빠져 들었다.
하베이는 바하마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지니스 위크>를 읽고 있었다. 그는
자기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점심을 먹은 뒤에 곧장 잠에 골아떨어진 사실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기사를 읽던 하베이는 눈이 침침해지자 읽던 잡지를 덮었다. 그리고
힘껏 기지개를 켜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몸을 풀기 위해 움직였다. 고속으로 날아가
는 비행기는 이제 구름 속을 비행하고 있었다. 하베이는 창문을 통해 하얗게 번지는
구름을 감상했다.
얼마 후에 구름 사이로 아주 흐릿하게 지상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
려다본 지상은 거의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작은 점들뿐이었다. 가끔씩 어린
시절에 비행기 놀이를 하면서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라본 땅 위의 장면을 상상하
기도 했지만, 지금 펼쳐지고 있는 장면은 그렇게 멋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거대
한 음모속으로 발을 내딛고 있는 중이었다.
하베이는 무거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훌륭한 민완기자인 하베이는 이번 바하마
여행에 대단히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하베이는 항상 어떤 일에 달려들 때마다 끊임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듯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사건에 대해
진실을 파헤칠 때마다 느껴지는 무한한 호기심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
까?
하베이는 자기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남자의 코고는 소리를 느꼈다. 그 소리를 들
으면서도 하베이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하베이는 사소한 것에는 절대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생활의 규칙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습성이 이미 몸에 배여 있어서인지 옆사람이 아무리 세게 코를 골아도 하베
이는 이마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하베이는 오히려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사고에 리듬감을 주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레베카라는 여자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하베이는 바하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워싱턴 대학을 잠시 방문했다. 하베
이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레베카는 워싱턴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하베이는 필
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곧바로 워싱턴 대학의 학적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학적과 사무
실에는 커다란 안경을 코에 걸친 여직원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하베이 짐머라는 기자입니다. 학적부를 열람해도 되겠습니까?"
그 여직원은 하베이의 신분증을 확인한 후에 학적부를 열람하도록 해 주었다. 하베
이는 정치학부의 학적부를 넘겨 받아서 하나씩 곰곰이 훑어보았다.
그는 레베카 더글라스라는 이름을 찾아보기 위해 서류를 뒤적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베이는 마침내 레베카 더글라스라는 이름이 정치학부 학적부에 나타나 있
는 것을 발견했다.
하베이는 재빨리 그녀의 기록에 대해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신
상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던 도중에 하베이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레베
카 더글라스라는 이름의 학적부에 붙어 있던 사진은 그가 기억하고 잇는 사진 속의 인
물과 많이 달랐던 것이다.
하베이는 재빨리 가방 속에서 레베카 더글라스의 사진을 꺼냈다. 학적부의 사진이
비록 오래 전의 사진이었지만 가지고 있는 레베카 더글라스의 사진과 분명히 달랐다.
그가 들고 있던 사진과 학적부 속의 사진은 약간 비슷한 용모이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잇는 사진 속의 레베카 더글라스와 학적부에 기록된 레베카 더글라스의
사진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었다.
하베이는 깜짝 놀라면서 몇 번이고 다시 사진을 비교해 본 결과, 그 두 사람이 분명
히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클라크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레베카 더글라스, 그녀는 분명히 워싱턴 대학의 정치학부 출신이다. 그렇다면 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갑자기 하베이는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
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학적부를 천천히 열람
해 보았다. 정치학부의 학적부에는 레베카 더글라스라는 여자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하베이는 정치학부의 레베카는 분명히 자신이 조사하고자 하는 그 레베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베이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하베이는 학적부의 레베카와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사진속의 레베카가 분명히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찾고 있는 레베카는 학적부의 레베카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베이는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렸다. 지금부터 이곳의
모든 학적부를 뒤져서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 속의 레베카 더글라스를 찾아낸
결심을 했던 것이다.
마침내 하베이는 그 사진 속의 인물을 찾아내었다. 경영학부의 학적부를 열람하던
하베이는 단번에 사진 속의 레베카 더글라스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베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진과 경영학부 학적부 속의 사진을 몇 번이고 다시
대조해 보았다. 두 여자는 똑같은 인물이었다. 학적부의 사진은 그가 가지고 있는 사
진의 레베카 더글라스였다.
그러나 경영학부 학적부에 써 있는 그녀의 이름은 레베카 더글라스가 아니라 엘리자
베스였다. 하베이는 엘리자베스의 학적부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성명: 엘리자베스.
주소: 워싱턴 대학 기숙사 A동 307호.
교우관계: 기숙사 룸메이트, 정치학부 레베카 더글라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엘리자베스가 레베카 더글라스와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
던 룸메이트였다는 사실이었다. 하베이는 그녀의 고향이 어디인지 확인해 보았다. 엘
리자베스의 고향은 롱아일랜드였다.
하베이는 커다란 의문에 사로잡혔다. 지금 바하마에 있는 레베카 더글라스는 워싱턴
대학 경영학부를 졸업한 엘리자베스라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학창 시절에 레베카
더글라스의 친구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 친구의 이름을
쓰면서 행동하고 잇는 것이다. 레베카 더글라스의 본명은 엘리자베스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진짜 레베카 더글라스는 어디에 있을까? 가짜 레베카 더글라스의 실체
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베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
각을 정리해 나갔다.
'엘리자베스는 왜 레베카 더글라스가 되어야만 했을까? 그 점을 밝힌다면 모든 것은
아주 쉽게 풀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지금 당장 밝힐 수가 없어. 따라서 우
회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해 나가는 것이 좋겠어.'
엘리자베스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만약 하베이가 그
사실을 먼저 밝힐 수 있다면 당연히 레베카 더글라스의 의문을 풀 수 있을 것이다.
하베이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엘리자베스가 어떤 여자인가에 대한 조사를 직접 하
지 않고 프랭크에게 부탁했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비서로 일하는 프랭크 로시에게 자
기가 알아낸 모든 사실을 말해 주면서 엘리자베스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서 그 인물에
대해 추적해 달라고 의뢰했던 것이다. 프랭크는 엘리자베스에 대해 자세한 신상을 파
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베이가 레베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비행기는 바하마의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제임스 교수는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름을 응시하면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제임스 교수는 책을 읽으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중이었다.
그는 바하마 여행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는 듯이 책갈피에 넣어둔 초대장을 자꾸만 들
여다보았다. 그 초대장은 메드닉 해리슨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제임스의 바하마 여행은 이번 기회가 처음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을 덮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에 제임스는 여행을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바하마의 해변에서 여름 방학을 보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무렵에는 여느
해변가와 마찬가지로 바하마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가족들과 함께 해수
욕을 즐기는 것이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제임스는 바하마가 다른 해변들보다는 더욱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그리고 평야처럼 드넓게 펼쳐진 초원이 한창 감수성이 풍부하던 젊은 시절의 제임스에
게는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한 스킨 스쿠버 장비들을 가지고 찾아와서 직
접 스쿠버 다이빙을 즐긴 적도 있었다. 대학 내의 스쿠버 다이빙 써클 회원들과 함께
해마다 여름이면 이곳 바하마의 깨끗하고 운치있는 바닷가에서 신비로운 바다 속의 세
계를 구경하던 일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제임스의 아버지도 그가 스쿠버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 적극 지원하였다. 아버지는
제임스가 첫 다이빙을 하기 위해 바하마로 떠나던 날 자신의 아들에게 수심계를 선물
했다. 제임스는 어린 아이처럼 몹시 좋아하면서 그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 당시의 기
억이 아직까지도 눈 앞에 생생했다.
그 후로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학위 논문을 마친 뒤에 찾아오는 다소간의 여유를
이용해 딱 한 번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러 바하마를 방문했다. 그리고 박사학위 논문을
받기 전까지는 스쿠버 다이빙을 즐길 수가 없었다.
제임스가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의 강의에도 잘 나타났다. 그는 학생
들에게 응용 통계학을 설명하면서 바닷속 이론을 강론했다. 대학생들은 그의 바닷속
이론을 들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응용 통계학의 이론들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었다.
그는 은유적 기법을 동원해서 학생들을 가리키는 일에 대가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비유와 환유를 아주 잘 이용해 강의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제임스가 드디어 교수가 되었을 때에는 매우 바쁜 생활이 이어졌다. 학생들에게 강
의를 하는 것 이외에도 항상 시간이 날 때마다 끊임없이 학문 탐구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열심히 연구하는 교수였다.
제임스는 학계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바하마에 몇 번 다녀간 적이 있
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세미나는 저녁 시간에 열렸기 때문에 제임스는 일찍 그곳에 도
착해서 낮 동안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기도 했다. 제임스에게 스쿠버 다이빙이 주는 매
력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비로운 감촉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와 바하마의
인연은 이렇게 해서 아주 오랫동안 긴 인연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 바하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 제임스 교수는 그런 연유로 마치 새로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다. 제임스는 매번 바하마를 방문할 때마
다 공항에서 곧장 아미보셤 호텔로 가지 않고 시장을 방문했다.
택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바하마 고유의 토속 시장이 열리는 시장이 나타났다. 제임
스는 항상 그 좁은 거리 앞에서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시장을 구경했다. 제임스는 지
금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 공
항을 나설 때의 그 낯익은 거리 풍경은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를 만큼이나 아름다
운 광경이었다.
제임스가 하버드의 교수가 된 것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너무나 빨리 지
나간 세월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임스는 자신의 손을 펼쳐 보았다. 이제는 검지 손
가락에 잡힌 굳은 살도 제법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손에 박힌 굳은 살이 말해
주듯이 제임스는 열심히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경영학부 정교수
로 승진할 수 있었다.
정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도 제임스는 대학과 학계에서 일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부담
감과 스트레스도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연구논문을 집필
한기 위해 밤잠을 못자고 시달려야만 했다.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
내야 했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반드시 나이 많은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해야 한다는
것도 커다란 부담이었다.
그러한 제임스에게 이번 특별 휴가는 막힌 숨통을 열어주는 통풍구와도 같은 것이었
다. 제임스는 텔레비젼도 보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고 오직 자연이 만든 맑은 공기와
확트인 바다에서 일 주일 동안의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제임스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윽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원숙한 지성미를 풍기는
그의 미소는 아주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제임스와 눈이 마주친 스튜어디스가 그의 미
소에 응답하듯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제임스는 가벼운 손짓으로 그녀를 불러서
음료수 한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에 그녀는 아주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가져왔다. 제임스는 시원한 오렌지 주
스로 목을 축이면서 오랫동안 앓았던 편두통이 사라졌을 때처럼 시원함을 느꼈다. 머
리가 너무 복잡할 때나 논문이 잘 안 써질 때에는 항상 심한 편두통이 찾아오곤 했었
다. 가끔은 편두통이 심해지면서 지독한 경련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번 다시는 편두통 따위에 시달리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로라 해리슨이 아미보셤 호텔로 제임스를 초대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대학
교수의 한달 봉급으로도 아미보셤과 같은 최고급 호텔에서 일 주일 이상을 묵는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다.
바하마에는 아미보셤 호텔 이외에도 다른 호텔들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그 시설이
나 운영방식에 있어서는 다른 호텔들이 아미보셤 호텔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는 로라 해리슨이 아미보셤 호텔로 초대했을 때, 매우 기쁜 마음으로 받
아들였다. 하지만 제임스가 그런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로라
의 초대를 받아들이면서 아미보셤 호텔의 경영 상태에 대해 조언을 해 주기로 결심했
다.
경영상의 조언,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한 이후로 항상 제임스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
았던 말이었다. 경영학 교수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들에게 경
영상의 조언을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의 조언 한마디에 의해 기업의 운
명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기업들이 여러 명의 고문을 두고
조언을 들어가면서 합리적인 경영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기업체들 사이에서 제임스 교수의 조언은 매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는 정작 자신이 하는 경영상의 조언이라는 것이 기업 활동에 별로 커
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제임스는 로라의 할아버지 메드닉 해리
슨의 경영 방식에 대해 단지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로라 해리슨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임스는 로라에 대하여 매우 미묘한 감
정을 가지고 있었다. 로라는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머리도 아주 좋은 수재였다.
그래서 제임스는 특별히 로라를 더욱 아끼고 있었다.
잠시 후에 제임스는 조용한 잠에 빠져들었다. 제임스의 꿈 속에서 바하마의 공항이
보였다. 자신의 짐을 찾아 공항의 출입구를 나서자 로라 해리슨이 마중을 나와 있었
다.
로라 해리슨과 제임스 교수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화려한 마차가 한 대 다가
와서 멈추었다. 그것은 아주 건장한 백마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였다. 마차의 실내는
온갖 보석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을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말의 힘찬 울음 소리와 함께 제임스와 로라 해리슨을 실은 마차는 조금씩 움
직였다.
잠시 후에 마차는 점점 더 속력을 내면서 바하마의 가로수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꿈에서 본 바하마의 거리는 택시나 버스가 전혀 다니지 않았다. 마차만이 바하마에서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한참을 달리던 마차의 마부가 뒤를 돌아보면서 물어 보았다. 제임스는 미소를 지으
면서 외쳤다.
"아미보셤 호텔로!"
사실 아미보셤을 이곳 바하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이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제임스를 한 번 돌
아본 마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는 곧장 바하마의 중심가로 들어섰다. 주위에는 여러 가지 특산품들과 기념품들
을 실은 수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꽃을 파는 아가씨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
다. 제임스는 어떤 수레 앞을 지나가다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갑자기 마차를 세웠
다. 제임스는 마차에서 내린 후에 기념품이 진열된 수레로 다가갔다.
제임스는 장미꽃을 한 다발 사서 로라 해리슨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로라 해리슨
이 장미를 받아들자, 그만 꽃다발이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제임스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더욱 커다란 장미꽃 다발을 사서 로라 해리슨의 품에 안겨 주었다. 하지만 장미
꽃 다발은 제임스의 품에서 로라 해리슨에게 건네지면서 계속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임스는 몹시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러나 로라 해리슨은 여전
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로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
나 아무리 노력해도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을 실은 마차가 드디어 아미보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분위기
는 우주 활기에 넘쳤다. 제임스는 먼저 마치에서 내린 후에 로라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딛고 서 있던 바닥이 밑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로라를
끌어안고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로라 해리슨의 비명 소리와 함께 제임스는 적막한
공간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제임스는 목청이 터질 정도로 절규했다. 어딘가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몸
을 추스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것이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제임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를 흔들어 깨운 것은 스튜어디스였
다. 그녀는 제임스에게 시원한 물수건을 갖다 주면서 다시 한 번 몸에 무슨 이상은 없
는지 정중하게 물어 보았다.
"잠시 악몽을 꾸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제임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스튜어디스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
으로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손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후에는 비행기가 바하마에 도착합니다."
"고맙습니다."
제임스는 자신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행기는
벌써 바하마의 근해를 날아가고 있었다. 제임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가볍
게 흔들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힘껏 발을 내딛고 있었다.
제임스가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 그의 앞으로 마차가 한 대 다가와서
멈추었다. 그 마차는 힘있게 보이는 두 마리의 검은 말이 끌고 있었다. 말의 힘찬 울
음 소리가 제임스를 유혹하고 있었다. 버스나 택시도 있었지만 제임스는 마차를 이용
함으로써 바하마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자, 이제 출발해 볼까?"
제임스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마차에 올라탔다. 가볍게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을 느끼
면서 제임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가 뒤를 돌아보면서 물어 보았다.
"아미보셤 호텔로!"
제임스는 꿈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마차는 곧장 바하마의 중
심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바하마의 중심가에는 시장이 서고 있었다. 제임스는 어떤 수레 앞을 지나다가 무엇
인가 생각난 듯이 갑자기 마차를 세웠다. 제임스는 마차에서 내려 기념품이 진열된 수
레로 다가갔다.
제임스는 어떤 곳을 여행하면 반드시 그곳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을 사는 취
미가 있었다. 그러한 취미는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 대원으로 활동할 때부터 생긴 것이
었다. 제임스는 이미 바하마의 손수건을 몇 장 가지고 있었지만 버릇처럼 다시 바하마
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빨간색 손수건을 한 장 집어들었다.
제임스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물건을 파는 상인에게 건네 주고 다시 마차를 향해
돌아섰다. 제임스는 이런 곳에서는 돈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
차에 다시 올라탄 제임스는 손수건을 팔에 묶고 마부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미보셤 호텔은 매우 아름다웠다. 바하마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원추형의 지붕이
햇살을 받으면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