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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스크랩)모음 스크랩 *불행한 사람들에게
태일(太一) 추천 1 조회 56 15.07.28 16:1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불행한 사람들에게

 

 

 

 

 행복과 불행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이미 두 가지 종류의 만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는 감각적인 인식에 근거한 만족감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만족감이었습니다.

 

 산업사회에는 의외로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족한 것이 있어 안락한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갖추고 있지만 그들의 운명에 만족하지 못할 뿐입니다.

시기심등 온갖 이유로 그들은 불행을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건전한 사고방식을 갖지 못해 고통을 스스로 자초하는 셈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바꾼다면 그들의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정말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을 앓는 사람들, 가난에 찌든 사람들, 재난에 희생당한 사람들, 부당하게 학대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그들에게도 고통을 벗어날 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물리적인 방법을 생각해 볼까요?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굳건한 정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에 달려가 보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으면 등골이 휘고 발톱이 빠지도록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긍적적인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정신자세가 고통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예컨대 당신이 병을 앓고 있다면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한 온갖 가능한 수단을 써보아야 합니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에 충실히 따르면서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면 어떤 병이 무섭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괜시리 사태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운명까지 탓하면서 육체적인 고통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더합니다.

더구나 중대한 병인 경우에는 병을 떨치고 다시 일어나겠다는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병을 더 크게 키울 뿐입니다.

 

 가령 뇌에 문제가 생기면, “드디어 최악의 사태가 내게 닥친 거야.

차라리 두 다리가 부러지는 편이 나았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그처럼 고통받는 사람이 부지기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병을 앓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슬픔에 잠깁니다.

 

 그러나 두 팔이 마비되더라도 “이제 두 팔을 사용할 수 없어.

하지만 아직 두 다리가 멀쩡하잖아!”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이제 다리가 없어. 하지만 휠체어를 타면 어디라도 갈 수 있어.

게다가 두 손이 있으니 무엇인들 못하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불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생각이 커다란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긍정적인 시각에서 사태를 파악한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현대과학기술도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게다가 현실적인 상황에서 불거지는 고통을

정신의 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고통받는 상황에서 어떤 위안도 받을 수 없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십시오.

항상 긍정적인 정신자세를 가지십시오.

그럼 당신의 고통을 적잖게 가라앉힐 수 있을 것입니다.

 

 중대한 질병을 오랫동안 앓았더라도 절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이 불교신자라면, ‘이 병이 과거의 내 죄를 씻어줄 거야!

다른 사람들의 고통까지 내가 짊어지겠어.

그들을 대신해서 내가 앓는 거야!’라고 생각하십시오.

또한 수많은 사람이 당신처럼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고통으로 그들의 고통을 덜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 당신만이 그 병을 앓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시련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어서 하느님을 우주의 창조자라 믿는다면,

 ‘저는 이 고통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제게 이 고통을 주신 이유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를 동정하사 제게 생명을 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찾으십시오.

 

 당신에게 종교가 없다면, 당신에게 닥칠 불행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당신만이 그 불행을 겪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어떤 종교적 믿음이 없더라도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너머에는

당신 고통에 스며들어 그 고통을 없애줄 빛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상상이 당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지 살펴보십시오.

 

 소중한 사람의 죽음처럼 불가피하게 닥치는 불행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찌 자연의 섭리인 죽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절망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절망은 고통만을 더해 줄 뿐입니다.

종교적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닥친 고통의 성격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그리고 그 고통을 우리힘으로 덜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불행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 세상의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정녕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없을까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시험에 떨어진 학생이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시험에 붙었을 것이란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불행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화를 냅니다.

상황이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실패라는 고통에 분노와 변명이 주는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진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더라도 냉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정한 연령이 지나면 삶은 필연적으로 종말을 고하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어렸을 때 당신 부모는 당신을 키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교통사고와 같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부모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면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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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7.28 17:46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 15.07.30 06:59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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