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35] 시대가 만든 건축가 김수근과 건축사무소 '공간' (下)
매일경제 2020.05.08
▲ 공간 사옥 /사진=연합뉴스
[효효 아키텍트-35] '공간 사옥'은 건축설계사무소이자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공간 사옥은 거무튀튀한 벽돌 외벽을 뒤덮은 담쟁이넝쿨과 건물 측면으로 돌아가야 보이는 출입문이 특징이다. 현재 공간 사옥은 1972년 준공된 구사옥과 1997년 장세양(1947~1996)에 의해 증축된 신사옥, 현 공간 건축 대표인 이상림이 증·개축한 'ㄷ'형 한옥이 어우러져 있다.
김수근은 공간 사옥을 '둘러싸여 있으나 결코 막히지 않은 공간'이라고 지칭했다. 서로 다른 층고(層高)와 미로같이 꼬여 있는 동선으로 낯선 공간에 온 느낌이 든다. 구사옥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체형과 신장을 고려해 층고를 약 2.3m로 낮게 설계했다. 2층까지는 반 층마다 공간을 구획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 방식을 적용했다.
계단은 복잡한 공간 사옥의 동선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자, 건물 분위기를 집약한 백미다. 반경이 1m도 되지 않는 원형 계단은 폭이 좁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꽈배기처럼 꼬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공간 사옥의 조형성과 공간 미학은 건축물이 터를 잡고 있는 장소적 성격을 반영하면서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많은 서울 북촌에서 소년기를 보낸 김수근의 정서가 녹아 있다.
1974년, 서울 종로구 신영동 세이장은 김수근 본인이 살았던 주택으로 검은색 벽돌과 원목을 접목하는 디자인이 돋보이고, 평창동 창암장은 바위 위에 수평적인 판들을 여러 개 겹친 것처럼 올려놓은 게 특징이다. 1975년 공간 사옥 증축, 1976년 잠실 실내체육관을 설계한다.
▲ 양덕성당 /사진=wikipedia
마산 양덕성당(1977년)은 김수근의 첫 번째 종교 건축물로 '모태적 공간(Womb Space)' 개념을 도입했다. 1979년 8월, 일본에서 발간된 鹿島出版會<現代の建築家> 특집호에 <마산 성당 -『神』과의 만남> 제목으로 김수근의 기고가 실렸다.
「나는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고딕 이전 교회 설계를 도맡아 했던 성직자의 직능을 불현듯 연상하는 나는 Client인 요셉 플래처(Joseph Platzer, 한국명-박기홍) 신부에게 선언하듯이 토로했다. (...) 그래도 Platzer 신부는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찾아왔다면서 그게 뭐 대수롭냐는 태도였다. (...) 대화가 진행되어 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 지향하는 바가 일치되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러한 상호 이해의 계기를 바탕으로 하여 결국 이 일을 맡겠다고 수락하기에 이르렀다.
(...) 화해의 형태는 주제인 신과 그 대상인 인간과의 관계를 근본으로 여러 양태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 대립적 긴장이 화해되려면 그 대상물 간에 유형, 무형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그 만남의 유형은 기쁘고 즐거운 것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화해를 위한 「만남이 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만남의 장을 위하여 나는 내가 탐구하여 온 공간 개념의 하나인 모태적 공간(Womb Space)을 도입하였다.
국립청주박물관(1979년)은 콘크리트 한옥 형태로 전통 건축을 새롭게 변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진주박물관(1979년)은 중첩된 지붕 형태가 특징이다. 진주성 안에 자리한 박물관은 가까이 멀리서 보면 진주성에 가려 있다가 서서히 드러난다. 강원도 한계령휴게소(1979년)는 서울 평창동 창암장과 더불어 자연과 가장 어우러진 건축물로 꼽힌다.
'기존의 지형을 변형시키지 않고 건물이 자연스럽게 대지에 삽입될 수 있도록 하며 건물 내 어디서나 바깥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테라스를 길게 뽑았다.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수 있도록 외부는 목조로 처리하되, 실제 구조는 철골조로 시공되었다.'(정인하)
▲ 아르코미술관 /사진=매경DB
김수근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 인근에 4개의 벽돌조 건물을 설계했다. 샘터 사옥을 비롯해 문예진흥원의 전시장과 공연장(현 아르코 예술극장, 미술관), 해외개발공사 사옥(현 서울대병원 부속 건물) 등은 공간 사옥의 건축 논리가 대부분 재현됐다.
쌍둥이 같은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이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두 건물 모두 빛이 비치면 요철 벽돌은 해시계처럼 길고 짧게 벽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예술극장도 공간 사옥에서 보듯이 작은 방들이 미로찾기처럼 숨어 있고, 계단은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샘터 사옥 내부는 사무 공간과 소극장, 화랑, 카페로 구성돼 있다. 공간 사옥과 비슷한 구조지만 단일 건물이다. 사옥의 1층은 원래 아무것도 없이 뻥 뚫린 통로였으나 커피숍과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서 있지만 사람들은 앞골목과 뒷골목을 연결하는 이 통로를 이용한다. 샘터 사옥은 매물로 나왔다가 2017년 '선한 투자를 목표로 하는' 부동산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매입했다.
서울 중구 장충동의 경동교회(1980년)는 건물 외부에 십자가가 없으며, 건물 전체가 기도하는 손을 연상케 한다. 경동교회 인근에는 1400여 평 규모의 성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 피정의집이 있다. 1982년, 공간 공릉 사옥을 지었다. 이 무렵의 김수근은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당시 정권은 김수근을 모든 정부 프로젝트에서 배제했다. 김수근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종로구 명륜동의 3층 주택 '고석공간'(1983년)은 매형인 서양화가 박고석(1917~2002)과 의상 디자이너인 누나 김순자를 위해 설계했다. 대지면적 65평에 정원과 다락방이 딸린 3층 주택으로 연면적은 100평 이상이다.
검은색 목제 기둥과 창틀이 격자형으로 집을 받치고 있다. 1층을 뒤로 물려 개방감을 높인다. 가로로 긴 대지에 들어선 건물은 앞에서 보면 직선이고, 뒤로 돌아가면 살림집 용도에 맞춘 공간이 돌출돼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공용 공간이다. 벽돌이 주재료로 쓰였으나 10년 말린 미송 목재로 한 번 더 둘러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내부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게 했다. 생전 김수근은 "다른 집 30채 지을 목재를 썼다"고 자랑했다고 전한다. 나무를 짜 맞춘 격자무늬 현관문이 벽돌 문양과 대구를 이뤄 입구에서부터 공간감을 풍부하게 한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1984년)은 서울 잠실 일대 40만㎡ 대형 터의 잠실종합운동장 용지의 핵심 경기장이다. 관중석 7만석에 최대 10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연면적 13만3649㎡에 잔디 축구장과 400m 육상트랙 8레인이 설치된 다목적 초대형 경기장이다. 김수근은 '가장 웅대해야 하는' 올림픽주경기장을 설계하면서도 자신의 공간 개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백자의 유려한 곡선미를 차용해 주경기장의 지붕 곡선을 그렸다.
1980년대 김수근의 작품은 1970년대와 다른 새로운 시도가 있었음에도 별다른 특이점이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찾기 어렵다. 기존의 벽돌 건물과 다른 하이테크 이미지의 조형미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숙환이었던 간암과 100명 이상으로 불어난 설계사무소의 운영 문제 등이 그를 압박했다. 1984년 역삼동 삼부센터, 서울법원 종합청사를 설계한 데 이어 1985년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을 설계했다.
'벽산125'(1985년) 빌딩은 기존 양식을 과감히 벗어나 철과 유리라는 기계적인 이미지의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김수근 특유의 푸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평가다. 이 빌딩은 묵직한 느낌에 비해 건물 배치는 주변 환경을 고려했다. 맞은편 서울역 쪽에서 바라볼 때 남산이 건물에 가리지 않도록 했다. 1층 남북 방향은 필로티 방식으로 띄워 행인의 통행을 용이하게 했다.
1982년 7월에 착공된 불광동성당(1984년)의 부실 시공을 본 김수근은 불같이 화를 냈다. 1986년 1월 김수근은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은 5개월 후 6월 14일 사망했다. 이틀 뒤 정의채 불광동성당 주임 신부 집전으로 명당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되었다. 불광동성당은 1987년 8월부터 4개월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김수근 '사이를 잇는 사람의 가치'(구미문화예술회관, 2017), 마산 양덕성당·불광동성당 인터넷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