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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농부들의 바쁜 봄날

조각조각 날리기 2007/05/18 12:26 폴리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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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농부들의 바쁜 봄날

글·사진 /한성희

통일촌 가는 길


봄 햇살이 유난히 뜨겁다. 민통선에 들어올 때마다 내리쬐는 강한 햇살. 북쪽이지만 공해가 없기에 태양이 거침없이 곧장 얼굴과 손에 내리꽂힌다.


지난 4월 23일 통일로를 달려 통일대교 앞 검문소에서 차를 세웠다. 1사단 군인들에게 민통선 ‘공무 출입증’을 내밀고 확인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열린 차창으로 쏟아진 직사광선에 얼굴을 찡그리며 운전대를 잡은 손이 따가워 연신 문질러댄다. 햇볕이 생각보다 너무 강하다.


통일촌(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은 임진강을 가로지른 통일대교를 지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다. 이 마을 주민 모두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 


북쪽의 봄은 늦게 온다. 그러나 통일촌에 돌아온 봄이 언 땅을 풀고 풀이 돋게 하자마자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진다.


지난 주 16일부터 18일까지 경남 남해군을 답사 차 다녀왔었다. 남녘의 봄은 마늘종이 길게 자라나 초록빛이 넘실거리는 마늘밭과 나무에 무성한 잎이 초여름을 방불케 했었다.


1주일이 지나 방문한 최북단 마을 통일촌은 아직 벚꽃이 한창이고 벗은 나뭇가지에 겨우 새잎이 얼굴을 비죽 내미는 뒤늦은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남과 북은 계절도 다르게 온다는 것을 민통선에 와보면 실감한다.


지난 주 못자리를 냈다는 이 마을 농부 서정환(57)씨의 비닐 하우스를 찾았다. 이곳에선 모판에 볍씨를 뿌려  4월 중순부터 20일까지 모내기를 준비 한다. 논에 모를 낼 5월 하순 사이에 고추 모를 내느라 밭을 갈기에 바쁘기에 봄날 농부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아하, 한 기자 어서 와요. 이 동네까지 어떻게 들어왔나?”

“저도 이젠 출입증 있다구요.”

“그랬구만.”


이곳 주민들을 방문하면 주민이 직접 통일대교에 나가 방문자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초소에 맡긴 후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필자 역시 그런 방법으로 민통선을 방문했었다. 필자가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덕분에 공무 출입증을 발급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우스가 꽤 넓은데 얼마나 되나요?”

“한 1천 평 가량?”

“모두 고추를 심을 거예요?”

“그래야지요.”

“여기는 모두 농사를 짓고 살지요? 벼농사와 고추 외에 딴 작물은 어떤 걸 심죠?”

“여기야 농사 외에 할 게 있나…. 콩농사, 그밖에 인삼농사를 많이 짓지.”


서씨와 한참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길 옆 깨끗하고 넓은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은 거의 없다.


“농촌에서는 한미FTA 때문에 더 힘들어질 건데요.”

“더 힘들어지겠지요. 그래도 우리야 농사를 지어야지 여기서 딱히 할 일이 있나, 이 나이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통일촌의 유래

이 마을이 조성된 것은 1973년 8월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1사단 박학선 사단장에게 지시해 공동묘지였던 이곳을 이스라엘의 농촌공동체 ‘키부츠’를 모델 삼아 파주시 군내면과 철원, 두 곳에 통일촌을 조성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전선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재 철원의 통일촌은 없어지고 남은 것은 이곳 통일촌이다.      


처음 여기에 정착한 가구는 영관 장교, 하사관 등으로 복무하다 제대한 40세대와 실향민 40세대였다. 이들은 통일촌 정착을 신청해 4만5천 평의 농토를 불하받았다. 방 하나 부엌 한 칸 있는 군인 막사에서 가족이 기거했다. 말이 농토지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땅을 일구고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더러는 농사가 힘들어 타인에게 넘기고 이곳을 떠나기도 했지만 초기 80가구에서 현재 150가구로 늘어나 주민 467명이 산다.


파주시 민통선 안의 인구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동파리 해마루촌, 백연리 통일촌을 합쳐 257가구 799명이며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산다. 대성동 마을을 제외하고 민통선 다른 마을은 세금과 군역 면제 등 혜택이 일체 없다.


물론 외지에서 통일촌에 들어와 살 수도 없다. 세대수가 많아진 이유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의 자녀가 성장해 분가를 하고 세대를 이루어 늘어난 것이다. 통일촌은 1호집, 2호집, 3호집 식으로 분류한다. 초기 80호집까지 그런 식으로 이름지었다.


아들 딸들이 성장해 분가하자 집 번호에 꼬리가 달렸다. 예를 들어, 30호집의 아들과 딸이 결혼하고 분가해 이 마을에 살면 30-1호, 30-2호식으로 분류한다. 단, 외부로 출가해 사는 자녀와 사위, 며느리에게는 자동적으로 민통선 출입증이 발급된다.


요즘 농촌에 노인들만 지키고 있다지만 통일촌과 민통선은 젊은이들이 많다. 청정지역의 벼와 장단콩, 인삼농사를 짓는 통일촌 주민들은 연평균 소득 4천5백만원 정도이고 우리나라 농가치곤 소득이 높은 편에 속한다.



고추모를 내르라 비닐하우스에서 바쁜 서정환씨.


농부의 한숨은 민통선도 마찬가지

“지금은 거의 기계로 농사를 지으니까 힘든 건 없는데 집집마다 트랙터, 이앙기, 건조기 등 농기계를 사느라 빚을 평균 1억씩 지고 있어요.”


한숨을 쉬는 서정환 씨는 동서 김순조(63)씨의 권유로 1980년 통일촌에 들어와 27년 째 농사를 짓고 산다. 경북이 고향인 김순조 씨는 월남파병 하사관으로 1사단에 근무하다가 통일촌에 입주하면서 제대했다. 김씨는 통일촌 1세대로 통일촌의 살아있는 역사로 통한다.


“예전에는 군인들이 대민 지원을 해주곤 했는데 지금은 여의치 않아요. 인력도 문제지만 더 힘든 건 노루, 고라니, 멧돼지가 농사를 망쳐놓는 거예요.”


민통선 농가는 야생동물의 피해가 극심하다.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보도가 됐지만 야생동물 보호법에 걸려서 잡을 수도 없다. 더욱이 민통선에서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파주시의 행정력보다 군부대의 영향력이 우선이다.
설사 수확기에 수렵허가가 난다고 해도 이곳에선 총기 사용은 어림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개를 밭에 매어놓거나 가시 울타리를 만드는 등 농부들도 고심하고 있지만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논과 밭 주위에 전기선을 둘러친 사람도 있을까요?”

“그럼 효과가 있나요?”

“그럼요. 동물들은 민감해서 따끔따끔 전기가 통하면 달아나 버려요.”

“생명에는 이상 없어요?”

“절대 죽는 건 없어요. 약한 전기를 따끔따끔 흐르게 하는 거니까요.”


이놈들은 배추, 고구마, 양배추 등 밭작물을 먹어치우고 밭을 짓밟아 망쳐놓는 것만이 아니다. 추수할 벼가 있는 논에서 뒹굴어 자기 영역 표시를 하는 노루나 고라니에게는 그저 얌전히 그놈들 몫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만약 쓰러진 벼를 다시 일으켜 세우면 다른 곳의벼를 더 많이 뭉개놓는 심술을 부린다. 고라니나 노루의 심술이라니 한편 웃음이 나오지만 정작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웃을 일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드문 민통선은 개체수가 늘어나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김순조 씨의 인삼밭을 보고 싶다고 하자 안내해준다. 초록빛 잎이 막 올라오는 5년 된 인삼밭이다. 필자는 파주에 살면서도 정작 인삼밭 구경은 처음 해보는 촌놈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순조씨 인삼밭


“와아! 대단하네요. 내년이면 6년근이 되나요?”

“그렇지요. 내년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캐게 됩니다.”      

“이곳 인삼은 품질이 좋아 판매가 잘되고 있는데 소득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나요?”

“여기가 예전에는 황해도 장단면에 속했어요. 여기서 생산된 인삼이 모두 개성인삼이었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지요. 여기 이 길이 송도상인이 지나가던 길이고요.”      


김순조씨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듯이 인삼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빛내며 군 출신다운 딱딱하고 절제 있는 말투로 개성인삼 브리핑(?)을 세세히 풀어놓는다.


여기서 개성이라야 코 앞이다. 개성 근처의 인삼밭에서 유명한 개성인삼이 생산됐고 현재 민통선 농부들이 개성인삼들을 생산하고 있다. 2년 전부터 파주시에서 개최한 ‘파주개성인삼축제’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줄을 서서 이곳에서 생산된 인삼을 사가는 등 개성인삼 명성과 인기를 톡톡 누리고 있다.


민통선 농지는 누구의 소유인가

민통선이라고 해도 투기바람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곳의 땅 대부분은 외지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파주시 민통선 내의 경작면적은 17.40㎢이지만 입주영농자(171농가)의 경작지는 8.09㎢이고 이는 농가당 4.73ha(약 1만5천평)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땅은 누구의 소유이며 누가 농사를 짓는가? 나머지 땅은 실향민으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민통선 밖에서 살면서 아침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저녁에 나가는 출입영농자와 외지인으로 농지를 소유한 출입영농자들이다. 이곳에는 724세대의 출입영농가가 있으며 나머지 경작면적 9.31㎢의 주인들이다. 물론 그들이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다. 대부분 땅을 소유하고 농지를 임대해주고 있다. 


농번기가 되면 이곳 출입영농자와 농사일을 하는 일꾼이 하루 2천여 명이나 들어와 북적거린다.

민통선의 땅값이 헐값이던 시절 팔아버린 땅도 있지만 통일촌 주민들은 거의 초기의 땅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다. 투기를 목적으로 외지인들이 사들인 땅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민통선 인삼농사가 고소득을 보장하는 매력이 있지만 정작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크지 않다.


“절반이 넘는 땅이 외지인 소유라 인삼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린다 해도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돈 버는 건 일부분이지요.”

심광용 군내면출장소장의 설명이다.


농번기에 일손 부족으로 외부에서 일꾼을 데리고 오지만 농사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농부들이 속을 끓인다고 했다. 농촌돕기 봉사활동으로 오는 이들도 일이 서툴어 잠깐 하다 돌아가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요즘은 군부대에서 대민 지원도 잘 안 해주는 형편이다. 


민통선이라는 특성상 정치인들이 농촌 돕기를 하러 오기도 한다. 그러나 홍보용 사진을 찍고 잠깐 시늉만 하다 가버리는 경우가 있어 주민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민통선에서 생산되고 있는 장단콩은 이렇게 힘든 생산과정을 거친 끝에 청정지역 농산물이라는 브랜드로 명성을 얻어 뛰어난 품질과 맛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장단콩으로 만든 된장과 청국장 등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인기품목이다.


통일촌 농부의 땀방울이 봄볕에 검게 그을린 주름진 목덜미에 흘러내린다.     

이곳의 봄은 그래도 화사하지만 통일촌에서 보낸 오후의 햇살은 잔인했다. 4월의 햇볕에 화상을 입으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도 필자의 손과 팔목에 붉게 돋은 화상의 흔적이 연고를 바를 때마다 민통선의 봄을 가렵게 각인시킨다.

통일촌


*민족화해 웹진 통권 제26호에 실린 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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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추천 0 조회 205 07.07.19 20:4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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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7.19 23:53

    첫댓글 한기자님 잘 읽었어요. 감사해요. 촌 아낙네에게 귀한 기자님 동생을 두었으니...행복하여라.

  • 07.07.20 04:04

    골드님 남편 매스컴 탔네~

  • 07.07.20 11:00

    기사로나 서정환씨를 보게되네. 방가!

  • 07.07.20 13:41

    골드언니....너무 반갑네요. 건강하시죠????

  • 07.07.20 17:05

    대단한 발견을 한 나. 가끔 저이가 그이지 하면서 지나쳤던나. 드디어 이름 알았다. '서 정 환'

  • 07.07.20 21:12

    순금언니 오해 말아요. 문산에서 손녀에게 쥬쮸바 사 주는 '서 정 환' 을 뵈었어요. 난 반가웠는데, 날 그 유명한 날 못 알아 보시드만. 쳇!

  • 07.07.20 21:24

    그러게 어제 참 반가웠어요~ 글구 폴리네샤~ 찍은 통일촌 벚꽃길 사진 제대로 된거있으면 {파주향토문화연구소}든 이곳에 올리든 크게 한번 올려줘봐요~ 아름다운길 공모에 실어보게~

  • 작성자 07.07.21 02:17

    사진방에 올렸시유~ 근뎅, 그거 상금 있는 거유?????

  • 07.07.21 23:31

    그건 몰러~ 파향토에서 파주의 아름다운길을 수집해보려고~ 상금있음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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