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신문조서(제2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피의자 박종표[朴鍾杓] 右 반민법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단기 4282년[1949] 3월 9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慶尙南道調査部 서기 임봉재[林奉在]를 입회시키고 前回에 계속하여 피의자의 신문함에 如左함.
문 헌병대 밀정을 상술하시오.
답 밀정은 동료 상호간에도 비밀히 취급하고 있는 관계로 알 수 있는 범위가 협소합니다. 그리고 안면만 알고 성명부지 혹은 日名만이 보통 호칭되어 직접 대면 이외에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대략 기억되는 한도에 윤모[尹某](日名 坡平), 日名 石山, 이모[李某] ( 岩本), 김모[金某] 등외 수인(성명 미상)입니다. 해방 후 노상에서 상면한 사람도 2, 3인 있으나 그 직업, 현주소 등은 미상입니다.
문 피의자의 밀정은 誰何.
답 본인의 정보제공인은 이모(日名 岩本)와 永信詳靴店職工(성명 미상 사망) 2인입니다. 시일이 長久치 않아서 많은 정보제공인을 가지지는 못하였습니다.
문 기타 밀정은 何某에게 정보를 제공하였습니까.
답 윤모(日名 坡平)는 近藤大尉와 친밀하며 정보를 제공하고 신상묵[辛相黙](日名 重光)에 제공도 하였습니다. 이모(日名 岩本), 김모 등은 신상묵에게 제공하고, 石山(日名)은 박성도[朴聖道] 통역의 정보제공인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추측으로는 신상묵의 정보제공인은 10여명 가량이라고 생각하나 전술한 바와 같이 상호비밀취급을 하기 때문에 미상입니다.
답 단서는 황학명(帝大출신)이 일본서 사명을 띄고 귀국하여 독립운동에 활약하고 있다는 윤모(日名 坡平)의 신상묵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알게된 사건인데 본인은 황학명을 체포코자 신상묵, 堤軍曹(日人)과 함께 慶北 安東에 간 일이 있으며, 고문취조는 사건 전반적으로 신상묵, 堤(日人)가 주로 담당하고 본인은 보조역할을 하였습니다.
문서윤수 고문시 피의자가 「조선사람은 17세 이상이면 1차 전부를 검속 취조해야 된다」고 하며 조영관 취조시 「너는 국적이니 살려둘 수 없으니 도로상에 끌고 다니며 衆人面前에서 너의 수치를 보여 죽일터다」라고 말하고, 당시 피의자들 가족(부인) 등을 대하여 「피의자들은 國賊이므로 살아 돌아 올 수 없으니 이혼하고 개가하라」고 폭언 혹은 악질적 언사를 한 것은 사실입니까.
답 如斯한 언사를 할 리가 있습니까.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마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모든 피의자가 입증을 하고 있는데 부인하는가요문
답 있었을런지 알 수 없으나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문 연루자를 혹독한 고문 후 투옥하였지요문
답 고문시 보조역할을 하여 그 결과로서 투옥된 것은 사실입니다.
문 이 사건취급시일은 如何.
답 자세히 못하나 단기 4278년[1945](소화 20년) 1월에 시작하여 同6월 중순경에 송치한 듯 생각됩니다.
답 해방 전년인 단기 4277년[1944] 10월頃(월일 미상) 유언비어사실( 박성도[朴聖道] 통역의 밀정, 石山의 밀고, 후에 허위밀고라는 것을 확인)로서 近藤大尉(日人), 신상묵 외 5, 6인과 본인은 巨堤洞 거주 자택에서 양태의, 임석춘[林碩春]을 체포, 신상묵, 渡邊軍曹(日人) 주무하 堤軍曹(日人)와 본인이 취조와 고문에 보조가담, 그 후(일시 미상) 석방된 사건입니다.
문 前記 신상묵 외 日人 2명과 피의자는 혹독한 고문(물먹이는 법, 유도식, 비행기식, 혁대난타 등)을 하였으며, 더욱 피의자는 양태의에게(재조사 필요하다는 주장하) 一之瀨伍長(日人) 응원하 尤甚한 고문을 하였는 사실 如何.
답양태의 유언비어사건에 관련한 것인데, 내용은 역시 유언비어관계인 듯합니다. 연루자 장세무[張世武](日名 三島) 체포時 신상묵 외 堤軍曹(日人)의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 후 김상수 체포時에는 신상묵, 堤軍曹, 박성도(日名 新井 통역) 등이 갔습니다. 其 이외 관련자는 전연 기억이 없고 취조와 고문 등은 신상묵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본인은 단지 보조적이었습니다. 더욱 박성도는 尤甚한 고문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세무, 양태의, 임석춘, 김상수 순으로 석방된 줄 사유하고 있습니다. 右 본인에게 讀聞시킨바 相違가 無하다하고 서명 拇印함. 공술자 박종표㊞ 단기 4282년[1949] 3월 9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김지홍[金趾弘]㊞ 입회인 서기 임봉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