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file/cafe/117AF8534E2247DA1F)
임동윤 시인의 시집 [따뜻한 바깥]이 도서출판 '나무아래서'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경북 울진 출생으로 청년기는 물론 오랜 날들을 춘천에서 보냈다.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도내 최초로 시동인 <표현>을 결성하여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 후, 1992년 문화일보와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재개하였다. 1963년 <시와시학>,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2000년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특별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았다. 시집으로 「나무아래서」「함박나무가지에 걸린 봄날」「연어의 말」「아가리」「따뜻한 바깥」 등이 있다. 금번 시집에서 시인은 주변부에 머무르는 것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낸다. 그들에겐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주문학상과 김만중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월간 <우리詩> 발행인으로 있다.
단정한 구문에 담긴 낮은 목소리, 적막한 이미지에 실린 선비의 정신,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소유를 초탈한 부재의 현실이 이 시집을 관류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시골 기억, 홀몸으로 사시는 어머니 생각, 거미와 텃새만 살고 있는 빈 집, 내 밖의 집은 허물어지고 내 안의 집도 없는 영혼의 무숙자, 공중전화 부스에서 딸의 목소리만 듣고 전화기를 놓아버리는 익명의 가출인, 그믐밤의 얼어붙은 강… 스산한 형상으로 가득한 이 내면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바깥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세계가 과연 바깥의 어디에 있을까. 이것을 찾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마른 우물
임동윤
주렁주렁 온몸에 링거 줄을 매달고
가랑가랑 숨결 잦아드는 마른 우물 하나 누워있다
수없이 퍼내어도 늘 찰랑찰랑 만수위를 이루었던 몸
두레박만 내리면 언제니 뼈와 살과 단단한 생각들을
넘치게 담아내셨던 우물, 우리 육남매가 퍼마셨으나
하룻밤만 지나면 다시 그 우물은
출렁출렁 일정한 만수위를 유지하곤 했었다
그러던 몸이, 어느 날 문득 폐답이 되어 있었다
조금씩 잦아들면서 드러나는 밑바닥
넘쳐나던 물은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나뭇잎만 쌓이고
검버섯 핀 벽엔 하루살이 모기떼만 알을 까고 새끼를 쳤다
별빛 달빛 찰랑거리는 여름도 가고
이젠 황갈색 버들잎만 툭툭 떨어져내린다
찢긴 걸레조각과 과자봉지만 둥둥 떠다니는 그 속,
찰랑대던 몸 대신 꼬로록 잦아드는 물소리
링거액 떨어지는 소리만 병실의 고요를 흔들고 있다
이젠 퍼 올릴 수 없는 마른 우물 하나
온 몸에 링거 가득 매달고 가랑가랑 누워 있다
그늘
임동윤
튜울립나무 그늘만 깊어가는 자전거보관소
손발 묶인 시간이 정박해 있다
아득히 지워진 이름표와 녹이 슨 뼈마디
무단폐기물 꼬리표를 달고
푸른 추억을 돌리고 있다
4차선도로를 질주하던 속도는
녹슨 바퀴살에 끼어 있다
지하사우나 환풍기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에 몸을 맡기고
종일 뒤틀린 안장과 바퀴살이 찜질을 한다
퉁퉁 분 바퀴, 그 무게에 자지러지는 쇠별꽃들
떠나려 해도 꽁꽁 묶여 있는 몸
녹슨 것들은 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