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무릉계곡 산행기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10월 정기 산행지로 두타산 무릉계곡을 간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망설이다 먀칠 후 참석 댓글을 달았다. 학회에 낼 논문을 진행하다보니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지만 자연의 품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두타산과 청옥산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백두대간의 일부인데 13년 전에 걸었던 추억이 그립게 떠올랐다.
그 곳은 전형적인 산악지대로 국토의 등이 활시위를 팽팽히 당길 때처럼 굽은 위치이다. 태백산으로부터 산세가 서서히 크게 일으켜져서 두타·청옥·오대산·점봉산·살악산·금강산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지대를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이 지역은 깊고 큰 원초적인 산지의 기운을 대할 수 있는 곳이다.
교대역을 향해 한강 다리를 건너다보니 막 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마치 생명이 잠을 깨고 일어나려고 꿈트림 하는 것 같았다. 요새는 해가 짧아져서 이 시간대에도 어둑하다. 세월이 금새 변해가는 느낌이다. 무더위에 가벼운 옷차림에도 땀이 흘렀는데 이제는 쌀쌀해서 두터운 옷을 입고 나섰다. 교대역에 일행이 모여 7시에 출발 했다. 차창밖으로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추수를 마치면 텅 빈 논이 될 것 같았다. 가는 도중 횡성휴게소에 잠시 쉬었다. 그 곳 주차장이 단풍철 나들이를 나선 차량으로 가득했다.
동해 시내를 거쳐 11시 23분 두타산 무릉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준비 운동을 하고 입장권을 산 다음 단체촬영을 하고 옆에 설치된 지도를 보면서 코스를 확인했다.
입구에서 단체표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단체 1500원이었다. 어린이는 700원, 500원이고 강원도 남부시군에에 사는 사람들은 50%를 감면해 주고 있다. 무릉도원을 찾는 사람들의 이 고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서인지 표를 받는 여직원이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이 곳은 2009년 국토해양부가 주최하고 한국하천협회가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꼽혔다.
안으로 들어서 바로 앞에 나타난 무릉계곡의 신선교를 건넜다.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 아래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4km에 달하는 계곡으로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인데 조선 선조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 곳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권력 무상을 느끼고 낙향했던 사람들도 있다. 한편으론 어느 시대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끔씩 부귀 영화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의식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어느때 새상 일에 시달리고 나면 다시금 삶을 생각하게 되고 무릉도원 같은 속세의 일에 시달리지 않는 세계가 꿈꿔지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세계를 꿈꾸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을 듯 하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에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 하나가 무릉도원의 개념인 것 같다. 거기에는 깨끗한 자연 환경속에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릉도원은 도화원기 도화원시에 수록된 도연명집에 수록된 작품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오늘 우리가 찾은 이 곳에 붙은 무릉계곡의 이름도 그로부터 연유되었을 것이다. 도연명은(365-427) 중국 강서성 심양 출생으로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宋:劉宋이라고도 함) 초기에 걸쳐 생존했다 도연명은 40세 초에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죽기전까지 20년을 은둔 생활을 하며 지냈다. 도화원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한 어부가 하루는 계곡을 따라 배를 저어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복숭아 꽃이 만발한 숲에 들어서게 되었다. 주변은 향긋한 풀이 있고 떨어지는 꽃잎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부는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다시 앞으로 나가서 그 숲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의 끝은 강의 발원지였다. 그 앞에 산이 있고 동굴이 나타났다. 어부는 배에서 내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둥굴은 좁아서 겨우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수십걸음을 걸어가자 갑자기 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땅은 평평하고 넓은 들판이었다. 사람 사는 집들은 모두 단정했으며 비옥한 밭, 아름다운 연못, 그리고 뽕나무 대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이 어부를 맞아 잘 대접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바깥 세상 이야기를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진나라때 피난을 와서 살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위나라, 진나라, 지금의 한나라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부는 몇일간 머물다 작별 인사를 고하고 떠났다. 마을 사람 누군가가 “여기 일을 바깥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어부는 마을을 빠져 니온 후 지나 왔던 길을 표시해 두었고 태수에게 에기했다. 이 말을 들은 태수는 즉시 사람을 보내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남양이라는 고을에 유자기라는 고상한 성품의 선비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흔연히 그 곳을 가보고자 했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죽었다. 그 이후로는 그 곳을 찾거나 묻는 이가 없었다.“
어부가 길을 읽고 헤메다 우연히 찾아든 동굴 너머의 마을은 세속을 벗어난 조용하고 평온한 삶이 따오른다. 그리고 작가는 현실 사회와 단락된 평온한 삶을 이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곳 두타산 무릉계곡에 붙여진 이름도 그와 같은 내용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장수시대에 건강한 삶을 원하면서 건강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육체적인 건강과 함게 정신 건강의 중요성도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명승을 찾는 것과 연관지어 보는 의식도 커져가고 있는 듯 하다. 이상향은 바로 근심걱정 없고 평화로운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든 바탕에는 건강이 있어야 한다.
도연명의 시문에는 확실히 고요하고 맑은 심경을 읊조린 작품이 많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남방의 토착 사족(士族)으로, 북조로부터 내려온 귀족이 절대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의 남조 사회에서는 영달의 길에서 소외된 압박받는 계층이었다. - 다음 백과 참조-
완만한 길을 가다 좌우로 갈라지는 곳에서 좌측으로 이정표를 따라 올라갔다. 점차 시야가 트이며 들어선 주차장쪽이 보였다. 그리고 계곡 안쪽의 특별한 풍경이 느껴졌다. 너널바위 길을 오르다 경사진 바위에 앉아 베틀바위 쪽을 보며 스케치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위로 오르면 더 좋은 풍경이 보일거라고 했다.
스케치를 마치고 계속해서 베틀바위를 향해 올랐다. 경사가 심한 나무계단이 길게 놓여 있었다. 그 계단 끝에 올라 우측으로 돌아드니 평평한 장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우측 방향으로 배틀바위가 바로 앞에 솟아 보였다. 기암 괴석이 늘어서 있는 특별한 장관의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곳 베틀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선녀가 하늘의 규율을 어겨 벌로 하강하여 이 곳 명승지 소금강 골에서 삼베 세필을 짜고 개과한 후 승천했다고 한다.
두타산 베틀바위는 흔히 중국의 장가계와 비유되곤 한다. 중국 장가계는 후난성 지급시 우림산맥 지대에 1000여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중국 지도로 보면 중국대륙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양자강 상류 장안의 남쪽 방향으로 우한시와 충청시 중간 지점쯤 된다. 베틀바위는 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솟아 있는 모습은 기상이 넘쳐났다.
날이 선 바위에 억지로 의자를 놓고 겨우 앉아서 스케치를 했다. 그런데 금새 비가 내렸다. 빨리 스케치를 하다 급히 수습해 통에 구겨 넣었다. 하필 이 때 비가 오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아래쪽 데크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거기가 기념사진 촬영 장소였다.
잠시 후 위쪽 미륵바위를 향해 올라갔다. 너덜길이 경사가 심했다. 한동안 올라 미륵바위에 도착하니 일행이 세곳으로 나누어 자리를 잡고 앉아 즐겁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곳은 배틀바위에서 가장 높은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나도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함께 식사를 했다. 산행을 할 때 스케치를 하느라 점심을 먹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함께 먹는 점심이었다. 식사를 한 후 앞에 우뚝선 미륵바위 사진을 찍고 그 뒤편 계곡쪽으로 넘어가 보니 안쪽 계곡 전망이 확트여 보였다.
아까 올라오면서부터 이 곳의 특별한 경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을 이상향을 빗대어 무릉계곡으로 이름 붙인 것과 연관지어 바라보기도 했다. 이 곳은 우선 탈속한 별천지의 공간감이 느껴졌다. 백두대간의 큰 산맥을 넘어 동해로 면한 경사지대로 해발 1400m 되는 두타산과 청옥산이 감싸 안은 크고 깊은 계곡이다. 원초적인 자연의 기세 안에서 그런 큰 산세가 이루어내는 크고 깊은 공간감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기암절벽이 계곡에 면해 있다. 그리고 그 기암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많은 폭포 물줄기가 보인다. 또한 산 정성부쪽으로 겹겹이 연이어진 봉우리들을 휘감아 길게 흐르는 수려한 계곡이 이 곳만의 특별한 자연풍치를 이루고 있다. 설악산이 활짝 핀 꽃이라면 여기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우리가 부풀어 오른 원초적 인상이다.
전에는 사람들이 설악산 같은 특별한 관광지를 주로 찾아나서곤 했는데 근래 이런 깨끗하고 원초적인 자연 경관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장수시대가 되고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식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건강에 좋은 원시적 청정 환경을 가진 ‘무릉도원’ 같은 곳을 중시 하게 된 것 같다. 깊고 수려한 이 곳 자연 조건이 그런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누구나 마음 속으로 무릉도원을 염원하는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이상향을 의미하는 무릉도원은 세속의 권력이나 부귀영화와 거리가 멀다.
오늘 이 곳으로 들어오는 도중 카톡에 아는 분이 스티브 잡스가 임종을 앞두고 병석에서 쓴 글을 올렸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이라고 거의 느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부라는 것이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상실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은 평생 배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버는 일과 상관 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인간관게가 될 수 있고 예술일 수도 있으며 어린시절부터 가졌던 꿈일 수도 있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이며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물질은 잃어버리더라도 되찾을 수 있지만 절대 되찾을 수 없는게 하나 있으니 바로 “삶”이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가 한 그 말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무릉도원을 꿈꾸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날이 개어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동해쪽 풍경이 더 뚜렸해져 있었다. 그것이 눈에 들어와 스케치를 하고 일행을 뒤따라 나섰다. 조금 경사가 급한 오름길을 올라 완만한 오름길을 지나 두타산성에 도착했다. 거친 돌로 쌓여진 모습이었다. 두타산성은 삼국시대 진흥왕(550)에 지어졌다. 방어와 통치의 거점으로 잡았으며 식량의 저장고 역할도 하였다. 두타산 중허리는 파사왕(102)에 쌓았다는 석성이 유적으로 남아있다 이 석성은 길이8.725척 높이 5척이라 한다. 문간치는 조선 태종갑오(1414). 삼척부사 김맹손이 쌓았다고 한다. 길이는8.725척 높이는 6척이라 한다.
그 곳을 지나가다 폭포를 이루는 계곡물 물길을 건넜다. 그 계곡 가운데 바위가 놓여 있고 그 바위 위에 작은 돌맹이로 돌로 탑을 쌓아 놓은 것이 보였다. 거기서 다시 길을 올라 돌아넘어가다보니 계곡 쪽으로 시야가 트이고 폭포가 보였다. 다른 일행들이 사진을 찍다 쌍폭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쌍폭포는 그 곳이 아니었다.
다시 돌아 가다 보니 큰 절벽에 깊이 동굴퍼럼 패인 곳이 있었다. 마치 건조된 건축 공간 같았다. 원시인들은 그런 장소를 주거로 활용하기도 했다. 진행방향 내림길로 접어들어 마천루 전망대에 도착했다. 일행들이 계곡 안쪽에 펼쳐진 그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바위는 마천우라는 이름답게 높은 건물처럼 절리가 층층히 드러나 있었다.
다시 돌아드는 내림길을 가다 우측으로 높다랗게 올려다보이는 바위를 지났다. 그 아랬쪽에 보라색 꿀꽈베기 꽃이 빗물에 젖어 추적이는 느낌으로 피어 있었다.
계속 내림길을 내려가니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예정된 원점회귀 길은 다리 앞에서 우측이었다. 다리 건너로 가는 일행이 보여 뒤따라 가다보니 쌍폭포와 용추폭포 안내판이 보였다. 잠시 후 쌍폭포에 당도하니 앞쪽 계곡에서 두 줄기 폭포가 장관을 이루며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엇그제 이 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서서 폭포수가 세차게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용추폭포가 그 위쪽 2분 거리로 안내되어 있었다. 안내된 방향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다리 중간 지점애서 용추폭포의 위용이 가장 크게 느껴졋다. 높은 절벽에서 큰 물줄기가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었다. 한 가족이 다가오면서 사진을 부탁했다. 다리 위에서 폭포를 넣어 구도를 잡으려니 몸을 난간로프에 기대고 뒤로 젖혀야 했다. 잘 찍어주려고 여러번 찍고 있으니 남자분이 나에게 사진찍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고 했다.
용추폭포를 보고 다시 뒤돌아 나왔다. 용추폭포 아래로 입구까지 이어진 계곡이 무릉 계곡인데 용추계곡으로도 불린다. 거기에는 아래쪽 무릉도원이 시작되는 입구부근에서 용추 폭포까지 용이 드나들었다는 설화가 있다. 동해에 면한 하천에 그런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들이 있다. 감은사지도 그 중 한 곳이다.
내려오다 보니 다른 일행이 걔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나도 무릅까지 바지를 걷어올라고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탁족을 했다. 무릉도원은 신선이 사는 세계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맑은 계곡에서 잠시 발을 담구는 것이 그런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연상을 해볼수 있을 것 같았다.
완만한 내림길을 걸어내려오다보니 좌측으로 너른 암반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길이 보였다. 거기가 유명한 학소대였다. 주 계곡과 다른 작은 갈래의 물길이었다. 여기저기 나타나는 그런 폭포와 무릉 계곡이 어우러져서 더 큰 깊이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학소대를 지나 완만한 길을 한동안 걷다 보니 앞에 삼화사가 나타났다. 그 사찰 탬플스테이에 참가한 아가씨들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걸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경내로 들어서니 데크공사를 하고 있었다. 앞을 보니 중앙 전면에 적광전이 놓여 있고 그 앞 마당 가운데 삼층석탑이 놓여 있었다. 그 탑은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삼화사 주요 유물로는 이 탑과 철비로자나불 등이 있다.
삼화사는 1905년 의병의 거점이었다, 그런데 일제가 200여 칸에 이르는 전각을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본래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1.3km떨어진 반릉 계곡에 있었는데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 했다고 한다.
아래로 내려와 일주문을 지나니 길 왼편에 맑은 계곡물이 너른 바위를 타고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반석 바위로 불리는 곳이다. 그 곳은 고려시대 이승휴가 이곳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했고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평평한 바위 위에 새겨놓았다
거기서 입구 쪽으로 조금 내려서다 보니 큰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보였다. 그 옆에 세워진 무릉계곡 주요 경관 안내판에는 베틀바위, 쌍폭포, 용추폭포, 학소대, 삼화사 등 오늘 지나온 곳들이 나타나 있었다. 오늘 다녀온 곳이 그야말로 무릉도원같은 느낌이었다. 날씨만 더 화창했더라면 더 그 진면목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을 것 같았다.
베틀바위로 오르던 갈림길과 신선교를 지나 매표소 입구로 나왔다. 먼저 내려온 일행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배틀바위를 올려 보면서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작은 서류 봉투에 스케치 했다. 잠시 후 일행이 다 도착해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까지 1시간 정도 가야된다고 했다. 동해시로 나와 동해안 해안도로를 지나는 동안 푸른 바다가 보였다. 동해가 조망되는 길 좌측에는 점차 건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었다.
강릉 시내로 들어서 신시가지 단독필지에 지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서울로 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일행끼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7시에 일어시기로 했는데 생선매운탕찌개 끓기를 기다리다보니 조금 늦어졌다.
7시 20분에 식당을 나와 내려갈 때 들렀던 횡성휴게소에 들른 후 10시 30분 양재역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20221008)
첫댓글 풍부한 수량의 폭포수...
적당한 구름으로 더위를 식혀주고...
화려한 풍광을 화폭에 담아주셔서 잘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탐방 전에 비가 많이 와서 폭포와 계곡의 운치가 더하였습니다.
유명한만큼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