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사도 요한 신부님께서 미시와 특강을 위해 작성하신 글모음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adZLaGTlVnTsRlnudxEVWFhxuK5wgN_LM4UrCmfjQH8/edit?usp=sharing
미사 시작 전 인사
찬미 예수님!
우리는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내려오신 오늘, 선량한 성적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 즉 이성애자, 동성애자, 범성애자, 무성애자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다양한 트렌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젠더퀴어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사랑하지만 축복받지 못한채 부부의 인연을 맺어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선량하고 용감한 부부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픔과 혼란을 풀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한 착하고 연약했던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세상을 사랑했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 사람들을 존중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존중받지 못했던 사람들, 사회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사람들, 이들 모두를 위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지금 여러분 마음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으실 거에요. 잠시 눈을 감고, 여러분 마음 안에서 떠오른 사람들, 여러분이 기도해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잠시 침묵)
우리 모두의 기도 지향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오늘 미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강론
찬미 예수님!
이곳에 있는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기쁜 마음으로 제가 성소수자를 통해 배우게 된 것과 묵상 한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두서없고 신학 논리가 빈약하고 교훈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묵상 나눔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부하고, 만나고, 참여하면서 요한 복음 9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 이렇게 물어봅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과 종교인들은 예수님에게 똑같이 묻습니다.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 사람이 성소수자로 태어났습니까? 부모 탓입니까? 그 사람 탓입니까?” 예수님은 똑같이 대답하실 것입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실 것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마태오 19,14)
그래서 여러분들을 꼭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라고 하셨으니까요. 예수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초대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소수자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려는 하느님의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어떤 하느님의 일을 보여주고 싶으신 걸까요??
묵상하며 생각해봤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차별도 구분도 분리도 없습니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햇빛과 빗물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착한 사람, 제자들, 예쁜 사람들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어떤 차별도 없이 용서하고 사랑하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똑같은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유럽인은 우러러보고, 아프리카인은 무섭게 보고, 동남아인은 무시합니다. 똑같은 여자나 남자일 뿐인데, 외모, 경제력, 능력 등을 보고 차별 대우하기 일쑤입니다. 사랑을 말하지만, 이런 사랑은 나와 어울리는 사람, 내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만을 향하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일 따름입니다.
하느님은 차별 많은 사랑을 하는 우리들에게 차별없는 참다운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시려고 ‘성소수자’를 보내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성소수자는 하느님께서 차별 많은 세상에 건네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성소수자’를 통해서 그 어떤 차별도 혐오도 구분도 없이 모든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로 사랑은 구분이 없습니다. 나누임이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타인의 사랑을 향한 혐오도 배척도 없습니다. 사랑은 단지 사랑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배척하거나 뜯어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이해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하느님으로 가득 찬 제자들은 장롱같은 다락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외국인들에게까지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을 전했습니다.
성경은 외국인들이 다락방에서 나온 제자들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모국어로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이 말은 사도들이 외국어를 했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성령께서 번역기처럼 외국인들에게 번역해 준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도들이 사용한 언어는 단지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외국어를 몰라도 그가 자신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욕’인지는 알 수 있으니까요.
성령의 모습으로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내려오신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은 이 사랑을 느끼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고 했고,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언어인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시대에서 시대로, 그리하여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 여러분,
저는 그동안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익히면서 차별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혐오하지 말고, 모든 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포용하라는 하느님의 사랑의 언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진실로 성소수자는 차별 많은 세상에 차별 없는 사랑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표징입니다.
이런 경험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 말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저의 나눔을 주님의 성령께서 채워주시기를 겸손되이 청합니다. 아멘.
인천 출신의 성소수자 육우당 안토니오 남긴 낙원가를 읽으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평화로운 세상이여.
어두컴컴 암흑 세계 잡아먹고 어서 오라.
은하수가 흐르듯이 꽃잎 타고 흘러오라.
평등 평화 아름다운 세상이여 어서 오라.
동성애자 보호받고 장애인도 존중받고
흑인 또한 사람대접 받는 세상 낙원이여
그런 날이 온다면은
모든 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것이다.”
(낙원가, 육우당)
특강 시작 발언
바오로 사도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서 8, 28)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
제가 성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성당에 여러분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근 개신교 교회에 이런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며느리로 남자를 데려오고, 당신의 딸이 사위로 여자를 데려온다면, 그래도 동성애를 방관하시겠습니까?”
혐오성 발언이지요. 현수막을 읽고 상상했습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들이나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어느 날, ‘아빠, 나는 동성애자에요.’라고 말하다면 어떨까?’ 분명 놀랍고 당황스럽겠죠. 어쩌면 화가 나고, 자괴감이나 자책감에 빠지게 될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남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결국 동성애자이거나 트렌스젠더인 아들이나 딸과 그들의 연인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쿵저러쿵해도 그들은 내가 사랑해서 얻게 된 아들과 딸이니까요. 내 아이들이니까요. 그래서 다시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하고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로 성소수자에 대한 책들을 주문해서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본당 청년 중 한 명이 ‘교회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고 싶어요. 특강을 마련해 주세요.’라는 의견을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이때 제 머리를 스쳤던 게 윤리신학 교수 신부님을 섭외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본인을 불러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색어는 ‘가톨릭 성소수자 커뮤니티’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알게 됐고, 그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보고는 전화를 해서 만날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분이 하늘님, 길벗님, 지인님 등이었습니다. 본당 청년회장도 기쁘게 가세해줘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청년 3명과 함께 가기도 했습니다.
혐오성 발언이 쏘아 올린 현수막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길벗님과 하늘님을 앞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서 함께 작용하여 하느님의 더 큰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큰 박수로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특강 후 김태영 신부의 생각 정리
"성소수자들을 동네 성당으로 초대해주세요."
한국천주교회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기들 동네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고, 동네 성당을 다니며 활동 합니다. 동네 성당에 대한 깊은 유대 관계가 있습니다.
성소수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네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신부님과 수녀님과 교리 선생님에게 사랑을 받으며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주교님에게 견진을 받으며 두근두근해하고, 주일학교와 청년회에서 활동을 하며 자신들의 생애주기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동네 성당에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 지향성과 정체성이 게이, 레즈비언, 트렌스젠더 등의 성소수자가 되면 어린 시절부터 밀접한 유대관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던 본당 신부님, 예뻐해주시던 본당 수녀님, 함께 뛰놀던 성당 친구들로부터 잘려나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익숙하던 성당이 낯설어지고, 애정넘치던 신부님과 수녀님의 눈치를 보게 되고, 심지어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배척받고 성당 나가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신자들은 자기들의 생애주기에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어 오던 동네 성당으로 다시 다니고 싶어합니다. 어린 시절 주임신부님의 따뜻한 눈빛을 그리워합니다. 지엄하지만 소탈했던 주교님의 견진성사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동네 성당에서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돕고 싶어합니다.
동네 본당 신부님들이 성소수자를 접하게 될 때 어떤 교리 구절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례를 베풀고 웃으며 축복해 주었던 어린이, 첫영성체 찰고와 첫 고해를 들으며 미소짓게 했던 어린이 중의 하나임을 기억해낸다면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배척하기 보다 부모다운 사랑으로 보다듬고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구장 주교님들 역시 성소수자를 접하게 될 때, 동네 본당을 순회하며 견진성사를 집전하고 안수를 해주고 함께 해맑게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고 어색하게 인사하던 교복을 입은 청소년 중 하나임을 떠올린다면 '사랑'이외에는 생각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는 수 많은 교리가 적혀 있습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을 믿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라."가 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유일한 계명을 교회에 남기셨습니다.
동네 성당들이 사랑하기 위해서 성소수자들을 본당 미사로 초대하면 좋겠습니다. 성소수자들의 생애주기와 다시금 밀접관 유대관계를 맺고 더욱 친밀하게 동행하기 위해서 동네 성당으로 초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동반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너를 낳아준 여인이 너를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15) 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성소수자들에게 웃으면 해주고 포용해주면 좋겠습니다. 동네 성당은 모든 이들의 구원의 요람이며, 자모신 어머니이고,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는 하느님의 집이니까요.
Q. 본당에서 특강을 하게 된 이유?
A. 성당 인근에 있는 개신교 교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가득찬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성소수자 본인과 그들의 부모님과 가족들이 가지게 될 수치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성소수자와 그들의 부모들이 일상 공간 안에서 너무나도 공공연하게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느님과 성경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항하고 싶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종교안에서 혐오와 차별,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포용과 사랑,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성소수자를 성당에 초대해 특강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당 신자들은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성소수자들은 성당은 편안하고 안전한 곳으로 느끼기를 희망하며 특강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Q. 성소수자 특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새로 얻게 된 지평은 무엇입니까?
A. 성소수자들 역시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에 대한 좋은 기억과 추억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성당으로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배척받은 아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어렸을때부터 관계를 맺어온 동네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고,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동네 성당이 성소수자를 미사로 초대하고, 청년회에 초대하고, 함께 기도하며 성경 나눔을 하고, 때로는 뒷풀이와 파티로 하며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댓글 직접 가지 못해 아쉬웠는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