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안내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 팀 계획에 따라 "고사리 주차장 → 조령 3관문 → 마역봉(마패봉) → 북암문 → 동암문 → 부봉삼거리 (→ 부봉 왕복) → 주흘산 갈림길 → 평천재 → 탄항산 → 966봉 → 하늘재 → 미륵대원지 주차장' 13km, 6시간 30분 코스를 탐방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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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역봉[馬驛峰]/마패봉
높이: 925m
위치: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마역봉(마패봉)은 암행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조령관 위 봉우리에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령관(제3 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충북 쪽으로 신선봉과 맞닿아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지도에는 마역봉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이 지방에서는 마폐봉이라 부르고 있다.
오르는 길은 잘 나 있으나 조령관(3관문) 군막터를 지나 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도 있다. 오르는 시간은 1시간이면 충분하며 내려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다. - 한국의 산하
탄항산(월항삼봉)[月項蔘峰]
높이: 857m
위치: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탄항산은 뾰족한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서 있어 삼봉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산삼이 많이 나는 산이라 해서 삼봉(蔘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의 형세는 웅장하지 않으나 바위 봉우리와 아름드리 장송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기자기한 산행의 맛을 즐길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7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14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조령 3관문'에서 '하늘재'까지 달릴 예정이다. 이 구간에 있는 마패봉과 부봉, 탄항산을 연계하여 달리는 산행은, 백두대간 연결을 검토하기 오래전에, 계획을 세운 거다. 와중에 부봉은 2017년 11월 창우, 흥수와 주흘산 환종주 때 1봉에서 6봉까지를 하산 코스에 넣어 이미 다녀왔다[산행기]. 당시 산행으로 본의 아니게 이번 대간 구간 중 주흘산 삼거리부터 부봉 삼거리까지는 중복 구간이 됐지만. 어쨌든 백두대간 연결로 아직 오르지 못한 산에 오를 수 있는 일거양득 산행으로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번 연결로 백두대간은 사다리재에서 고치령까지 이어진다.
요즘 추세가 '원 소스 멀티 유즈'라서 그런지, 산행에도 특히 인증꾼 사이에는 ‘한번 산행 다 인증’이 추세라 이번 조령 3관문~하늘재 구간에도 백두대간과는 무관한 부봉과 주흘산을 왕복하는 인증꾼도 있을 거로 보인다. 부봉 왕복은 산악회 코스에 아예 들어 있기도 하고. 물론 백두대간 연결이 천고지 또는 인기 명산, 오지 산행을 겸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부봉은 이미 갔던 암봉이라,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까 고민 중이다. 더욱이 일기예보에 의하면 당일 12시부터 15시까지 비가 내리고, 특히 13시에는 3mm 정도의 폭우다. 시간상 부봉으로 향할 때인데, 암봉에서 폭우와 마주치는 걸 피하는 게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이다. 부봉 왕복 여부는 당일 상황을 보고 현장에서 결정한다.
등산 준비는 비가 온다니 좀 무리수이기는 하나, 9월에 갈 예정인 지리산 봉산골 산행에 대비한 테스트로 아쿠아슈즈를 신고 갈 예정이다. 지난 송추계곡 산행 때 테스트한 결과는 만족스러웠으나, 한 번 더 테스트가 필요하다. 12시부터 15시까지 비가 내린다는데, 정확히 점심시간이다. 해서 비록 늦은 점심이긴 하나, 아예 하산 후 지난 7월 16일 포암산행 때 점심을 겸해 하산주를 마셨던 식당에서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산행기]. 이번이 조령 3관문과 하늘재를 연결하는 산행이라, 16일 작은 차갓재와 하늘재를 연결했던 산행의 연장선에 있어 날머리가 같다. 그럼 비에 대비해 늘어난 짐의 무게를 상쇄하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1시간 이상의 시간을 줄일 수 있느냐?'인데, 그러면 당연히 부봉은 코스에서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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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당일 새벽 5시에 기상해 누룽지 끓일 준비한 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기상부터 화장실까지의 모든 행동이 익숙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해서 7월 한 달 산행을 살펴보니, 총 5회 산행했는데, 그중 안내 산악회를 이용한 산행 3번은 모두 무박 산행이었다는 걸 알았다. 나머지는 과천 청계산, 송추 도봉산 등의 근교 산행. 해서 마지막으로 안내 산악회와 같이 당일 산행을 다녀왔는지 찾아보니, 6월 18일 덕유산 백암봉에서 빼재까리 달린 백두대간 연결 산행이다. 고로 거의 한 달 반 만에 산악회를 따라 당일 산행을 하는 거다. 말인즉 대간 연결에 미쳐서 아무 생각 없이 무박 산행에 집중한 기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은 거의 격주였다는 거.
오랜만에 새벽에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5시 45분경 집을 나서, 6시 38분경 양재역에 도착해, 늘 그랬듯이 승차장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50분경 나갈까 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의 새벽 외출이라 버스 정차장 주변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바로 지하철 통로로 올라갔다. 그리고 개찰구를 나가는 순간 눈에 들어온 청과물 가게! 점심을 싸 오지 않아 꺼림칙했는데, 틈새 상품으로 떡과 김밥을 취급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 가게로 가 김밥 한 줄 사서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고 12번 출구를 향해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며 위를 보니, 정상에 서너 명이 서 있어, 동료를 기다리고 있는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정상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료를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으나, 비를 피하고 있는 건 맞다. 어제저녁 문경새재 일기예보는 오전과 달리 산행 당일 오전 9시부터 종일 내리는 거로 바뀌어 있어, 산행 시작부터 비를 뒤집어쓸 건 예상했으나, 양재역 주변은 6시부터 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12번 출구 앞에서 우산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랑비에 불과하고, 우거진 곳 가로수가 비를 막아 주고 있어, 우산 없이 가로수 아래만 골라 국립외교원 앞까지 갔다. 그리고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에 배낭을 벗어 두고,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김밥을 꺼내 얼린 물과 함께 디팩에 넣고, 버스에 들고 탈 것과 짐칸에 넣을 짐을 분리한 후 석축에 앉아 주변의 등산객을 관찰했다. 심야, 23시가 넘어 잠에 취한 몇 사람이 아닌 오랜만에 새벽에 비야 내리든 말든 활기찬 등산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비는 갈수록 강해지는 게 곧 그칠 비가 아니다. 그리고 7시가 가까워지자,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앞세우고, 열을 지어 국립외교원 앞에 정차하는데, 기다리는 차는 거의 끝에서 몇 번째로 들어왔다. 차가 정차하기를 기다려, 서둘러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고 보니, 사당에서 타기로 한 옆자리 승객이 없다. 비 때문에 포기했을 확률이 높다. 미리 알았으면 배낭을 들고 타는 건대.
비 소식 때문인지, 24시간 전에 취소하지 않으면 환급이 안 되는 시스템상, 통보 없이 승차하지 않은 승객이 몇 있어, 그들을 기다리느라 예정보다 5분 늦은 7시 5분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죽전에서 남은 승객을 태웠는데, 내 옆자리를 포함 최종 4명이 불참했다. 어차피 환급이 안 되니, 귀찮게 취소하는 일 따위는 없이! 심야 버스야 자느라 아무것도 못 했으나, 푹 자고 나온 새벽 버스에서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늘 그랬듯이 음악 감상하며 책을 읽는 중에 가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는데, 양재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남동쪽으로 갈수록 도로에 비의 흔적이 없다. 비구름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듯! 비 때문인지, 한가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 버스는 8시 21분에 충주 휴게소로 들어갔다. 딱히 볼일이 있는 건 아니나,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버스에서 내리며 보니, 옆에 주차한 버스도 같은 산악회로 대야산행이다. 코로나의 혜택으로 수도권 지역 안내 산악회를 이용하는 등산객의 60% 이상을 이 산악회가 장악한 거 같다.
휴게소 주변 방랑을 끝내고, 버스로 돌아와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들고 자리로 갔다. 누구는 비 때문에 이미 지급한 산행에 불참하지만, 누구는 그 비를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고, 십인십색이다. 20분의 휴식을 마치고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창밖으로 보이는 흐리나, 비가 내리지 않는 날씨면 좋겠지만, 우중 산행의 확률이 100%니 이에 대비하라는 말로 시작해, 다른 대간 구간에 비해 쉬운 코스이기는 하나, 3관문에서 부봉 삼거리까지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6시간 30분으로 9시 30분에 들머리인 고사리 주차장에 도착할 예정이라, 16시 즉 오후 4시에 출발한다는 말로 설명을 끝냈다. 이후 몇 사람의 질문에 약간 화난 목소리로, 하늘재에서 '포암산' 왕복에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자신 있는 사람은 다녀와도 좋지만, 버스는 무조건 4시에 출발한다고 못을 박았다. 길목에 있는 "주흘산"이 아니고, 이 팀의 다음 코스가 ‘포암산 구간’인데, 포암산? 의외의 얘기에 약간 당황해서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가 주변에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아!"했다.
‘작은차갓재~하늘재’의 ‘포암산 구간’ 중 ‘작은차갓재’에서 ‘마골치’까지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비법정 지역이다. 말인즉 들어가는 게 불법이다. 해서 그 구간에 봉우리든 고개든 상징성이 높은 곳이 있으나, 사기업인 ‘까만 소’가 불법을 조장했다가는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어, 백두대간이든 명산이든 비법정 구간에는 인증처가 하나도 없다. 이 구간에 유일하게 있는 인증처가 합법 구간인 ‘마골치~하늘재’에 있는 포암산이다. 들인 노력에 비해 인증꾼이 얻는 게 거의 없다. 하다못해 그 구간의 절반도 안 되는 이번 구간에는 ‘마패봉’, ‘부봉삼거리’, ‘탄항산’ 등 3곳의 인증처가 있는데. 백두대간 무박 구간 대부분 비슷하다. 고로 이번에 포암산까지 인증하면, 인증꾼이야 굳이 다음 코스인 작은차갓재~하늘재 구간을 달릴 이유가 없다(대장이 화낼 만도 하다). 대간꾼이야 포암산은 다음에 예정되어 있어, 주흘산을 다녀오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인증꾼과 대간꾼의 차이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는 동안, 버스는 올봄에 가족여행을 왔었던 수안보를 지나, 이번 산행 들머리인 고사리 주차장에 9시 13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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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수안보를 지날 때 등산 준비를 끝낸 상황이라, 버스에 내려 바로 출발하려다, 고사리 주차장 주변을 둘러보니, 신선봉 표지석이 보인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서 꽤 알아주는 봉우리로, 연어바위~신선봉~마패봉 코스로 산악회가 가끔 찾는 코스다. 백두대간 상에 마패봉이 없었다면, 같이 갔을 텐데, 굳이 마패봉에 다시 오를 이유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는 중이다. 주변의 표지나,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조령 3관문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버스에 우산을 두고 온 게 떠올랐다. 해서 뒤를 돌아보니, 버스가 아직 출발 전이라, 재빨리 뛰어가 우산을 들고 하차하는데, 핸드폰을 찾기 위해 다른 등산객은 버스에 올랐다. 우산을 들고 오는 와중에 후미로 쳐졌는데, 주흘산도, 포암산도 갈 계획이 없고, 부봉조차 갈까 말까 고민 중인, 나야 서두를 이유가 없어, 페이스를 유지하며 제일 뒤에서 앞서가는 대간꾼의 뒤를 보며 따라갔다.
주위를 둘러보며 고사리 주차장을 떠나 조령 3관문을 향해 가며, 아무리 주의 깊게 살펴도 생소하다. 이화령에서 출발해 조령산에 오른 게 대여섯 번 정도 되는데, 세 번인가 조령 3관문으로 하산했고, 최소 한번은 고사리 주차장으로 내려간 거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소해도 너무 생소하다. 그러다가 거대한 표지석을 발견하고,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령산 자연휴양림이다. 아무리 메모리 저 구석까지 찾아봐도, 본 기억이 없는 비석이다. 그럼 이 길은 초행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갔던 거로 착각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코스와 혼동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혹시나 하며 휴양림 입구를 지나, 계속 올라가, 9시 39분에 신선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 갈림길도 기억에 없는 게, 이 코스가 초행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초행이라는 게 확인된 이상 초면인 모든 걸 메모리에 저장하려고 노력하며 도로를 따라올라, 9시 45분에 조령 3관문 북쪽 입구 주변의 공원에 도착했다. 거기에 있는 조형물을 감상하고 소개 글을 읽은 후 문경 쪽에는 없는 조령 표지석을 기록으로 남겼다. 9시 48분에 조령관(괴산 쪽)이자 영남제3관문(문경 쪽)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성문을 통과해 경북 문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조령산 방향이 아닌, 마역봉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가니, 마역봉(마패봉)까지 900m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다음에는 군막터가 있고,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역봉 산행의 시작이다. 그 계단으로 성벽에 올라서 보니, 경사가 꽤 있는 성벽 옆으로 등산로가 보였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급경사의 성벽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주변의 버섯 등을 사진으로 남기며 올라가는데, 밧줄이 매여있는 암릉이 나타났다. 첫눈에 저기다가 왜 밧줄을 설치했을까 궁금한 위치다. 밧줄을 무시하고 올라가자 갈림길이다. 직진은 암릉, 오른쪽은 우회로. 당연히 바위로 올라가며, 테스트하기 위해 신고 온 아쿠아슈즈의 상태를 봤다. 한국의 오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산로임에도 아직 문제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만, 배수를 위해 뚫려 있는 옆 구멍으로 모래나, 작은 돌이 들어오는 게 문젠데, 그거야 익히 알고 있던 거고. 설치된 밧줄을 무시하고 바위를 기어오르자 이번 산행 처음 발견하는 전망대다. 조령 3관문 남쪽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의 깃대봉, 신선암봉, 조령산 등인데, 비구름 때문에 보이는 게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나, 그거라도 사진으로 남겼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위에서는 앞선 대간꾼 예닐곱이 바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사진을 다 찍고 암릉을 따라 올라가 보니, 직벽에 가까운 암벽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도와가며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백두대간에 밧줄이 설치되지 않은 암벽이라면, 길이 아니라는 걸 빨리 판단하고 옆으로 난 길로 갔어야 하는데, 위에서 뭉쳐서 움직이는 대간꾼에 홀려 그 길을 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올라갈지 암벽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데, 위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등산객 한 명이 오더니, 스틱을 내려주며 잡고 올라오란다. 굳이 도움을 받을 암벽은 아니라는 생각에 먼저 가시라고 얘기하고 암벽에 달라붙어 1.5m 정도 올라가다가 그대로 미끄러졌다. 다행인 건 암벽에 바짝 붙어 있어 떨어진 게 아니라, 미끄러졌다는 거. 다만,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은 암벽의 모서리에 긁혀 피가 나는 상처를 입었다. 미끄러진 높이와 암벽의 상태를 보면 그 정도는 상처라 부를 수도 없지만.
미끄러지고 난 후 처음에는 등산화, 즉 아쿠아슈즈의 문제라 생각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 미끄러진 암벽을 자세히 살펴보니, 리지화를 신고 있어도 미끄러지는 걸 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았다. 오락가락하는 가랑비에 젖은 진흙이 앞선 대간꾼의 등산화 바닥에 묻어 있다가, 암벽 곳곳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암벽에 기름칠한 것과 다름없었다. 해서 암벽을 기어올라가는 걸 포기하고 옆을 보니, 길은 아니나, 나무를 잡고 올라갈 만한 곳이 보여 그리고 올라갔다. 그리고 암벽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왼쪽으로 올라오는 길이 보였다. 즉 밑에서 본 길이 암벽을 우회하는 정규 등산로다. 조금만 생각이란 걸 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걸, 무엇에 홀렸는지 망각했다. 그래서 산에서 사고가 나는 거겠지? 정상에서 복기를 하고 있는데, 아래에 대간꾼이 나타나, 암울한 눈으로 암벽과 나를 바라본다. 해서 왼쪽을 가리키며 그 방향으로 올라오라고 알려주고, "아차!" 했다. 뻔히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길을 만들며 올라오라고 가르쳐 준 거다. 그걸 깨닫고 아래를 보니,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은 상황이라 무사히 올라오는 걸 보고 갈 길을 갔다. 한번 홀리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거 같다.
암벽 정상을 떠나 급경사 지역을 벗어났는지 완만한 경사를 따라 5분가량 가자, 등산 앱이 음성으로 봉우리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마역봉, 즉 마패봉이다. 계속해 암릉을 따라 계속 올라가자 보이지는 않으나, 대여섯의 등산객이 인증을 찍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따라 바위로 올라가자, 갑자기 정상석 뒷면과 그 옆에 서 있는 등산객이 나타났다. 인증을 찍고 있는 대간꾼이다. 인증에 방해가 되지 않게, 사진 찍기가 끝나길 기다려, 바위를 넘어 앞으로 가니, 아래 암벽에서 봤던 대간꾼들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물론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라 발도장도. 내가 후미에 쳐진 덕에 그나마 소수의 인증꾼만 기다리면 돼, 그들의 인증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암벽에서 길을 일러줬던 등산객이 도착했다. 막 도착한 그 등산객이 나를 보자 길을 알려줘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잘못된 길 아니 방법을 알려주고, 감사 인사를 받으려니, 얼굴이 뜨거웠다. 어쨌든 그와 둘이 상부상조해 인증을 남겼다.
인증을 남긴 후 정상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에 신선봉 이정표가 떨어져 있다. 신선봉 가는 길이 마패봉 정상에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길목에는 금줄에 "탐방로 아님"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어쩌라는 건지? 마역봉을 떠나, 부봉 삼거리로 향해 가는데,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돌탑이 있고, 그 지점부터 급경사의 하산길로 그 시각이 10시 33분이었다. 거기 서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부봉'까지는 4km, 소요 시간 2시간! 4km에 2시간이라면 쉬운 길이 아니라는 얘기다. 석탑을 떠나, 급경사의 하산길을 따라가는데, 오른쪽으로 가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봉우리가 보인다. 부봉이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며 부봉 삼거리를 향해 가는데, 언제부터인가 등산로는 성벽 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성벽을 쌓다니 대단하다! 그 성벽을 따라 내려가자, ‘동화원 갈림길’ 고개가 나타나고 다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가끔 숲 사이로 보이는 마역봉을 사진으로 남기며 부봉 삼거리로 향하는데, 11시가 가까워져 오자, 배가 슬슬 고파왔다. 오랜만에 새벽에 누룽지를 끓여 먹고 나선 산행이라, 배가 일찍 꺼졌다. 배가 고파오자, 양재역 청과물 가게에서 김밥을 사 온 게 신의 한 수라고 자찬하며, 배낭에서 김밥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짐을 꾸려 배낭을 둘러메고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나무에 매단 팻말이 보인다. "계림지맥 분기점"이다. 당연히 "준.희"다! 계림지맥? 들어본 거 같은데, 긴가민가하다. 하도 지맥이 많아서. 김밥을 한 손에 들고 먹으며 분기점을 떠나, 서너 개의 기복을 넘자, 부봉에서 600m 아래에 있는 '동화원 갈림길'이 나타났다. 동화원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많은 걸 보며, 꽤 중요한 곳인 듯한데, 하긴 원(院)이면 나그네를 위한 여관이나 다름없으니 중요하지!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낙오자의 상태를 묻고, 부봉을 다녀오라고 하자, 낙오자 둘은 부봉은 버리고 바로 하늘재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러라고 하며, 나머지 인원은 주흘산을 다녀오기 위해 바로 출발했다. 진정한 대간꾼들이다. 우리와 같은 소규모 산악회로 보이는데, 부러운 모습이다. 부봉 삼거리에서 쉬고 있는 두 사람에게 그들이 주흘산을 다녀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비슷한 시각에 날머리에 도착한다고 인사 아닌 인사를 하고, 그들이 떠난 후 두 사람은 바위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걸 보고 나도 하늘재 방향으로 떠났다. 조령 3관문을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한번 갔었던 부봉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흘산에 갈 것도 아니라, 유유자적 페이스를 유지하며, 2017년 걸었던 등산로를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2017년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최대한 머리를 굴려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갔는데, 익숙한 바위와 전망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전망대에서 부봉과 주흘산 영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눈에 익은 바위나 나무도 기록으로 남겼다. 중간에 신발에 들어간 모래와 작은 돌을 털어내며 달려, 12시 40분에 주흘산 삼거리에 도착했다. 직진하면 주흘산, 좌회전하면 백두대간이다. 당연히 하늘재 방향으로 좌회전했는데, 급경사의 데크 계단이다. 천둥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비구름을 뚫고 데크 계단을 내려가, 10분 정도 가자 평천재다. 하늘재까지 남은 거리는 3km!
평천재를 지나자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고, 그동안 가랑비 속에 천둥만 으르렁거리더니, 본격적으로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아쿠아슈즈 선택을 자찬하는 순간이다. 우산도 펼쳐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평천재를 떠나, 봉우리로 향해 10여 분을 가자, 등산 앱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당연히 50m 반경 내에 탄항산이 있다는 메시지다. 폭우를 뚫고 계속 올라가 1시 20분에 탄항산 정상에 도착했다. 주변에 누군가 있다고 해도 이 폭우 속에 사진을 부탁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인적도 없어, 비가 내리는 중에도 카메라를 돌 위에 올려놓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이러니 카메라가 맛이 가지). 물론 원하는 그림은 아니나, 폭우 속에 타이머를 이용한 사진으로는 별로 나쁘지 않다.
탄항산을 지나자 큰 바위가 길을 막아, 우회해서 앞으로 가니, 반대쪽은 당연히 마애불이 있어야 할 거 같은 직벽이다. 하지만 기대한 마애불은 없다. 웬만한 코스는 데크라, 걷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탄항산을 떠나 30분가량 가자, 등산 앱이 또 음성으로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물론 어느 지도에도 없는 봉우리다. 마패봉과 부봉삼거리 사이에서도 모봉이라는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음성 메시지로 알려줬는데, 정상석은커녕 산악회에 만들어 단 명패조차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모래산'이라고. 그런데 봉우리로 올라가며 보니, 모래산이라 불릴 만한 모래언덕이다. 그리고 모봉과 달리 이정표에 "모래산"이라는 명패도 달려있다.
모래산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여성 대간꾼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해서 그녀를 앞세우고 다시 하늘재로 향하는데, 폭우라 잘 보이는 않는 오른쪽으로 밭인지, 목장인지를 보호하는 철책이 있고, 대간 길은 그 옆의 비좁은 물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데크를 따라가는데, 앞서가던 대간꾼이 멈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데크 계단이 있다. 3주 전에 방문한 하늘재는 왼쪽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는 길도 물어가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직진이다. 직진해 작은 언덕을 넘자 왼쪽으로 거대한 비석이 보인다. 하늘재 표지석으로 사다리재에서 고치령까지 연결되는 순간이다. 비록 폭우 속이나 먼저, 하늘재 표지석으로 가서 기록을 남긴 후 주변 사물도 표지로 남겼다. 물론 포암산으로 올라가는 데크 계단도.
하늘재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내고, 좀 늦게 도착한 대간꾼과 수고했다고 서로 인사도 나눈 후 3주 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좀비나 다름없이 내려갔던 길을 폭우 속에 넘치는 체력에 콧노래를 부르며 날머리인 미륵리 주차장을 향해 내려갔다. 당연히 아쿠아슈즈를 신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계곡을 탐색하며. 그런데, 3주 전만 해도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이 바짝 말라 있고, 그나마 흐르는 곳은 현재 내리는 폭우가 모여 흙탕물을 이루고 있었다. 두 번 하늘재를 방문하는 3주 사이에 계곡이, 아닌 국토가 목말랐다는 얘기다. 3주 사이에 변한 모습에 놀라며, 그러나, 폭우에 신이 나서 내려가다가 3주 전에는 카메라 들 힘도 없어 지나쳤던 주변을 폭우 속에 기록으로 남겼다. 충주 미륵리 원터, 충주 미륵대원지 등. 그리고 미륵대원지를 떠나 대형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갑자기 내린 폭우로 침수된 도로를 계곡 삼아 물놀이하며 가, 목표보다 9분 늦은 2시 39분에 빨간 버스가 보이는 주차장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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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갔던 식당의 안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혹시 새로운 뭐가 있을까? 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입구에 바로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메뉴를 보니, 역시 조금 아래에 있는 그 식당과 다르지 않다. 원하는 안주는 2인 이상인 것도 같고. 해서 주인장에게 소주 안주로 적당한 게 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내장탕과 산채비빔밥! 내장탕 먹으러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산채 비빔밥과 소주를 주문했다. 이미 포기한 상태라 소주 종류는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주문 후 화장실로 가 씻는데, 역시 아쿠아슈즈 우중 산행 최고의 장비다. 우산과 아쿠아슈즈는 우중 산행 최고의 조합이다!
별 기대 없이 주문한 산채비빔밥이 의외로 소주 안주로 좋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비주얼 또한 탁월했고. 산채비빔밥과 반찬을 안주로 소주를 홀짝이며 폭우 속 산행을 마감하고 도착하는 대간꾼을 구경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내려왔다. 내가 부봉에 들리지 않아, 앞섰던 대간꾼이 뒤로 밀려났기 때문일 거다. 거기다 나는 폭우에 신이 나서 달렸으나, 대부분 등산객은 허름한 우의로 몸을 가리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겪은 흔적이 뚜렷했다. 포기하면 모든 게 쉬운데! 어쨌든 그렇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산행 마감 25분 전인 3시 35분경 식당을 나와 버스로 갔다.
버스에 도착해 내 자리로 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과연 차가 정시에 떠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는데, 이런 폭우 속에도 모두 정시 이전에 도착해 예정했던 시각인 16시, 오후 4시에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떠나는 버스 안에서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니, 포암산을 다녀온 사람도 몇 있고, 주흘산이야 내가 만났으니 알고. 어쨌든 다들 '일 행 다 인증(一 行 多 認證)'을 위해 열심히들 뛰고 있었다. 그런데 미륵리 주차장을 떠난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코로나 이후 고속도로가 이렇게 막히는 건 처음이다. 그동안 코로나에 한 맺혔던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을 즐기기 위해 각처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 듯했다. 해서 애초 7시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5사 40분경 여주 휴게소에 도착하고, 6시 54분에 양재역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산행을 끝냈다. 그런데 새벽에 떠날 때와는 달리 양재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물론 집에 도착한 시각은 8시경이고!
안내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 팀 계획에서 부봉 왕복을 뺀 "고사리 주차장 → 조령 3관문 → 마역봉/마패봉 → 북암문 → 동암문 → 부봉삼거리 (→ 부봉 왕복) → 주흘산 갈림길 → 평천재 → 탄항산 → 966봉 → 하늘재 → 미륵대원지 주차장'의 15.7km(트랭글), 5시간 30분 동안 달렸다. 이동 5시간 30분, 트랭글에 따르면 휴식 시간 없음!
폭우 속이라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대간 외에는 보이는 게 거의 없는 산행이었다.
등산화에 물이 들어갈까 조심했던 기존의 우중 산행과 달리, 아쿠아슈즈 덕분에 거침없이 다닐 수 있어 대단히 만족한 우중 산행이다.
이번 산행으로 사다리재에서 고치령까지 백두대간이 연결됐다. 남으로는 사다리재~성터, 북으로는 고치령~낮은목이 구간을 연결하면, 늘재부터 연칠성령까지 연결되어, 북쪽으로는 거의 끝나가나, 남쪽은 아직 작은 단위로 끊어진 구간이 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