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들녘을 지나
코로나로 연기된 수능을 한 주 남긴 십일월 넷째 수요일이다. 수능 고사장 학교는 시험 하루 전 오전에 교실마다 시험실을 마련하고 책상에다 수험생의 수험번호와 이름을 부착해 놓는다. 이를 두고 시험실 정리라 한다. 오후면 수험생은 수험표를 지참하고 다음날 치를 해당 고사장을 찾아 시험실을 확인한다. 재학생은 귀가하여 수능일 하루는 가정학습을 실시함이 여태껏 관례였다.
수능일이 일주일 남았는데 전국 모든 고등학교는 내일부터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 코로나로 고사장 방역 차원에서 그런단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오전 일과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점심시간 이후 오후에는 시험실을 준비한다는 예고가 있었다. 예년 수능 전날 마련하는 시험실 정리를 한 주 당겨 하는 셈이다. 이미 학생들은 각자 사물함과 책상 서랍은 깨끗하게 비워둔 상태다.
지난주 금요일 청소시간 중앙 현관 앞 중년의 사내가 운전한 빈 트럭이 한 대 들어왔다. 나와 같은 교무실을 쓰는 문화보건부 기획으로부터 연락 닿은 폐휴지수거업자로 아내를 대동해 왔다. 우리 학교에서 나오는 폐지를 주말마다 수거해 가는 분으로 그날은 학생들이 한 해 동안 공부했던 책과 학습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담아갔다. 고3은 이렇게 학창시절이 마무리되어 간다.
새벽녘 잠 깨어 아침밥을 해결했다. 켜둔 뉴스전문 채널 앵커와 기자가 전하는 뉴스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고작 기상 캐스터가 전하는 날씨는 눈여겨 살폈다. 중부 산간 내륙은 영하권이지만 우리 지역은 그렇게 춥지 않다고 했다. 여섯 시가 지날 무렵 출근 채비를 갖추었다. 목도리를 두르고 헌팅캡을 썼다. 마스크도 빠지지 않았다. 와실 문을 나서니 날이 새지 않아 캄캄했다.
어둠 속 와실 골목에서 거제대로 연사 정류소로 나갔다. 뒷골목 자리한 간이식당 두 곳은 불이 켜지긴 했으나 손님은 없는 듯했다. 횡단보도로 다가가니 전조등을 켜고 다니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신호등은 녹색불로 바뀌길 기다려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주변 물상은 식별되지 않아도 자주 다녀 헛발을 딛지 않고 들녘을 나갈 수 있었다.
농로를 따라 들녘 한복판으로 나갔다. 가로등이 켜진 거제대로로 질주하는 차량이 간간이 보였다. 효촌마을과 약수봉 산기슭 교회 첨탑에는 빨간 네온이 뚜렷했다. 연초삼거리와 수월삼거리 높은 아파트 창에는 불빛이 비쳤다. 어둠이 사라지면서 시야는 산등선이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별빛이 사라진 하늘엔 잿빛 양털구름이 깔렸다. 모네가 고흐의 유화에서 본 듯한 구름이었다.
추수를 끝낸 들녘은 트랙터로 논갈이를 해두었다. 연사 들판은 모두 일모작지대라 겨울이 오기 전 깊이갈이를 해 놓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여름 한 철 벼농사를 짓기 위해 휴지기 겨울은 땅에게는 안식의 시간이었다. 들녘을 지나니 날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들판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날씨가 추워지고 해가 늦게 떠서 그런지 산책을 나온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었다.
천변 코스모스 꽃은 저문 지 오래였다. 강둑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추운 줄 몰랐다. 바람이 없어 그런지 날씨가 포근한 편이었다. 연초천 냇물에 보이던 흰뺨검둥오리들은 개체수가 적었다. 어디론가 들녘으로 날아가 아침먹이를 찾고 있지 싶다. 녀석들은 습지에서도 먹이를 찾지마는 논바닥에 떨어진 벼 낱알도 좋은 먹잇감이다. 가장자리 달뿌리풀과 갈대는 갈색으로 색이 바래져갔다.
연효교를 건너 연사천 둑길을 걸어 연사마을 입구로 향했다. 교정으로 드니 시계탑은 일곱 시를 가리켰다. 배움터 지킴이는 가스난로를 켜 놓고 외부 출입자를 맞아 발열을 체크하고 인적사항을 작성했다. 그들은 도서관 리 모델링 시공업자들로 이른 시각부터 일을 시작하려 했다. 교정 뒤뜰 쓰레기 분리 배출 장소를 둘러보고 문화보건부실로 들어 노트북을 켜면서 하루를 열었다. 2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