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름성경학교
우리는 지금 지나간 한 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의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화의 폭이 넓어서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어 밀어 닥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교회학교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구조적인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성경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한 두 가지 프로그램의 보완으로는 미래현상에서 적절하게 대응해 낼 수가 없다. 매체의 활용 등과 같은 기술적인 방법의 개선만으로도 어렵다. 성경학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 과거 한국교회에서 성경학교는 아름다운 신앙의 추억을 만들어 내면서 회심과 양육,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면서도 그 효과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성경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심각할 정도로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다. 냉담하기 조차하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는데 반하여 거두어 들이는 효과가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성경학교 무용론을 제기하는 소리도 있다.
과연 미래 교회에서 성경학교는 더 이상 필요 없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학교는 여러 가지 견해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을 경험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쉼과 평안을 경험하는 훌륭한 신앙교육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학교 안에는 내가 아닌 공동체가 있고, 그 안에서 만남과 회복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하교야말로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예배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이다. 우리의 과제는 "어떤 성경학교를 만들어 가느냐 " 하는 점이다.
미래의 성경학교 상을 그려보는 작업을 시작해 보자. 먼저 21세기의 미래 현상들 가운데 교회교육과 관련해서 파생될 수 있는 긍정적, 부정적 현상들을 진술하고자 한다. 그 이후에 교회학교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적절히 대응하여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가에 대하 방향을 진술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성경학교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미래의 전망
미래사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미래교회나 미래목회 또는 미래교회교육에 관한 관심 역시 점점 높아가고 있다. 다양한 미래현상들 중에서 먼저 교회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미래사회의 현상들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주로 미래현상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로, 미래사회에 나타날 진리의 상대화 현상이다. 매스미디어 대중 교통수단의 발달로 문화적 접촉이 빈번해지고,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절대적으로 생각되었던 가치와 신념들이 상대화되면서 사회 전반이 필연적으로 다원화로 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이러한 다원화 , 상대화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사회 , 문화적 현상만이 아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다원화는 실로 심각한 도전이다. 이제까지 절대적 가치를 가르치던 교회교육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다원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세분화시킨다. 교회학교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삶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해졌다. 교회교육은 삶의 극히 일부가 되었고, 각종 분야의 삶의 영역이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로, 미래사회에 나타날 특징은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개인의 주권 행사가 강조되고, 사회가 점차 다원주의적 성격을 띠면서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동시에 책임을 요구하게 된다. 종교 역시도 개인적인 영역으로 국한되고 이러한 개인주의는 공동체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독교 신앙과 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특히 신세대는 형제가 적기 때문에 자신이 최종 결정자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신세대의 개인주의는 이성에 근거한 개인주의가 아니다. 신세대는 인간의 합리성보다는 상황의 현재성이 강조되고 자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감각적 개인주의'이다. 따라서 이들은 획일주의와 권위주의, 전체주의를 배격한다, 더욱이 미래사회는 사이버 공간이 보편화되고, 사람들은 자기의 가상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주의 내지는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셋째로, 미래사회의 공동체의 인격적인 만남의 결핍을 들 수 있다. 미래사회는 사랑과 책임이 어우러진 공동사회 -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 를 기대하기가 힘들어 진다. 특히
컴퓨터 통신의 발달로 컴퓨터를 자유롭게 다루는 신세대는 이를 이용하여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게 됨으로 친교의 부재와 감성의 황폐화가 극심해질 것이다. 이는 결국 인격적인
접촉을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격적인 만남과 공동체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넷째로, 미래사회에 발생할 가장 두드러지고 두려운 사실 하나는 가상현실의 세계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사이버교회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건전하지 않는 교회가 사이버교회를 만들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을 혼돈하게 하고, 그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할 것이다. 실재가 아닌 가상현실은 진리와 거짓에 대한 혼돈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런 정신적 방향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에게 영성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공허가 깊어질수록 본질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정보의 범람 현상이다. 미래사회는 정보사회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게 된다. 그 정보 가운데는 건전한 정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전하지 못하고, 비 기독교적이고 반 기독교적인 정보도 포함된다. 자라는 세대들은 이러한 정보에 대한 분별력을 길러주고, 매체를 건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교회교육의 몫이다.
여섯째로, 소외현상이다. 소외의 문제는 미래사회에도 여전히 남는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외, 사람과 자연 사이의 소외, 정보로부터의 소외, 매체로부터의 소외 등이 문제가 되 것이다. 미래사회로 갈수록 새로운 소외의 문제들이 속속 대두되고 있다.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 매체사용의 급증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문제, 생명공학의 발달과 실용화로 인한 생명경시 문제 등이 벌써부터 예견되고 현실화되고 있다.
성경학교의 과제
미래현상과 관련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미래의 성경학교가 지향해야 하고, 해결해 가야 할 과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교회와 교회교육은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추구한다.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개인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며, 상호간의 지지와 격려를 통해 서로를 세워주는 방법들을 익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외와 고립에 몸서리치는 세대들을 개인적 접촉을 통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인간 상호간의 인격적인 사귐이 있도록 해야 한다. 이대 소그룹 모임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소그룹 안에서는 더욱 긴밀한 관심과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관심과 격려와 지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구조와 조직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사회가 고도화되고 세분화될수록 사람들은 조직에 의해 강요당하고 얽매이게 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개혁해 나가야 할 공동체적 과제이다. 또한 이제까지 발달이론에 의해 단계별, 연령별로 나누어져있던 교회교육이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간세대 교육을 통해 온전한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다양한 연령층이 나이에 제한되거나 분류되지 않고 한자리에 모여,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세워주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가정공동체의 참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공동체의 기본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가정의 참여없이 건강한 공동체는 있을 수 없다.
공동체성과 관련하여 추구해야 할 교육과제로 에큐메니칼 정신의 함양을 들 수 있다. 교회의 연합은 미래사회에서도 꾸준히 실현해가야 할 과제이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으로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한 통일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족통합의 사명을 일깨워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민족 공동체의 회복은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다.
둘째로, 기독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하는 일이다. 다원화된 사회는 모든 것이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진리로 비쳐진다. 이로 인해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유일하고 탁월한 구원의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미래사회에 근본이 되는 이념으로서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적 비전을 제시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성경학교는 기독 신앙인으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보다 더 강력한 회심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 기독교적인 삶의 양식을 경험하는 일 등은 성경학교의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참된 평안과 쉼을 누릴 줄 알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현대인은 쉼을 원한다. 육체적인 쉼뿐만 아니라 영적인 쉼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교회는 주일을 참된 안식의 장으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도리어 주일이 가장 피곤한 날이 되었고, 성경학교나 수련회에서도 성도들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참된 평안과 쉼을 얻기보다는 주어진 프로그램을 완수해야 하는 사명자(?)로 맞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교회교육은 프로그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깊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영감없이 반복되는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지 못한다. 도리어 짜증과 무관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참된 휴식과 평안이 복음 안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
넷째로,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하는 신앙이 되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새로운 세대는 관전하는 자나 단순한 참석자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신이 행할 바를 행하시는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3:14). 오늘날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또한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사유 속에 갇혀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분은 우리를 삶의 모든 분야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때문에 교회교육은 지식적인 앎, 사변적인 앎이 아닌 삶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통전적인 앎이요, 만남이어야 하다. 책에서 배우는 하나님이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하고 만나는 하나님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는, 상상력을 키우고 기독교적인 감성을 계발하는 일이다. 미래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무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도식적인 사고만으로는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가 없다. 하나님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말씀하시고 교육하셨다. 하나님은 상상력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교조주의적인 교회교육은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또한 새로운 세대는 감성의 세대이다. 하이테크(high-tech)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하이터치(high-touch)를 요구한다. 알기보다는 느끼기를 원한다. 이해하기보다는 경험하기를 원한다. 기독교적인 상상력과 감성의 개발은 미래교회교육이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교육은 성경에 기록된 복음과 은혜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언어로 표현해 들려주고 표현해내야 한다. 절제되면서도 자유로운 감성을 개발시켜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징이나 예전이나 의식 또는 절기 등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안
그러면 우리는 이런 교육의 과제들을 어떻게 하면 성경학교라는 귀중한 신앙교육의 장에서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성경학교는 어떤 방향으로 계획되고 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성경학교를 세대를 통합하는 간세대적인 공동체 훈련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하나는 가족중심의 성경학교 모형이다. 중소규모의 교회에서는 전교인 수련회를 열어 가족중심의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세대간에 분리되고 단절된 가정을 새롭게 세우고 만남의 장을 열어줌으로써 부모와 자녀간에 혹은 형제와 자매간에 대화와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무너져가는 가정을 다시 세우고 가족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제한적으로 간세대 공동체를 형성해주는 모형이다. 유치부나 초등학교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을 하나로 묶거나 중학생에서 청년부까지를 하나의 간세대 공동체로 묶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 연령에서 한 사람씩 선발하여 6~10명 정도로 한 가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한 주제 - 여러 프로그램으로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성경학교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까지의 성경학교가 수직적인 경험에만 치중했다면 21세기 미래의 성경학교는 수직적인 경험을 전제로 다양하고 특성화, 전문화된 소그룹 성경학교를 제안해볼 수 있다. 즉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따라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나의 주제, 획일화된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존의 성경학교가 하나의 주제에 하나의 프로그램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이는 하나의 주제에 여러 개의 독립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와 관심을 살려주는 기회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다양한 주제를 특성화시킬 수도 있고, 총회나 노회 차원에서의 지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총회나 노회가 교사강습회를 통해 똑같은 주제를 교육할 것이 아니라 당해 연도의 교육주제를 다양하고 특성화, 전문화된 프로그램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특성화, 전문화된 소그룹 성경학교는 그 자체가 전문성을 제공하며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전인교육이 가능하게 한다. 이는 삶과 동떨어진 신앙훈련이 아닌 삶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통전적인 시도가 될 수 있을뿐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셋째, 시간표로부터 자유로운 성경학교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빈틈없이 짜여진 시간표에 따른 기계적인 운영에 익숙해 있다. 시간표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모두가 시간표에 매달린 학교식 교육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시간표에 메인 교육은 '쉼'과 ' 여유'를 빼앗아갔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참된 쉼을 경험할 수 있는 성경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꽉 짜인 일정과 프로그램이 아닌 넉넉하고 자연을 즐기며 묵상할 수 있는 성경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자연의 품속에 안겨 명상과 묵상을 하며,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축제적인 예배훈련과 경험의 장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때문에 매주일 드려지는 틀에 박힌 예배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예배, 감동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경학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이 가능한 이유는 예배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과 여건이 성경학교에서는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예배만큼 성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성도의 삶은 힘과 능력을 잃는다.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차게 된다. 가인과 아벨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저녁집회는 단순한 말씀과 기도회, 부흥회가 아닌 하나님과의 감동적이고도 환희에 찬 예배를 준비하여 제공하여야 한다. 설교를 전체 예배와 조화있게 구성해야 한다. 미래세대는 듣기보다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영성을 주제로 한 성경학교를 생각할 수 있다. 생소하고 쉽지 않은 시도이다. 영성훈령의 지도자가 거의 없는 현실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미래사회가 영적으로 갈급한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사람들의 시대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성경학교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여름과 겨울이라는 한정된 시간만이 아니라 주말의 1박 2일의 일정으로도 가능하다. 깊은 묵상과 관상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 그러나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영성훈련은 방법이 아니라 삶이라는 사실이다.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영성훈련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삶으로 내면화될 수 있는 성경학교가 되어야 한다. 때문에 표면적인 커리큘럼보다 잠재적 커리큘럼을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 같으면서 철저하게 준비된 성경학교가 그런 성경학교이다.
여섯째, 성경공부 방식의 창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성경공부는 성경학교의 중심활동이다. 기존의 성경공부는 한 명의 교사에 여러명의 학생이 한 만을 이루고, 교사 주위에 학생들이 모여 앉아 공과교재를 중심으로 한 교수 - 학습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양한 활동들이 소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가 내용의 전달, 기억과 이해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인지활동 중심의 성경공부에서 벗어나 이미지, 상상력, 경험 등을 초점을 맞춘 성경공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경학교의 성경공부는 주일 분반공부의 연장이 아니라 놀이, 역할극, 창작활동, 참여하기 등의 다양한 활동이 곧 성경공부가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자훈련식 성경학교에서 사도적 성경학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성경학교는 그동안 지식적 앎에 치중했고, 그것에 만족해 왔다. 때문에 머리는 크고 손발은 게으른 기형적인 신앙인들을 양산해왔다. 그러나 신앙인이 진정 신앙인다워질 때는 그들의 삶이 신앙을 표현하며, 자신이 받은 은혜와 사랑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사도 - 보내심을 받은 자 -로 선택하셨다.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고, 교회 안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는 신앙인을 만들어내는 성경학교가 되어야 한다.
마치면서
이외에도 성경학교는 아주 다양하게 준비될 수 있다. 조금만 더 깊은 고민이 있고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올해도 성경학교는 계속될 것이다. 깊은 성찰없이 과거를 반복하느냐,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혁하느냐 하는 것은 개교회 교육지도자들의 몫이다. 21세기의 주역들을 키워내는 역동적인 성경학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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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