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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제목 : 전학생
작가명 : 하가은
E-mail : fogml01@empal.com
연재장소 : 20대 꽃잎소설 2
총편수 : 총 48편 완결
장르 : 학원물
출처 : Romanticist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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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오...이런. 이민서. 한현우.
어떤 방식으로든 유명한 녀석들 사이에 있다보니.. 이제는 신상정보까지 유출되네....허...
“여튼 뭐.. 그 비슷한 이름이었지. 아마?.”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익숙하지는 않은데..”
“은설이 말이 세주 그 애는 신경쓸 것 없고 동생이 1학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던데.”
“동생?”
“정상우라고.. 그 애도 전학 온 녀석이던데 한 인물하는 모양이야.”
“아까는 차세주라며..정상우가 동생이라고? 성이 틀리자나.”
“아...그럼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차상우인가?”
으이고. 상우 이 녀석 괜히 동생이라고 해가지고.
“그건 그렇다 치고. 시간 얼마나 지났어? 시아 이 녀석 아예 나타날 생각이 없는거 아니야?”
“어떻게 할꺼야..?”
“우리를 물로 본 대가를 치루게 해줘야지. 가득이나 현우가 끼어든게 맘에 걸렸는데..”
“현우 녀석 회장 된 뒤로..학교가 더 조용해. 시아 녀석 잘못되면..
우리가 그런거 뻔히 알텐데.. 현우가 가만히 있을까?”
“현우와 시아녀석 별 사이도 아니라며. 현우 이런 일에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한 애 아니야.”
“하긴...현우가 여자들 일에는 원래 상관 안하니까..”
“시아 녀석은 내일 또 불러서 가지고 놀면 돼. 오늘은 그냥 내려가자.”
“그래”
영인이 녀석의 내려가자는 말에 영인이 친구들은 옥상을 내려갔고 몸을 숙이고 있던 나와 채경이, 시아는 그제서야 허리를 피고 편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 내 팔자야.’
허리를 두드리며 앞에 놓은 물병의 물을 마시고 있는데 채경이가 나에게 말했다.
“니 존재 재들한테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구나. 영인이 녀석 날라리라고만 들었지 현우를 저렇게 좋아하는지는 또 몰랐네..”
“나야말로. 민서 말이 중학교때부터 현우를 좋아했었다나 어쨌다나..”
“같은 중학교 다녔었나보네..”
“근데.... 내일은 어쩌지?”
나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앉아 있는 시아를 쳐다보았고 시아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오늘 하루는 넘길 수 있었지만 이 일은 계속 피한다고 해결 문제가 아님을 알았기에 나나..시아녀석이나..채경이 모두 쉽게 대답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침묵을 깨고 내가 말문을 열었다.
“영인이 녀석...도 때리나...?”
내 질문에 채경이가 대답했다.
“당연한걸 뭘 물어. 저번에 시아 맞는거 봤잖아...”
“아.. 그렇지.. 시아야.. 너 맞을 때.. 전문적인..느낌 뭐 이런거 있었어..?”
내 어이없는 질문에 시아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해 안가는 질문이라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질문이 좀 웃기긴 한가..? 나는 다시 쉽게 고쳐 시아에게 질문을 했다.
“아. 그러니까.. 한 마디로 잘 때리냐고.”
“모르겠어요..”
“흠.....”
내 질문을 옆에서 듣고 있던 채경이가 이해가 안됐는지 나에게 물었다.
“이 판국에 잘 때리는게 뭐가 중요해. 잘 때리든 못 때리든 내일이면 신나게 맞을텐데..”
나는 학기 초에 민서에게 맞았던 기억이 났다. 처음 한 두 번정도만 거칠게 맞았을 뿐 사실 우리는 그저 대화하는 시간이 더 길었었다. 민서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녀석 앞에서 내가 약자라는 생각보다 비록 몇 대 맞는다 할지라도 오히려 당당한 마음으로 민서를 마주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내 과거의 민서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 현재의 민서에게 관대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현재의 민서에게 더 이상 상처를 안고 살지 말라는 내 마음이 잘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영인이 녀석은 민서녀석하고는 차원이 틀리지만 우선 나는 채경이와 시아에게 말했다.
“영인이 녀석이 민서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거 보면 그 녀석도 결국 나름대로의 강자와 약자의 기준이 있는 녀석이야. 사고방식이 생각보다 좀 더 구제불능인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것 없는 녀석인데 시아 니가 학교생활 앞으로 피곤하게 하지 않으려면 딱 한 가지 길 밖에 없어.. 근데 지금은 그걸 니가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그게 뭔데..?”
궁금했는지 시아보다 채경이가 더 먼저 나에게 물어왔다.
“비밀”
“야..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발칙한 소리가 나와?”
“우선 내가 당장 말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이거 하나. 내일도 피하자는거.”
“말도 안 돼. 피할수록 그 애들 성질만 더 긁을 텐데.”
“시간을 벌어야지.”
“무슨 시간?”
“시아 변신하는 시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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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땡땡.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채경이에게 가서 조용히 말을 건냈다.
“채경아 그럼 아까 말한거 부탁한다~”
“야.. 현우가 너 가만히 안 놔둘텐데..?”
“내일 일은 내일 걱정 하자고~”
나는 급하게 책을 사물함에 집어넣은 뒤 가방을 들고 현우가 반 친구들에게 가려 안 보이는 틈을 타 교실을 빠져 나왔다. 이렇게 007작전 비슷한 일을 펼치는 이유는 나는 오늘 도우미의 역할을 잠시 집어 치우고 스터디 그룹도 빠진 채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채경이에게는 현우가 혹시라도 나의 행방에 대해 묻거든 몸이 좋지 않아 집에 갔다고 말하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얼마전에 빈혈로 인해 쓰러진 일을...빌미로 현우가 좀 속아주지 않을까 해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인데..생각을 하니 좀.. 비겁한 짓 같긴 하군.
“왔어?”
“네..”
시아녀석이 교문 옆 약간 떨어진 곳에 먼저 서 있었고 나는 시아를 발견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오늘 나의 땡땡이는 바로 시아와의 만남을 위한 것.
“빨리 여길 벗어나자구. 괜히 영인이 녀석에게 걸리면 피곤해지니까.”
“네..”
시아와 나는 보통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버스정류장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움직였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택시를 타고 학교근처를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아야.. 돈 있냐?”
“네..?”
시아는 자신의 주특기인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또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돈......이..요..?”
시아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갈 듯이 표정을 겁을 잔뜩 먹고서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었다.
“야...누가 보면 내가 니 돈 뺏는 줄 알고 오해 하겠다. 임마!”
“..........................”
“아이고..무슨 말을 못하겠네. 일단 택시 타자.”
나는 시아를 인도에 남겨두고 갓길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고 했고 그때 누군가 내 책가방을 뒤로 당겼다. ‘시아인가?’ 가방이 당겨지는 바람에 뒷걸음질 치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럼 그렇지. 상우녀석이었다. 내 책가방을 당기는 인간은 저 녀석뿐이었지.
“뭐해?”
“택시 잡아.”
“언제부터 택시타고 하교 하셨나~부르주아 나셨네.”
“집에 가는거 아냐. 근처 시내 가려고”
“왜? 혼자?”
“아니. 저기 저 녀석이랑”
나는 뒤에 있던 시아를 가리켰고 상우는 시아를 잠시 보더니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보는 인물인데..? 친구?”
“아니 후배야.”
“공식 왕따가 후배도 키워? 정말 의외라니까..”
“우리 공식왕따가문을 뭘로 보고..”
“괜히 애 하나 버리지 말고 관 둬”
“너...할 일 없지? 그러니 길거리에서 나랑 농담이나 따먹고 있는거 아니겠어..?”
“무슨 소리야. 난 엄연히 축제 도우미로서 플랜카드 준비 때문에 천 구하러 가는 길이라구.
아..그러고보니!! 너도 도우미잖아! 땡땡이야?”
“어....그건...그러니까..”
“땡땡이구만.”
“꼭 그런 강한 단어말고.. 굳이 말하자면 오늘 하루 회의에 불참하는거지.”
“뭐야... 그게 그거지. 불량 왕따. 어째든 시내 갈거면 같이 가던가. 택시 좀 얻어 타자.”
“택시 얻어타게 해줄테니까 여튼 오늘 난 몸이 피곤해서 빠진거다. 말 맞춰.”
“아...하. 거짓말을 하셨군. 뭐 오늘 하는거 봐서.”
“으이그..”
내가 저 녀석과 무슨 협상을 한다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았고 마침 지나가던 빈 노란 택시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시아에게 오라고 말한 뒤 택시 뒷자리에 먼저 태우고 그 뒤를 내가 뒤따라 탔다. 상우 녀석은 우리가 다 탄 다음에야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아저씨에게 시내에게 가달라고 말씀드린 뒤 다시 등을 자리에 편하게 붙인 뒤 옆의 시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굳어 있는 녀석. 내가 아직도 불편한가...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학생들 다 왔어요~”
“돈 여기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미리 내야할 돈을 꺼내놓고 도착하자마자 아저씨게 드렸고 우리 셋은 나의 금전적인 희생을 바탕삼아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후후.
“상우야. 넌 천 사러 가야하지?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구~”
“너는 어디 가는데?”
“우선...헤어샵”
“머리하게?”
“나 말고 저기 있는 시아.”
“후배 머리하는데 따라다녀? 택시에서 보니까 별로 친해보이지도 않던데.”
“사정이 있어서. 여튼 잘가.”
“야.”
“왜?”
“아까 나한테 했던 부탁 들어줄 수도 있는데..말야.”
“내가 너한테 부탁을 했어?”
“아우..저 기억력. 아프다고 해달라며. 현우선배한테.”
“아..맞다. 그렇지.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부탁 들어 줄테니까 오늘 짐꾼 좀 해.”
“나..오늘 보다시피 바쁜데. 그냥 혼자 들어.”
“훌륭한 짐꾼을 만났는데 혼자 왜 들어. 고등학생 정도면 헤어샵은 혼자가도 될 나이거든?”
“잰 안되거든.”
“나..참. 그럼 헤어샵까지는 같이 갈 테니까 그 이후엔 짐꾼.”
“그러던지.”
3년 후 미래의 상우 역시 자상하기만 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우녀석이 훨씬 더 건방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저런 녀석에게는 약점 잡히면 안되는데 말이야.. 거짓말한게 딱 걸려가지고...휴.
나는 상우와의 대화를 마치고 조금 떨어져 있었던 시아에게 다가가 헤어샵에 가자고 말했고 시아는 늘 그렇듯 내가 하는 대로 따라왔다.
몇 개의 건물을 지나쳐 우리 셋은 근처 유명하다는 헤어샵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어느 분이 머리하실거예요?”
샵 매니져로 보이는 언니는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고 나는 시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요.”
나에 말에 시아는 자신의 머리를 손보기위해 헤어샵에 온 줄 몰랐다는 듯이 또 황당한 표정으로 매니져 언니에게 끌려가 가운을 입고 있었다. 하긴 내가 헤어샵에 가자고만 했지 누구머리 다듬을 건지는 상우에게 밖에 이야기를 안했구나. 미리 말해줄껄 그랬나..
시아는 27번 언니라는 분에게 맡겨졌고 나름대로 그 언니는 그 샵의 수석 헤어디자이너라고 자기 자랑을 우리에게 늘어놓았다. 그 언니는 시아에게 물었다.
“어떤 머리스타일 생각하고 왔어요?”
“네..?... 아.....저..는...”
당연히 아무 생각없이 왔을 시아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시아 옆에 서서 시아대신 언니에게 대답을 해 주었다.
“얼굴이 달걀형이라서요. 좀 다듬은 다음 층 줘도 괜찮겠죠..?”
나의 물음에 27번 언니는 시아의 먼지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하는 듯했고 나는 디자이너 언니가 무슨 말을 할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의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상우가 다가와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엔...머리 다듬는 것도 해야겠지만.. 머릿결이..푸석푸석한게..전혀 스타일이 안 나잖아. 저거 해결 못 하면 무슨 머리 스타일을 하든 지저분해 보일거야.”
“어머~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남학생이 센스가 있네~”
“그럼 누나가 알아서 잘 해주세요~”
상우 녀석은 세상에..
처음 보는 헤어디자이너 언니에게 꽃미소를 날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27번 언니는 나와 말할 때와는 다르게 싱글벙글 상우와 시아의 머리스타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영양 넣고 매직 한 다음 머리 좀 다듬을까..?”
아니..27번 언니. 지금 누가 누구에게 머리스타일에 대해 묻고 계신겁니까...
“네. 앞머리도 만드는게 더 귀여울 것 같아요. 그죠. 누나?”
“음..그렇네. 지금 머리스타일은 좀.. 촌스러운 느낌이랄까..?”
“머리에 층 약간만 주고요.. 끝은 뻣지 않게 안으로 말면 어떨까요.”
“어머.. 딱 어울리겠네.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감각도 좋고 친구들은 좋겠어~ 머리 스타일도 일일이 챙겨주고.”
27번 언니는 상우의 연기에 넘어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저런 희생자를 한 두 번 본게 아니니..뭐 새로울 것도 없지. 27번 언니는 상우와의 이야기 끝에 결론이 난 대로 시아의 머리를 만지고 계셨고 나와 상우는 약간 멀리 떨어진 손님 의자에 앉아 시간을 때워야 했다.
“쟤 여기 데려온 이유가 뭐야?”
시아를 기다리려고 의자에 앉아 관심도 없는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는 내게 상우가 물었다.
“누구..시아?”
“이름이 시아야? 여튼 저 애.”
“저 애 공식왕따 3호야.”
“뭐?”
“아까 말했잖아. 왕따가문.”
“장난 아니었어? 너 같은 인물이 두 명이나 더 있다는 거야?”
“1호 채경이 2호 나 3호 저 녀석.”
“이야....굉장한 가문이네. 근데 여기 온거랑 왕따가 무슨 상관인데.”
“뭐..좀 복잡한 일에 휘말렸어~”
“그러니까 그게 뭔데”
사실 상우에게 그 긴 역사를 설명하기 귀찮았지만 매직도 하고 머리도 마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릴 것 같아 상우녀석에게 그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십분 후 내 긴 이야기를 집중력 있게 다 들은 상우는 꽤나 진지하게 말했다.
“뭐야... 그게 머리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야? 당장 애하나 맞아서 다치게 생겼는데?”
“머리는 그냥 시작에 불과해.”
“그러니까.. 이렇게 비슷한거 몇 개 더 한다고 애가 안 맞냐고.”
“너 전학 왔을 때 너 아니꼽게 보는 애들 있었지?
“뭐.. 모든 녀석들이 다 날 좋아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애들한테 어떻게 대처해?”
“보통 씹거나.... 정 거슬리면 싸우지..?”
“싸우면 이겨?”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고.”
“지면 어떻게 돼?”
“져도 별 상관은 없어. 열나게 싸웠으니까 그 쪽이 이기긴 했어도 다시 건드리는 일은 거의 없어. 내가 보통 내기가 아니란 건 아니까. 미국에서 인종차별 느끼면서 키워온 깡이야. 그 쪽 녀석들 상대하다보면 한국에서 고생하는건 일도 아니라고. 온갖 괴롭힘, 욕 정도는 웃으면서 넘기는 센스가 있어야지.”
“난 시아가 너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이기면 좋은거고 져도 기죽지 않는 그런 것. 외모가 사람 평가하는데 뭐 그리 중요하냐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머리 스타일 하나.. 옷 맵시.. 표정하나가 사람을 평가하는데 알게 모르게 적용되거든. 당장은 바라지도 않고 천천히 조금씩 시아가 변하길 바래보는거지.”
“..................... 저 애한테 왜 그렇게까지..신경 써?”
“몰라. 그냥 인연이 그렇게 닿나보지..”
“하여간 오지랖은..”
“그래도 니가 따라와서 스타일 코치도 해주고 꽤 쓸만한데~”
“짐꾼 시킬려고 따라왔더니만 내가 오히려 이용당하는 상황이네. 여튼 의도는 좋은데 쟤는 적당히 챙기고 너나 신경 써. 뒤에서 니가 저 애 봐주다가 영인이라는 사람에게 찍히면 어쩌려고.”
“임마~ 나 니 누나야~ 누나가 버티는 깡은 좀 있지.”
“참..나. 빈혈로 쓰러지는 주제에 큰소리는.”
그렇게 1시간..
2시간...
3시간...
상우와의 긴 수다를 하며 오랜시간 앉아있다보니 몸이 굳는 것 같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내 앞으로 어떤 귀여운 녀석이 걸어왔다.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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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다 끝났다고 해서요.. 괜찮다고 했는데..언니가..눈썹도..너무 이상하죠..?”
“세상에....”
고작 눈썹 정리하고 머리스타일 하나 바꿨다고 사람이 이렇게 틀려보일 수도 있냐고.. 나는 잠시 시아의 바뀐 모습을 쳐다보느라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었지만 나와는 틀리게 아무렇지 않은 상우는 시아를 보며 이야기 했다.
“음..생각하는대로 스타일이 나왔네. 너 집에 헤어에센스 있어?”
“아....뇨..”
“그거 사다가 머리 말린 후 약간 스타일 잡아주면 별다르게 손 안써도 스타일 유지 될꺼야. 그리고 나 너랑 동갑이야. 존댓말은 좀 그러니까 반말 써.”
“네.... 아....응”
상우가 시아에게 스타일유지를 위한 팁을 주고 있는 사이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시아의 변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계획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시아야. 평소에 이렇게 좀 해보지 그랬어~ 이야~ 남자 한 트럭은 쫒아왔겠네~”
“머리는..그냥 기르거나 자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흠.. 어째든 임무 완수. 자.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구~”
나는 시아의 어깨를 두 손을 잡고 시아아 함께 문 쪽으로 걸어간 뒤 사아를 살짝 떠밀어 헤어샵 밖으로 내밀었고 나는 다시 샵 안으로 들어와 상우에게 말했다.
“가진 현금 다 내놔봐”
“뭐?”
“현금”
“뭐하자는 플레이야..”
“돈 얻어내는 플레이지. 이 누나가 돈이 좀 모질라니까 다 내놔봐~”
“이거 완전 날강도네. 좋아..그럼. 돈 빌려줄테니까 나중에 부탁하나만 들어주는 조건 어때?”
“알았어. 짐꾼 그거 해준다니까~”
“그거 말고.”
“....흠...뭔지 몰라도 일단 급하니까 YES"
"좋아. 또 까먹지마.”
“그래. 알았어~”
“그럼 이건 내가 계산 할테니까 먼저 나가 있어.”
“이야~ 전부?! 오..아저씨께 용돈 좀 받으셨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상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헤어샵을 빠져나왔다. 사실 돈이 약간만 모자른 정도라 장난으로 돈 뜯어내고 거의 다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녀석은 나중에 부탁하나를 들어달라는 말로 시아의 변신 프로젝트 비용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부탁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녀석이 해봤자..뭐 크게 어려운 부탁일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 설사 어려운 부탁이라고 해도 오늘 선뜻 돈을 빌려준다는 그 녀석의 태도가 맘에 들어 그 가치만큼의 일을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인생은 정확하지 않아도 Give and Take 원리니까.
“저기..언니..”
헤어샵 밖에서 상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시아의 부름에 시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왜?”
“계산...”
“아~ 그거 상우가 계산했어”
“네..? 제가 머리한건데..왜.. 제가 내일 드릴께요.. 얼마인가요?”
“괜찮아~ 아까는 그냥 받을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이야기도 안하고 너 끌고 왔는데 뭐. 용돈 열심히 모으고 있어~”
“...........”
시아 이 녀석 역시 머리하는 내내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계산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공부를 하려해도
사랑을 하려해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도
마음으로만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에 돈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없으면 각각의 것에 가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혼란이 찾아 올테니 돈은 사람 사는데 정말 필요한 물건이라 볼 수 있다. 나 역시 무척이나 돈을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 아닌가. 그래도 돈은 사람의 마음 없이는 순수하게 빛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돈을 쳐들여 남들보다 호화스럽게 공부해도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돈을 투자한만큼의 결과를 얻기 힘들며 돈으로 사랑을 샀다한들 그 사람이 돈을 선택한거지 사랑을 했다고는 볼 수 없는 문제다.
하긴 그래도 돈이 많으면 세상 편하긴 하지.
잠시 돈 때문에 시아도 내버려둔채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앞을 쳐다봤는데 상우 녀석이 막 헤어샵을 나오려하고 있었지만 그 27번 언니에게 붙잡혀 명함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대단해요~정상우’ 상우는 헤어샵을 간신히 빠져나오며 지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아유.. 저 누나 지나치게 친절하네.”
“그거야. 니가 꽃미소를 날려대니까 그러지.”
“앞으로는 자제 좀 해야지..원.”
“자~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이제 천 사러 같이 가는거 아니였어?”
“그건 맨~나중에.”
“야..아까랑 이야기가 틀린데..?”
나는 상우의 찡그린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아를 이끌고 백화점과 네일아트샵, 교복상점을 돌아다니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바꿔나가고 있었다. 상우는 긴 쇼핑에 거의 넋 나간듯이 무의미하게 쫓아다니다가도 가끔 괜찮은 옷과 악세서리를 보면 추천을 해주곤 했다. 녀석의 센스는 전문가 못지않았지만 상우가 추천해주는 것들은 고등학교에서 절대 할 수 없다는 거. 그래서 대다수의 추천을 무시했다는 거.
우리는 마지막으로 교복점 쇼윈도에 서서 시아의 모습을 점검했다. 시아는 자신의 모습이 쑥스러운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본 시아는 왠지 흐뭇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하루만에 이 정도 변신이면 뭐 나쁘진 않지..?”
내 물음에 상우가 대답했다.
“가격대비 알찬 변신이네.”
“흠~ 역시. 발품을 파니까.”
나는 연신 즐거운 표정으로 시아 손을 붙잡고 흔들며 거리를 걸었고 상우는 조용히 우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
“자~ 오늘 모두들 수고 했어~”
나는 시아와 상우를 번갈아보고는 미소 지으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냈고 시아는 항상 놀라 두 눈을 똥그랗게 뜨는 것 대신 반달모양으로 웃으며 화답했다. 상우는 여전히 지쳐있고 심심한 표정이었지만.
“야. 너 집에는 혼자 갈 수 있지?”
뜬금없이 조용하던 상우는 오랜만에 웃고 있는 시아 녀석에게 말을 걸었고 시아는 말 대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침 들어오는 녹색버스 하나. 시아는 버스정류장으로 가까워오는 버스를 유심히 보더니 지갑을 꺼내들었다. 아마도 저 버스를 타야되는 모양이었다.
“언니.. 저 버스 왔어요. 오늘...감사했어요... 상우..너도 고마워.”
아이구. 이쁜 것. 이제는 제법 잘 웃는 녀석이 내심 속으로 뿌듯했다.
“그래. 잘 가~ 내일 옥상에서 보자~”
상우녀석은 시아에게 인사를 하는 듯 마는 듯 했지만 나는 잘가란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라타는 시아를 향해 인사를 했다. 시아가 탄 버스가 출발하고 버스정류장에 우리 둘만 남자 상우가 나에게 물었다.
“옥상에서 보자니..?”
“아.. 나 점심 옥상에서 먹어.”
“뭐? 급식실에서 안 먹고?”
“그런 일이 있네요~ 많이 알면 다쳐.”
“뭘 다쳐. 혹시 밥 먹을때도 정말 왕따 당하는거야?”
“아냐. 내가 원해서 올라간거야. 왜 이래. 물론 처음엔 밥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서 올라가긴 했지만 이제는 옥상이 편해.”
“생각보다 서럽게 학교생활 했구나..?”
“나..참.. 아니라니까. 집에나 가~”
“뭘 집에나 가~”
“집에 안 가?”
“야!! 니 비즈니스 다 끝났다고 손 떼시겠다..?”
“뭘.”
“학교축제 천 사러가야하지 않을까...우리..?”
“아..이런. 시아 변한 모습이 뿌듯해서 니가 여기 왜 있었는지 잊었네..”
“쇼핑 진짜 지겨운데 간신히 따라다닌거거든. 오늘 짐 니가 다 들어.”
상우는 말을 마친 후 나를 끌고 버스정류장을 빠져나와 시내 거리를 잠깐 걷다가 정체모를 이벤트 상점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작은 플랜카드용 천을 크기별로 구입했다. 무려 50장이나..
“들어.”
“야....이걸 다? 진짜?”
“그럼. 가짜야..? 나 정말 오늘 힘 하나도 없어. 헤어샵에서 맡은 약냄새.. 백화점 사람들한테 치이고.. 먼지에..머리 아파 죽을 맛이야.”
“이 녀석이~ 누나.. 얼마전에 쓰러졌던거 기억 안나~?”
“그것도 다 허약해서 그래. 운동해.”
표정을 보니 순간 저 녀석의 말이 장난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이..매정한 자식.
나는 정말로 천 50개를 어깨에 들쳐 매고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이런 채로 버스에 타면 내 주변사람들 여럿 치고 다닐 것 같아서 상우에게 말했다.
“택시...”
“어..?”
“제발 택시..타자.”
“안 그래도 그럴려고 했어. 니가 옆에서 무거운거 들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드니까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쳐다보네. 니가 짐을 드니까 택시 서비스는 내가 제공하지~”
그녀석이 택시를 타야겠다는 이유가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뭐 태워주겠다는데~ 무슨이유든 상관없이 좋았고결국 택시를 이용함으로써 난 별로 힘 안드는 짐꾼이되었다. 잠시 후 다시 학교에 도착했고 상우에게 천을 들려주고는 나는 타고 있는 택시를 계속 타고 집에 곧장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안 내려?”
“나는 집에 가야지.”
“학교까지 배달 서비스 해.”
“그러다 멀쩡한 모습 애들한테 들키면 곤란해~”
“애들이 아니라 현우선배겠지.”
“뭐 하여튼.”
“그럼 봐 줄테니까 아까 했던 약속이나 잘 기억하고 있어.”
내가 무슨 약속을 했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상우녀석은 택시 문을 닫아버렸고 50장의 천을 가뿐히 든 채 학교로 들어가버렸다.
택시에 혼자 남은 나는 생각대로 집으로 향했고 아까 현금지급기에서 뽑았던 돈을..생각하며 버스를 탈껄 그랬나 후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차는 별로 밀리지 않았고 생각보다는 적은 돈을 내고 집 앞에 내렸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차세주!”
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곳에는 뜻밖에 현우가...! 이런.
33
“어..현우야..어떻게..?”
“너 아프다기에 회장 권력 좀 남용해서 주소 좀 알아냈지. 집에 아무도 없는 거 같아서 앞에서 좀 기다렸어.”
“아..”
“아프다는 녀석이 이제 집에 와? 혹시 병원 갔다 오는 거야?”
나를 걱정하는 현우를 보니.. 거짓말을 한게 너무나 찔려 선뜻 아무대답도 못하고 있는 나였다.
‘뭐라고 말하나..’
내가 곤란해하며 아무말 안하고 있자 현우가 무언가를 눈치챈듯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병원..말고 딴 곳..?”
어떤 말이 하얀 거짓말이고 어떤 말이 검은 거짓말인지. 기준 따위는 몰랐지만 왠지 아프다는 말은 계속 할 수 없었다.
“현우야.. 채경이한테 나 오늘 아파서 집에 간다고..들었지? 근데.. 그게 말야.. 사실은..”
난 그렇게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서 현우에게 왜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한 변명 같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야 했다. 오늘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있었던 일과 앞으로 내가 어떤 짐을 짊어졌는지에 대해 말이다. 현우 역시 상우와 같이 꽤나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한참을 잘 듣고 있더니 현우는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와 아파트 단지 옆 놀이터 벤치에서 내 손목을 놓아 주었다.
“입구에서 계속 서서 이야기하면 힘들잖아. 앉아.”
“아....”
나는 정신없이 이야기만 하느라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현우는 내가 서서 이야기 했던 것이 계속 신경쓰였던 모양이었다.
“여튼..그렇게 된 일이었어..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됐는데 괜히 거짓말 했네..미안.”
“뭐......안 아프다니까..다행이긴 한데. 거짓말이라니까 왠지 기분이 상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뭐........ 이 오라버니가 특별히 용서하겠노라.”
풋..오라버니..
“그래서 당장 내일은 어떻게 할꺼야..?”
“아직 생각 못 했어. 시아보고 무조건 며칠 동안은 피해 다니라고 하긴 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영인이가 시아 교실로 찾아가면 곤란해지는 거지.”
“..... 요새 학교도 그런 폭력 비슷한 문제에 민감해서 영인이도 맘 놓고 시아교실 맘대로 드나들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며칠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시 계속은 불가능해.”
“그 안에..해결책을 찾아야 할 텐데. 시아가 잘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너는 니 걱정은 안 하냐?”
“내 걱정 왜?”
“요새... 학교에 소문이 돈다더라. 누구 입에서 퍼져나갔는지는 모르겠는데 너와 내가 친하게 지낸다고 소곤대는 애들이 많다더라구. 오늘 농구하는데 친구녀석이 묻더라. 너와 무슨 사이냐고.. 안 그래도 영인이 때문에 학교에서 너한테 말거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이 학교 참 희한하네. 남자가 너 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애들이 너를 감시하나..?”
“그건 내가 묻고 싶다.”
혹시나 내가 여자고등학교만을 다녀서 남녀공학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긴 내가 대학을 다녔을 때 잘나가던 선배님들이 지나가면 나도 힐끔 쳐다보며 그런 선배의 소문을 듣는 것을 은근히 즐기곤 했었지. 고등학생들이 더하면 더 했지..덜하진 않을 테니. 당연한 건가..
“차세주.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문자 보내. 알았지?”
“그으래~”
“아참.. 그리고 이거.”
현우는 교복 와이셔츠에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하나 내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민서 핸드폰번호”
“??”
“너 쓰러지고 민서녀석도 걱정이 됐는지 아까 나한테 니 안부 물으면서 번호 주고 가더라. 전해달라면서.”
“아..그래? 잘 됐다. 안 그래도 그 녀석 역시 학교에서 말하긴 힘든 녀석이라 은근히 답답했었는데.”
나는 내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 민서 번호를 내 폰에 저장했고 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으려는 그때 현우가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괜찮네.”
“뭐가?”
“방과 후 늦은 데이트.”
현우녀석의 말에 3년 후 현우의 대학생 때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왠지 모를 웃음이 나왔고 옆에 있는 현우를 쳐다보며 한마디를 해주려 했는데 오늘따라 현우의 옆모습이 긴 시간 쇼핑을 한 나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회장이라는건 역시..생각보다 많은 일을 떠맡아야하는 자리였는지 녀석이 해가 거의 저물어가는 벤치에 앉아 간신히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위해 늘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십대는 십대만의 생각 방정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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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쟤...윤시아 아니야?”
“어머어머어머... 바람들었나..? 확 바뀌었네?”
“그래도 공식왕따는 공식왕따지.”
“근데.. 쟤 저렇게.. 귀여운 스타일이었나?”
“귀엽긴.. 좀 달라진 거 가지구”
“아냐. 아냐..뭐가 많이 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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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쉬는 시간 틈틈이 시아를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했다. 요새 만화책이나 영화에서 보면 왕따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던데 거기에서 힌트를 얻을까도 했었지만 워낙 폭력적이어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시아가 그런 고난이도의 액션을 소화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건 운동신경 좀 있는 남자애들이 카메라 각도빨을 좀 받아 완성되는.. 시아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시간은 흘러
또 흘러
어느덧 공포의 점심시간.
나와 채경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눈이 마주쳤고 그것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점심시간이라고 즐거워서 옥상엘 갔을텐데 오늘은 왠지..쫓기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불안해서 계속 옥상엘 갈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예전에 민서가 민서 친구들과 함께 갔던.. 학교 매점 근처의 다른 사람의 소유지라던 작은 동산이 생각났고 채경이과 시아를 데리고 그 장소로 향했다.
“전학 온 니가 이런 곳을 알고 있었어?”
채경이가 신기한 듯이 나에게 물었다.
“저번에 민서 우연히 뒤 밟다가 알게 된 곳인데 사실은 학교 땅이 아니라긴 하더라. 그래도 학교와 통해 있으니.”
“영인이 애들은 여기 모르겠지..?”
“적어도 우리가 여기 있을거란 생각은 못하겠지.”
이렇게해서 민서에 의해 공식왕따가 된 세 여인네들은 녹색의 작은 동산에서 신문지로 잡초들을 뭉개버리고 앉은 다음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시아야. 오늘 교실에 들어갔는데 뭔 일 없었어?”
“아뇨..별 일은 없었어요.”
“그래? 이상하네~ 한 눈에 들어 올 정도로 변했는데 말이야. 안 그래 채경아?”
“난 아까보고 완전 까무러치는 줄 알았잖아. 깜짝 놀래가지고.”
시아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뭘 좀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말을 했다.
“오늘 애들이 좀 쳐다보는 것 같긴 했어요. 소곤대는 거 같기도 했고.. 근데 그게 다예요.”
“뭐....애들도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겠지.”
“네”
나는 시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고 시아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크게 실망하거나 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대화와 함께한 점심이 저의 끝날 때 쯤 채경이 나에게 물었다.
“오늘도 피하긴 했는데.. 방과 후에 찾아오거나..뭐 그런 최악의 스토리는 아니겠지?”
“현우 말이..당장에 교실로 찾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던데.. 그러나..! 계속 피할 수만도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
“흠...”
“그래도 며칠이란 시간을 벌은 게 어디야. 시간을 벌었으니 유용하게 써야겠지?”
“어떻게?”
“기다려봐. 민서에게 여기 오라고 문자 먼저 보내고.”
“민서는 왜?”
“그럴 일이 있어.”
나는 어제 현우에게서 받아 저장한 민서 번호로 문자를 보내 민서를 이 동산으로 불렀다.
우리는 민서를 기다리는 동안 밥을 다 먹고 주변정리까지 하고 있었고 막 깔아놓은 신문지를 치울 때쯤 민서가 돌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이~ 어서와.”
나의 부름에 민서는 고개를 위로 들어 우리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돌계단을 다 올라 우리 앞에 다다랐다.
“무슨 일이야.”
민서는 무슨 일이냐며 나와 채경이 그리고 시아를 차례로 보았고 이 자리가 불편했는지 우리와 약간 떨어져 말을 걸어왔다. 하긴 나와는 친해졌다고해도 채경이와는 아직 자연스러운 사이가 아닐테고.. 시아는 핸드폰 찾을 때 한번 봤으니 어쩌면 얼굴을 까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공식왕따로 만들었던 장본인. 이민서.
“이민서 반갑구랴. 이 멤버들을 봐봐라~ 너 땜에 친목도모 한 번 잘하게 됐지~하하하하”
나는 서로 사이가 서먹할 녀석들사이에서 그저 웃었고 그게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는지 민서가 웃으며 이야기 했다.
“하여간....차세주 너 답다. 근데 정말 무슨 일인데..나를 여기로 부른거야?”
“민서야. 난 말이다. 니가 우리에게 안겨준 공식왕따 타이틀에 대한 보상으로다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
“..................?”
“저번에 이야기 했잖아. 영인이가 시아 찍은거. 그래서 말인데..”
“너... 결국에 ... 또..그냥 못 지나치고.”
“나도 일 크게 만든 책임이 좀 있고.. 알고 보면 너도 좀 일조 했어~ 그러니까 내 말은! 니가 좀 도와..”
“No"
"야..야..끝까지 들어보고나 거절해라~”
“들어보나마나 영인이 기집애랑 한판 떠 달라는거 아냐?”
“그런거 아니야.”
“그럼 뭐?”
34
“내가 오늘 쉬는시간에 완성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냥 넌 감정 넣어서 읽기만 하면 돼”
내 말에 민서뿐 아니라 채경과 시아 역시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표정이었고 당연히 내가 말을 안했으니 몰랐을 그 녀석들을 향해 당당히 내가 준비한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 안에 보이는 글씨들.. 나는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이거 예상 질문하고 모범 답안이야. 오늘 연습해보자고.”
내가 말을 마치자 민서는 황당하다는 듯이 바로 말을 내뱉었다.
“예상 질문?! 야! 무슨 이런데서 시험공부야. 지금 나한테 시험공부 도와달라는 거였어?”
“아니야. 아니야. 중간고사문제 아니라구~”
나는 민서가 이 종이를 중간고사 예상시험문제로 착각한 것도 재미있었거니와 그 명확한 거부반응도 볼만하게 신선했다.
“영인이가 말할 질문하고 그것에 따른 시아의 모범답안을 대충 정리한 거야.”
“뭐? 야..........이젠 별거에다가 공부 방법을 대입시킨다.”
“효과 있는건 다 해볼꺼야. 말리지 말라고~ 넌 그냥 질문을 실감나게 읽어주기만 해.”
그렇게 해서 민서는 영인이가 되어 예상질문을 말하고 시아는 답을 하는 우리의 두 번째 문제 해결방법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선 내가 먼저 말했다.
“자 1번.”
내 말에 민서가 1번을 대충 대충~읽기 시작했다.
“너...왜 요새 옥상에..안 올라...왔어....?”
“민서야.. 실감이 안 나잖아~ 영인이가 시아한테 화가 나서 엄청 째려보면서 하는 첫 번째 질문이란 말이다.”
“아..나.. 이건....뭐..연기수업도 아니고...”
민서는 내가 다시 감정을 넣어하라는 말에 투덜거렸지만 이내 투덜거림을 멈추고 내가 원하는대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야!! 너 왜 요새 옥상에 안 올라왔어!!! 간덩이가 부었구나.”
“자~ 다음 시아. 모법 답안 읽어봐~”
“죄송합니다. 바빴습니다.”
시아가 약간은 건조한 톤으로 대사를 말했고 그 대사를 들은 민서는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야. 차세주. 저게 모범 답안이야?”
“왜... 이상한가..?”
“야. 저게 무슨 모범 답안이야. 도발답안이지.”
“쉬는 시간에 급하게 만드느라고 날림으로 제작해서 그래. 어떻게 바꿀까?”
“왜 안 나왔냐고 소리치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바빠서 못 나갔다니.... 매우 건방지잖아. 저런 땐 요새 숙제를 못해서 선생님께 걸려 교무실에 붙잡혀 있었다든지.. 점심시간마다 화장실청소를 했다든지.. 그럴듯한 구체적인 이유를 대야한다고.”
“오호~~~~~~~이민서~ 괜찮은데.”
난 단순히 민서가 이 학교에서 영인이와 유일하게 대적하는 녀석이고 또한 시아에게 겁을 잘 줄 수 있을 만큼 카리스마가 있다고 느껴 시아가 그 카리스마를 극복하고 담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질문을 읽을 사람으로 녀석을 불렀던 것뿐이었는데 민서가 의외로 좋은 조언들도 많이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일석이조인걸~’
“자 다음 2번.”
“야. 뭐 가진 거 없어?”
“네..”
“왜 없는데..? 내가 다음번에 올라올 때 지갑 가져오라고 안 했어?”
“죄송합니다... 깜박했어요..”
민서는 두 번째 질문을 읽고 시아의 대답을 듣더니 나에게 말했다.
“영인이 이 자식 돈도 뺐어?”
“저번에 시아 시계 가져가길래 혹시나 해서 만들 질문이야.”
“..................이해 안 가네.......”
“왜?”
“내가 알기론 그 녀석 꽤 산다고 들었어. 후배들 돈 뺏을 정도로 궁한 녀석이 아닐텐데.. 이 정도로 유치하게 노는 것 까지는 몰랐네.”
“그래..? 미스터리네..”
“여튼 방금한 질문에는 답이 없어. 지갑 가져오는 걸 깜박했다고 해도 맞는 거고 돈을 줘도 액수가 적으면 맞는 거고 한번 주기 시작하면 계속 줘야하고 그래도 맞는 건 옵션이고 그런 거야.”
“이런.... 니가 보기엔 해결책 없고?”
“................재수 없게 찍힌 거고 .. 그렇게 된 이상 시아가 영인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계속 갈굼 당하는 거지. 해결책은 한번 대판 싸워서 이기든가 그냥 전학을 가던가”
“영인이녀석하고 어떻게 싸워야 이기는데?”
“흠...내가 볼 땐 시아라고 했던가..? 여튼 저 녀석은 싸워서는 절대 못 이겨.”
“그럼 결국엔 전학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거야?”
“모르지. 항상 예외라는 것도 있잖아.”
“그걸 언제 찾냐고~”
“현우.”
“뭐?”
“현우를 이용해~”
“무슨 소리야. 저번에 현우 때문에 영인이 더 화났다고 이야기 해 줬잖아.”
“남자 때문에 신분 상승한다는 이야기 알지? 영인이는 시아를 완전 물로 보고 있을텐데.. 현우가 시아와 잘 지낸다고 쳐보자. 물론 기분이야 나쁘고 이해는 안가겠지만 현우 눈치를 봐서라도 돈을 뺏거나 일방적으로 무시하지만은 않을 거야.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도 줄어들 거고. 이런 말 하는 거 나도 안 내키지만 현우녀석 학교에서의 이미지가 선생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워낙 좋다보니까 그런 현우와 친하게 지내는데.. 시아한테 도움 안 될 리가 있냐고..”
처음엔 민서가 뭘 잘 모르고 이야기 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영인이는 현우가 시아를 감싸주었을 때 굉장히 화를 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다시는 둘을 연관시키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민서의 말을 끝까지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흠...시아가 현우와 잘 지내서 생기는 부작용보다 얻는 이익이 더 크단 말이지...?..”
“물론 보통의 여학생이라면 현우와 잘 지낼 경우 시기와 질투에 시달릴..각오를 해야하겠지만 시아의 경우는 지금 상태가 왕따잖아. 오히려 역으로 왕따 탈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
“현우가 도와줄지도 의문이지만 왠지 시아녀석 스스로의 힘이 아닌 현우의 힘을 빌려 이 난관을 해결하는게 유쾌하지만은 않은데...현우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면서 도와줄 수 없는 노릇이잖아.”
“딱히 다른 좋은 방법이 없잖아?”
“휴......결국..누군가 나서서 대신 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
“몰라~ 난 그냥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준 것뿐이야. 질문 3번 마저 읽을까? 점심시간 슬슬 끝나가는데.”
“아..그래.”
민서는 나머지 질문 두어 개를 마저 읽었고 시아는 그에 따른 답을 했다. 갑자기 내가 시아를 훈련시키겠다고 만들었던 질문지가 의미 없이 느껴졌다. 며칠을 노력해서 시아를 바꾸어놓아도..소용없고.. 결국 현우녀석의 도움을 받으면.. 다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일까..
시아. 민서. 나와 채경은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쯤 동산에서 내려와 각자의 교실로 향했고 같은 반인 나와 채경이는 교실로 향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주야. 어떻게 할래..? 현우한테 도움 요청해 볼래...?”
“글세....안 내키는데도 별다른 방법이 또 없다보니..정말 그렇게 해야 하나?”
“물론 현우가 처음부터 도와줘서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면 시아는 다음번에 비슷한 일이 생겨도..또 누구가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하지만 난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번 민서의 제안이 꼭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
“학기 초에 니가 날 도와줬던 일 기억나? 니가 전학을 오지 않았었더라면 나 대신 니가 민서에게 가지 않았었더라면 나는 학교에 다니는 내내 즐거운 생활을 하지 못했을지 몰라. 물론 민서는 영인이와는 방식이 틀렸지만 그래도 난 학교 다니는 3년 내내 민서를 나쁘기만 하다고 오해하면서 지냈겠지. 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역할을 현우가 시아에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아...그렇구나.. 채경이는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현우가 시아를 도와줬을 경우 혹여나 올 수 있는 부작용과 근본적으로 시아가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또 안 좋을 일이 생기면 여전히 힘들지도 모를 시아를 생각한 반면에 채경은 나로 인해 본인이 민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처럼 시아도 현우가 도와줌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아 복잡했었던 반면 채경은 자신의 경험에 의한 좋은 면을 먼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채경이와 같이 교실에 도착 한 후에도 나의 책상에 앉아 혼자 중얼거렸다.
“이따가.. 도우미 활동할 때.. 현우에게 물어봐야하나..말아야하나...”
나는 뒤를 돌아 현우가 앉아 있을 자리를 쳐다보았고 마침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들고 있었던 현우와 눈이 마주쳤다. 현우는 나를 보더니 살짝 미소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 일분도 안 지났을 시간.
[내가 보고 싶었구나.
현우]
[-_-. <- 어이없는 표정이라네.]
[그렇다고 해주면 안 되냐?
오늘 옥상에 갈까 했는데.. 축제 준비에 바빠서 못 올라갔어.
옥상에서 무슨 일 없었지?
현우]
[오늘은 옥상 안 가고 다른 곳에서 점심 먹었어.
이따가 어제 못한 도우미 역할 확실히 할게.
그리고...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내줘.]
[.....할 말?
이야....데이트 신청을 드디어..?
현우]
오늘도 어김없이 5교시 국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는 바람에 문자를 끝까지 주고받지 못 하였고 천연덕스럽게 데이트라고 물어대는 현우가 의외의 내 부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보충수업까지 끝낸 시각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요새는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어서인지 5시가 되어도 예전만큼 어둑하지 않았고 짐을 챙겨 학생회실로 향했다. 학생회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응? 이게 무슨 맛있는 냄새지..?’
내 코끝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학생회실에 다가갈수록 진하게 느껴졌다. 먹는 본능을 매우 중요시하며 사는 나는 재빠르게 학생회실문을 열어젖혔다. 책상 위에는 L사의 햄버거와 콜라 여러 개가 놓여 있었고 축제의 총 담당자이신 학생주임선생님과 몇 몇의 학부모님들이 이야기하고 계셨다.
분위기를 보니 축제준비 때문에 저녁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누군가의 학부모가 준비한 일인 듯했다. 나도 당당히 도우미 자격으로서 그 곳에 있는 햄버거를 집으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머..? 세주 아니니?”
학생의 목소리는 아닌 듯 했지만 나의 이름이 불리는 소리로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엔 현우 어머니가 서 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세주도 방과 후에 축제 준비하는구나~ 그때 갑자기 쓰러져서 우리가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다구.”
“네. 간단한 빈혈이래요.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럼~ 잘 지냈지.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너희 정원 다녀 온 이후로 현우아빠가 자꾸만 정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해서 요새 정말 바빠졌다니까~”
“하하하..정말이요..? 아저씨는 나중에 집도 직접 짓고 싶어하실 것 같아요.”
“어머~ 세주가~ 딱 맞췄네. 시골에 땅 사서 집 짓고 가서 살겠다고 지금도 난리인데 뭘~”
할머니댁 정원으로 현우 가족을 초대한 이후 소탈한 성격의 현우 부모님과 많이 친해진 나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현우 어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시자 즐거운 맘에 신나게 이야기를 한 것뿐이었는데 현우 어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다시 햄버거를 집어 들 때 느낀 내 느낌은 왠지 주변 아이들이 날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저 햄버거와 콜라를 집었을 뿐이고 설마 그것 때문에 나를 쳐다볼까싶어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은 다음 햄버거로 내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현우 어머니 잘 알아?”
햄버거 채 반을 먹기도 전에 은설이가 내 앞에 앉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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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전에 한번 뵌 적이 있어서”
“왜..? 이야기 들어보니 너희 집에 현우 어머니가 가신거야?”
이 녀석은 저번에도 상우와 나 사이에 대해 관심이 많더니 현우 어머니와 내가 대화하는걸 얼마나 자세히 들었길래.. 이제는 현우와 관련된 일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번에 옥상에서 들어보니 영인이 친구와 이 녀석이 친한 것 같던데 말을 조심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뭐..특별한 일은 아니구 우리 할머니 댁에 현우 부모님이 잠깐 들리셨었어.”
“그러니까 왜..?”
“휴..그냥.. 현우 아버님이 우리 할아버지와 아는 사이라서.”
“그래?”
조심해서 말한다고 하긴 했는데.. 너무 많이 불었나.. 나는 불안한 마음에 말을 덧붙였다.
“나도 두 분이 아시는 건 모르던 일이었어.”
“여튼 그래서 현우와 학기 초부터 아는 사이였구나. 난 또 니들이 어떻게 알고 지내나 했네...”
나는 혹시나 채경이가 주변에 있으면 채경이에게 말을 시킴으로써 이 녀석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까 했었는데 채경이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은설이 녀석과 마주보며 햄버거를 먹게 되었다. 약간의 침묵이 지난 뒤 은설이가 내게 물었다.
“상우는 오늘 안 보이네..?”
“글세..”
“동생이라면서.. 잘 몰라? 친동생이 아니라서 그런가..?”
내가 딴 사람들과 조금 동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은설이라는 녀석은 조심해서 말해야 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내뱉는 중이었다. 상우 녀석에게 관심이 많아 처음부터 우리가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녀석이라 어쩐지 이 녀석이 내 주변에 있는게 달갑지 않았다. 물론 민서도 상우가 내가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민서는 내가 믿는 녀석이고 은설은 내가 모르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신뢰정도에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라 볼 수 있다.
“세주 너..혹시 상우 핸드폰 번호 아니?”
“어..?”
“따로 연락할 기회가 없어서 말야. 알려주면 좋겠는데.. 물론 나도 물어볼 수는 있는데. 너도 알지? 얼마 전에 상우 우리집에서 밥도 먹고 그랬었거든.”
아니...! 그렇게 잘 아는 사이면 번호를 벌써 알고 있을것이지 곤란하게 왜 나에게 물어보냔 말이다. 번호를 알려주면 상우녀석 분명히 날..가만 안둘 텐데.. 귀찮게 굴까봐 그냥 알려주까 싶어도 상우녀석의 반응이 두려워 선뜻 알려주지 못하는 나였다.
어쩌나..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설이가 손뼉을 치면서 나를 보고 웃는게 아닌가. 나는 저 애가 왜 저러나 싶어 콜라를 빨대로 빨아 먹다가 멈추었고 은설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나에게 한마디를 날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 니가 가르쳐 줄 필요 없겠다. 상우네반 비상연락망 찾아보면 나오겠네~아항~”
이야..이래나 저래나 저 스토커같은 집념으로 알아내긴 내는구나.. 상우 녀석 괴롭겠다. 그리고는 교실에 있는 우리 모두가 배를 거의 다 채웠을 때 쯤 축제에 관한 회의는 다시 시작되었다. 현우는 칠판 앞에서 열심히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늘은 저녁 이벤트인 무대 스케쥴을 결정할까 합니다. 2시쯤에 무대가 완성된다고 하니까요. 사람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하는 3시부터 가볍게 무대공연을 하고 어두워지는 시간 6시부터 화려한 공연을 했으면 합니다. 낮 시간은 학교 연주 동아리나 합창동아리의 공연을 해도 괜찮을 것 같구요. 저녁시간 때는 저번에 학년별로 했던 오디션에 뽑힌 친구들이 춤과 노래를 추는 순서를 마련했는데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더 첨가를 했으면 하는데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세요.”
축제를 일주일도 안 되게 남겨놓고 회의는 거의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오디션을 해서 참가자도 다 뽑았고 동아리 공연도 준비되어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회의 중간에 들어온 채경이와 나, 그리고 몇 몇 아이들은 어제 상우가 사 온 천으로 몰려들어 각자 개성에 맞게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넣어 안내도와 공연에 맞는 플랜카드를 만들었고 이것만하는데도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다들 집에 가자~”
어떤 한 녀석의 외침에 책상에서, 바닥에서, 의자에서 나름대로의 장소를 찾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녀석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서서히 일어났고 서로 자신의 플랜카드가 볼 만하다며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해댔다.
나도 슬슬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플랜카드를 부회장인 은설이에게 건네준 뒤 다른 아이들처럼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때 현우가 내 뒷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세주야. 너 어제 빠졌잖아. 넌 한 장 더 그려.”
헉. 황당함이 파도되어 나에게 밀려왔지만 애들도 있는데다가.. 요새 소문도 있다고하니 현우녀석에게 화를 내는 것조차 친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는 나였다.
“회장.. 지금 시간도 늦었고요..하하하하하하..”
“안 돼. 봐주면 다른 애들도 자꾸 빠져서”
현우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가방을 자신이 집어 들고는 다시 교실 책상 위에 떡 하니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채경이는 나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웃으며 남기고 떠나갔고 나는 눈에 초점이 거의 없는 상태로 책상에 천 하나만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릴 의욕 하나 없이 앉아 있었다.
‘현우 이 녀석.. 아는 사람끼리 더 부려먹고 있어.’
내가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앉아 있을동안 어느덧 학생회 교실에는 나와 현우만이 남게 되었고 현우는 나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야. 눈치가 아주....0.5단이야.”
“무슨 소리야? 나머지 일이나 시키는 악덕 회장이.”
“아까 할 말 있다면서 시간 내달라고했던 사람이 누군데 시간을 만들어줘도 몰라요.”
“아..! 그런거였어?”
“으이구.”
나이가 들어도 늘지 않는 나의 눈치스킬.
“미안. 난 또 진짜 어제 못한 일시키는 줄 알고~”
“축제 준비도 거의 끝나 가는데 무슨 일을 또 시켜. 오늘 그림 다 그렸으면 됐지. 자~ 그럼 할 이야기를 기대해 볼까..?”
“아..그게..”
현우는 내가 앉은 책상 맞은편에 의자를 가져와 앉고서는 웃으며 시선을 나에게로 향했다.
“왜..? 뭐..심각한 거야..?”
“아니..꼭 그런건 아니구... 내가 어제 말했던 시아 이야기 있잖아..”
“아..뭐야..난 또 다른거.. 기대했네.. 근데 그게 왜?”
“내가 시아를 안 좋은 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노력을 하긴 했는데.. 이미 아이들에게 박혀 있는 시선을 한 번에 바뀌기가 쉽지 않고.. 영인이 녀석은 워낙 시아에게는 벅찬 상대라..”
“그래서...?”
“난 니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내가..? 어떻게..?”
“이런 말 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시아와 친하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오늘 민서와 채경이와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최대한 거르고 걸러 현우가 잘 납득을 할 수 있게 부탁을 하는 말투로 이야기 했다.
“.........................이런..이유로 해서..”
결론을 이야기하려던 찰나 현우가 냉정한 말투로 내 말을 딱 끊으며 말해왔다.
“그러니까 세주 니 말은,
내가 시아와 사겼으면 좋겠다는 말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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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뭐..?
현우의 입에서 사귄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현우를 다시 쳐다보았다.. 내가 현우에게 한 부탁이 그런 부탁이었던가..? 그제서야 나는 내가 현우에게 말한 일이 현우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아니..꼭 사귀라는 의미는 아니었어. 내 뜻은 약간의 보호..나..책임감..정도.?”
“약간의 보호..?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게 되는 일이 약간으로 될까..?
적어도 영인이 녀석에게서 벗어나게 하려면
나를 처음부터 몰랐다거나 아예 사귀는 사이거나..
어설프게 보호했다가 시아라는 녀석만 더 곤란해질텐데..?
그래도 내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시아를 좋아하던 말던 책임지라는 말같이 들리는데.....?”
“아.... 미안.... 니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어.. 당장 시아녀석 상황만 생각하느라..”
“니가 그럼 그렇지..휴...”
민서가 현우를 이용하라는 말이 난 그저 현우가 시아를 감싸주면 해결되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되새겨보니 그 말은 사귄다는 말과 별로 다를바 없는 것이었다.
아~이런.... 내가 잠깐 생각을 하느라 말을 멈춘사이 현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커튼을 걷고 문을 열며 운동장 쪽을 바라보는 듯 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멀리 창밖을 보며 혼잣말도 아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아니게 비교적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상관도 없는 사람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고....휴..”
나를 바라보며 한 말은 아니었지만 왜 내가... 미안한 마음에 앞서..씁쓸한 기분은 또 뭔지..알 수 없는 일..이었다.
“차세주..”
“어..?”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아..어..”
창밖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현우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며 집에 데려다 준다는 말을 건냈고 집에 가는 동안 내내도 말 없이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걷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질 쯤이었다. 집 근처에 아파트 입구에 거의 도착하자 현우가 나를 향해 뒤돌며 말을 했다.
“그래. 쉽게 생각하면 남 돕겠다는데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근데 너에게서 들으니까 마음이 쓰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확실히 해두는건데.. 내가 너를 너무 몰랐지... 눈치 0.5단인거 알았으면..휴..
잘 자. 내일 보자. 니가 원하는대로만 하는 학생회장 간다~”
그리고 내일. 엄청나게 빠른속도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야야야야야!! 너 그 소문 들었어?”
“뭐? 뭔 소문?”
“어떤 1학년 여자애랑 현우가 사귄데!!”
“설마~”
“진짜라니까! 나 방금 둘이 같이 있는것도 보고 왔는데?”
“여자친구들은 원래 많았잖아..현우가~”
“친구가 아니라 사귀는 사이라구! 특종이라니까~”
“진짜야?!”
정확히 지금 시각은 4시. 아침엔 아무일도 없이 평소대로 잠잠하던 학교가 갑자기 현우의 이야기로 뒤집혔다. 화장실에 가도, 복도를 지나다녀도, 교실에서도 현우의 스캔들은 내 귀를 쫒아오는 듯이 따라다녔고 생각보다 엄청난 효과에 어안이 벙벙해져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주야. 어떻게 된거야..? 니가 정말 현우에게 부탁이라도 한거야?”
교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향해 채경이가 다가와 물었다.
“아..글세.. 현우에게 말을 하긴 했는데 뭐..이 정도일 줄은..하하하..”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께서도 현우여자친구가 화제가 되는 모양이야. 현우녀석 생각보다 영향력이..좋네. 덕분에 시아는 왕따 한번에 탈출하겠는데~”
“뭐 그럼 다행이고..”
확실히 내가 원하던대로 된 일이었고 원하는 목적도 이루어졌는데 생각만큼 마음이 시원하지 않은 나였다..뭐지..? 역시 이래서 남의 일엔 함부로 끼어들면 안된다니까~쩝..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그저 맘 편하게 오늘 공부할 과목의 교과서와 문제집을 챙겨 가방에 넣고 있는데 책상 위로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툭’
누가..보낸거지..? 처음 보는 여자애..?
“??”
“복도에서 어떤 애가 너한테 이거 전해달라더라~”
“아~그랬구나.. 고마워~”
쪽지..?
훗..내가 또 고딩때 쪽지 진짜 많이 썼었지. 푸하하하 아~ 수업시간에 몰래 보내는거 진짜 잼있었는데~ 고등학교때의 정겨운 추억을 떠올리며 쪽지를 열어보았는데 그 쪽지의 내용은 짧고 간단했으며 허무했다.
{4시10분 옥상에서.}
옆에서 있던 채경이나 쪽지를 보자 나에게 한마디를 건냈다.
“뭐야~ 너도 러브라인이라도 있는거야?”
“그런거 아냐~ 쪽지 내용 봐봐. 살벌하잖아. 하하하.”
나는 쪽지를 봐도 된다며 채경이에게 쪽지를 건냈고 쪽지를 본 채경이는 아까의 장난기 어린 눈빛에서 180도로 바뀌어 나에게 말했다.
“뭐야...누가 보냈는지도 모르고..이거 좀 위험한거 아냐??”
“장난친거 아님~ 뭐 진짜 위험한걸 수도 있고~”
“안 가는게 좋겠어..”
“뭘~ 다른 중요한 문제 일수도 있고~ 의외로 좋은거 일수도 있고.”
“...............그래서..가겠다구?”
“올라가봤다가 아니면 그냥 내려오면 되지. 스터디 그룹도 해야하고.
오늘 빠지면 현우 그 녀석 또 다음날 날 들볶을텐데~”
나는 시계를 보고 이미 4시 10분이 지났다는걸 깨달은 뒤 책 챙기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경이 녀석이 걱정하는 눈빛에 나는 밝은 미소로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고 아무 생각없이 옥상으로 올라 갔다.
‘달칵’
매번 아무도 없는 옥상에 혼자 올라 점심을 먹었던 나였는데 누군가를 보기위해 옥상에 오른것은 처음이 아닌가..? 옥상문을 천천히 열고 누가 불렀을까를 내심 궁금해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낯이 익은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니가 차세주?”
37
“어..?”
지금 내 앞에 서있는 녀석들은 내가 옥상에서 가끔씩 보아오던 그러나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었던 영인이 패거리들이었다. 영인이 친구들은 나에게 볼 일이 없었던 듯 했고 영인이 녀석만이 내게로 다가와 말을 건냈다.
“전학 왔다며?”
“아..어.”
“현우와 집안끼리 아는 사이라며? 친하겠네?”
“어..?!”
순간 어제인가..? 아님 이틀전이었던가..은설이 녀석이 나에게 꼬치꼬치 깨묻던 일이 생각이 났다..이런..그새 불었군.
“아..뭐 그런셈이지.”
내 대답을 듣고 영인이라는 녀석은 가볍게 웃어주고는 말을 계속 해댔다.
“전학왔으니 이쪽 사정 잘 모르겠네. 하긴 그러니까 민서 기집애한테 찍혔겠지. 소문엔 전따라며. 뭐 그건 그렇고. 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뭐..를?”
서론, 본론 제외하고 결론부터 묻는 영인이라는 녀석이 황당해 어이없다는 듯이 나는 그 녀석에게 되물었다.
“오늘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은 스캔들.”
“.............?”
“현우랑 시아 사귀는거 말야!”
허...나 참..어이가 없어서.
시아 녀석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약간 상식을 벗어나는 녀석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집안끼리 알고 있으면 내가 현우의 모든걸 다 알고 있을거라는 듯이 나에게 무언가 굉장한 대답을 기대하는 듯 했고 물론 내가 현우에게 시아를 부탁한다고 하긴 했지만 영인이 요 녀석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 그거에대해서 아는게 없는데..”
“학교에서 꽤나 현우와 친하게 지낸다는 소리가 있던데..?”
“현우와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가 어디 한 두명이겠어?”
되받아치는 내 물음에 본인이 생각해도 그건 맞는 모양이었던지 잠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는 영인이 녀석이 눈에 보였다. 고작 이런 일 물어보려고..나 참..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사실 나도 현우에게 시아를 부탁하긴 했지만 이렇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소문이 학교전체를 떠돌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알고보면 정말 나는 아는게 없다. 시아에게 ‘현우에게 이런부탁을 해서 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미처 이야기를 해주기도 전에 퍼진소문이라 황당한건 나도 마찬가지랄까.. 나는 영인이 녀석을 뒤로하고 옥상을 빠져나가려 몸을 뒤로 돌렸고 그때 영인이 녀석이 내 어깨를 잡았다.
“현우 일은 그렇다 치고 민서한테는 왜 찍혔어?”
허..대답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반항을 좀 했어.”
나는 자세히 이야기하기도, 사실대로 말하기도 귀찮은 마음에 대충 이야기를 하고 옥상을 빠져나갈 생각이었으나 영인이 이 녀석은 생각보다 스토커 수준의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고..
“하긴, 니가 전학와서 뭘 모르고 그랬겠지. 어떻게 무슨 일로?”
“기억이 안 나는데..”
“허..야.. 그게 말이 돼나? 대답이 성의 너무 없는거 아냐? 니가 보기에 나도 만만한 녀석은 아닐텐데..?”
“............”
“야..너. 현우 친구라길래 최대한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는 거야. 민서한테 찍힌 애들치고 편안하게 학교 생활하는 녀석 없거든..? 생각보다 너 좀 건방지다?!”
아..혈압...
생각해보니 민서야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녀석이라 그 시간들을 견뎌왔다지만 영인이란 녀석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이 곳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늘 현우의 스캔들로 정신없었던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이 녀석에게 옥상으로 불려와서 고작 듣는 소리가 건방지다는 둥..성의 없다는 둥.. 나도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
영인이 뒤에서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는 영인이 녀석 친구들을 보니 내가 잘못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또 그런 왕 배짱은 없지.. 이 나이에 몸 생각도 좀 하고..하하하..
“아..그렇게 들렸으면 미안. 내가 오늘 스터디그룹 때문에 바빠서 말야.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스터디 그룹? 방과후에 공부하는거? 그거 현우도 하지 않아?”
“응 하지...아마도..?”
“시아는..?”
“안 할껄...?”
“도대체 둘이 어떻게 눈 맞은거지..진짜!”
영인이 녀석은 딱히 나를 향해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으며 자기 분에 못 이겨 혼자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언제까지 이걸 받아주고 있어야 되냐고.. 나는 순간 욱하는 마음에 아까의 조심하자는 마음가짐은 어디다 내다버리고 영인이 녀석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궁금하면 직접 물어 보는건 어때?”
“뭐? 야..차세주라고 했었지? 너 어지간히 웃긴다. 내가 직접 물어볼 수 있었으면 너 같은 놈하고 짜증나게 왜 상대를 하고 있겠냐고.”
어쭈.. 내가 할 말이다..임마.
나야말로 짜증 지대로다~앙. 하지만 녀석은 오늘 현우일로 열이 받은 상태에서 나를 홧김에 부른 것 같았고 내가 열받은 녀석에서 기름까지 부은 격이 됐는지 녀석의 분위기는 왠지 딱..화풀이를 나에게 할 것 처럼 보였다.불쌍한 차세주..에라이..
“야..야.. 말을 해 말을~ 내가 왜 너 같은 같지도 않은 애를 상대하고 있겠냐고~ 내가 현우 녀석 좋아해서 이러는 것처럼 보이냐? 내가 너 같은 녀석에게 내 개인적인 것까지 설명하면서 물어봐야겠냐고~어이없게! 안 그래?”
영인이녀석은 아예 작정을 하고 나를 잡아 먹을듯이 한발짝 한발짝 다가오며 말을 쏟아내고 있었고 나는 뒤로 물러설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덜컥’
옥상문이 열리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어이!..........!”
나를 부르는지 아니면 영인이녀석을 부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짧게 ‘어이’를 부르며 이쪽으로 오는 상우가 보였다.
“여기서 뭐하냐? 차세주”
상우는 천천히 우리쪽으로 걸어오면서 나를 보자마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아줌마는 처음보는 얼굴인데..?”
아줌마란 소리에 영인이녀석이 기분이 상했는지 비웃음을 치며 상우에게 말을 했다.
“앤 또 뭐야. 나는 그냥 이야기하는 중이거든? 상관없으면 꺼져.”
“상관없는지 있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
“뭐?”
“아..다 귀찮고 차세주 내가 데려가야하니까 할 말 있으면 백 만년 후에 하던가.”
영인이녀석은 상우의 등장뿐만아니라 이 녀석의 거침없는 태도에 어이가 없는 듯 말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는지 상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니가 저 녀석의 뭐라도 돼? 어려움에 처한 여자친구 구하러 올 꼴같이. 웃기고 있어 진짜..!”
“다시말해 그 이야기는 니가 어려움에 처할만한 짓을 차세주에게 했단 이야기같이 들리는데? 아까는 그냥 이야기한다며? 머리에 돌 굴러가겠네. 아줌마. 남자친구보다 더 한 사이니까 앞으로 그럼 알아서 조심하던가. 난 여자라고 아량 베풀어주거나 그런거 없어. 특히나 너 같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고 싼티난다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개념없는 아줌마들한테는 더더욱.”
“뭐...뭐...뭐...라..고..?”
나도 놀랬거니와 내가 놀란것은 둘째치고 영인이 녀석은 두 눈만 동그랗게 커진 채 말을 더듬으며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 상황을 어쩌나..눈치를 살피다가 상우녀석을 쳐다봤고 상우녀석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내 팔목을 잡고 옥상을 재빠르게 내려가 버렸다.
“야..야..야.. 놓고 가자. 팔 아프다. 여기 학교야. 챙피하게.”
“창피해? 나한테 팔목 잡히는게 창피해? 저런 같지도 않은 지지배한테 당하고 있는건 안 창피하고? 어?”
“소리 낮추고 팔목 놓고 이야기해. 나 옥상에 있는건 어떻게 알았어?”
“지금 그게 퍽이나 궁금하겠다.”
다행히 아이들이 학교를 거의 빠져나간 복도에서 상우와 나는 약간의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세주야!”
어..현우?
38
나는 여전히 상우에게 팔목이 잡혀져 있는채로 현우가 복도 저 끝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봐야했다. 스터디 그룹은 어쩌고 다들 어째서 여기에 있는건지..
“뭐야..? 무슨 일인데?”
현우는 다급히 나와 상우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듯 보였고 우리 쪽에 도착하자마자 무슨일이냐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상우녀석이 잡고 있는 내 팔목을 억지로 떼어내며 대충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 뭐~ 별일 아니야~”
“채경이 말이 너 옥상으로 불려갔다던데?”
“채경이....만났..어? 불려간건 아니고..뭐..잠깐 누구 만났어.”
“누구?”
“음..있어..그냥..뭐...그러니까..흠...”
순간적 애드리브에 강하다고 느꼈던 나조차도 일단 당황되니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왠만한 순간에도 늘 솔직한게 낫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영인이를 만났다고 하면 왜 만났냐..무슨 일 있었냐..등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상황이 오히려 안 좋아질까하는 마음에 절대 솔직히 대답은 못하고 그냥 말을 더듬는 나였다.
내가 말 더듬는 사이 나와 현우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상우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세주 누나 오늘 스터디 그룹 쉴께요. 마침 부모님과 저녁약속이 있는데 미리 가두는게 좋을것 같아서요.”
아까와는 다른 상우의 침착한 말투와 부모님의 이야기에 현우는 나에게 쏟아내려던 질문들을 멈추고 대신 상우를 바라보았다.
“휴..스터디 그룹은 하루쯤 쉬어도 괜찮아. 내가 묻는건 세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거였어.”
“누나를 보러 교실에 갔다가 우연히 채경이 누나를 만났고 저도 뒤늦게 듣고는 옥상에 올라가서 아는게 없습니다.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데 다음에 이야기 하시죠.”
“부모님과 약속 급한거 아니면 세주와 이야기 좀 했으면 하는데”
“다음에 하시죠.”
상우는 현우를 나에게 오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고 그런 상우의 행동에 현우는 화가 난 듯 했지만 억지로 행동하여 이 상황을 바꾸려고 까지는 행동하지 않았다. 잠시 복도바닥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그러나 무섭게 나와 상우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까지 모른척 해주길 바래..?
너희 둘 남매도 아니면서 계속 사람 바보 만들래!!!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여자친구로 생겼다고 하루 종일 온갖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기쁘지도 않은 축하 말 듣는 것도 한 두 번이야.
도우미 명단 받아들었을 때부터 남매 사이 아닐 줄 알면서
무슨 사연이 있겠지..말 안하고 싶은거겠지 참은 것도 한 두 번 이라고.
차세주 너 좋아하는거 정말이지..휴...젠장!”
알고 있었구나..
알고 있었어.
그래..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나는 할말이 없었다.
내 부탁이면 곤란해질걸 알면서도 들어주고 내편에 서 주었던 녀석에게
내가 한 행동들은 ....마음 아프게 했던 것들.
내가 차마 현우를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있자
상우가 현우를 향해 말을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누나를 통해서 들으시는게 좋겠지만
친동생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저고
어차피 정말 그렇게 될 일이고 해서
학교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배님께서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상우는 현우에게 말을 한 뒤 다시 내 팔목을 잡고 가려고 했고 그 모습을 본 현우는 상우와 내가 발을 떼기 전에 말을 했다.
“세주 너는 나한테 할 말 없니...?”
“......................”
“없....어?”
“...........”
“그래...”
처음부터 다 이야기 할껄..그랬나.. 시아 부탁도 다시 처음으로, 없던 일도 돌릴 수 있을까.. 내가 사실은 고등학생을 두 번 하는거라고 하면 절대 믿어주진 않겠지..
마음이 무척이나 답답해져 왔다. 나는 사실 예전에 상우가 말한 것처럼 현우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걸 수도 있었다. 마음 속 어디에선가..나보다 7살 어린 녀석, 그리고 나는 사실은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정말이지 언젠간 짠~ 하고 다시 25의 현실로 돌아가야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그럼 다시 나란 존재는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돌아갈텐데.. 너희들은 처음에 나를 몰랐던 것처럼 잘 살아갈텐데..
이미 현우는 사라지고 나는 현우와 질문에 대답을 못했을 때 그 자세 그대로, 상우는 복도 벽에 기대에 시선은 나를 향한 채 그렇게 몇 분을 더 있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꺼야..? 이럴꺼면 현우선배를 따라가서라도 상황을 설명하던가.”
“됐어..”
“현우선배 오늘 학교에서 화제의 인물로 장난아니던데.. 여자친구 생겼다고 해서 누나인줄 알았더니 그 때 헤어샾 같이 갔던 시아라는 1학년 기집애라며?”
“기집애가 뭐야...니 친구한테”
“걔가 왜 내 친구야. 뭐야.. 난 다른여자하고 사귄다길래 누나일에 참견하는것 같아 더 건방지게 굴었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사연이 있는거 같네...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원..”
“간단해. 별거 아냐..”
“그럼 말을 해주던가.”
“말로하면 길어..”
“뭐야.. 간단하다며”
“나... 술 사줘.”
“뭐..? 뭐..라고? 너.. 술도 마셔??”
“나 술 마셔도 되는 나이야.”
“18살이 술 마셔도 된다고 누가 그래?”
“누가 나더러 18살 이래! 그런 나이는 예전에 졸업했어. 무조건 오늘은 술을 먹어야겠어.”
“야..야..야..!!! 어디가!!”
나는 무작정 답답한 마음에 학교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 술집들이 즐비한 곳으로 갔다. 대학교 시절 학과 선후배들과 함께 자주 갔던 오뎅바가 눈에 보였고 반가운 마음에 그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술도 못하던 내가..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놀았던 곳.. 대학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의 미래에 대해 꿈꾸었던 곳.
어느새 상우녀석도 같이 따라오고 있었는지 내가 발길을 멈춘 곳에 같이 멈추고는 같이 오뎅바를 쳐다보며 나의 감상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설마.. 오뎅 먹고 싶어서 지하철타고 여기까지 엄청난 카리스마 풍기면서 온건 아니겠지..?”
“오뎅은 무슨.. 민증검사 하겠지..?”
“민증검사는 둘째 치고 우린 교복차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그렇구나..휴..”
“이 아줌마 진짜 위험한 아줌마네.. 따라와. 밤 늦게 이런데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어디 가는데? 나 술 먹고 싶다니까!”
“아 글쎄 알았다고~”
상우가 나를 인도한 곳은 정말 안전한 장소였으며 차마 술이 입으로 넘어갈것 같지 않은 상우의 집이었다.
“야..? 너희집에 왜?”
“아버지 드시는 와인하고 양주가 많아. 와서 실컷 먹어. 추하게 밖에서 헤롱대지 말고.”
“아저씨 들어오시면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모습 보여드리긴 싫거든..?”
“아버지 오늘 안 들어오시잖아.”
“뭐..?”
39
“왜? 몰랐어??”
“그럼..둘이서..?”
“그럼..??”
“아니..뭐..”
“가지가지해요~
위험해도 내가 위험하지. 은근히 기분나쁘네. 이거.
술 살 능력되면 밖에서 마시던가
난 그럼 들어갈테니까.”
“아..아..아냐. 야~ 내가 뭐라고 했다고 그래.
그럼 엄마한테 늦는다고 전화나 드려야겠네.”
“?? 국제전화를?”
“왠 국제전화?”
“아까부터 왠 헛소리하나 했더니만
우리 아버지하고 아줌마하고 일본간거 몰랐어?”
“뭐..?”
“나 원 참..
예전부터 집안일에 대해 아는게 없다 없다 했는데
진짜..집에서 내놨네 내놨어.
아줌마 바쁘신거야 하늘이 알지만
너는 .. 한가하면서 아는게 없어.”
“야. 그것도 엄마가 말을 해줘야 알지.
내가 혼자 어떻게 알아..!”
“알았어~ 알았어~”
“야.. 대답이 좀 ..귀찮다는 .. 어투다?”
그렇게 상우녀석과 나는 티격태격하며 그 녀석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저씨께서 우리 할아버지 제자라더니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예술적인 감각을 보여주기에 부족한 조그마한 앞 뜰을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서 본 집안 풍경은 남자 둘이 산다고 볼 수 없을만큼 깔끔하면서도 독특했다.
거실에는 깔끔한 모던풍의 그러나 포인트가 있는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주방은 길게 내려져 온 조명이 사치스럽지 않은 간단한 분위기의 바 같이 되어 있었다.
“아저씨 감각이 역시 남다르시구나..
저런 가구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입 한거야?”
“우리나라 제품들은 아니야.
그렇다고 비싼 것도 아니고
잘 돌아다녀보면 뭐~”
“꼭 니가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돈이야 아버지가 대셨지만
이 집 인테리어의 반은 내 손을 거쳐갔다고. 이 아줌마야.
미리 봐둬. 아버지와 아주머니 재혼하시면
어차피 여기와서 살아야 될텐데.”
“...............그렇구나.
뭐 모르던 일도 아니고 어디서 살면 어때.
밥 안 굶고 잘 살면 되겠지.”
“으이고..그 밥타령.
양주 못 마시지?”
“그건 맛 없더라.
맥주는 없을테고..와인 아무거나~”
“저기 진열대에 있으니 알아서 꺼내 드세요.
제가 술까지 대령해 드려야 하나요.
나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냉장고 뒤져서 안주도 만들어 놓으세요.”
“야..? 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손님이다~ 어?”
상우녀석은 내 말은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진열대에 있던 와인 하나와 냉장고를 뒤져 어린이 칼슘치즈를 찾아내고 말았다. 그래 이거 어디냐.
잔에 와인을 따르고 오랜만에 알콜이 몸에 퍼지는 걸 느끼면서 왠지 24살 때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며 샴페인을 터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지금의 모습. 복잡하고 황당하고 쉽지않은 시간이지만 생각해보면 결코 내 인생에 없었던 보너스의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민서도..현우도..상우도..채경이도..복잡해진 문제 속의 시아도.. 여러 일들 속에서도 난 지금 그들이 내 옆에 있는 것이 고마웠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나도 한 잔 달라니까..?”
“아 .. 그랬어? 너 나온지 몰랐어.”
“아까 현우선배 일 신경쓰여서 그런거 아냐?”
“아냐..뭐 이것저것..다.”
“오늘 학교에 도는 소문 말야. 넌 알고 있었어?”
“뭐..? 현우와 시아 이야기?”
“그래..”
“알았지. 내가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데..”
“무..슨 소리야?..”
나는 그간 녀석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하던 나의 공식왕따 스토리와 옥상에서의 나의 경험들.. 내가 현우에게 왜 그런 부탁을 하게 되었는지까지도 다 털어놓았다. 이야..속은 시원하네..
나의 이야기를 차분히 다 듣고 있던 상우가 내게 말했다.
“장난 아니네..하하..
저번에 헤어샾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네.”
“옥상에서 봤던 애가 내가 저번에 말했던 영인이라는 애였어.”
“그러니까 아직 영인이라는 애는
니가 시아를 도우려고 현우에게 부탁했다는건 모른다는거지..?”
“뭐..그렇지”
“다행이네..아까 딱 봐도 보통 성깔은 아니던데 여튼 피곤해~ 피곤해~
어떻게 피곤한 일만 몰고 다녀..너는.”
“내 말이..”
“그나저나 현우선배 속이 말이 아니겠는걸.... 이 둔팅이 아줌마 옆에 있으려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남의 일엔 팔 벗고 나서면서 본인 일엔 머리의 10%도 안 굴리는..”
“그만해~ 나도 다 알아 들어.”
“그래. 니가 무슨 남자친구야.
그냥 평생 이 동생이나 잘 챙기고 살어~”
“까분다. 그나저나..아까는 못 물어봤는데
왜 해외출장을 너희 아버지와 우리 엄마가 같이 가지?”
“아주머니 세미나에 우리아버지가 시간 비워 따라가신 걸껄?”
“..하하..봄날이시네. 딸은.. 이래저래~ 괴로운데.”
“조만간 조촐하게 양가 상견례 비슷한거 할지 모르겠어.
지금 분위기라면 정말 올 봄안에 재혼이 가능할지도..?”
“그렇게나 빠르게..? 지금이 4월초..인데 그럼 다음날 안으로?”
“뭐 어려운 일이야. 이미 몇 년을 보아온 사이고..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데.”
“그러고보니 할머니댁에서 봤던 사진말야..
그날 내가 쓰러져버려서 엄마에게 제대로 묻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넌 뭐 아는거 없어?”
“어렸을 때 좀 알고 지내던 사이다~ 또.. 부모님들이 친하게 지냈다~
또.. 또.. 또.. 없네. 뭐 간단하네.”
“그렇네.. 그러고보니 별거 아니네.
어렸을 때 부모님들끼리 친했다니 좀 신기하긴 하지만 말야.”
“내가 듣기론 너희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우리 아버지와 너희 어머니가
원래는 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라고 들었어.”
“정말..?”
“그때 당시 교수였던 너희 할아버지 밑에서 우리아버지가 조교로 일하고 있었고
너희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맘에 들어하셔서 너의 어머니께 소개시켜드렸다고
하던데.. 물론 그때 당시 우리 아버지가 여자친구가 있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지금의 우리 엄마와 결혼 하신거지.”
“지금의 우리 엄마..? 돌아가신게 아니였어..?”
“살아계셔. 한국와서 한 번 만나뵜어. 어제 축제 도우미 못했던게
어머니와 약속이 잡혀있어서 그랬던거고..”
“아..몰랐어..난 당연히 나처럼 돌아가신걸로 알고..”
“요새 뭐 이혼..흔하잖아..? 나도 처음부터 받아들이고 이해했던건 아냐. 그럴거면 애초부터 너희 어머니와 결혼하지 왜 이제와서 너희 어머니와 재혼을 하시겠다는건지 .. 화도 많이 났었지.. 이렇게 태연해지기까지..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아마 너에게 과거를 숨기신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꺼야.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것처럼 너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테니.. 아예 모르는게 낫잖아.
처음만난 사람들처럼.”
“.....................”
순간 어떤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어느 한쪽 부모가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재혼과 돌아가신 상태에서의 재혼 중 어느 것이 더 괴로운 것이지는 몰랐다.
다만.. 과거의 기억이 없는 나보다 과거의 모두의 보모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우가 나보다 더 괴로워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건강히 살아계시는데 이혼을 하고 예전부터 알던 사이의 아주머니와 결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 어땠을까.. 정말 아버지든 우리 엄마는 두 분 모두가 너무 밉지는 않았을까..
내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자 상우가 내 와인 잔을 치며 나를 생각에서부터 깨웠다.
“뭘 그리 깊게 생각해.
어차피 과거도 기억 못하면서 억지로 짜맞추지 말고
이왕에 결정난 일 편하게 생각해.”
“과거 기억 떠올리려고 한 거 아니야.
그냥 니가 기특해서 조금 존경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어....하하..”
“또 헛소리 한다~
여튼 우리아버지와 너희 어머니 결혼하는게 나한테는 이로운 걸지도 몰라~”
“어떤면에서?”
“양쪽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이혼 안 했을 우리 어린시절때는
너와 나를 결혼시킨다고 난 여자친구도 제대로 못 만났다고.”
“뭐..? 난 못 듣던 소리인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때 좋아하는 여자아이 생겼다고 집에 데려오면
세주보다 못하다고 다 못마땅해 하셨다고..
세상에 어느부모가 아들을 연상한테 장가보낼려고..어렸을때부터 쇄뇌교육을 시키다니..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혼이 꽤나 의미있는 일이지..하하하”
“하하하하..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말도 마...으휴..”
“그럼 너에게는 자유를 안겨준 부모님의 재혼이네~”
“그래..자유.. 얻었지..자유..
근데.. 막상 자유를 얻고 보니 자유스럽지 않네..”
“그게 무슨 소리야?”
“사실은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뭐를....?”
“너라는 존재가 내꺼라는 거.”
"..........!!"
40
밝은 형광등과는 달리 붉게 비춰주는 낮은 식탁의 조명이
우리가 마시고 있는 와인이
서로에게 솔직했던 이야기들이
나를 몽롱하게 했다.
상우가 하는 말에 의미를 찾기 위해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러니까..어려서부터 양가에서 알던 사이.
서로에게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이.
그러나 지금은 남매가 될 사이.
무언가 적당한 대답을 찾고 있는데
상우 녀석이 허탈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살짝 손가락으로 밀쳤고
혼잣말 비슷하게 말을 건냈다.
“으이고..또 심각해한다.
평생 꼬봉으로 둘려고 했는데 봐줬단 이야기였어..”
“..............”
“왜? 내 인기에
내 외모에
내 앞으로의 찬란한 가능성에 먹칠해도 유분수지
너 같은 아줌마와 엮이면 진짜 인생 괴로운거지.
음 그럼~”
“야..”
“왜?”
“너 나보다 몇 살 어린줄 알아?”
“한 살?”
“아냐..아니라고..”
“...? 무슨 소리야. 술 취했어?
고작 와인 한잔에?”
“8...열덟..eight..acht.."
"뭐야..뭐래는거야..
취했네 취했어..
내가 이래서 술 약한 사람들하고는 ..”
“이 누나 한 잔 더~!”
“들어가서 잠이나 자.
내일 학교 지각했다고 아침에 사람 혼 빼놓지 말고.”
“취해서 모든걸 솔직히 다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날 미쳤다고 할꺼야..
아무리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내가 정신이 나갈줄 알꺼야..그지..?
내가.. 내가..하하하하..
내가 지금 교복입고 있는거 정말 황당하다고 말하면
다들 날 비웃겠지..”
“......................”
“민서도..민서도.. 사실은 내가 예전부터 알던 녀석이었고
현우도 나한테 관심있어하는거 알았는데 그냥 모른척 했어..왜?
어리니까..나랑은 상관없는 과거의 애라니까..
갑자기 내 인생에 나타나서는 막..막..옆에 있었어..
하루아침에 재혼도 생각안하셨던 엄마가 재혼하신다고 하질 않나
너는 왜 뉴욕에서 와서 내 없던 인생에서...
내 과거엔 니가 없었던 말야..
사람 왜 복잡하게 해.. 나도 사람인데..
왜 두 번 살게 해..
좋은 사람들 만나게 해줘놓고.. 다시 돌아가면
다 소용없잖아. 너도 없고 현우도..민서도 없어져버릴꺼면서..
왜 불안하게 해.
나는..
난..”
“..............야...............
야.........
야...너.. 힘들었구나....
맨날 밝은척 온갖일에 참견하더니..”
졸린다..
‘푹’
“야.....? 차세주..?”
울컥하는 마음에 뭐라뭐라 이야기를 내뱉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다음일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아침.
“아...머리야..”
여전히 졸렸지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관계로다가..
눈을 떴는데 내가 낯선 방의 침대에서 교복을 입은 채로 자고 있었다.
아 맞다.
상우녀석 집에 와 있었지..
아..머리..
이래서 알콜분해능력 안되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안된다니까..으이구..
나는 이불을 걷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벽에 시계를 보았다.
7시..30분..??
30분..?
7시???
헉..
8시까지 학교도착해야 하잖아...
야~~이런.. 정상우 이 녀석!!
감히 안 깨워!
나는 방문을 열고 상우녀석을 찾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안방 침대에서 떡하니 여유롭게 자고 있는 녀석이었다.
“야~ 야~ 지금 7시 30분이야~”
“아...뭐야..”
“진짜..너 미쳤어? 멀쩡한 녀석이 나를 먼저 깨웠어야지..!”
“아..진짜...”
“빨리 일어나. 학교가게”
“축제..축제...”
“뭐라는거야.”
내가 상우의 말에는 상관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녀석을 계속 깨우자
처음에는 작은소리로 잠에 취해 중얼중얼 거리더니
안되겠는지 벌떡 일어나며 내 머리를 잡고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을 하는 녀석이었다.
“오늘 학교축제잖아!”
“그래서..?”
“아침 보충 없는거 몰라?”
“그래서..?”
“그럼 한시간 더 늦어도 되잖아!!”
“아..그렇구나~”
“아~ 그렇구나??
이 아줌마가 진짜..학교 조례시간에 맨날 조는거 아냐?
담탱이 말 좀 듣고 학교 다녀~”
“요새 정신이 제 정신이 아니라..흠흠..”
“어제 보니까 확실히 제 정신 아닌거 같긴 하더라. 너.”
“그럼 나 더 자러 간다~”
“감히 어딜..가?
다른 사람 잠 다 깨워놓고.”
잠을 더 자러 방을 나가려는 나를 잡고는 입 한쪽 꼬리를 올린채
약간은 비열하게 웃는 상우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설마..?
설마..?
헉..
설마..?
‘칙칙칙칙칙’
‘탁탁탁탁탁’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덜컥 덜컥 덜컥’
“뭐야..아침밥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야...거의 다 했거든..?
얻어먹는 주제에 말이 많아.”
녀석의 반강제적인 명령에 부엌에서 안되는 솜씨로 아침을 준비하는 나였다.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봤을때부터 알아봤어야 되는건데..참..나.
손에 물도 잘 안묻혀보고 자란 내가 ...으흑..
어제 와인을 먹고 내가 계속 상우를 괴롭혔다는 상우의 진술에
물론 믿지는 않지만 왠지 꺼림직해서 어쩔수 없이 아침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차세주~지각하겠다~ 언능해~”
“그러다가 다 태우는 수가 있어!”
“그까짓 콩나물국 끊이면서.
누가 들으면 한정식세트 내오는 줄 알겠네.”
아...얄미운 녀석..
누나한테..쩝.
내가..내가..!! 절대 주사가 있는 사람이 아닌데..
속고 있는것 같단 말이야..흠.
그렇게 어렵사리 처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였고
오히려 그 녀석보다는 내가 더 맛있게 먹으며 속을 해장한 뒤
우리는 다급히 택시를 타고 등교하게 되었다.
“그러게. 콩나물국 끓인다고 30분을 시간 끌더니만!”
“머리세팅한다고 10분을 거울에 앉아있던 녀석이 누구더라? 어?
그 자연스러운 머리가 드라이의 힘이라는걸 너를 사모하는 애들은
알긴 아는걸까?”
“글세. 뭐 알아도 날 여전히 좋아하지 않을까..?”
“에라이...”
택시에서 내려 학교 교문을 향해 상우와 나는 빠른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학교 축제라는 것을 주변의 모든 것이 아는것 마냥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본격적인 축제는 저녁부터라고 해도
어떻게들 아셨는지 낮부터 간단한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포장마차 아줌마에서부터 꽃파는 아저씨까지..
학교로 가는 등굣길의 주변은 축제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의 달라진 풍경들을 보느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상우가 바쁜 걸음 와중에도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넌 뭐 축제때 하는거 없어?”
“나? 도우미 했잖아. 뭐 계속 도와달라고하면 도와야지 뭐.”
“그런거 말고. 노래를 한다던지. 춤을 춘다던지.”
“다 늙어서 애들 축제에 무슨..”
“뭐..? 야.. 너도 고딩이거든?
하여간 차세주 어제부터 황당하기는..”
“어..? 내가 말이 헛나왔나보네 하하하하..”
나는 상우의 말을 바탕으로 확실히 내가 어제 약간의 헛소리를 하긴 했다는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저렇게 가볍게 넘기는걸보니
내가 아주 헛소리를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뭐..예를들어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왔다느니..대충 이런소리 말이다.
학년이 틀려 상우와 나는 학교 건물 바로 앞에서 헤어졌고
늘 그렇듯 이제는 아주 익숙하게 교실의 문을 열고
나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때마침 울려주는 전화벨 소리.
“여보세요..?
어..? 엄마..?
세상에.. 일본여행가면 간다고 나한테 이야기라도 해줬어야지.
상우 통해서 듣고 놀랬잖아.
그래..? 요새 내가 집에 들어와서 잠만 잤나..?
여튼 지금 교실 안이라 전화 오래 받기는 뭐한데..
무슨 말인데..
용건만 빨리 말해주세요. 어머니.
응? 안 들려.
응..? 뭐..?”
내가 전화를 받고 있는 교실은 축제 분위기로 산만하기는 했지만
전화통화를 못할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았고
국제전화를 해서 통화음질이 안 좋아서 그런건지 왠지 엄마의 목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리지 않아 나는 계속 하던 말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며 되물었다.
그리고 들리는 한 마디에....나는..
“뭐...?
프로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