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작곡에 얽힌 사연 123번째 🎋
(성악, 소프라노)
《조수미(曺秀美, Sumi Jo)본명 조수경(曺秀敬)》
대한민국의 대표 성악가이자 콜로라투라(Corolatura, 소프라노 중 가장 높은음역)소프라노.
196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본포리(現 창원시 의창구 동읍 본포리) 활천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글을 배우기 전부터 피아노부터 쳤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습니다. 부모는 조수미에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부모는 조수미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할머니가 조수미를 보며 "저렇게 아이가 영특하면 단명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뭐든지 두드려라. 두드리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갈 것이다."라는 답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아노를 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부모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고가였던 피아노를 구입했습니다.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조수미는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쉬지도 않고 하루에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습니다. 방에 갇힌 채로 8시간을 채워야 나올 수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하루의 거의 전부를 음악에 바친 셈입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는 노래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조수미를 가르친 선생마다 모두 부모님에게 "수경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노래를 시키셔야 합니다"하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선화예술중학교와 선화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1981년 서울음대 성악과를 역대 최고 점수로 수석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동갑내기 남학생 K와 사랑에 빠지면서 조수미의 학업 생활은 모범생에서 날라리로 180도 달라졌습니다. 당시 K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조수미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조수미는 K에게 "나인지 그 여자친구인지 담판을 지으라"고 과감하게 대시했고, 결국 K는 자신의 여친과 헤어지고 조수미와 사귀었습니다. 그 후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 여행 등 어느 곳에서든 1년 24시간 내내 K와 함께 하면서 수업은 물론 시험까지 펑크 내는 바람에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로 떨어지고, 석차는 1등에서 꼴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면 K와 동거 생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수미는 "상상에 맡기겠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수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K가 원한다면 성악가의 길도 포기할 수 있었을 정도로 오로지 K와의 결혼에만 마음이 전부 가 있었고, 심지어 K와 함께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도 미리 지었을 정도습였습니다. 하지만 조수미의 노래를 직접 듣게 된 K는 유학을 가도록 적극 추천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학생통제정책 일환으로 대학 입학정원을 늘린 뒤 성적에 따라서 졸업정원을 조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꼴찌를 계속하다 보면 대학을 졸업하기도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결국 졸업정원제는 FM대로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조수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교수들과 조수미의 부모님은 결국 합심하여 조수미를 서울대에서 중퇴시킨 후,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인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에 강제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입학시험 때 반주자가 아파 감독관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바로 반주를 자원해 50여 명의 노래를 반주하고 본인도 로시니의 <La promessa>를 부르고 합격점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조수미의 어머니는 그 때를 회고하기를, K가 인물도 집안 배경도 흠 잡을 데 없는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K와 열애하면서 조수미가 음악을 놓아 버렸다는 실망감에 K와의 결혼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학 후 몇 달 되지 않아 조수미는 편지를 통해 K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고, 주변을 통해 알아보니 조수미와 같은 과 단짝친구인 또 다른 여학생과 K와 눈이 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K는 이른바 바람둥이였습니다. 그 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이를 악물고 독하게 매달려 5년 과정을 단 2년 만에 마치고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때 만약에 K와의 사랑이 무르익어 둘이 결혼을 했다면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바쁜 스케줄 탓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조수미의 생활 환경상, 자신의 첫사랑인 K에 대한 마음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조수미는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인과도 충분히 연애가 가능한 환경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배우자 상대는 반드시 한국인을 원한다고 합니다. 이는 "K와의 첫사랑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데뷔하기 전에는 '카를로 베르곤지'와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등의 가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이 무렵 7개의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1986년 이탈리아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한 후, 각국 극장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1991년에는 필립스에서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을 녹음했고, 1993년에는 데카에서 《그림자 없는 여인》을 녹음했는데, 이 두 음반은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기도했습니다.
'카라얀'과는 그의 생애 말년 즈음에 처음 만났고 그에게서 "신이 내린 목소리"라며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을 맡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수미가 참여한 마술피리는 3년 안에 3개가 서로 다른 메이저 회사에서 녹음되어 나왔고, '게오르크 솔티 경'이 이미 조수미와 계약 중이던 에라토 사를 설득하여 데카 레이블의 본인 지휘 음반에 참여시켰을 정도였습니다.
2006년 파리 독창회의 마지막 앵콜 곡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1절은 원곡 그대로의 가사로 불렀으며, 2절에서는 라틴어로 노래 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 3월 9일, 소향과 함께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 서서 평창 패럴림픽 주제가 <Here as One>을 열창하기도 하였습니다.
2019년 5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친서훈장>과 <기사작위>를 받았습니다.
https://youtu.be/h7O4pu9hkvg?si=DzSWmesjijT7v3Sl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https://youtu.be/eBBd425-zHw?si=tlUANN2ziYNVFbxu
(헨델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