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증후군과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50대의 세계적 거부 머스크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메시아 증후군은 국가와 사회,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는 거대한 기치를 내세워 일을 벌이는 사람이 앓는다는 병명의 통칭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 대선 때마다 감초처럼 나서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거침없는 언행을 보이는 예도 있습니다. 세계 부자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국의 사업가 일론 머스크에 대해서도 이런 평가가 있어 살펴봅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온라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한 후 인수·합병을 통해 페이팔(PayPal)을 세웠고, 몇 년 후 고가에 팔아 약 18억 달러(약 2.5조원)의 수익을 내면서부터입니다. 성공적인 창업을 이어가며 부를 늘렸고 2012년에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억만장자 리스트(Billionaires List)에 올랐는데 순 자산 규모가 20억 달러(약 2.8조원)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여러 기업을 거느리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전기 차 회사 테슬라의 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이며 비 상장회사 스페이스X(SpaceX)와 X Corp(트위터의 후신, 이하 X)의 소유주이자 경영자입니다.
2024년 봄 그의 순자산은 1800억~1900억 달러(약 250조원)로 추정되는데 보유한 주식 가격의 변동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지요. 2020년에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세계 3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세계 2)를 넘어서 세계 2위 부호자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이듬해 테슬라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는 한때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이면 돈이나 부자 순위 등이 별 의미가 없을 듯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돈을 버는 게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2021년 미국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베이조스와 머스크 등 거부(巨富)들이 로켓 개발 놀음에 대해 비판하자 머스크는 X에 자신의 축재가 인류의 우주 진출을 위한 준비라고 응수합니다.
올 6월 들어 60조원이 넘는 CEO 머스크의 보상안으로 테슬라가 비즈니스 뉴스에 회자되었습니다. 세계 최고 부호가 까짓 몇십 조에 목메나 생각도 듭니다만 (돈 없다고 거만 떨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보상은 현금이 아니라 회사 주식으로 제공됩니다. 머스크는 자신의 보유 주식이 더 늘어야 한다고 주주들을 설득했는데, 현재 13%인 자신의 지분이 25%쯤 되어야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을 무난히 개발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변(辯)입니다. 2021년까지 머스크는 테슬라 주식의 22%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팔며 지분이 13%로 낮아졌던 것이지요.
바쁜데 왜 트위터를 인수했지?
트위터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드물어 보입니다. 첫째,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게 중론입니다. 2022년 4월 머스크는 트위터를 1주당 54.2달러를 주고 매입하여 인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주식수를 감안하면 전체 비용이 약 440억 달러에 이릅니다. 그런데 애플, 구글 등 빅텍(Big Tech) 주가가 2021년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트위터의 주가도 2021년 하반기부터 하락세를 이어갑니다. 트위터의 광고 수입도 계속 줄었죠. 테슬라의 주가도 2022년 초 400달러대 정점을 찍고 100달러가량 크게 하락하자 머스크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팔아야하는 주식수도 더 늘었지요.
그해 10월 트위터 인수가 마무리될 때까지 복잡한 소송전과 드라마가 이어졌습니다. 머스크의 인수 제안에 처음에는 트위터 이사회가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수 의사를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스크가 발을 빼려고 하자 트위터 이사회는 약속을 지키라는 소송전을 벌이며 압박했습니다. 결국 처음에 제시한 조건으로 트위터를 인수했고 대부분 애날리스트들은 너무 비싸게 샀다는 의견입니다. 고위 경영진뿐만 아니라 대규모 인력을 내보낸 X는 비상장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에 주식 가격으로 가치를 평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올해 초 외신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분을 상당분 보유하고 있는 한 금융사가 내부 회계자료에서 X의 가치를 약 125억 달러로 평가하고 있다 합니다.
두 번째, 머스크는 정확한 의미가 확실치 않지만 자칭 ‘절대적 언론 자유주의자(free-speech absolutist)‘이며 기회 있을 때마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미국에서 이를 강조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트위터와 다른 SNS가 그 동안 가짜 뉴스, 인종 증오과 같은 게시물을 막았던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21년 1월 6일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폭도들이 의회에 난입한 이후 트위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폭력 사태를 조장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계정을 정지 시켰는데 머스크는 이 조치가 잘 못 됐다고 했지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2022년 4월30일) 기사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한 TED 컨퍼런스에서 트위터 인수와 관련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단지 내가 갖고 있는 강하고 본능적인 신념‒인류문명의 미래를 위해 널리 신뢰받고 포용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에 바탕을 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깊은 인류애에 바탕을 두어 거금을 들여 인수한 X는 계속 실적이 나빠지고 있고, 과거 트위터에서는 게시할 수 없었던 백인인종우월주의자, 반 유태주의자, 각종 음모론자, 동성연애 혐오자 등 극단주의 게시물들이 넘쳐난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급기야 2023년 가을에는 X의 광고주들이 대거 떠나고 성과가 계속 악화되는 것이 자신을 반유태주의자로 몰아가는 친유태인단체(Anti-Defamation League, 반명예훼손연맹) 때문이라고 화풀이 게시물을 올려 큰 파문을 일으켰죠. 평소에도 거친 말, 저커버그에게 격투기 도전을 신청하는 등 기행이 심심치 않습니다. 저명 경제학자 크루그만은 이 플랫폼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컬럼을 쓰기도 했습니다('Can Twitter, uh, X, Survive Musk?', 뉴욕타임스, 2023년 10월 19일).
머스크는 자동차 탄소배출이 많은 미국에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보급시키며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 바가 큽니다. 그 외에도 뛰어난 기술개발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편중된 세계관을 밀어붙이며 메시아 증후군의 천재 발명가라는 부정적 평가를 피하지 못하고 있지요. 엄청난 부와 재능이 좀 더 긍정적으로 쓰이길 바라봅니다. 끝으로 세습이 아니라 개인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세계적 부자가 될 수 있는 미국의 시스템도 잘 유지되면 좋겠습니다. 긍정적 파급효과가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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