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느 날 저녁 식사가 끝났을 때였다. 파벨은 창문에 커튼을 내리고서 방 구석에 앉아 양철제 램프를 자신의 머리 위쪽 벽에 걸어 놓고 독서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부엌에서 나와 살며시 아들 옆 으로 다가갔다. 아들은 머리를 들고 서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 일도 아니다. 파벨 ! 다만 그냥..."
하고 서둘러 그녀는 말하고, 당혹해서 눈썹을 찌푸리고 나왔다. 그러나 한참 동안 부엌 한가운데에 꼼짝 않고 근심스러운 듯이 생각에 잠겨서 서있었으나, 이윽고 깨끗이 손을 씻고는 또다시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너에게 물어볼 게 있다만!" 하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매일 무엇을 읽고 있는 거냐?"
아들은 책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앉으세요."
어머니는 아들 옆에 엄숙하게 앉아 몸을 꼿꼿이 세웠다. 무엇인가 중대한 것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귀를 곤두세웠다.
파벨은 어머니의 얼굴은 보지 않고 작은 소리로, 그리고 무척 엄숙한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판매 금지가 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들 노동자 생활의 진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인쇄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책이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발각된다면 나는 감옥에 처넣어 질 것입니다. 내가 진실한 것을 알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처넣어 지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바라 보았으나, 아들이 타인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들은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 훨씬 낮고 굵고, 그러면서도 강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은 손가락으로 솜털과 같은 콧수염을 비틀고, 이상하게 눈을 치뜨면서 어딘가 한쪽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무서워지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그런 책을 읽는 거냐, 파벨 ?" 하고 그녀는 물었다.
파벨은 머리를 쳐들어 어머니를 보며 낯은 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진실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
그의 목소리의 울림은 조용했으나 힘이 있었으며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자신의 운명을 뭔가 비밀스러운 끔찍한 것에 결부 시켰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생각없이 그것에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죄어드는 마음 속에서 해야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울지 마세요 !" 하고 파벨이 다정스럽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들과 헤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좀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는 40세 입니다. 그러나 살아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두들겨 팼어요. 나는 지금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옆구리에 자신의 울분을 털어 놓았던 것입니다. 자기 생활의 울분을 말입니다. 아버지는 그것에 짓눌려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30년 간이나 계속 일해 왔습니다. 공장 전체가 두개의 동 밖에 없었을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일곱 개 동으로 불어나 있단 말이에요!"'
그녀는 아들의 말을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침착하게 듣고 있었다. 아들의 눈은 아름답고 밝게 불타고 있었다. 아들은 테이블에 가슴을 갖다 대고, 어머니쪽으로 다가갔다. 눈물로 젖은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서 자신이 이해한 진실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했다. 어린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확신에 차서 자신이 알게 된 진실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얘기했다. 이따금 파벨은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을 끊으며 상냥한 눈이 어렴풋이 빚나고 있는 슬퍼 보이는 얼굴을 바라 보았다. 어머니의 눈은 두려움과 망설임의 빚을 띠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불쌍해져서 다시금 어머니의 일, 어머니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머니는 살아오면서 기뻤던 적이 있었습니까?" 아들이 물었다.
"흘러가 버린 과거를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것, 슬프고 기쁜 것을 느끼면서 서글프게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그 새로운 것은, 그녀의 아픈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의 생활에 대한 이러한 말을 그녀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 까마득한 옛날에 잠들어 버린 몽롱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고, 생활에 대한 희미한 불만이 지워 버린 감정을 조용히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먼 청춘의 생각이나 감정이었다. 그녀는 젊었을 때 여자 친구들과 생활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얘기들은 모두 푸념일 뿐이었고, 아무도 왜 생활이 이렇게 괴롭고 쓰라린 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아들이 있다. 그리고 아들의 눈, 얼굴, 얘기하는 것은 모두 마음을 때리고,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감정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 아들은 자기 어머니의 생활을 을 바로 이해해 주고, 어머니의 괴로움에 대해서 얘기하고,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주었던 것이다.
어머니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쓰라린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아직 한번도 느낀 적이 없는 따뜻한 감정의 덩어리가 조용히 가늘게 떨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게냐?" 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얘기를 가로 막고 물었다.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우리들 노동자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왜 생활이 이처럼 우리들에게 있어서 괴로운 것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어머니는 여느때는 진지하고 엄숙한 아들의 눈이 지금 이 처럼이나 부드럽고 다정하게 불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녀의 양쪽 뺨의 주름살 속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떨고 있었으나, 그 입술 위에는 만족스러운 듯한 조용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 속에는 이중의 감정이 동요하고 있었다. 아들은 생활의 슬픔을 이처럼 잘 이해해 주고 있는데, 어머니는 자식의 젊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 모두에게 익숙해진 것 그리고 그녀에게도 익숙해진 이 생활과 단 혼자서 싸우려고 결심한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졌다.
"귀여운 아가야, 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아들을 감탄해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감정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웠다. 아들은 갑자기 이처럼이나 총명한 면을 보여 준 것이다. 그녀에게는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파벨은 어머니의 입술에 떠오른 미소와 눈에 담겨 있는 애정을 보고, 자신의 진리를 어머니에게 이해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의 말이 힘을 발휠했다는 감정이 그의 자신감을 높여 주었다. 흥분에 사로잡힌 파벨은 엷은 미소를 짓거나 눈씹을 찌푸리면서 얘기했다. 이따금 그의 말에는 증오가 담기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증오가 울려퍼지는 격한 말을 들으면, 겁을 집어먹은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작은 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그럴까, 파벨?"
"그렇고말고요 !" 하고 아들은 똑똑하고 힘차게 대답했다느 그리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 주고 진실을 퍼뜨리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투옥되어 고역을 치른 사람들의 일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벌써 만났어요." 하고 그는 열의를 담아서 외쳤다. "그들은 이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
그러한 사람들의 얘기는 그녀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또다시 아들에게 "정말 그럴까?" 하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묻지 못했다. 자기 아들에게 이처럼 위험한 것을 가르쳐 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곧 날이 밝는다. 얘야, 얼른 누워서 좀 자거라 !"
"네, 곧 잘게요." 하고 그는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 쪽으로 몸을 내밀고 물었다.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해하구말구!" 하고 한숨을 지으며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한번 흐느껴 운 뒤에 덧붙여서 말했다.
"너는 당하게 될 게다 !"
아들은 일어나서 방 안을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어머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다니고 있는지 아셨겠지요? 나는 모조리 다 얘기했으니까요. 어머님에게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나를 사랑한다면 방해하지 마심시오."
"얘야!" 하고 어머니는 외쳤다.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녀는 아들이 열의를 담아서 말한 '어머님'이라는 말과 힘주어 잡은 아들의 손에서 이상한 감동을 느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마." 하고 간헐적인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다만 조심해야만 한다 ! 조심 !"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슬픈 듯이 덧붙였다.
"너는 점점 더 야위어 가는구나."
그리고 아들의 단단하고 균형이 잘 잡힌 몸을 애정이 담긴 따스한 눈 초리로 바라보며 빠른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좋을 대로 해라, 좋을 대로 하렴. 나는 너를 방해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부탁할 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분별없이 얘기하지 말아다오 ! 세상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모두 서로를 미워하고 있으니까. 욕심과 시기심으로 살고 있단다. 모두들 심술사나운 짓 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네가 그 사람들을 폭로하거나 심판하기 시작하면 너는 미움을 사서 혼쫄이 나게 될 게다 !"
아들은 문턱에 서서 이 서글픈 얘기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을 끝내자 파벨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세상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휠씬 좋아지더군요."
아들은 또다시 빙긋이 웃고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요, 어릴 때부터 저는 모두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미워하기 시작했어요, 비열하기 때문에 미워한 사람도 있었고,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유도 없이 미워한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다른 식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모두가 불쌍하다고나 할까요? 저 자신도 잘 모르지만, 더럽다고 해서 비난받는 것이 모두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까 마음이 휠씬 부드러워지더군요."
파벨은 자기 마음 속의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의 생명입니다 !"
어머니는 아들을 흘끗 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로 위태롭게 변했구나."
아들이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자, 어머니는 조용히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나 살그머니 아들 옆으로 다가갔다. 파벨은 똑바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흰 베개 위에는 아들의 거무튀튀한, 고집스럽고 엄숙한 얼굴이 있었다. 양손을 가슴에 대고 어머니는 속옷 바람으로 아들의 침대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떨렸고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서로 멀기도 하고, 또 가깝기도 한 관계의 그들 두 모자는 잠자코 생활해 나갔다.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