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고향
최봉호
내게 ‘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별들의 고향’이란 영화다. ‘70년대 중반, 나이 스무 살 남짓, 을지로에 있는 대한극장에서 본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누구와 봤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아마 단체미팅 후 서먹서먹한 관계를 풀어보고자 여러 명이 같이 봤던 것 같다. 원작은 최인호의 소설이고, 스토리는 경아라는 주인공이 여러 남자한테 배신당하고 호스테스로 생활하다 결국은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해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다.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래를 배경에 깔고 진행되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것 없네. / 별을 따다가 그 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 ~ .”
주인공 ‘경아’는 여러 남자를 거치면서 시들어가다가 결국은 물 대신 눈덩이로 수면제를 삼키면서 허망하게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꼭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몸 바쳐 사랑했던 남자들이 떠나니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경아가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을 버리고 신실한 남자들을 새로이 찾아 사귄다고 생각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아 같은 여자들과 간혹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의 구체적인 사연을 알기 어렵지만, 대부분 경아가 가졌던 사연과 엇비슷한 사연을 가진 것 같았다. 버림받기도 하고 각자 나름의 문제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 같았다.
특히, 종로에 있는 H 스탠드바의 미스 O가 생각난다. 바의 전체 주인은 따로 있고, 젊은 여자들이 한 코너씩을 임대해 술파는 그런 형태였다. 미스 O도 바의 한 코너를 맡아 운영했는데, 우리들이 찾아가면 외상도 흔쾌히 주고 살갑게 대해 주었다. 미모가 뛰어 났다기보다는 상냥하고 착하게 손님들을 대해주었다. 한번은 넌지시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거절을 당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자궁 적출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그 후 서울에 출장 갔을 때 바에 찾아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바 옆 코너의 아가씨는 내게 그만 잊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 후 10년 정도 지나 풍문을 들었는데,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나 다른 별나라로 갔다고 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별’이 뜻하는 메타포는 인기를 먹고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캄캄한 밤일수록 더욱 멋있게 빛나 보이는 별. 멀리 떨어져 빛나 있을 때는 너도나도 손에 잡으려고 애쓰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피하는 별. 어릴 적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검은 하늘에서 노란 별똥별이 쏟아지는 게 누런 황금이 멋있게 쏟아 내리는 것 같이 보였다. 그렇지만 떨어진 별을 찾으려 그곳 가까이 다가갈수록 황금은 찾을 수가 없었으며, 멋있게 보였던 빛은 사그라지고 퇴색한 황토색의 흙무더기 모습만 보았던 적이 생각난다. 나는 그걸 알기에 ‘별’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내 생각은 소수 의견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은 별을 다르게 느낄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라고 감정을 넣어 읊었다.
나도 옥, 숙, 지, 영 이런 이름들을 불러보지만, 이름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고 실체가 없는 신기루같이 생각된다. 이제는 ‘별들의 고향’과 같은 영화를 다시 보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우연히 경아를 만나게 되면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고 하는 것이 인생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첫댓글 최봉호 수필가님.
올려주신 수필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